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전투
원래라면 시온이 가지게 된 가치 중 가장 높은 것이 아르본.
즉 항구도시였는데 이제는 역전이 되었다.
시온이 이제 돌리기 시작한 1급, 3급 금 생산지인 사보이 지역은 이제 여러 왕, 황제, 제후의 욕심을 자극할 정도다.
항구도시라는 것도 결국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지기 마련이다.
수산업이 발달했다고 해도 폭풍이 잦아 손해를 보거나 해적이 곰팡이처럼 늘어나 여러 손해를 일으키거나, 무역의 흐름이 바뀌거나.
얼마든지 이유는 많았다.
당장에 아르본이 카페 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도시인데 시온에게 넘어오면서 관련된 거래들이 자연스럽게 콘랑드르로 옮겨갔다.
‘하지만 뭐 반반 가져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지금 돌아간 샤를은 다시 자금을 끌어모으고 서부 지역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모으고 있었다.
조만간 충돌이 있을 것이다.
반을 나눴다고 한 것은 시온이 가진 아르본이 카페 왕국이 쪼개진 세력의 연결망을 가로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르도바가 놀랐던 것처럼 아르본이 만약에 반기를 들었다면 아주 골치가 아팠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오히려 사보이 지역의 금 생산지를 가동하는 데 성공해서 두 가지 물고기를 다 잡은 셈이었다.
불안한 정세의 흐름이 아르본의 수익을 유지 시켜준 것이다.
‘날씨 좋군.’
폭우가 점점 끝이 나고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었다.
시온이 탄 범선이 돛을 활짝 폈다.
먼저 아르본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시온이 도착한 곳은 작디작은 항구였다.
아르본....은 현재 수익으로서는 2위였지만 시온이 봤을 때 여기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고즈만 변경백국에게서 받아낸 1급 철광지대다.
고즈만 백국은 강군과 강한 기사와 철의 도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시온이 현재 계획하고 있는 도시 건설 안건에는 엄청난 양의 철광석이 필요했다.
외부에 팔 필요도 없이 거의 안에서 다 소모해야 할 정도의 필요량이다.
“안내해라. 더러운 년.”
에슬린과 마리온이 날을 세운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지켜본다.
에슬린은 이번 전쟁에서 얻은 좋은 정수를 성과로 받아 고위 마법사로 올라섰다.
어차피 시온은 이제 특별한 급의 정수가 아니면 독차지해봐야 소용이 없어서 팔거나 아래 마법사들에게 과감하게 분배를 했다.
고렘을 계속 가동케 하는 건 마법사들의 마나고 그 마법사들의 마나를 보조해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인프라가 안 좋군.”
1급 철광산지라는 위명만큼이나 인프라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은 안쪽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아르본으로 가는 형태일 거니까.
“새롭게 길을 여는 데 상당하겠는데요.”
에슬린이 그렇게 말했다.
“길?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전통적으로 외부로 철을 팔 때는 아르본을 이용했어요.”
얘기가 달라지는 이유는 역시 아르본으로 뺀다는 것 자체가 빙 돌리는 형태이기 때문일 거다.
‘당분간은 고렘이 투여될 곳은 정해져 있으니.’
이렇게 되면 여기를 군사 주둔지로 삼아 간단한 축성을 해야 했다.
시온이 고즈만 변경국에게 받은 것은 그냥 생산지만 달랑 받은 것이다.
여기에 대한 보호권이 들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해준다고 해도 미심쩍은 것은 당연했다.
‘고즈백 백작은 믿을만한 사람이지만 그 가문 구성원이 다 그렇다고는 볼 순 없지.’
시온이 염려하는 것은 이런 부분에 있었다.
대놓고는 어쩌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노출되어있는 곳이라면 얼마든지 얼굴을 가리고 강도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온은 곧 보냈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볼브한테 속해있던 덴투라는 기사였는데...
유비드 가문의 유격전에서 같이 활약했고 그 공로로 시온이 승격을 시켰다.
그리고 상태가 좋지 않은 병사들 몇이 왔다.
“설마... 시온 공작님이십니까? 영광입니다.”
“그래. 왜 덴투가 안 보이지?”
“덴투 경은 이미...사망했습니다. 공작님.”
곧 데리고 있는 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덴투의 죽음은 분명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고참 병사가 시온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시온은 그것을 듣고는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확인차 덴투에게 보고만 받고 아르본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 예감이 맞았던 거다.
‘철광지대를 노리는군. 그냥 내줄리는 없지.’
중세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런 식의 강도가 많은 편이었다.
예전에 시온이 처리했던 강도기사 괴레는 이런 일을 도맡아 하는 대표적인 자였다.
밀약을 맺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공식적으로는 협정을 맺었으니 각자의 위신과 약속과 귀족의 룰에 의해 칼을 들진 않는다 해도,
이렇게 자금이나, 성공보수를 따로 마지막에 지급하면서 상대를 약화할 수 있을 만한 여러 가지 술책을 짜는 것이다.
각자의 여유에 따라서 하는 경우도 있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고즈만 변경백국은 이런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철광지대로 움직인다.”
과연 철광지는 시온이 딱 봐도 위험한 상태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누군가가 가져가기만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전쟁엔 많은 철이 드는 법이고, 따라서 장기전을 계획하고 있던 샤를이 고즈만 백작에게 많은 양의 철을 요구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시온이 그 백작을 사로잡았으니 그 물량이 쌓여 있던 것이고.
일부분을 받긴 했지만, 인력의 부족으로 해소할 수 없는 양이 쌓여 있던 것.
“이렇게 많은 양이 쌓여 있었다니... 시온 공작님. 지금 필요한 철근을 생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급한 지역인 움드와 사보이 쪽으로 보내야 합니다.”
에슬린이 되려 좋아했다.
그러나 시온은 바로 마리온에게 되물었다.
“맞아요. 고즈만 변경백은 명예로운 자이지만 그의 가문원은 그렇지 않지요.”
그렇다면 이곳에 고용된 자들이 득실 하다는 이야기였다.
ㆍㆍㆍ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온도 그에 맞춰서 한꺼번에 약탈자들을 고용하는 편이 좋았다.
은밀한 수에는 은밀하게 대응하는 법이 제일 좋은 것이.
서로가 먼저 그쪽이 잘못했다고 물타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온 입장에서도 좀 고민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여러 가지 신용과 무역 거래를 생각해보면 시온 공작님이 직접 나서시는 것은 반대합니다.”
시온도 그 점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었다.
현재 빠듯하게 돌아가고 있는 무역이 세 개가 넘었다.
그중 비단과 보석은 신용이 중요했다. 괜히 위신이 까이게 되면 여기에서 손해가 생긴다.
“그러시다면 변장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마리온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신분치고는 잡다한 마법을 알고 있었는데 그중에 마법과 관련된 것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마법을 쓸 수 있나?”
“예. 제한 시간은 있지만 쓸 수는 있습니다. 그 무기 말고 다른 무기를 쓰신다면 눈치챌 사람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거 좋군.”
시온은 바로 그녀의 의견을 채택했다. 그냥 시온이 직접 변장을 해서 여기에 있는 고용된 약탈자들을 처리해 버리는 것.
어떻게 보면 해결법이라는 것은 뿌리를 찾아서 드러내면 되는 거다.
‘혹시 모르니까 메이스는 숨겨 두고...’
이 두 마법사가 모르는 시온의 비밀 중 하나는 시온이 직접 익힌 게 아닌 마법으로 움직이는 방식으로 무기술을 쓴다는 점이다.
시온은 간단한 흔한 검술 교본을 챙겨서 빠르게 보면서 메모라이즈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시온이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흔한 용병 같은 복장을 취했다.
기존의 롱기우스의 갑주와 메이스는 아공간 반지에 집어 넣어놓고.
일종의 일개 용병같이 자신을 꾸민 것이다.
무기도 다르니 이곳에서 진압한다고 해도 시온 본인이 여기에 개입했을 거라고 논하진 않을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일단 아르본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에,
어지간히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들킬 일이 없을 거였다.
그 상태에서 그나마 궤멸한 수십 명의 병사를 규합하고 사람을 보내 코르도바에게 이곳에 주둔시킬 병력을 보낼 것과 킬번에게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용병을 구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이곳에 고용된 약탈자가 많다고 해도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쉽사리 침범할 수 없는 경계 방어선을 짤 수 있었다.
그러기 전에 계획이 필요한 법.
에슬린은 요즘 고렘과 건축에 대해서 따로 열렬한 교습을 받는 터에 상당한 지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지금 시온 앞에서 여러 개의 도안을 보며 설명 중이었다.
‘벌써 여기까지 배웠나.’
분명히 예전과 비교해봤을 때 말도 안 되는 학습량과 성과였다.
성장 속도가 빨라서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코논이나 벤츨의 제자 정도 될 법한 설계도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에슬린은 긴장과 걱정이 결합 된 것 같은 얼굴로 시온을 바라봤다. 결국엔 시온의 허락이 있어야 의미가 있었다.
“좋아. 이렇게 하지. 데리고 온 고렘으로 내일부터 작업한다.”
눈에 띄게 좋아하는 에슬린을 보다가 시온은 다급한 징조 몇 개를 발견했다.
위험스러운 것이 오고 있을 때 경고하라고 설치해 놓은 여러 가지의 신호와 징조들.
연결된 보석이 적색으로 변한 거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두 개가 적색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설치해놓은 열 개 모두가 빨갛게 될 정도.
“?”
순간 당황한 이들.
특히 마리온은 바로 대마법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려고 했다.
“아니다. 마리온. 나에게 변신 마법을 걸어라. 그리고 대마법이 아닌 중위계 마법으로 상대해라. 둘 다. 마지막까지 아껴둬라. 정 목숨이 급하면 사용하도록 해.”
둘의 표정이 살짝 걱정스러웠지만 시온의 명령이다. 바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마법을 써버리면 그것도 신분 노출과 관련이 있으니 이렇게 용병인 척하라는 것.
‘대체 얼마나 온 거지.’
적당히 약탈단을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거의 규모가 컸다.
도발적인 의미가 남다르게 묻어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 정도라면... 그냥 이곳을 부숴버리겠다는 건가.’
여기에 쌓아둔 대량의 철광석을 수거 하고 아예 이곳을 초토화해버리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이참에 관련된 작은 항구 마을까지 학살하고 태워버리겠다는 보복 심리도 담겨 있을 거였다.
예상대로긴 했다.
전략적인 이유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아르강 전투에 대한 보복이 비슷하게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왔었는데.
다만 삼일 만 늦게 왔어도 이렇게 병사와 전략적 방어물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쑥대밭이 약간 되어 있어서 거의 맨땅에 많은 병력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시온도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튼튼한 검을 확인하고 자신의 신분이 잘 감추어졌는지 확인하는 정도다.
그렇게 대강의 밀집 진형을 갖춰놓았을 때 사방팔방에서 적이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횃불이 비추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복장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얼핏 수만 봐도 분간이 안 될 정도.
수두룩 빽빽했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하기야 워낙에 유리한 데다가 숨을 때도 없는 벌판에서 여러 가지 전리품으로 조악한 성벽을 만든 뒤에 몇십 명이 정교한 진형을 갖추며 대항할 의지를 피우고 있으니 우스울 수밖에.
장난감으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딱 봐도 네가 대장이구나! 복장을 보아하니 떠돌이 같은데! 금화를 얼마나 받았길래 이런 무덤을 택하지? 병신이군!”
남자 하나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시온이 앞에 서서 몇 가지를 지시하는 것을 보고는 시온을 조롱한 것이다.
심지어 기사도 아닌, 누가 봐도 이름 없는 용병으로 보였을 것이니 말이다.
“고즈만 백국 소속인가? 기사로 보이는군.”
“나를 알아봤다는 건가.”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도 이렇게 자신의 전공으로 남지 않는 일은 별로 맡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결투다. 이 자식아.”
시온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어설프게 뛰어가자 그가 껄껄거리고 웃으면서 마주 뛰어갔다.
저 병신을 곱게 죽이진 않겠다고.
그리고 그의 팔이 너무나 간단히 잘려서 떨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상황 파악하지 못한 그자를 시온이 붙잡고 손수 검 손잡이로 그의 얼굴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