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량의 재료
퍽! 퍽! 퍽!
한 번씩 좌중을 울릴 때마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사그라들어갔다.
‘검 손잡이도 나쁘지 않은데.’
시온이 지금 신경을 쓰는 점은 적당히 패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죽이기보다는 최대한 인질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시온은 이쪽이 적은 수로 큰 수를 흩트릴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너무나 지나친 힘을 보여줘도 안 된다. 신분의 비밀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가 있어 시온은 상당히 정성껏 상대를 패주고 있었다.
당연히 남자가 시온을 짓밟는 것을 기대하고 있던 자들은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을 껌뻑였다.
게다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도 컸다.
하도 성격이 더러운지라 일부러 저렇게 즐기나? 라고 운을 띄우는 자도 있었다.
그 정도로 이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하지만 기사이긴 기사다.
보통 거만한 자는 그만한 이유가 없긴 하지만 이 정도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자가 정말로 무능력할 리는 없었다.
숨을 붙여놓으니 기괴한 소리를 내며 허리에 있는 단도를 빼서 시온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아아악!!!!”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비명이 울려 퍼졌다. 시온이 그의 손을 잡고 부러뜨렸기 때문이었다.
단도는 직접 챙겨서 허벅지에 이어서 박아줬다.
이렇게 되니 자존심이고 뭐고 생존이 급했다. 그가 주위에 살려달라는 소리를 내질렀다.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자들이 소리쳤다.
“포티오스 경을 구해라!!”
다급한 나머지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있고 소리를 쳤다.
실력 있는 자로 보이는 체격이 좋은 자들이 시온을 향해 뛰어왔다.
예상대로 여러 약탈자를 규합한 세력들이지만 이들을 통솔하는 핵심 인물이 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자였고.
그러니 바로 명령권이 희미해지고 그 이유로 시온을 향해 실력자들이 다 몰려오는 결과가 일어났다.
어느 정도 그렸던 판이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다.
시온은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를 옆으로 던지고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남자의 목을 날려 버렸다.
장비가 덜 갖춰져 있는 것은 비단 시온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와 비슷한 구석이 있던 것이다.
이렇게 판이 깔리게 되면서 시온의 검도 바빠졌다.
팔을 날려버리든지 목을 날리든지 찌른 다음에 빼던지.
몇 가지 동작은 힘이 상당히 들어 이렇게 많이 누가 몰려온다면 되려 그 이유로 당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시온에게는 상관없는 제약들.
이어지는 건 기계같이 베어버리는 무기술의 형태였다.
끄악!!
악!!!
살려줘!!!
“뭐하는 새끼야?!!!”
“저 미친 새끼 누구야???”
삽시간에 시온이 열 명 이상을 베어버리자 당황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열 명 모두가 일반 용병이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이들에게는 딱한 얘기였지만 시온의 검술이 정교해지고 있었다.
‘벨저 공의 검술이 대략 이런 식이던가..’
지금까지 한 경험은 그냥 한 것이 아니었다. 하도 반복한 터에 자신도 모르게 베이스가 깔린 거였다.
애초에 메이스를 짜주었던 모태가 검술이었으니 검술도 금방금방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저들의 핵심 인물 중 반을 죽여버리고, 대장을 생사불명으로 포획. 이어서 전부 다 엉켜 들어가고 있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시온에게 휘둘리고 있던 거였다. 상황이 이러니 사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시온에게 달려들었고...
아무래도 무서운 모양인지 중위 마법이 아닌 고위 마법이 벌어졌다.
적들의 아래에서 다양한 뿌리들이 올라오고, 에슬린이 탄환계열 마법으로 여러 명을 폭사시키는데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시간이 금방 흐르고 어느덧 생기던 도망자가 점차 늘어나더니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다.
시온은 피에 질척해졌다.
바닥엔 살아있든 죽었든 약탈자 무리가 가득했다.
탄 냄새도 요란하게 나고.
시온은 쫓아갈까 하다가 그건 나중에 합류하는 부하에게 시키기로 했다.
느낌 적인 거지만 아마 내버려 뒀으면 여기를 약탈하고 태운 뒤에 이런 식으로 세력을 키워 정기적으로 알맹이만 챙겨가는 방식으로 괴롭혔을 것 같았다.
지금은 그것이 형성되려고 하는 순간에 죄다 박살이 난 상황이었지만.
검을 맞대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이 자가 그냥 용병인지 기사인지 알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이런 자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쉬고 있는 시온에게 에슬린이 왔다.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흠.”
처음 대장으로 추측되던 자가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카롤리나는 사보이 지역에서 영수잡이들의 치료를 맡기느라 두고 왔다.
사실상 여기는 열악한 편이었다. 이곳에서 치명적으로 부상하게 되면 그냥 죽을 수도 있었다.
딱히 그런 마법사를 데려온 것이 아니었고 마리온이 알고 있는 마법은 그쪽 계열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거라면 포션 정도를 부어 주는 일.
포션이 상처 치료에 좋다고는 하지만 의식을 잃은 자를 어떻게 해줄 정도로 효과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물어볼 게 있긴 했는데. 할 수 없나.”
대장이라면 이들의 은신처라든지 어디 출신인지 고급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 거였다.
누구의 자금인지도.
이것은 가면을 쓰고 하는 암투였다. 서로에게 치명상을 주기 위해 하는 것.
그러니 시온도 기회만 된다면 그들의 자금줄을 끊고 올 수도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난 턱에 아르본으로 가기 전에 한 번 털어주고 갈 생각도 있었다.
지금까지 노하우도 쌓여서 어떻게 정보를 얻어낼지에 대한 것도 나름으로 비법이 있는 편인데, 정작 이렇게 정신을 잃고 있으면 어떻게 정보를 얻어 내겠는가...
“제가 할 줄 알아요.”
“?”
마리온이 할 줄 안다고 시온에게 어필했다.
“대마법중에 상대의 정신을 탐색하는 게 있습니다. 시간의 시계라고..”
“그런 것도 있었나?”
시온이 에슬린에게 물어보자 에슬린이 당황했다.
질투해 봐야 어쩔 수 없다.
에슬린의 나이를 생각하면 고위 마법사도 대단하고 지금까지 같이 해온 전공도 있지만 새로 들어온 자가 대마법사로 분류되는 급이니..
다방면에 능한 면이 있다 했더니 이렇게 이런 쪽으로도 가능한지는 몰랐다.
“해봐라. 그런데 정신이 나가 버린 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리고 거창하게 준비 다 해 가면서 고급 정수까지 써가면서 마법을 썼다.
부작용을 줄여줄 수 있다더니 역시나 마법 하나로만 되지는 않고 값비싼 보조 재료가 필요했던 거다.
시온도 마법사이긴 하지만 이런 잡다한 류는 잘 몰랐다. 이런 것은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현재로써는 앤드류의 비술을 유지하는 데에만 해도 빠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 대형 마법진이 만들어지더니 어떤 연결고리를 통해 그녀가 정보를 엿보는 모양이었다.
한참이 끝나고 마리온이 입을 열었다.
“시온 공작님이 대부분 기사를 죽인 것 같습니다. 거의 회복불능입니다.”
“역시 내 감이 맞았군.”
시온은 검과 검을 맞대면서 기사를 많이 죽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거다.
“용병도 하나같이 고즈만 변경백과 오랫동안 일한 자들입니다. 실력도 좋고요. 여기까지가 제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인데...”
“이들이 머물던 곳은?”
“장소가 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제가 엿봤을 때 거기에 있는 게 고렘의 재료들인 것 같더군요.”
“진짜인가?”
“광경을 엿보는 것이라 추측에 불과하지만 제가 얼핏 본 것이 맞는다면 재료가 맞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인다.”
시온이 이렇게 들뜬 이유가 있었다. 지금 늘어난 영지만큼 해야 할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이런 인력을 가장 강력하게 채워주는 것이 바로 고렘.
문제는 시온이 열다섯 기의 고렘을 제국 수도에서 받아 오고 나서 세계적인 혁명이 일어난 거였다.
시온의 움직임을 보고, 아르강 전투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값비싸게 산 각 세력이 자신들도 고렘을 활용하기 위해 난리가 난 것.
그것을 다루는 마법서와 마법사들의 몸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그 재료가 같이 덩달아 뛰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게다가 사고 싶어도 이제는 서로서로 고렘을 보유하려고 하는 판국인지라 매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오르도를 통해 다른 상인 귀족들을 통해서 추가적인 매물이 있는지를 사보이 지역에서 탐색을 해봤는데 슬슬 없었다.
얘기를 듣자마자 그곳으로 바로 움직였다. 야밤이고 뭐고 그것을 가지고 도망칠 수도 있으므로..
생존자들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있다가 시온이 몇십 명의 병사와 함께 접근해오자 난리가 났다.
어디 거대하게 불이라도 난 것처럼 도망치느라 바빴다.
그리고 가다가 사로잡은 녀석이 안내한 곳으로 가자 그곳에 고렘을 구동할 수 있는 재료들이 잔뜩 있었다.
‘대체 이 녀석들이 이것을 왜 가지고 있는 거지?’
의문이야 여전했지만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 사려고 하면 아주 골치 아픈 정도. 마탑과 제국과 각 왕국의 왕이 모두 경매에 달려들 수준이다.
점진적으로 산다고 해도 돈도 시간도 오래 걸리는 그런 귀한 것이 됐다.
어쨌든 이것을 모두 그냥 강탈하게 된 것.
“이 정도면.... 잘하면 스무 기는 넘겠습니다.”
에슬린이 빠르게 계산을 해서 시온에게 말했다. 이제 고렘쪽에도 지식이 다분한 에슬린의 계산이 틀릴 일은 거의 없었다.
옮기는 것만이 문제.
“지금부터 이것을 나른다.”
“?!!!”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역에 역으로 약탈을 결정한 시온의 명령에 일반 병사들과 마리온은 놀란 모양이었다.
다만 에슬린은 이럴 줄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다들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시온이 숨겨두었던 심연의 고렘과 강철 고렘을 호출했다.
시온은 이 두기를 항상 대동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여차하면 이것들까지 전선에 투입할 것이어서 적이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다만 이렇게 되면 정체를 들킬 소지가 다분했을 것이다.
시온은 그렇게 고렘의 재료들을 싹싹 항구 쪽으로 운반했다. 강철들도 운반했다.
며칠 뒤 벤츨이 이 항구에 도착했다. 코논은 여지없이 사보이 지역을 구축할 만한 방어 건축물과 매장 건물과 각종 가도 사업이라든지 여러 가지 일로 바빴다.
정확히는 벤츨보고 사람 하나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벤츨이 움드에서 직접 여기에 온 것이었다.
“이걸 어디에서 얻으셨습니까? 허허..”
시온이 분배해준 고렘이 없으면 이제 작업이 진행되질 않을 정도다.
누구보다도 이런 계열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기에 매일매일 놀라면서도 고렘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맥을 동원해서 고렘 재료를 얻어 보려고 노력했다.
시온의 고렘이 아닌 자신의 고렘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탑에서 대규모 통제를 하는 통에 한 톨의 재료도 없던 와중 시온이 구해온 이 정도 양은 지금 시점에서는 전쟁이라도 해야 했다.
“적에게서 뺐었다.”
“.........전쟁을 여셨습니까?”
“전쟁이 아니고, 서로서로 신분을 숨기고 노린 거지.”
“..........”
시온은 바로 벤츨에게 명령했다.
“일단 이곳의 방어 상태가 매우 좋질 않아. 이곳에 내 군사 주둔지를 만들 계획이니 축성을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그러려고 제가 직접 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볼 때마다 놀라운 일이 생기는군요. 그리고 움드에 가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시온 공작님이 알려주신 기법은... 아마 다음 세대를 변화시킬 겁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높은 형태의 건물이 쭉쭉 늘어날 수 있다.
“오르도. 이 재료로 형태 제작이 가능하겠나?”
“물....물론 입니다. 시온 공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