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304)

싹쓸이

카페 측의 입장에서는 좌측을 내줬었어도 여전히 할만했다.

머리만 살아있었어도 말이다.

중세 전투에서의 문제는 바로 이거였다.

해당 왕이 무너지면 다른 모든 기물을 합친다고 해도 이 전장의 지휘관인 왕보다 가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기사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

어차피 지면 다 뺏기니까 그 전에 그런 임무를 맡은 자들이 이렇게 대신 목숨을 버리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것보다도 황당한 전개로 이어졌다. 

한치의 앞도 볼 수 없었던 배치의 배치에 결과 시온이 한 번에 상대의 좌측 핵심부까지 들어가 파괴해버렸다.

왕이 백작에게 결투를 청하는 전쟁사에 남을 만한 일이 벌어진 거였다.

엇비슷하기만 했어도 별일이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온은 샤를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미친놈들처럼 쫓아오네.’

진짜 광견병 걸린 놈들인 마냥 쫓아왔다.

시온은 가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 수준도 이들이 타고 있는 기동성을 넘어서니 그냥 조롱하면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속도를 낮추십니까??”

“이쪽이 더 좋을 것 같지 않나.”

시온이 말한 바가 무엇인지 이해한 에릭이 감탄했다. 속으론 이번 일이 끝나게 되면 사냥꾼의 기술을 배우겠다 하며.

그리고 에릭이 추측한 것이 맞았다. 원래 그냥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것은 사냥꾼으로서 실격이었다.

사냥꾼은 함정을 파놓고 흐름을 읽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했다.

‘몰이 사냥이라는 것이 이렇지.’

몰이 사냥은 포위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잽싼 맹수들은 능숙한 사냥꾼을 골탕먹이는 일이 많았다.

지금 이것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한 발자국 더 나간 것이다. 상대를 잔뜩 꼬이게 해서 적의 피해를 늘리려는 것.

왕이 잡혔다고 해서 지금 이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고, 상대의 전력이 남아 있다면 그것 자체로 여력이 있으니 협상의 여력도 강하게 나올 것이 아닌가.

‘어쩔 땐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낫긴 하지.’

먹지 않으면 먹힌다.

이곳이라고 해서 그 이치가 그렇게 다른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뒤는 아비규환이었다.

“어떻게든 잡아라!!!”

“모두 잡아!!!”

중간에 말끝이 제대로 맺히지 않을 정도의 다급함.

게다가 폭우 때문에 상황이 이러니 적은 더욱더 다급해져 갈 뿐이었다.

보통 지휘권이 있는 기사들이나 귀족들, 마법사들은 이런 추격전에 따라오지 않는 법이지만...

다들 놀랐다.

모두 시온을 잡아내기 위해서 따라오고 있었다.

다급한 강제 명령 때문에 보병들도 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렇게 잡힐 듯 말 듯한 거리를 만들어주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버린 거였다.

‘원래 사람이 모인 곳에 불을 지르면 이렇게 앞뒤 안 가리기 마련이지.’

훈련된 사람도 너무나 다급해지면 이렇게 간단한 생각밖엔 하지를 못한다.

시온에게 이대로 왕을 뺏기지 않으려는 그 간단한 일념 때문에.

어떠한 진형 적인 유리함이나 불리함을 따져보지도 못하고 있었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그나마 가지고 있는 가치도 하나씩 다 날려버리고 있다.

‘코르도바라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말하는 바를 눈치채겠지.’

시온은 코르도바의 뛰어남을 알고 있었다. 

가끔 답답한 소리를 하는 자지만 항상 중앙의 군대를 항상 그에게 맡기는 것이 나을 정도로 깔끔한 능력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군을 배분해서 이쪽으로 집중 타격을 먹일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건 몰이 사냥이 거의 끝이 되어가는 모양이었다.

이 뒤에는 한 가지밖엔 없었다.

사냥.

압도적인 사냥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예상이 맞았다는 듯이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벽히 깨졌다.

일단 중간에서 벌어지는 백병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일이 끝나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현대와 다르게 중세의 백병전은 상당히 지지부진했다. 어쩔 땐 진형과 선을 이루어 눈치싸움을 하듯이 기세만 보고 있을 때도 있다.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여기에 아군의 명령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혼란의 극치다.

이런 난전과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정면 회전에서 이런 백병전 구도에서는 조직적으로 받쳐주는 후발 부대가 중요했다.

먼저 싸우고 있던 보병 부대가 뒤로 빠지고 뒤에 있던 부대가 앞으로 들어가 휴식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자는 치료를 하고 치료가 안 되면 바로 완전 후방으로 빠지게 되는 그런 일련의 절차.

그런데 시온이 좌측 핵심부를 궤멸시킨 덕에 수가 많은데도 이상하게 비등비등하던 것이 이제는 전면이 밀리고 있었다.

언덕 전투만 해도 김이 빠지는데 여기에 폭우로 생긴 지면의 불안정함에 피로도가 급증, 

에너지 효율로 봐도 시온의 보병은 그 중간도 쓰지 않았는데 적은 탈진해 버릴 정도다.

위아래가 자연스럽게 교체되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압박 적인 전투가 강요되어 버리자 갑작스럽게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이어지는 건 이런 원리에 따라서 생기는 학살이었다.

도망갈 힘도 잃어버린 중앙 부대는 그냥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시온이 벌이고 있는 이 역 추격의 줄다리에 달려 있다는 것.

이제 이 연쇄 결과가 계속해서 벌어지게 된다면 전략의 신이라고 칭송받을지 모르는 수의 연속들이었다.

물론 시온 본인은 그냥 코르도바가 알아서 병력을 보내주겠거니 하고 있었고, 여러 번 반복한 사냥 기술을 보일 뿐이었지만.

중앙이 무너지니 벅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순간 돌아가고 있는 꼴을 안 코르도바는 기절할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좌측에서 돌격한 시온에게서 벌어졌다는 것과 시온이 지금 대규모 추적을 받고 있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코르도바님!”

“알고 있습니다. 좌측을 부탁합니다. 에슬린님. 바로 분산해서 붙이겠습니다.”

꽉 잡혀 있는 전투의 형식에 따라서 초반에는 거침없이 각종 마법을 날려 수를 줄이다가 마나가 바닥나면 휴식을 취한다.

백병전이 끝날쯤 어느 정도 마나를 다시 채운 마법사들이 백병전을 보조한다.

이 규칙이 여지없이 시온 측에는 일어났다. 

다만 샤를은 좌측에 있던 핵심 마법사들이 거의 사망한 데다가 샤를까지 이러한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럴 여유는 전혀 없었다.

“슬슬 이쯤인가.”

시온은 말을 돌연 멈췄다.

시온이 멈추자 그 뜻을 알아차린 에릭과 볼브 라울 등 적잖은 기사들이 상대를 받아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버티면 코르도바가 보낸 증원군으로 이들을 모두 사로잡게 된다.”

“!!!!!!!!!!”

시온이 그린 그림이 이제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이렇게 힘든 추격을 한 상대의 선봉이 시온을 밀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시온 니벨룽!!! 악!”

조금 전 있는 힘껏 달려온 기사는 시온의 메이스에 제대로 맞아서 대략 삼 미터 정도 날아가 자기들 사이에 떨어졌다.

이어서 시온은 체력 분배도 할겸 상대의 공격에 거침 없이 들고 있는 샤를을 방패로 썼다.

샤를을 구하러 온 것인데 움찔하며 공격을 꺾을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마다 한 명씩 말에서 떨어졌다.

“비..비겁한 자식이!”

“네 왕과 나는 정당한 결투였는데 지금 이 행위는 비겁하지 않고?”

기사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쳤다! 시온 백작은 지쳤다. 모두 계속 공격해라!”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시온이 던진 랜스를 막지 못하고 즉사했다.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이들도 이제 깨달은 것이다.

시온이 저런 식으로 샤를을 방패처럼 쓰면 어지간한 사상자가 나지 않고는 시온이 만드는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단련된 자라고 해도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 나서는 도망칠 구석을 찾길 마련.

그러나 본격적인 마법 폭격이 이어지자 대량 사망자가 발생했다.

쾅! 쾅!

시온을 뚫지 못해 만들어진 두꺼운 허리. 거기에 본격적인 마법이 떨어지자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냥 폭죽이면 좋겠지만 한 번 터질 때마다 비명이 뒤따르고 시온이 챙겨가는 이득과 전세가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망치려는 자들이 자신들이 도망칠 구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방에서 시온의 보병대가 그들을 조여오고 있었던 거다. 폭격을 맞고 이제 생사가 불분명해지자 이리저리 도망을 가려고 했다.

“침착해라!! 침착해!!”

그나마 이들을 통제할 만한 귀족이 연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는 자는 없었다.

겁에 질린 샤를 측의 보병과 기사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져서 탈출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섬멸전의 시작이었다.

피곤이 극에 달아 탈진까지 온 상황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전황의 압박에 싸울 자도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한두 명 죽어서 계란이 바위에 던져지듯 터지다 보니 이런 흐름은 점점 가속화됐다.

‘코르도바 이 녀석. 그냥 옆치기만 하라고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병력이 감싸듯 올 줄은 몰랐던 것.

말할 것도 없이 코르도바 역시 시온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옆치기하려고 보낸 병력이 맞았는데 시온이 워낙 병력을 잘 끌어간 턱에 뒤에서부터 감싸는 형태가 된 것이었다.

ㆍㆍㆍ

한번 시작된 흐름은 시온도 막을 수가 없었다. 서로 치열하게 목숨을 나누다가도 이렇게 되면 가운데에 몰린 자들이 불쌍할 정도.

시온은 단지 이 전투를 기울게 할 타격지점이 필요한 것이었지만 하다 보니 적의 마법 수뇌부를 괴멸시키고, 샤를을 붙잡게 되고.

이런 대 섬멸전을 펼친 게 되었다.

샤를의 수뇌부에 거의 전부를 사로잡았다.

그 정도로 이번 전투는 수뇌부의 몸값과 이것으로 받아낼 수 있을 만한 가치는 지금까지 받았던 몸값을 전부 다 더해도 치를 수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인 샤를이 출전하니 그의 관심 사기 위한 샤를이 보낸 공작가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시온에게 붙잡힌 게 됐다.

몇은 그 와중에 장렬히 산화됐지만, 빗줄기가 강하게 내리친 탓에 분간하기 어려웠으니 어쩔 순 없었다.

‘되돌려 주는 것만 잘 조절해도 영지 몇 개는 그냥 떨어지겠군.’

가진 것이 많은 자를 정면에서 격파했으니 그가 가진 것을 다 챙겨 가게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였다.

게다가 어차피 이렇게 이긴 거 이대로 추가적인 위협과 협박도 이제 막아버린 셈이 되었다.

주력 군대는 섬멸되었고, 이것들은 이제 이들이 협상에 임하지 않고 추가적인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할 때 생길 부담을 늘리게 된다.

그런 데다가 이렇게 여섯 여덟 개의 공작가와 다양한 백작가의 자제들이나 본인들이 사로잡힌 마당에서야 건드렸다간 바로 다 죽게 될 거다.

안 그래도 적이 많은 데다가 곳곳에서 이것을 기회로 카페 왕조에서 분리되려는 백국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가게 될 거였다.

ㆍㆍㆍ

비가 개고 벌어진 현장은 대단했다. 하지만 승리는 더 달콤한 법이었다. 이제 열매만 가져가면 되니까.

일단 샤를을 포함한 수뇌부를 모두 포로로 만들고 시온은 양측의 피해를 어림잡아봤다.

‘나도 삼천 정도는 죽었구나.’

물론 샤를은 그 정도도 아니고 그 구십 배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다.

정면 회전의 위험성이 드러난 거였다.

“잘 풀렸다고 봐야지.”

이렇게 유리한 진형을 다 잡고 있었는데도 카페 왕조의 잘 훈련된 질 좋은 병력으로 억지로 돌파당할 뻔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법.

그나저나 이긴 것은 이긴 것이고 전리품을 분리할 것은 빠르게 분리해야 하고 시체는 소각해야 했다.

내버려 두면 습한 날씨에 역병이 돌기 마련이었다.

전쟁 후에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점령지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곳에서의 병에 대한 이해도가 모자라서 생기는 일이었다.

‘유비드 가문 때와는 다르게 시체의 수도 한 두기의 고렘으로는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나도 고렘이 이젠 열일곱 기이니.’

그리고 저번의 경험에서 배운 방법으로 이번 기회에 기존 고렘들을 강화까지 할 수 있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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