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키우기
시온의 고렘들은 오라고 하자마자 곧 도착했다.
두 기는 전투에 쓰려고 애초에 가지고 온 상태였고, 나머지는 혹시 모를 전투의 불리함을 대비해 준비해놨다.
여차하면 벌판에 축성해서 버틸 심산이었던 계획이었다. 거기까지 갈 일도 없던 게 되었지만.
“시온 백작님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전설에 남을 업적에 동참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온의 수뇌부들은 정말로 승리에 취해 있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취한 정도가 아니라 우는 자도 많았다.
이번 전투는 다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각오를 한 규모의 진짜 회전이었다.
지금까지는 마법사가 이렇게 대거 투입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장거리 공격 능력을 담당하게 되면서 개인 전투보다는 흐름을 잘 잡아야 했다.
“모두 기쁜 것은 알지만 지금 전투의 마무리 역시 중요하니 집중해야 한다.”
시온이 그렇게 말하니 다들 풀어졌던 표정이 없어지고 긴장감에 차서 시온을 바라봤다.
이들은 병과 전염병 그리고 그것들이 몰고 올 각종 문제에 대해선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세균이라는 단어만 이들에게 던져줘도 마탑의 큰 계파인 치료계파에서 혁명이 일어날 정도다.
물론 아직은 그런 것을 알릴 필요도 갈등을 만들 이유가 없으니 그냥 있는 것이다.
“오르도, 코논, 벤츨 고렘을 이용해 일단 포로를 수용할 수 있는 임시 건물을 부탁한다.”
이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벤츨 네가 담당이다. 화려하게 치장할 것도 없어 그냥 잠시 이들을 안전하고 탈출이 힘들 만한 급의 건물을 만들어라.”
코논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번졌지만, 이 일은 벤츨이 적임이었다. 이렇게 적재적소에 성격에 맞춰서 장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했다.
임시 포로수용소는 금방 만들어졌다. 애초에 열일곱 기의 고렘이 가지고 있는 생산능력은 인간을 압도했다.
두 기만 있어도 금방금방 했는데 열일곱 기가 만드는 속도는 이틀 정도면 충분했다.
당연히 수뇌부 말고도 죽지 않고 사로잡은 보병과 마법사들 그리고 그 위에 지휘권을 가진 기사들 단계가 있는 마법사들을 분류할 수 있을 만한 형태였다.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현장의 장면을 보고는 마리온의 입이 벌어졌다.
‘할아버지가 언 듯, 말했던 적이 있던 것 같던데!!!’
그녀는 이른 나이에 대마법사가 되었다. 그 정도의 마나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그녀가 존경하는 할아버지에게 언 듯 들었던 꿈에서 봤다는 그런 풍경.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저런...형태는 불가능하다고 이미 낙인을 찍어놨는데.’
현존의 마법의 역량을 한참은 넘어선 혁명에 가까운 아득한 수준 차이.
그녀가 심하게 말을 더듬으면서 근처의 사람을 붙잡고 말했다.
“저...저건 누가 고안한 거지..?”
“마리온? 마리온인가?”
마리온의 이름을 아는 마법사들이 진귀한 모습을 봤다며 수군거리며 모여들었다.
“알려줘. 저건 누구의 작품이지?”
“대마법사인 시온 니벨룽 백작님의 비술이시다.”
“!!!!!!!”
그녀는 이제 평생 시온이 두르고 있는 가문의 문장인 반지 세 개를 잊을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급격히 완성된 포로수용소에 하나둘씩 줄줄이 끌려가고 그 건물을 중심으로 군용 막사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는 모양이 되었다.
시온은 거주지는 당연히 건축물 최상층이었다.
마탑 출신의 마법사들답게 잊지 않고 그 와중에 신경 써서 만들어 놓은 거였다.
“에슬린.”
“예. 백작님.”
“고렘을 지금부터 나랑 강화하러 간다. 기억하고 있겠지?”
“기억하고는 있지만 열다섯대 전부 하겠다는 뜻입니까?”
“바로 그거야.”
에슬린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걸 누가 기억하겠는가.
애초에 신기한 것을 봤다고 치부할 정도로 그저 신기한 광경일 뿐이었다.
그걸 기억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다시 이어졌다.
다시금 찾은 현장은 여전히 처참했다. 아직 부패가 본격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시온은 데려온 고렘을 하나씩 가운데에 놓았다.
그때와 현상은 비슷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때 경험했던 대로 하면 된다는 거였다.
차례차례 열다섯 대가 허공에 흐르는 불안전한 마나를 흡수해가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씩 통제를 잃어 날려버릴 수도 있는 작업이었기에, 에슬린을 포함한 다른 마법사들은 가슴을 졸이고 봤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없었다. 애초에 이제는 쉬운 일일 뿐이다.
한 대 한 대 확실하게 강화를 했고 근처 마나를 흡수하고 나면 워낙 사망 장소가 넓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 고렘 강화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열다섯 대의 고렘이 기존의 강철 고렘과 비슷하게 되었다.
재질의 차이로 강철 고렘급은 아니었지만 열다섯 대 모두 성능의 향상, 효율성, 시온의 대한 명령 이해도와 짜놓은 프레임에 대한 것, 그리고 마나의 축적까지.
전체적인 부분이 전보다 높아졌다.
모두 경탄을 하며 시온이 하는 바를 지켜봤다.
세기의 마법사라는 별칭이 다시금 증명되는 순간이었고 이들의 충성심이 더욱더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됐나. 후우.”
시온이 숨이 벅차서 몰아쉬었다. 아무리 쉬워도 하나라도 잃으면 손해가 크기에 긴장이 될 수밖엔 없는 상황이었다.
‘이 열다섯 기에게 세밀한 일은 시키지 못했지. 하지만 이제 가능하겠군.’
이 고렘들은 강철 고렘이나 심연의 고렘만큼 높은 이해도와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하지 못했다.
첫 번째 초기 형태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두 번째 형태가 되어서 더 질 좋은 작업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움드에 고층 건물들을 만드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는데, 이러면 시간이 더 단축되겠는데.’
전투, 전쟁이라는 이 거대한 파도를 이겨낸 결과 중 하나였다. 시온은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자, 에슬린.”
“옙. 백작님.”
“이제 이곳에서 전리품의 분류와 소각 작업을 부탁한다.”
적들을 이렇게 태워주는 것은 이곳에서의 최고의 예우였다. 좀만 이상하면 모가지를 잘라서 창대에 꽂아놓는 곳이니..
다들 수군거렸다. 시온에 기사로서의 명예로움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고 속닥이는 거였다.
실제론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였지만.
병마는 그냥 태우면 같이 사라진다.
부패라는 작업은 그거 자체가 위험하다는 뜻이다. 현대인인 시온이 현재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미리 이런 작업을 해본 오르도가 전리품을 챙기고 분리하는 법을 고렘에게 집어넣자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곳이었다.
철은 철대로 조금이라도 마법 장비면 마법 장비대로, 고렘들의 작업 속도는 시온이 봐도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차곡차곡 분류되는 것과 한쪽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이고 그렇게 작업이 동시에 진행이 되었다.
‘철은 녹여서 쓰면 되고, 마법 장비는 공을 세운 자들에게 최우선 나머지는 기사단 위주로 좋은 정수는....’
원래 이렇게 큰 전투가 있었다면 상기에 이유로 인해 전리품을 전부 회수하는 것은 딱 잡아 불가능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탑에서 침을 흘릴 정도다.
대강의 일을 지시하고 시온은 잠시 쉬기 위해 거처로 움직였다.
ㆍㆍㆍ
소각 작업과 분리 작업은 너무나도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이곳에 맞는 죽음의 예우에 대한 절차까지.
어쨌든 이런 짓을 시키는 것만으로도 해당 보병들에게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보병은 보병대로 할 일을 시키고, 이런 것은 고렘이 다 처리하니 그런 일이 생길 일이 없었다.
이 모든 일이 다 처리가 된 것이 불과 삼일에 벌어졌다.
삼일에 그 많은 망자를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대충 처리하다가 그냥 이 지역을 폐쇄하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이곳의 전통적인 처리법.
어쨌든 시온은 새로운 협상안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건 순전히 에슬린의 의견이었다. 원래라면 그냥 샤를을 대면해서 얻어내려고 했는데..
‘각기 받아야 한다고 말이지.’
에슬린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샤를과 빨리 협상을 봐야 했는데 전투가 파죽지세로 끝난 까닭에 시간이 많이 남게 된 거였다.
게다가 거의 병력 손실도 없어서 다음 전투가 위협되지도 않았다. 정예란 정예는 다 끌어다 왔는데 여기서 전멸해 버렸으니..
“백작은 백작대로 공작은 공작대로 따로 몸값을 치르게 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극대화됩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시온은 에슬린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예전과 달리 본인이 공작인 경우도 몇 명 있었고 대부분이 백작인 데다가 카페 왕조답게 부유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땅은 거의 풍요로웠기에 그만큼 가진 것도 많고 인구도 안정적이던 거다.
단순 계산을 해봐도 공작급에서는 영지를 뜯어낼 수 있었고 샤를에게는 지역을 뜯어낼 수 있었다.
각 백작에게는 영지보다는 다른 것으로 뜯어야겠지만.
바로 수용소를 만든 탓에 이들이 서로에게 의견을 나누거나 소통을 할 만한 기회는 전부 사라졌다.
급이 되면 다 독방에 넣어버렸기 때문.
이렇게 되면 이들은 서로를 믿어야 할지 아니면 의심해야 할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약간의 소문을 넣어주는 겁니다...”
“그게 뭐지?”
“샤를이 밑의 부하들의 목숨을 담보로 나가려고 한다고요.”
“흠...”
“단지 소문일 뿐입니다. 이런 곳에서 이들이 받게 되는 압박은 장난이 아닐 겁니다.”
서로서로 팔게 해서 값을 끌어오자고 제안을 하는 것.
경쟁을 붙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라. 할 때 제대로 가져가야 다음에 복수하겠다고 달려들지 않는 법이지.”
시온은 사냥꾼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이 중엔 이 짐승들이 가지는 습성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사회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ㆍㆍㆍ
군을 일으켜 양동 작전을 하기로 하고 군대를 보냈던 홀랜드 공작은 방금 들어온 전보에 대해 무려 이십 번이나 되물었다.
“그...그것이.”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시온 백작이 아르 강변에서 폭우를 두고 샤를 왕과 회전을 벌였습니다. 샤를 카페는 여기서 대패. 대략 9만 병력이 사라졌다고...”
“전부 섬멸당했단 거지 그래. 그래서 시온 백작의 피해는 일만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예. 그렇습니다. 샤를 왕과 그 밑의 수뇌부들은...”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
“정예 중 정예만 끌고 오셨다는 소문에 대마법사 마리온까지.. 그 부대가 정면에서 터졌다는 건 진짜...”
“이미 같은 전보가 이렇게 많이 왔는데 빨리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다음 목표는 저희가 될 것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제국 측이라는 점이지요. 어떻게든 같은 황제를 모시는 봉신으로서 시온 백작과의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대체...”
“당연히 움드의 남작령들을 되돌려야겠지요. 그래도 무마하려면 더 챙겨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근데 그것이 차라리 났습니다. 저희가 다 망해버리는 것보다야.”
숨 가쁘게 토의가 이뤄지고 있는 동안 얼굴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홀랜드 공작은 그대로 기절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아니 이런 촉박할 때에. 대신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당연히..후퇴다. 미쳤어? 그 새끼는 미친놈이라고.”
홀랜드 공작 측이 이번에 맡기로 한 양동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마된 거였다.
이렇게 빨리 샤를의 부대가 격파되고 전원이 포로로 잡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당장 시온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이들의 주된 여정이 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