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5화 (195/304)

고대 구동핵

이곳에서 왕이 전쟁이 직접 참가하는 일이 그렇게 적은 편은 아니었다.

보통 명예와 직결되기 때문에 직접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막 개창한 자들은 이런 것이 더 심하다.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이 잘 따라오지 않는 법이다. 그걸 거저 가져가려면 오랫동안 반복된 가문의 이름이 필요했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 한번 자리 잡은 가문이 계속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리스크 없이 성과를 가로채 가는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

‘모래 폭풍이 더 심해지는데..’

알아둬야 할 것은 지금 잡은 녀석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자세히 이 인물들의 가치를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데려는 가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런데 가다가 다 죽어버리면 의미가 없기도 하고.

더 심해지기 전에 강행돌파를 하던지, 아니면 잠시 피해야 할 위치를 잡아야 했다.

“하여튼 서부 날씨가 지랄 맞다더니...”

막상 그 한가운데에 있으니 혀를 내두를 정도.

어쨌든 생각할 시간은 짧았고 결국 선택한 것은 잠시 피할 곳을 구하는 거였다.

그리고 잠시 몸을 피할 만한 암벽지대를 발견한 시온은 그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모래바람이 날아다니고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모래바람보다도 시온이 더 무서웠으니 그들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던 거다.

“저쪽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시온의 대답은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졌으니.

사람이 방향을 결정하니 놀랍게도 모래바람이 작아지는 마술이 있었다. 시온도 다시 방향을 바꿀까 말까 했다.

그리고 펼쳐진 암벽도 생각보다 부실해 보였고,

‘비스듬하게 위치하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시온의 생존 능력이 다시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살아날 방향과 해야 할 조치들이 떠올랐다.

적어도 지금은 그것이 주는 것은 약했지만, 이들에게는 중요하게 작용할 터였다.

그리고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튼튼한 것 같았다. 그리고 깊었다.

“동굴인가?”

안쪽에 무저갱 처럼 이어진 동굴이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조처하고 이들에게 조언을 해줬다. 한 가지 경고도 말이다.

“여기서 도망가는 것보다 나에게 제대로 털어놓고 몸값을 치르는 편이 생존이 확실할 것이다.”

이십여 명의 포로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을 삼켰다. 설마 시온이 이렇게 대단한 자인 줄은 몰랐던 거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 싶을 정도로 변덕스러운 모래 폭풍이 다시금 단계를 거칠게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자리를 잡아서 영향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었다.

아마도 아까 그대로 갔다면 큰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상황이 대략 정리가 되고.

“공작님. 제가 가진 정보를 바치겠습니다.”

좋은 갑옷과 원래라면 만 명 단위를 지휘하던 장군이 느닷없이 와서 입을 열었다.

그의 행동을 보면서 다른 자들은 그 기회를 뺏긴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결국의 승패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이들은 연이어 시온이 벌인 일련의 일들을 통해 시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눈과 피부로 확인한 셈.

그러니 이렇게 되면 시온에게 붙는 것이 훨씬 나은 셈이다.

“그룬벨이라 합니다.”

“그룬벨 장군. 맞나?”

“맞습니다. 공작님.”

“한 번 얘기해 봐라.”

어떻게 보자면 그룬벨도 공작이니 시온에게 이렇게 존칭을 하고 이런 예우를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시온이 하대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할 정도.

이어서 그룬벨이 몇 번 기침하더니 시온에게 극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알바 대국에서 오고 있는 지원의 규모였고, 둘째로 그들이 오고 있는 방향과 속도, 기간.

셋째로 이들이 노리고 있는 지역과 이 규모의 병력을 지원하는 다른 세력들...

시온이 추측하던 것이 하나둘 맞아 떨어가고 있던 거였다.

그룬벨이 이 같은 고급 정보를 다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위치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룬벨 공작은 시온과 바로 국경을 맞닿고 있는 지역의 공작이었다. 

규모야 여러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위세가 대단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공작인 것은 공작이었다.

‘줄줄 나오네..’

시온도 놀랄 정도.

그 정도의 극비란 극비는 다 꺼냈다.

아마도 후에 있을 뭔가를 염두에 두고 이러는 것 같은데.

시온이 그런 생각이 들어 없어지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한 가지 말이 이어서 나왔다.

“시온 공작님의 봉신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

무슨 뜻인 줄은 알고나 있는가. 몸값을 치르는 것과 이렇게 봉신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차이가 있었다.

기름과 물 정도의 차이.

게다가 공작이 다른 공작의 밑으로 오겠다니.

“나도 공작이다만?”

“대공작이 되시면 됩니다.”

“.......”

“제발 받아주십시오.”

하기야 완전히 말이 되진 않는 건 아니었다. 백작이나 남작을 수여 받을 땐 반드시 공신력이 있는 자가 수여를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새로운 귀족으로 편성이 되느니 이왕이면 높은 신분이면 신분일수록 좋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엔 이제 스스로 주장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런 조건만 갖추면 된다.

가장 절대적인 조건, 현 공작이 바로 밑으로 들어오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없었다.

“네가 가진 말에 무게는 알고 있겠지? 그룬벨.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상대를 잘못 잡았다는 것만 알아두거라.”

이렇게 그룬벨이 말을 하고 나니 다른 자들이 줄줄이 시온의 봉신이 되기를 청했다.

기본적으로 백작과 남작들이 많았다. 다른 자들은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수 있는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보고만 있었고.

그룬벨이 가지고 있는 지역도 가치가 높았다. 개발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지금 이자만 협력하게 한다면...

‘알바 대국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알바 대국은 왕위만 세 개를 가지고 있는 왕국이었다.

이곳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들어온 것만 해도 시온으로서는 지금 그룬벨이 봉신으로 들어오겠다는 제안이 금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이 녀석이 진심인가 아닌가를 따져봐야겠지만 말이지.’

그리고 대강의 상황이 정리되었을 때 시온은 동굴 안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뭔가가 있나?’

그러고 보니,

서부 지역 자체가 험난한 것도 있고 인구도 아무래도 좀 크기에 비해선 모 편인지라 가는 길만 다니곤 한다.

“여기에 대해서 아는 자들 있나?”

이들 모두 서부 지역의 사람들, 그러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모두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그냥 운 좋게 발견이 된 거일 수도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 모래 폭풍으로 모래가 날아가서 숨어져 있던 것이 드러났다던가.’

얼마든지 가능성은 염두 할 수 있었다.

‘내려가 볼까?’

현재 마나도 많이 쓴 상황, 잠시 가만히 쉬기만 해도 이제는 많은 마나가 들어오는데 원래라면 그냥 마나를 회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풀린 김에 아래로 내려가 볼까 한 것이다.

‘이 녀석들이 도망간다면 곤란하지.’

“그룬벨.”

“말씀하십시오. 공작님.”

“나는 이 밑을 잠시 봐볼까 한다. 그러니 네가 나의 봉신이 되겠다 하면 이 임무를 맡아 봐라.”

“!!”

“이들을 감시해라.”

기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룬벨은 모르는 것은 시온은 심연의 고렘을 여기에 두고 갈 생각이었다.

공간의 눈.

이것으로 두 가지를 모두 볼 수 있을 거였다.

시온은 공간의 눈으로 고렘의 시야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세밀한 명령을 내리는 것도 물론 가능했다.

이들이 탈출하려고 한다면 심연의 고렘으로 막고 다시 올라오기만 하면 된다.

어쨌든 이것으로 그가 한 충성심을 시험해 볼 수도 있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시온은 동굴 아래로 내려갔다.

공간의 눈을 켜둔 채.

공간의 눈이란 마법을 하자 고렘의 시야가 공유된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공유할 필요 없이 최근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냈다.

시온의 옆에 작은 홀로그램 같은 것이 만들어져서 펼쳐졌다. 생각보다 자세하게, 만들어진다.

줄일 거 다 줄이고 사람만 식별할 수 있게 해 논다.

‘됐군.’

녹 반지에서 나오는 레시피가 이런 식으로 나오기에 시온이 틈틈이 연구했던 방법이었다.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는데 예상대로 그냥 동굴은 아니었다.

굉장히 오래된 도로처럼 보였다. 시온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이라면 함정을 밟을까 해서 조심조심 들어갔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육체 능력의 반사속도만으로도 대강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다. 장비도 좋은 것을 덕지덕지 들고 있어서 정말 위급하게 막지 못하는 것은 보호막이 생겨 막아줄 정도.

다 전투가 끝나고 전리품을 털면서 얻었던 것들이다.

“흠, 뭐지 저 비석은?”

그리고 거대한 비석을 하나 발견을 했다. 바로 문자를 알아본 시온은 고대 제국이 남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살펴봐도 그것 외에는 알 수가 없는 상황.

그때 시온의 눈이 한곳으로 쏠렸다. 여기에 뭔가를 넣어달라는 느낌. 그리고 그것은 정수 크기였다.

“정수를 넣으라는 건가.”

대충 중급 정수 하나 넣으면 될 것 같았다. 아공간 반지를 열어 고르곤 정수를 꺼냈다.

어차피 지금 이 시각에도 고르곤을 잡아 정수가 얻어지고 있어 여기에 넣어 봐도 상관은 없었다.

그렇게 시온이 정수를 집어넣자 비석이 밝아졌다.

이게 맞는다는 느낌이 확 들었는데 끝났다.

“안에 분명히 뭔가 있는데.”

시온의 기감이 뭔가를 잡아낸 거였다. 그래서 메이스로 비석을 부쉈다. 

최대한 그 방향을 피해서,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딱히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고 그 비석을 거의 깨부수자 한 가지 원형의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구슬치고는 지나치게 컸다.

“흠...”

시온은 그것을 챙기고 뒤로 돌아갔다.

그동안 있었던 일은 너무나 간단했다. 도망치기는커녕 그냥 시온에게 모두 협력을 해서 새로운 왕을 모시자는 것.

그런 토의라기보다는 그룬벨 공작이 다른 백작들을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밖으로 나온 시온은 새로운 백작들에게 충성 맹세까지 받아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됐고 모래 폭풍이 점차 잦아들었다. 아침 일찍 시온은 이들을 깨워 본래의 세력 진형으로 돌아갔다.

“시온 공작님!”

시온이 도착하자 경계를 서고 있던 자들이 난리가 났다. 시온이 모래 폭풍 사이로 갔다 오자 단순히 수뇌부만 걱정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서부터 시온을 걱정했다.

돌아오자마자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대체 저들은 누구입니까?”

“그룬벨 공작과 여러 백작, 그리고 바르셀 왕이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

바르셀 왕이 죽었다는 얘기를 믿을 수가 없어서 술렁거렸다.

마리온이 조금 자세히 묻자 시온이 답했다.

“운이 좋았지... 그들이 들어간 곳이 하필 절벽이 낀 곳이었고 거기에 대마법을 쓰고 좀 위험하긴 했지만, 힘을 그렇게 들이진 않고 많은 자를 망자로 만들었지.”

시온의 믿기지 않는 소문이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온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다른 자들이 알아본 결과 정말로 바르셀 왕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벌써 전세가 뒤집혀 버린 것이다.

오히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병대를 출격해 사냥해야 할 정도.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는데 그걸 시온이 삼 일 사이에 뒤집어 놓은 거였다.

“이게 뭐인 것 같나?”

에슬린과 마리온을 불러 놓고 시온은 고대 비석에서 얻은 것을 놓고 물어봤다.

“어디서 나셨습니까??”

“예쁘네요...”

마치 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 같은 원형의 핵.

그러나 기존의 어떠한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다. 딱히 용도를 알기 힘들었다.

그때 뜻밖의 곳에서 답변이 나왔다.

“구동...핵과 닮았습니다.”

“구동핵?”

“아무래도 고렘과 관련된 것 같습니다.”

바로 시온은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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