왕과 왕의 결투
아무리 연습해놓은 것이 많다고 해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소용이 없는 것이 이런 실전이었다.
연습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실전을 대비하기 위해 골라서 하는 것에 불과한 법.
샤를의 왕국 정규병은 그야말로 폭죽 터지듯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수가 많은 만큼 지리적 이점을 크게 당하고 있었다.
즉 고저의 차이만 있어도 시온의 마법사들이 대충 공격을 해도 맞아들어갈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적도 드디어 공격다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적 마법사들도 시온의 보병진을 향해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슬슬 정면에 부딪힌다.’
지금은 서로의 마법적인 화력을 다루고 있지만, 곧 무언가가 이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시온이 바로 돌진했다.
‘지금이 적기려나.’
사실 코르도바에게 일을 맡겨둔 탓에 돌아가는 상황은 이제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시온이 들어갔다. 좌측으로 거의 단독이었다.
이러한 행동은 솔직히 말해서 미친 짓이었다.
그 정도로 다른 기사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그런 속도와 돌파였다.
‘에라 모르겠다. 한 번 더 분리하자.’
잘 닦인 가도는 그만큼 취약하면서도 시온의 기동력을 올려 주었다.
더 빨리 달리게 되니 더 큰 공격에 노출되는 것인데 그것은 반대로 얻을 기회가 커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온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물보라를 보았다.
‘시작이군.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이라면...’
대충 계산해 봐도 대마법 바로 밑이었다. 시온이 출발하자마자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만큼 상대의 수준이 잘 준비되고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 삼십 명은 넘게 사망하겠는데.’
제대로 들어가면 그 이상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준비해놨다가도 시온에게 뿌릴 정도다.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온은 이를테면 이 모든 상황을 단숨에 종료할 만한 그런 인물이다.
체스에서 킹이 돌아다니고 있는 판이니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시온을 공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판단.
그리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그것을 시온이 급성장시킨 메이스로 후려쳤다.
파앙!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희한한 소리가 났다. 단순한 소리는 아니었다.
이렇게 전장에서 부는 여러 가지 소리에 폭우까지 겹쳐져 분간할 수 없는 소리의 향연들인데.
수만 명의 결집 된 사람들 모두가 시온이 만들어낸 거대한 파장 소리를 들은 것이다.
“사...사라졌다고???”
나름대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적들이 아비규환이 되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일 지경.
롱기우스의 갑주도 대마법방어진이 있는 데다가, 드래곤 브레이커도 대마법방어진이 있다.
여기에 시온 자체가 대마법사의 마나를 가지고 있는 기사인 거다.
예외적 존재라는 것.
그러니 수많은 이들이 처음 보는 현상을 본 것이다.
고위계 마법을 저렇게 허무하게 한 방에 날리다니.
좌측에는 이리저리 전리품이나 기타 비슷한 것을 쌓아놓은 것들은 무용지물인 것은 확실했다.
‘좌측이 맞았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측을 갈지 좌측을 갈지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에슬린이 무엇을 근거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는 확실했다.
좌측은 약했다. 그리고 그 약한 부분의 너머에는 고위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한 번 제대로 놀아보자!”
적마가 신이 난 것처럼 울부짖었다. 신이 날만 했다. 영리한 만큼 가끔 시온이 원하는 바를 무시할 정도로 호전성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인도 모르는 효과를 볼 정도로 영리한 녀석의 고집이라는 점이 다른 말과 다른 점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시온이 달려가는 도중 마법 하나가 더 벌어졌다.
“음???”
굉장히 강렬한 마나의 기운. 다른 고위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물이 뭉치더니 거대한 늑대가 되었다.
덩치가 많이 컸다. 그것이 시온을 향해 뛰어오자 시온은 아주 간단하게 메이스를 키웠다.
재해 영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었던 메이스인 덕에 이런 몸집이 가져오는 어떤 이득은 시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팡!
머리에 정면으로 맞은 늑대가 허공으로 흐트러졌다.
이것 역시 일격이었다.
원래라면 절대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없지만 시온의 거대한 마나가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기사가 대마법사의 마나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아무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몰랐다.
해당 마법을 쓴 마법사들이 개 거품을 물었다.
그들이 평생 배우고 쌓아왔던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상이 눈앞에 벌어진 데다가 게다가 이런 폭우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시온이 그냥 인간으로 보이질 않았던 거다.
두 번의 파장은 시온의 마나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됐다.
대마법사급의 마나를 얻게 돼서부터는 안 그래도 시온의 등장에 압박을 느끼는데 하물며 적은 그 이상의 공포를 느끼기 마련.
최전선에 가만히 버티고만 있어도 다행이라고 봐야 했다.
이미 슬금슬금 물러서는 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들은 시온에게 한 번 겨우 살아남은 기사들이었다.
당시 그 기사단들끼리의 충돌에서 겨우 살아남은 자들인데 어떻게 할 방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달려들어!!”
“못 막는다!”
두 의견이 갈리며 난립하고 있을 때 시온이 들이닥쳤다.
ㆍㆍㆍ
시온은 자신이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는 이렇게 깊게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시온이라고 해도 메이스로 돌진했는데 보병을 다 뚫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깊숙이 들어온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머리가 깨져 시온에게 잡혀 있는 이 자가 아무래도 이쪽을 지휘하던 마법사들의 수장으로 보였다.
‘맞는 것 같은데.’
이미 죽어버렸지만, 이자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보통은 아니었다.
딱 봐도 고위계 마법사였다.
카페 왕국은 기사나 마법사나 전부 다 강력했다.
다른 영주완 다르게 고위계 마법사를 보유하고 자체적으로 길러내기까지 하는 강력한 집단이었다.
게다가...
지금 바닥을 구르고 있는 저자도 고위계 마법사였다.
시온은 바로 메이스를 휘둘러 그를 후려쳤다.
퍽.
폭발 비슷한 것이 일어났는데 롱기우스의 갑주가 그냥 흡수했다.
이어지는 것은 그저 학살이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마법사들이 뭉텅이로 죽어 나갔다.
어중간한 마법은 어차피 시온에게 통하질 않는다.
온갖 것이 날아오긴 하는데 일단 폭우인 탓에 관련 속성이 아니면 효과도 제대로 되질 않았고, 지면 계열은 영수마가 영리하게 피했다.
시온 자신도 기감이 뛰어나서 이제 조금 뛰어나다 싶거나 마나가 모인다 싶으면 그쪽으로 달려들어 메이스를 휘둘렀다.
이들 하나하나가 평생 얼마나 마법을 수련하고 단련했는지 잘 알고 있는 시온도 조금은 미안할 지경.
‘마나를 좀 아낄 필요는 있다.’
시온은 마나 소모가 컸다는 것을 알았다. 그제야 드래곤 브레이커의 크기를 낮췄다.
손도 좀 얼얼했다.
아무리 시온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 난동에 아무렇지 않을 정도의 괴력은 아니었다.
‘얼마나 보낸 거지?’
좌우가 아예 텅 비어버린 수준.
그나마 피떡이 되든 운 좋게 살아남든 겨우겨우 기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좌측을 깨트린 것임을 기억해야 했다.
중간과 우측은 본격적인 힘 싸움에 들어간 모양.
이렇게 되면 지금부터는 시간이 금이 된다.
‘심연의 고렘이 본격적인 대마법을 펼쳤군...’
아무리 마나를 빌려 쓴다 해도 그 주인인 시온이 모를 순 없었다. 그리고 시온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원래의 목적이라면 이미 달성을 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이 정도까지 타격이 들어간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보병과 기사들만 좀 처리하고 그냥 나올 생각이었는데 이건 그냥 좌측을 붕괴해 버린 게 됐다.
시온도 마냥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시온도 마나가 많이 빠졌다.
양쪽의 대마법이 중앙에 벌어졌고 아주 개판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대마법은 특히 이런 환경에서는 더욱 지속시간이 짧았다.
곧 진정한 난전이 벌어진다. 백병전과 방패로 만들어지는 냉정한 선이 그어지게 된다.
이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보병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이제 장기전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보편적인 순서다.
차근차근 일이 벌어지게 된다.
좌측이 무너졌다고 해도 샤를의 병력은 여전히 넉넉했으니, 아직도 해볼 만한 수준인 거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지 본격적으로 저쪽 끝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사들에게 추격당하는 척을 해서 유리하게 판도를 끄는 것이 정석 중의 정석이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고...’
사냥꾼으로서의 감도 지금 거짓 후퇴를 해서 상대를 혼란 시키는 것이 좋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고 후퇴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데 적마가 길게 울부짖더니 미친 듯이 재돌진을 하기 시작했다.
“?!”
“백작님!!! 안 됩니다!!!”
“씨발! 모두 백작님을 따라라!!”
아니? 시온도 조금 억울했다.
솔직히 고민한 것은 맞긴 맞지만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적마가 돌진을 해버리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에 박자를 맞추기로 했다. 마나가 점점 아슬아슬해져 갔다.
블랙홀의 대마법 우측에서도 팽팽한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볼만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연의 고렘이 소환할 수 있는 거대 소환수와 대마법급의 소환수가 힘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적마가 이끄는 대로 도착한 시온은 거대한 깃발을 발견했다.
카페 가문의 깃발.
수많은 백합이 검처럼 세워져 있는 특이한 문장이기에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 아래에 있는 거대하고 붉은 막사와 다급하게 한 남자를 근위대 기사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수준 하나하나가 상당했다.
전쟁에 데려온 근위 기사들인 만큼 시온이 봤던 기사 중에 가장 강력한 기사였던 드래곤나이트와 비슷한 급이었다.
‘저건 힘들겠지.’
마나만 넉넉하다면 어떻게든 해볼 것 같긴 했는데 지금 이래저래 시온의 마나는 바닥을 보였다.
중간에 마나가 부족하게 되는 현상은 무조건 피해야 했다. 그건 너무 악수였다.
“후. 이런 저 녀석만 잡으면 여기서 끝을 볼 것 같은데.”
금발의 큰 키의 샤를은 소문대로 미남자였다.
나이는 서른 중반이었고 붉은색의 보석이 줄줄 달린 갑주까지 입고 있는 데다가 가문 문장을 홀로 달고 있어서 승리왕이 전장에서 달고 다니는 소문의 이미지와 일치했다.
그렇게 포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샤를과 근위대가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물론 시온도 비슷한 처지였지만..
“시온 백작님!! 여기서 나가셔야 합니다!! 보병대들이 곧 몰려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에 목숨을 밟고 도망치십시오!”
에릭이 그렇게 소리쳤다.
평소엔 반말이 자주 나오는 유일하게 편한 녀석이었지만 정작 이렇게 중요한 순간이 되니 나름 기사답게 말했다.
“음.....”
시온이 뭔가 대답을 내리기 몇 초 직전 근위대 하나가 그대로 베어졌다.
“?!!!!!”
“저리 비켜라. 쓰레기 같은 것들. 이 머저리 같은 쓰레기들. 시온 니벨룽! 나와 검을 논한다!!! 왕대 왕으로 결투를 청한다!!!”
시온도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 갑자기 불어왔다.
얼굴이 붉어진 게 사리 판단이 안 되는 모양.
미모의 여자가 들러붙었다가 그대로 뺨을 맞고 날아갔다.
“나와라. 그 결투 받아들인다.”
당연히 다 잡은 고기를 놓칠까 말까 하는 와중이었는데 저렇게 달려 들어주면 그냥 연기만 하면 됐다.
말에서 서로 내리고 투구를 내리자마자 그가 달려들었다.
‘영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군.’
기사 왕이라더니 그 솜씨와 실력이 상당했다.
다만 시온이 봤을 땐 그냥 나름 쓸만한 정도네. 싶을 급밖에는 되질 않았다.
예측을 살짝 벗어난 것이 샤를은 시온이 기대한 것보다 세 대를 더 버텼고 결국엔 팔에 맞아 팔이 부러졌다.
“씨발! 저 미친 새끼를 막아!”
“샤를 왕을 지켜라!!!!!”
결투의 명예고 자시고 간에 상황이 너무나도 특이한 탓에 관습을 어기고 이들이 달려들려고 했다.
시온이 그대로 샤를의 머리를 든 뒤에 얼굴을 쳤다.
코가 부러질 정도로 제대로 들어간 주먹에 그가 정신을 잃었고 시온이 그대로 적마에 태웠다.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