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304)

빌드업

꿀이 발라져 있는 곳에 벌이 지키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엔 이 녀석도 자기의 영역을 건드리지 말라고 시온에게 달려든 것이나 다름은 없었다.

이 정도 재해 영수라면 가만히 내버려 뒀을 때 전에 물을 뿌리던 영수보다 큰 피해를 줬을 것이다.

굳이 죽이려고 한다면 군대를 동원해야 하고 각종 장비와 방법을 이용해 정교하게 사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시온이 한 것은 이 모든 일을 무시한 결과였다.

“맙...맙소사!!!”

여러 백작에게서 진심 어린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까부터 느껴졌던 시온의 존재감이 여김 없이 확실해지는 순간.

이들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사보이 지역이 시온에게 넘어갔다고 했을 때 얼마나 분개했던가.

‘이렇게 재해 영수를 하나 더 얻게 됐군.’

덩치는 좀 작은 녀석이었다. 진짜 베히모스라면 이것보다 더 거대해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만 돼도 어디 도시하나에 내려가면 학살을 일으킬 수준은 됐다.

아마 뿔이 비싼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온은 아쉽다는 듯이 베히모스의 깨진 머리통을 봤다.

이 뿔 자체가 각종 재료로 쓰인다. 성질 자체가 이곳에서 마나를 빌려다가 마법을 쓰는 형태인지라.

어쨌든 전 재해 영수와 다르게 이렇게 일격에 끝난 이유는 결국엔 이것 때문이기도 했다.

급소이기도 한 것이다.

하여튼 원래라면 금 생산지를 그냥 확인하려는 것밖에는 없었는데 뜻밖에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거대한 매장지부터 여기를 지키고 있던 재해 영수까지.

이렇게 되면 이것도 처리해야 하고 또 이것이 가져오게 될 영수 서식장에 대해서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했다.

재해 영수가 사망한 지점 부근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지속해서 몬스터나 다양한 영수가 나타난다.

정확한 원인이야 마탑에서 밝혀야 할 일이고 시온이 지금 준비해야 하는 부분은 저번에 얻은 경험을 여기에 적용하는 일이다.

‘안 그래도 3급 금 생산지 덕분에 다분하게 꼬이던 곳인데 이 정도라면..’

저번보다 영수잡이의 규모를 강하게 잡아야 했다. 어설픈 것보다는 할 때 확실하게 돈을 쓰는 것이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에서 오히려 애매하게 대처하면 이 대 매장지를 활성화할 수가 없을 터였다.

지금 다뤄야 할 일은 종합적으로 산더미였다. 

준비란 준비는 차곡차곡 다 해왔으니 새로 얻은 영지들을 긴밀하게 연결하고 좀 더 거대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결국 금화와 관련된 문제란 거였다.

“너희. 모두 이것을 지금부터 끈다.”

시온이 씩 웃었다.

여러 가지 실마리가 싹 풀리니 이제 정리만 하면 된다. 

여기에서 나오는 자금이면 시온이 생각하는 영지들의 몸집을 키우는 게 현실화된다.

일단 재해 영수 자체가 돈이니 빠르게 사보이 거성으로 가지고 가려는 것. 

바로 앞에 있는 인력과 함께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법이다.

입만 떠들고 좋은 일만 해봤던 이들이 게다가 시온을 꼬셔보려고 왔던 치장으로 가득한 미모의 여자들까지.

이런 일을 해봤을까.

공평하게 예외 없이 시켰다.

ㆍㆍㆍ

사보이 지역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상당히 당황했다.

새로 온 영주가 금광을 확인한다 하고 나간 뒤에 얼마나 됐다고 오히려 올 때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재해 영수의 사체를 끄는 백여 명의 귀족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이었다. 새로운 영주에 대한 소문이 치열하게 대립해 가고 있는 와중에 이번 일은 시온에 대한 인기를 확립하게 된다.

시온으로서는 따로 민심을 잡을 필요도 없이 거저 얻은 상황.

이쯤 되자 놀란 사보이 거성에서 보병들이 뛰어왔다.

지금까지 머물러 봤던 가장 큰 성답게 각종 지대로 나누어져 있었다. 

재배 식량을 쌓아두는 곳이나 금을 쌓아두는 곳, 성 내부의 유흥시설과 거대 시장, 군사 훈련장, 공동 광장, 하여튼 이 외에도 많다.

시온은 그것을 공동 광장에 놓으라고 지시를 했다.

‘이제 뭐부터 하느냐가 문제군.’

자금은 한정적이고 이어받은 영지의 안정화를 위해 아르본에 볼브를 보냈다.

‘토어스틴이 영수잡이의 규모를 키운다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당장에 이곳에 생성되는 서식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볼브를 불러와야 했다.

아무리 지금 지역이 중요하다 해도 당장엔 아르본이 더 중요하긴 했다.

항구도시에서 나오는 세수는 단순한 수입으로 분류되는 것뿐 아니라 시온이 받아낸 안정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즉 아르본이 시온에게 반기를 들어 백국으로 자유도시로 독립하려고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여기에 드는 전비부터 아직 방문도 못 한 고즈만 변경백국의 철광지대에 대한 권리까지....

그렇게 보이진 않긴 했지만 아르본이 반독립으로 나오면 고즈만 백작이 갑자기 협정을 이행하지 않겠다 할 수도 있다.

마리온에게 얘기할까 해봤지만, 일단은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인 고로 에슬린이 일 처리를 마치고 이곳에 합류하기까지 독단적으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깊게 새겨진 카페 가문의 문장을 지워내는 하인들을 보다가 시온은 결정을 내렸다.

“마리온. 전서 하나를.”

“예. 토어스틴에게는 이미 보냈습니다.”

토어스틴은 시온이 고용하고 있는 영수잡이 용병이다. 여기에 반 서약까지 끝냈다.

“아니, 토어스틴 말고, 볼브를 이곳으로 불러라.”

“볼브를 부르게 된다면... 아르본이 위험해집니다.”

“알아, 하지만 그렇게 전해라.”

시온은 새로운 금 생산지를 가동하기 위해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ㆍㆍㆍ

시온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볼브는 보병대를 이끌고 시온이 있는 사보이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교적 기동력이 좋은 토어스틴이 가장 먼저, 고렘을 이끌고 오르도가 왔다.

“......공작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토어스틴. 임무는 잘하고 있었나?”

토어스틴은 지금까지 방랑 생활을 주로 하던 자라 영수잡이를 규모 있게 키우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질 좋은 교육과 많은 수의 새로운 영수잡이들이 만들어졌다.

불어난 움드의 인구에서 좋은 인재를 발탁하고 시온이 안겨준 투자금과 연이어 이어지는 새로운 영수거래소의 역할.

이 모든 게 그림 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시온에게 직책을 받은 토어스틴은 시온에게 받은 신뢰를 되돌려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번 전쟁까지 압도적으로 끝낸 시온을 바라보는 토어스틴은 용병이 아니라 기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바쁜 건 알고 있다만 너를 여기에 부른 건 더 크게 쓰기 위해서다.”

“!!!!!”

시온의 말에 그는 심장이 뛰는 모양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번에 내가 재해 영수를 하나 더 잡았다.”

“옙..? 재..재해 영수라니요?”

“마리온과 협력해서 내가 잡았다. 광장에 그것이 있지. 못 봤나?”

“........”

광장에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설마 그게 그거일 줄은 몰랐던 거다. 그만큼 시온을 만나는 길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온 것도 있었지만...

“볼브가 곧 보병대와 함께 도착할 거야. 내가 너에게 맡기는 임무는 이들로 새롭게 형성되는 서식지를 막아내고, 새로운 영수잡이를 구축해라.”

“눈이 돌아갈 만큼 영광입니다만, 새로운 영수잡이들을 구성할 만큼 길러낼 시간이 없습니다...하지만 해보시라고 하면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에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대행권이다. 금액은 내가 치를 것이니 네가 알고 있던 자들을 불러라. 빠르게.”

그의 눈이 빛이 났다.

길러내는 것이 보통이 아니다. 

훈련부터 각종 기술적인 안목과 조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만들게 하려면 많은 노하우와 시간이 있어야 했다.

게다가 구심점도 필요했다. 

기껏 가르쳤더니 그냥 가버리면 안 된다. 하지만 시온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할 필요가 없다. 돈을 채워준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어떤 위험이든 건너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분부대로 임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볼브에게 보병대를 받으면 이들로 서식지를 막아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보병들은 영수를 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인간과 전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러니 비숙련자들을 데리고 서식지를 막으라고 한 것이다. 경험과 감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오르도도 이젠 자기를 왜 불렀는지 안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역시 명령이 바뀌게 되는 겁니까? 제가 받았던 작업들은...”

“그렇지. 그건 나중으로 밀어두고 지금 네가 해야 할 것은 곧 합류할 코논과 함께 새로운 금 생산지를 가동할 수 있는 일이다. 더불어 고렘을 금 생산 작업에 넣으려고 하니 프레임도 짜두고.”

오르도는 시온의 변한 명령에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커지는 속도가 커서 따라가기 힘들 정도.

그러나 그는 늘어나는 야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심정이었다.

자신의 가치가 이제야 빛이 나는 순간이었으니까. 

시온은 이들에게 대가를 바로바로 지급을 해줬다.

‘중세의 문제는 대부분 인간이 가치를 서약이란 것으로 대체하려고 했다는 점이지.’

서약과 명예,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치킨다는 것은 그만큼 개인의 이득이 손해 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좋지 않은 방향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바로 대가를 주고 성과급 개념을 도입해야 했다.

여러 가지 작업이 시작되는 와중 볼브가 시온의 명령을 받고 곧바로 급하게 회군해서 왔다.

그리고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볼브가 왔으니 이제 아르본에 댈 부대는 없다.

정보는 차단해놨으니 아르본에서 깨달을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 알아내긴 할 거였다.

ㆍㆍㆍ

보병대가 쭉 깔리고 각종 함정과 방어 시설과 훈련이 빠르게 병행이 되었다.

빠르게 올라간 만큼 예상했던 문제와 부딪히기 시작했다.

새로운 서식지의 등장.

이런 서식지는 항상 두 가지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소화할 수 있다면 그대로 훌륭한 수익원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잠식당하게 된다.

서식지에서 다양한 육식 영수와 몬스터가 슬슬 꼬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온이 움드에서의 노하우로 이곳을 대처하고 만들었기에 결과는 그야말로 일직선이었다.

사냥한 몬스터가 차곡차곡 쌓인 수레들이 사보이 거성으로 몰려들었다.

“시온 공작님. 코르도바 경이 오고 있습니다.”

“아, 올 때가 되긴 했지.”

시온은 실려 오는 몬스터와 하급영수의 사체들을 보다가 하늘을 봤다.

여전히 날씨는 풀리지 않았다.

그때 폭우가 끝나고 잠깐 무지개가 뜨긴 했지만..

‘코르도바가 몇 명 설득했으려나.’

코르도바는 많은 보병 전향시키기 위해 따로 비밀 임무를 맡았다.

코르도바가 오는 와중 시온은 직접 순찰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가 축성되어가고 갖가지 함정과 나무들이 베어지며 길이란 것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번 전장에서 강해진 고렘은 하나하나가 기존의 형태보다 발전된 것이어서 나무를 베고 치우고 이 과정이 압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베어진 나무들이 축성에 쓰이게 되고..’

일단 틀을 잡는데 나무만큼 효율이 큰 것이 없었다. 

돌이나 콘크리트를 만들거나 현재 움드에서 본격적으로 올리고 있는 철근으로 건물을 만드는 현대적인 수법을 쓰기엔 지금은 당면 문제가 시급했다.

여덟 기의 일반 고렘에, 심연의 고렘, 강철 고렘까지 시온이 다 돌리고 있는 상황.

여기에 인력까지 동원하고 있었고 사보이 지역의 인구를 강제노동이 아닌 일일이 대금을 주고 동원하고 있기에 형성이 되어 가는 속도는 대단했다.

그리고 시온의 눈에 특이한 것들이 보였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

토어스틴의 보고를 받자마자 시온은 해당 지역으로 바로 움직였다. 

가는 도중에 토어스틴에게 대강의 얘기를 들어보니 움드에서 보다 더 강한 서식지가 잡힌 듯하다.

움드에서 주력으로 나오는 건 트롤. 

여기는 좀 복잡한 듯했다. 

시온이 이번에 얻은 공간의 눈을 썼다.

공간의 눈을 쓰자마자 고렘 중 하나와 시야가 공유됐다.

시온이 본 장면은 뿔 달린 멧돼지가 보병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고르곤인가.”

확실히, 트롤 급은 아니었다.

공략이 많이 나와 있는 트롤과 달리 집단 공격을 하고 까다로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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