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304)

연속 결투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으니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시온도 연속 결투를 다시 할 줄은 몰랐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저번에 주요 기사를 거의 다 없앤지라 괜찮을 것 같았다.

보통 같으면 좀 더 튕겨 보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시온은 직접 상대 진영 쪽에서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저쪽의 주요 귀족을 시온쪽으로 이런 식으로 인질 비슷한 것을 추가로 잡는 것이다.

이렇게 급이 비슷한 자를 교환해서 안전을 보는 것이 기본적인 룰. 그런데 이것도 의미 없기는 했다.

시온이 이렇게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이들이 섬기는 샤를왕이 시온의 포로란 점이다.

게다가 시온은 이 강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체력이 있었고, 그도 아니면 방법이야 많았다.

마법도 있고, 고렘을 이용해서 탈출할 수도 있고.

그렇게 준비가 되어 있기야 하지만 막상 아르강을 넘어 상대의 진형이 넘어가는 것은 꽤 긴장되는 일이었다.

잠깐 하늘을 한 번 봤다가.

‘비가 조금씩 내리나.’

폭우야 아니었지만, 여전히 비는 찔끔찔끔 내렸다 말다가를 반복했다.

이들은 이것이 기회라고 본 것이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하지만 양쪽 다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다.

시온으로서는 확실하게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이들로서는 킹을 잡아 전세를 뒤집을 정당한 기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시온이 실수라도 하거나 뜻밖의 결과가 나오면 단순히 뒤집힐 상황.

“저자가???”

“부...부담될 정도가 아닌가.”

“이것 보십시오. 팬던트가 난리가 났습니다.”

“!!!”

“대마법사...?”

귀족들이 호들갑이 날 정도였다. 이들은 솔직히 일이 잘 풀려가고 있다고 시시덕거리던 중이었다.

연속 결투 자체가 미친 듯이 유리한 조건이었고 상대해야 할 숫자도 제대로 정하지 않아서 여력만 있다면 계속 밀어 넣을 수도 있었다.

사람이라면 체력의 한계가 있는 법....

이들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거다.

아무리 유명한 기사라고 해도 반복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원래 결투라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어쨌든 이것은 서로의 생포를 노리고 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목숨보다는 치명타를 노려야 했다.

뭐 이건 시온쪽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복되다 보면 시온이 지칠 수밖에 없고 결국엔 한 번은 이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이들 역시 나름 자기들이 유리하다고 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ㆍㆍㆍ

콰득.

그러나 이들이 기대하던 일은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두 번째 녀석은 살아있었지만, 이 자는 아니었다.

머리에 정통으로 드래곤브레이커가 꽂혀서 그대로 사망했다.

“다...다음.”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기사를 남자 둘이 질질 끌고 갔다.

다음으로 나와야 할 기사는 쉽사리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다들 뭐하는 거야!!! 어떻게 한 두 번에 끝이 나는 것이냐?”

“실력 차이가....너무 납니다....”

기욤도 다른 자들을 재촉하곤 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다. 목소리가 컸기에 시온이 그쪽을 바라봤는데 기욤이 본능적으로 눈을 피했다.

‘설마 이대로 뛰어와서 날 죽이는 것은 아니겠지....’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하진 않았다. 그런데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니 그냥 깨달은 게 있었다.

시온 니벨룽의 근처에 있는 것이 문제라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법장비도 다 소용이 없을 게 분명했고 저 정도 실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이곳으로 뛰어와 죽이고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답이 없었다.

‘이걸... 어떻게...하지? 뭔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씨발.’

기욤은 지금 이 순간이 자기 인생 최대의 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부 전쟁에서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백병전의 한복판에 있어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시온이 약속을 지켜주기를 바랄 뿐.

이대로 많은 기사가 노력해서 시온을 지치게 한 뒤 한 번만 일이 잘 풀리라고 바라는 것밖에는 할 게 없었다.

“악마한테 힘을 빌린 것이냐!”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기합과 충돌 시온의 메이스에 몸통을 맞은 그가 공중으로 날아가더니 오 미터 밖으로 처박혔다.

정적.

‘음, 역시 하길 잘했네.’

시온은 전반적인 수준이 그때의 세 개의 기사단의 수준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아르강 전투에서 만난 기사들보다도 약간 떨어졌다.

숫자는 많지만, 샤를 왕이 직접 데리고 올 정도로 이미 엘리트는 다 데리고 와서 싸움에 임했던 거다.

그런 자들을 거의 다 죽이거나 전투불능으로 만들거나 포로로 사로잡은 뒤였다.

그들보다 낮다는 것은 연속 결투는 이미 시온의 차지라는 뜻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몇 명이었지?’

벌써 다섯 명쯤 처리한 것 같은데 가장 처음에 달려들었던 자가 실력이 제일 좋았지만, 삼분을 버티지 못했다.

그 뒤는 한두 번의 교환으로 충분했다.

재수가 좋거나 연습한 실력이 있으면 목숨을 건지는 거고 시온의 기준보다 실력이 낮으면 그냥 죽는 거다.

콰득!

이번 자는 어깨를 맞고 바닥에 퍼져서 부르르 떨더니 그냥 기절해버렸다.

시온은 이제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바로 투구를 내리고 선공을 해서 날려버렸다.

그게 나아 보였다.

영 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번 일의 목적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날 지치게 하려고 하겠지.’

아무리 날고 길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시온이 대마법사의 방대한 마나를 얻었다고 해도 행동각인마법을 무한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 하나.

시온은 식도 어딘가에 정수 형태로 캡슐처럼 푸른 액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푸른 액의 효과는 다양해서 단순히 마나를 증진 시키는 것 말고도 단숨에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일정량이 아닌 시온이 가진 총 마나에 일부분을 회복한다.

여기에는 체력이라는 개념도 포함이 되어서 시온은 두 가지를 이 하나로 다 해결할 수가 있었다.

마나의 부족과 손실된 체력을 단숨에 보충할 수 있다는 것.

한 번 밖에는 못하지만, 그 정도로 연속 결투를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들킬 일은 전혀 없었다. 이들은 캡슐이라는 개념을 잘 몰랐다. 

게다가 그것을 식도에 놓았으리라는 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알 방법이 있다고 해도 시온이 가진 마나가 이제 어떤 상대라고 해도 압도할 수 있기에 시온을 심도 있게 측정하는 것은 같은 대마법사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아예 승산이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끄아아아”

이 녀석은 운이 좋질 않아서 아르강쪽으로 퉁겨졌다.

시온이 다음을 기다리며 주위에 가득 차 있는 왕국의 사람들을 보자 이들이 겁을 먹어 뒤로 움찔움찔 퍼졌다.

마치 파문이 일어나듯이.

그리고 다음, 그다음.

이제는 다섯 대를 버티는 기사가 없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엇비슷하게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망자가 추가됐다. 머리를 맞았는데 투구가 좋지 않은 지 투구째로 뜯어져 나가서 기욤쪽으로 날아갔다.

기욤이 얼떨결에 머리통을 받아들고는 놀란 나머지 그대로 엎어졌다.

‘어째 갈수록 약해지는데. 이 자에게는 미안하게 됐군.’

시온이 가장 낮은 상태로 비술을 돌리고 있음에도 이번엔 그것도 받지 못하고 가장 끔찍하게 죽어버린 망자가 나와 버렸다.

사실 시온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뒤로 갈수록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갈수록 시온이라는 존재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거였다.

심지어 이 숫자는 이십만의 군세에 실시간으로 전해져 가고 있었다.

아까 망자가 됐던, 기사가 내뱉었던 악마와 계약을 했느냐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제국에서 절정으로 평가를 받는 시온 니벨룽 경은 악마와 계약하고 불가사의한 힘을 얻었다라고..

어쨌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시온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적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길 방도가 보이질 않으니 악마로 묘사되는 것.

흔한 중세에서 돌 법한 소문이었다.

‘잘 풀렸고, 여전히 힘도 남아돌고. 이 타이밍도 그냥 보내기엔 아깝다.’

시온은 그간 소모했던 마나와 체력 일부를 푸른 액을 압축해 놓은 캡슐을 식도에서 해제해 바로 손실분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시온이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것에 경악하고 공포에 떨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 자리에서 이십만을 이용해서 시온을 잡으려고 한다고 해도 잡을 가능성이 없었기에.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고, 시간과 희생을 쌓다 보면 시온도 결국 이십만의 공세에는 당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자면 그런 착각이 이들에게 심어져 가는 과정이었다.

시온이 기회라고 본 것은 지금 기욤이 머리 하나를 잡고 엎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처리한 기사의 숫자는 삼십팔 명 정도였고, 그 숫자를 정하진 않았지만, 작은 기사단의 삼 분의 일 정도를 분쇄해버린 급이었다.

그리고 긴장을 놓지는 않지만, 최대한 여유 있는 연기를 하며 시온은 기욤에게로 걸어갔다.

기욤이 너무나 놀라서 시온에게 머리통을 던졌다. 시온이 그것을 메이스로 한 번 더 내려쳤다.

곤죽이 되어서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시온의 모습은 지금 악귀나 다름이 없었다.

연속 결투에서 행동불능이 된 운이 좋은 기사도 많았지만, 운이 나쁜 기사만 해도 열 명은 넘었다.

그들의 피로 시온이 착용하고 있는 갑주는 온통 범벅이었다. 게다가 그것이 마르지도 않고 흘러내리는 상황.

그걸 시온만 모르고 있다. 원래 당사자는 바쁘면 모르는 법이다.

기욤 옆에 있던 공작 하나가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옆에 있는 병사를 날려 버리고 미친 듯이 어딘가로 뛰었다.

기욤이 그것을 보더니 안타깝고 나도 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언제까지 기사를 보낼 것이지? 기욤.”

“그...어...으...명...명예를 지켜라! 시온 니벨룽! 여기서 나를 죽이려고...?!”

“다음 차례는 바로 너다. 기욤. 이리로 나와서 나와 결투를 해라. 불쌍한 너의 기사들은 그만 보내고 네가 안주 가문의 계승자라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나와 마주 서라.”

빼도 박도 못하는 도전이 그에게 쏟아졌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그것이 문제였을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부하들 앞에서 명예를 실추당하자니 죽고 싶고, 이대로 결투를 하자니 살해당할 것이고...

심지어 이까지 달달 떨었다.

시온은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예상이 잘 맞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잘만하면 그냥 데려갈 수 있겠는데?’

흉악한 생각이 들자, 시온이 슬쩍 근처의 반응을 봤다. 기욤만큼은 아니지만 모두 충격에 빠진 얼굴과 분위기.

해볼 만은 했다.

시온이 그대로 얼어 있는 기욤에게 걸어갔다. 엄청나게 가까이 오자 기욤이 놀란 나머지 시온에게 검을 뽑아서 내려쳤다.

퍽!

시온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얼마나 강력한 지 한 번에 코뼈가 가라앉을 정도.

그가 비틀거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자빠졌다.

다들 벙어리가 된 듯이 그것을 봤다. 시온이 딱히 룰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결투의 의사결정 전. 먼저 상대가 검을 뽑아서 달려들었기에 오히려 주먹으로 대응했기에 오히려 명예로운 행동이었다.

시온이 바닥에 퍼져서 부러진 코와 코피와 함께 기절해 있는 기욤의 머리채를 잡고 들었다.

‘잘 되고 있나?’

그리고 쓱 하고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지를 않았다. 이십만이 달려들 수도 있는데 이들이 심상치 않으면 그냥 돌려주면 되고 아니면...

시온이 그냥 그대로 기욤을 들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돌아간다.”

시온이 그렇게 자기 진형으로 가는 동안 아무도 시온이 자기의 총사령관을 데려가는 것을 제지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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