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304)

짜내기

다섯 배가 넘는 병력으로 그것도 모자라서 비밀 동맹군까지.

양쪽으로 침투하려다가 이렇게 격파당하는 일은 역사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시온은 이것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을 더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개인이 갈 수 있는 명예는 이미 분에 찰 정도로 가지고 있었다.

영주민들이 오죽하면 시온을 주제로 예술 활동을 하겠느냐마는.

그 정도로 움드령 안에서 시온은 거의 신의 대리인 정도로 인지되어 가고 있었다.

“코르도바.”

“예. 전하.”

“다들 입단속을 시켜라.”

“......? 어떤 입단 속을 말이십니까?”

“내 전공에 대해서 말이다.”

“영광을 감추시겠다는 뜻입니까?”

“떠벌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

“...!!”

의미심장한 얼굴로 시온을 보는 코르도바.

귀족에게 있어서 특히 이제 세력을 일궈가는 귀족이라면 간단한 전공도 크게 부풀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시온은 그 정반대.

‘역시 현명하시다.’

보수적인 코르도바의 시선엔 두 가지가 맴돌고 있었다. 

제국에서의 시온에 역할은 움드의 방어선을 지키는 것이었다.

제국에서 이제 막 기사로서의 명성을 날리는 시온이라는 개인을 움드에 집어넣은 것은 어려운 판단이었다.

그만큼 시온에게 기대했던 것은 이곳을 움드라는 곳을 확장 시키는 것이 아닌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방어해낼 수 있는 최전방 변경백을 원한 것이리라.

자기 말도 잘 듣고 빚을 이용해 이것저것 챙겨올 수 있는 인물을.

시온이 방어에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건 황제 입장에서는 상관없는 타격이었다.

그냥 여기에 대한 명분을 다른 대가문에게 넘겨주면 그 가문이 자신의 세력권을 위해서 전쟁과 전투를 일으킬 것이니까 말이다.

즉 그것이 시온의 역할이었다.

시온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저번의 코르도바와 이런 비슷한 얘기를 끝내 둔 터였다.

필요 이상으로 잘해주었지만 맡은 역할을 벗어났다는 것.

이렇게 되면 얼마든지 공을 세운 시온을 적으로 보고는 되려 공격하게 될지도 몰랐다.

“큰 뜻을 위해서 현재를 감추시겠단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좋다.”

명령을 받은 코르도바는 이제 입을 단속시킬 만한 체계를 짤 것이었다.

‘이래서 내가 이 유능한 자를 기사단장으로 쓰질 않았지.’

단순히 용맹한 것이 아니라 시온이 필요한 바를 딱 언급해주고 관리적인 면에서 능력을 보였다.

시온은 지어진 임시 건물의 최상층에서 며칠 전 벌어졌던 벌판을, 아르 강 주변을 보았다.

강하게 내리쳤던 비가 가시고 다시 먹먹한 하늘로 가득 차 있었다. 햇빛이 조금씩 나오기에 그때완 달리 이제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때의 폭우는 두 가지 형태의 마법을 허용했다. 물과 관련된 마법이거나 물의 속성에 상관하지 않는 마법이다.

그것들의 특징이 한눈에 보이는 풍경이었다. 최소 삼십여 군대가 깊게 파여 있었다.

적어도 다섯 군데에서는 밤이든 낮이든 조금도 쉬지 않는 고렘들이 소각 작업을 계속해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카롤리나와 각종 마법사가 이들을 위한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망자를 보내는데 거의 다 끝냈는데도 이렇게 여분이 상당하게 지속할 정도로 이번의 일은 규모가 대단했다.

‘그래도 조치가 빨라서 이 지역에서 병마가 일어날 리가 없겠군.’

“시온 백작님. 홀랜드 공작의 군대가 급하게 회군하고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

“아무래도 뒤를 잡아 괴롭힐 생각이었나 봅니다.”

“.......”

시온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려고 노력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전투가 늦게 끝났으면 움드가 불타버렸겠구나.’

굳이 움드가 불타지 않더라도 이들이 약탈과 방화를 하면서 대치하고 있는 곳을 둘러싸기만 해도 수가 적은 시온의 보병 부대는 그대로 당했을지도 몰랐다.

“역시 그때 공격 시기를 잡은 것이 맞았나.”

시온은 저 끝에서 한껏 차려입고 장례에 열을 올리는 카롤리나를 보며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에슬린이 들어왔다. 

에슬린은 긴장된 얼굴로 생각에 잠긴 시온을 보며 소름이 돋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체 저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수를 잡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애초에 시온에게 주는 조언도 사실 무리 적인 면이 많은 조언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실패한다면 명성이 크게 까이거나 되려 손해를 보게 된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에슬린이 내건 아이디어는 그것을 실행하는 인물이 중요했다.

바로 시온 니벨룽이란 인물이 직접 협상해줘야 한다는 것.

“시온 백작님. 대체 무슨 생각을?”

“아, 아무것도 아니다.”

시온은 정말로 멍하니 그냥 전투 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관찰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쨌든 에슬린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이제 계획을 실행하실 때입니다.”

“그런가?”

“일부러 그들이 지휘했던 보병이 사망 후 정리되는 것을 보여줬습니다만 상당히 효과가 있어 보입니다.. 몇은 그 와중에... 괴이한 증세도 보여서..”

‘생각보다 독한 구석이 있었군.’

시온은 에슬린이 하던 나름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각 중요 영주들을 독방으로 고립시켜 정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이번 목표였는데 아주 교묘한 짓을 꾸며서 효과를 본 모양이었다.

시온은 이러한 일을 지시한 바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일이 벌어진 것을 책망할 정도로 이득을 못 챙기는 타입은 아니었다.

“수고했다. 움직이지.”

“예. 시온 백작님. 그런데 제가 특이한 마법서를 하나 발견을 했는데 좋아하실 것 같아서.”

“그게 뭐지?”

“보십시오. 전리품 중에 유독 취향이 독특한 고위계 마법사가 있었나 봅니다.”

이젠 굳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거래할 필요도 직접 찾을 필요가 없이 이렇게 지시를 해두면 알아서 가져오게 된다.

시온은 이것이 권력이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직접 뛰고 경쟁하고 거래하기 위해서 협상의 운을 띄우고 잔머리를 굴려야 했을 것인데.

어쨌든 새로 들어온 마법서는 무려 육 단계가 쓸 수 있는 고위계 마법으로 분류되는 것인데.

희한하게도 그 구분이 독특했다.

‘공간의 눈이라.’

꽤 간단한 이름의 이 마법서는 원래 기르는 영수에게 적용해서 그 영수의 시야를 공유하는 것인데.

“내가 쓸 수 있겠군.”

시온은 여기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모든 고렘에게 주인으로 각인 된 시온이 특정 고렘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

“괜찮은데?”

“하실 수...있겠습니까? 분명 시온 백작님이시라면 이것의 방식이나 형태를 변화해서 영수가 아닌 고렘에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지. 해봐야겠지만.”

시온은 이미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보조 마법이지만 거리의 제약을 넘어서 바로 멀리 있는 고렘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겠지.’

가끔 올바르게 일을 하지 않는 경우나 아니면 특이 상황 때 좀 더 세밀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도 쓸만했고.

에슬린과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해당 백작을 찾았다. 

시온이 전부 뜯어낼 것은 아니었고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 직접 대면할 생각이었다.

여기에도 나름, 에슬린의 계획이 담겨 있었는데. 

잘 풀린다고 생각해봤을 때 이득이야 이 방법이 극대화될 순 있겠지만...

언제까지 몇 달이고 시온이 이곳에 죽치면서 하나씩 답이 나올 때까지 닦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니 시온이 큰 인물들을 굵직하게 해결하고 나면 시온의 수뇌부가 그 작은 급의 영주나 부하들에게 금화나 그에 따르는 것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 자체는 물론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 판단한 것일지도 몰랐다.

‘뭐 그래 봐야 잡은 물고기에서 어디까지 수익을 보고 놔주느냐의 문제니까. 즐거운 고민이긴 하지.’

덜컥.

문이 열리고 시온이 들어간 곳에 있는 자는 같은 급의 백작이었다. 정확히는 보통 백작은 아니었고 이자도 변경백이었다.

시온 같은 초짜가 아닌 삼백 년 정도 최전방에서 위치했던. 고즈만 가문의 명장 이바르 경이었다.

이바르 백작이기도 한 그는 뛰어난 기사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체격이 크고 호방하게 생긴 그는 확실히 에슬린이 시기가 된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한쪽 팔도 없었다.

“시...시온 니벨룽!!!”

“그 팔은...”

생전 이바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을 모습이 주르륵 이어졌다.

식은땀을 미친 듯이 흘리고 시온을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팔이 욱신 거린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의 모습은 겁먹은 강아지 같았다. 다혈질에 복수자라는 이명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모습.

시온이 멀뚱멀뚱 보고 있자 에슬린이 슬쩍 와서 귓속말을 남겼다.

“그때 직접 이 자를 꺾었습니다.”

“결투했다고?”

“기억에 없으십니까?”

“한두 명이었어야지.”

에슬린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그럴 수도 있다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시온은 저 팔이 자신이 만든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팔 하나가 날아갈 정도로 공세를 나눈 모양인데 상처 자체가 검이 아니었던 거다.

고즈만 변경백국은 시온이 직접 대면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영지였는데 여기엔 무려 1급 철광지대가 있었다.

카페 가문의 재정을 담당하는 한 축으로 여기서 나오는 철광은 품질이 높기로 유명했다.

보통 이 정도까지 몸값으로 내놓으라고는 하진 않는다. 이 정도 되는 변경백에게 영지를 받아낼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고작 해봐야 영주하나 잡고 처형 협박을 한다고 해서 영지를 넘겨받지는 못한다.

시온도 백작이고 이제 수를 세어봐야 손가락으로 잡을 정도지만 달랑 변경백 하나 있는 남자에게 그것을 목숨값으로 내놓으라고는 하질 못한다.

공작이면 모를까.

그러니 이 변경백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최대의 가치는 1급 철광지였다.

‘강철을 지속해서 받아내는 건 앞으로 마천루를 일어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각 도시의 마천루.

여기에 대한 인력도, 고렘의 거력도 든든하다.

가장 중요한 재료는 철근이다.

따로 코논이나 벤츨을 통해 마법적인 처리에 대한 원칙을 더하고 확립해야겠지만..... 그 근본 재료가 강철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지가 고즈만 변경백국이어서 이바르 변경백작을 한번 직접 보려고 했다.

이렇게 보게 됐지만.

“흐어어어. 다가오지 마.”

“흠.”

이 자는 망가져 있었다.

“내 기사들은??”

대답은 에슬린이 해줬다.

“장례는 잘 치러 줬다. 대규모의 강도 높은 마법의 화염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장..장례를...?”

“시온 백작님의 명령 하에 정중하게 장례를 치렀다.”

이바르의 눈동자가 시온을 향했다. 거기엔 두려움과 감동이 섞여 있었다. 

보통은 잔혹한 고문을 하거나 시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이 쳐들어온 자에게 되돌려 주는 보복 절차인데..

사실 이 명예롭지 않은 전투에 대해서 이바르는 탐탁지 않아 하고 있었다.

공포로만 얼어붙어 있던 이바르의 머리에 시온에 대한 한줄기의 바람이 분 모양.

현대인으로서 가끔 이곳의 야만적인 짓에 모두 동의하지 않은 시온은 사실 기분이 영 편찮아서 그냥 한 거였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바르의 마음을 쉽게 열게 해준 모양이었다.

“무...무슨 뜻으로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알고 있소. 이 부정한 전쟁엔 부정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언젠가는 치를 것으로 생각했소이다 만...”

“몸값을 치러라. 이것을 약속한다면 말이지.”

시온이 내민 것은 한 장의 종이.

“내 기사들을 예우해주시다니. 무패의 기사라는 명성이 다시 한 번 증명됐구려 부끄럽소. 서명하겠소.”

실랑이 없이 1급 철광지대를 한 번에..

시온도 에슬린도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얻은 것은 얻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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