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304)

계획밖의 대매장지

솔직히 말하면 이들의 신속한 반응과 성대한 환영에 놀랄 정도였다.

승자가 바뀌고 그 기세가 완전히 넘어섰을 때 기존에 이들이 맺고 있던 충성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걸 지켰다간 가진 걸 다 뺏길 텐데 지킬 자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온은 정면 돌파로 얻어냈기에 명예스러운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앞에서 시온에게 새로운 충성을 맹세하는 자들은 백이었다.

보통 고집이 있다고 하면 한 명 정도는 주군을 바꿀 수 없다고 칼을 들고 반란을 하는 자도 있는데,

그런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역사에서는 개긴다고 육 개월 이상 수성을 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를 보고, 지원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하는 일이다.

시온이 보여줬던 압도적인 전투, 그리고 그 전략적인 판단은 이들 모두를 다른 면모로 감탄하게 했다.

‘허억..’

‘씨발... 저게 아버지가 말했던 그 작자로구나.’

‘아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내가 한 고집을 철회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문은 사라졌겠구나.’

시온을 본 봉신들은 하나같이 최소 몇백 년은 카페 가문을 모시고 충성을 바쳤다.

그런 이들이 시온을 보자마자 아찔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분위기와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강퍼그 백작, 아키스탈 백작, 윌리스 백작.

이 세 곳이 사보이 공작에 속해 있는 백작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등했던 자들...

그리고 여기에 영지 하나를 더 얹혀 받아서 마콘 백작까지 받아냈다.

총 네 명의 백작이 생긴 셈이다.

한 번에 시온이 구상하던 많은 계획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시온은 이 지역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그중 가장 먼저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단은 움드에 대한 것이다.

초기엔 움드를 수도로 하고 백국으로서 발돋움을 찬찬히 하려고 했는데 영지의 개수로 따져도 이제는 손가락이 가득 찰 정도의 봉신을 다스리게 되어서 그것보다는 다르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았다.

공작위 자체도 사보이라는 카페 가문이 아끼는 작위 중 하나를 가졌다는 것.

이렇게 가진 것이 바뀌었는데 가만히 똑같은 목표를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여러 가지가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고 어수선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른 자들에게 침공당할 수 있고 대처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

보병과 기사는 한정적인데 많은 약탈자 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지금 가지고 있는 당면한 문제였다.

가만히 손 빨고 있으면 승리에 젖어 있는 동안 큰일이 여러 가지가 덮쳐 이 앞으로 크게 도약하기 어렵게 만들어 그냥 자리 자리에서 있게 하게 될 거였다.

아르본이라는 걸출한 항구도시를 얻었지만, 그것뿐 여기에 관련된 것들을 재정립하지 못하고 모두 혼란에 빠진 상황.

이것 자체로도 수익이야 나기야 나겠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위험한 거였다.

시온은 어디까지나 가문의 힘이 없는 홀로 일어선 자이기 때문이다.

‘얘네들은 다 믿을 순 없지.’

시온은 새로운 봉신이 된 네 명의 백작을 봤다. 이것을 뜻밖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높이 있던 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갑자기 아래에서 올라오게 되는 자는 인정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자는 항상 전쟁과 전투가 많았다.

불공평하기는 하다. 한 번만 져도 그 사다리는 끊어져 버리는 게 세상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다.

강퍼그 백작, 아키스탈 백작, 윌리스 백작. 마콘 백작은 시온에게 차례차례 무릎을 꿇었다.

그들이 데리고 온 가족과 아들, 친척들까지 시온에게 주르륵 무릎을 꿇었다.

순간 이백여 명이 그렇게, 그 뒤에 있는 많은 기사와 보병 마법사들도 무릎을 꿇었다.

‘백작 때와는 확실히 다르구나.’

백작 때 비슷한 것을 받긴 했지만, 이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게다가 움드가 거의 멸망 직전 상태였기에 살아있는 귀족도 수가 적었다.

이제야 정말로 백작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군대를 다룰 때와는 다른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고 시온은 이들에게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까먹고 있었다.

시온이 가만히 있자 오해한 이들은 얼굴이 붉어지고 불안해하며 시온을 흘깃흘깃 봤다.

여기서 벌을 주겠다 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움직임이 시온에게서 나왔다.

‘겨우 생각났네.’

“각 백작은 한 명씩 일어나서 나에게 와라.”

귀족과 귀족, 특히 백작과 공작을 나누는 의무는 기사들에게 하는 것과 한 가지가 더 달랐다.

손등에 입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자 가족이 있다면 여자 가족이 대신한다.

다만 정 없다면 본인이 직접 하는 형태였다. 칼을 내려주고 그것을 받고 나면 이렇게.

여자의 부인이나 딸, 여자 친척이 시온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뒤에 더 있었다. 이들은 남작들이었다. 각 백작이 관습적인 이유로 하나에서 네 개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역시 큰 주군이 바뀐 것이기 때문에 시온에게 이러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일반적으로는 강제로 공작이 된 자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낌새가 다분해야 했으나...

여자들의 시선이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오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이들 역시 여자 형제가 있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곳에선 말도 못할 경쟁을 한 셈이다.

여자들의 옷은 나름대로 전략적인 면이 다분했다.

면사로 얼굴을 살짝 가려서 자신이 청초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주려는 여자부터, 

이런 진흙 때문에 지저분한 가도의 끝자락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부터...

하여튼 다들 공작새처럼 화려하게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시온이 쌓아온 결과와 그 작위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현대와 다르게 이곳에서는 주군에게 세금을 크게 내고 부인을 셋 정도까지 늘릴 수 있었다.

여기에 첩도 있는 자도 있었다.

그러니 가문 구성원이 많았고 그만큼 분가를 시킨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형제들이라고 해도 외모가 완전히 같진 않았다. 두 번째부터는 거의 외모 위주로 결혼하는 편이 많기에 딸들도 미인이 많다.

이 여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둔한 시온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슬슬 이런 부분도 생각하긴 해야 하지.’

결혼 역시도 현대완 다르게 하나의 정치적 목적이 결합이 되어 있고 동맹 관계로 이어졌다.

시온은 손등에 이들의 입맞춤을 하나씩 받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유혹이란 유혹이 이 짧은 시간 안에 계속 이루어졌다.

그러면서도 시온은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

사실 시온이 무슨 반응을 했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을 거였다. 

샤를 왕이나 그 왕을 따랐던 귀족들도 시온이 가진 방대한 마나에 압박당했을 정도인데 이들이 시온을 자신의 위에 올려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강의 일이 끝나고 확인한 사보이 거성은 움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규모였다.

시온은 여기를 기초로 해서 다시금 계획을 잡을까 생각 중이었다.

‘일단 금 생산지부터 확인을 해봐야겠군.’

이것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가 사보이 작위의 가치에 반이었다.

여기가 어느 정도인지, 고렘을 투입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따져봐야지 그다음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안은 영지민들로 더 시끄러웠다. 그러나 이들은 시온이 오히려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귀족들이나 충성을 하느냐 마느냐로 사람이 죽지 막상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밥만 잘 나오고 재해가 없고 영지만 번영하고 그 수익만 나눌 수 있다면 누가 영주로 오던지 상관없다.

시온도 그러한 처지에 있었었기 때문에 그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것은 신기함과 앞으로 잘 해나 갈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를 나누는 것일 터였다.

“연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만 세 시간만 더 주신다면...”

아키스탈 백작이 그렇게 시온에게 말했다.

‘저 병신. 저런 식으로 말하면 당연히 망하지. 어떻게든 말을 돌렸어야지!’

사실 이들이 여러 가지를 그 짧은 시간에 준비하기엔 너무 부족했다. 시온이 이동하는 속도가 빠른 것도 또 다른 원인이었다.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하는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었다는 느낌.

날 때부터 백작이란 작위가 예정되어 있던 자들 인만큼 실력보단 이런 것에 민감하기 마련이었다.

시온의 표정 하나하나에 생사가 걸려 있는 것처럼 느낀다.

실제로 이들은 시온에게 말도 안 되는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주. 그리고 시온이 가진 광대한 마나.

이 두 가지가 미친 듯한 시너지를 일으켜 이들이 이 상황을 수만 명이 백병전 단계에 돌입한 그 상황과 같은 압박을 받는다.

“그건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고. 금 생산지를 가봐야겠다. 안내해라.”

이곳에 있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시온의 대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여독을 풀며 승리를 즐기고 싶을 것인데, 게다가 점령지에서 이런 봉신 관계가 맺어지고 나서 생기는 첫 연회는 귀족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했다.

시온의 이런 태도는 이들에게 천박하다고 보일 수도 있었지만, 

워낙에 압박 적인 시온의 존재감에 이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아부만 잘하면 되는 군주가 아닌 새로운 군주가 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흐름에는 새로운 맞춤이 필요한 법...

시온은 바로 금 생산지대로 움직였다.

사보이 거성과 이어져 있는 거대한 가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거대한 암벽 지대였다.

그때 한 인물이 갑자기 합류했다. 시온이 설득하는 데 성공한 대마법사 마리온 폭시였다.

마리온은 잠시 일을 처리하고 오겠다고 시온에게 말했고 시온은 흔쾌히 보내줬다.

대마법사의 서약은 귀족들이 맺는 것보다 더욱 엄중하게 다뤄진다.

사실 그것이 있다고 해도 족쇄를 채우지 못할망정 그냥 풀어두는 경우는 거의 없기는 한데,

그냥 귀찮아서 다녀오라고 한 것.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마리온의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시간이 늦어서 그렇지 말마따나 시온이 지키지 않은 약속은 없었다.

받을 건 다 받고 보낼 건 다 보냈다는 뜻.

그것이 대단한 수준의 교환이었기에 망정이지...

어쨌든 그녀의 등장은 많은 자를 당황하게 했다. 마리온 폭시가 왜 여기에 있는가.

마리온의 폭시 가문에 유명세는 왕국에서 절대적이다. 그만큼 폭시 가문의 전향은 이들의 틀을 깨야만 했다.

그런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데 당황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였다.

그러나 그런 의문도 시온이 한 마디에 바로 해소된다.

“너희와 비슷하다.”

“제가 도망칠 줄 알았나요?”

“그건 아니라고 했을 건데.”

“적어도 서약에 걸린 시간은 반드시 모실 거에요.”

“그런가.”

그녀가 오니 사람들이 더더욱 시온을 두려워했다. 어떻게 마리온을 설득했단 말인가.

마리온의 고집이 대단하고 폭시 가문도 오랫동안 수석 마법사를 수행해왔기에 영향력이 컸다.

“솔직히 말하면, 흥미로워요.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

“샤를 왕께서 쥐고 있던 핵심 지역은 여기 말고도 두 곳이 있지요. 아마 그 금발 머리 원숭이가 알려줬을 겁니다.”

“그 원숭이라고 하면..에슬린을 말하나?”

“이곳이 가장 가치가 낮은 곳이죠. 샤를 왕이 이곳을 소중히 여겼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쨌든 시온 공작님과 관련이 없는 가문 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많은 여자였군.’

시온은 그녀의 청산유수 소리를 들으며 가도를 걸어가다가 문득 이상한 징조를 느꼈다.

‘많은 마나다. 분명히... 생산지다. 방향은... 저기인가?’

길도 나지 않은 새로운 곳에서 시온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마나가 느껴졌다.

‘거대한... 금 같은데...’

각 종류의 자원에는 특유의 마나가 담겨 있었고, 이제 대마법사의 마나를 가지게 된 시온이 이것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확인은 해봐야 할 것이었다.

이것은 딱 봐도 새로운 것이었다. 기존의 사보이 공작위의 가치는 이 고정적인 금 생산지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금을 가공하거나 금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 되어 있었다.

아까 오면서 확인했던 정보들이다.

그런데 이런 안정적인 게 아닌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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