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0/304)

몰리나 공성전

서부의 지역은 넓은 편이다. 그룬벨이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매일 매일 시온에게 항복하고 새로운 왕으로 모시겠다는 자가 세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하나하나 하기는 힘드니, 서약 맹세는 나중에 시키기로 하고...’

동부보다도 잡다한 귀족이 많은 탓과 백작령보다 비교적 방대하고 험난한 지형 때문에 남작들이 많다.

그래서 그 숫자만 벌써 백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룬벨 이 자식. 진심이었군.’

그때 그룬벨을 처리해버릴지 고민을 했는데 이로써 그룬벨을 살려 두기를 잘했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사실은 그룬벨이 일단은 협조한 척이라도 하면 그 세력을 이용해서 지형적인 활로와 카페 왕국이 달려들었을 때 샌드백으로 활용하려고 했었지만...

‘이렇게 인맥이 넓을 줄이야.’

그야말로 미친놈과 다름없이 굴며 시온을 찬양하고 아는 사람이 분명해 보이는데 고문도 서슴지 않으면서 시온을 왕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를 하는 수준이었다.

시온이 보여줬던 두 가지 일들이 그에게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이다. 

모래 폭풍을 뚫고 와서 그룬벨과 바르셀 왕이 지휘하고 있던 부대를 몰살해 버린 것이라던가, 자신이 준 정보를 조합해서 일강에서 알바 대국을 수장해 버린 일이라던가.

이미 시온을 황제나 신이라고 받아들인 모양. 아니 신이 가까울 것이었다. 그 정도의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쨌든 시온은 그를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가 설득하면 할수록 시온은 전투해야 할 필요 없이 싸워야 할 필요 없이 세력을 넓히고 봉신들을 늘리고, 막대한 자원과 세수를 받아들이게 되는 거였다.

영지만 해도 이미 가지고 있는 숫자를 바로 넘어섰다.

로셀, 엠퓨리, 어젤, 알토 아르, 자라고.

여기에 그룬벨 공작이 다스리고 있는 지역에 대한 세수에 일부까지.

물론 그룬벨이 넘어올 때 그의 봉신이 시온에게 넘어온 것이 아니고 그룬벨이 넘어왔으니 세수는 그룬벨이 내는 것이 전부다.

다만 그룬벨이 설득한 백작들은 모두 시온의 새로운 봉신들이 되고 있었다.

‘모두 굉장한 도시들이지.’

백작 도시답게 일강의 지류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고 대대로 전해오는 영지의 수익이 되는 자원과 산업을 보유하고, 특별한 관세까지.

이젠 그 최상위에 시온이 얹혀진 거였다.

그리고 대략적인 침공의 계획이 나왔다.

서부 지역은 넓기에 이 정도 승복을 받아낸다고 해도 항복하지 않은 귀족들은 더 많았다.

시온은 그곳을 전격적으로 공격해서 서부 지대를 모두 흡수할 예정이었다.

ㆍㆍㆍ

코르도바가 나눈 곳은 세 방향이었다. 그 중 시온이 맡은 것은 가장 험난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지역이었다.

“천혜의 요새군.”

시온이 군대를 이끌고 온 곳은 몰리나 백국이었다.

바르셀 왕국이 사실상 해체 비슷하게 되고 나서 시온이 세력을 규합해 이들에게 항복하고 봉신이 되라고 전서를 보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다.

그냥 백국으로 독립해 버린 거였다. 상당히 많은 지역, 즉 반절 정도가 각자 뭉쳐서 연합 왕국을 이루거나 아니면 이런 식으로 백국으로 독립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도착을 해보니 그 이유가 짐작되고 있었다.

성 외에는 광활한 암벽지대와 황야가 펼쳐져 있어 딱 봐도 식량이 엄청나게 부족했다.

산지를 끼고 있는 거성 쪽에만 재배와 물을 다 끼고 있는 상황.

이러니 공성전을 걸어도 식량 부족으로 제풀에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공성전을 하자니 지대가 너무 높고 노출이 심해서 온갖 원거리 공격에 맞아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었다.

‘하던 대로 가도 작업은 해오긴 했는데.’

구동핵을 박은 고렘들은 어떤 작업에도 이제 숙련이 된 작업 속도를 보였다.

그러니 가도를 만들라고 했을 때 그것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기존보다도 세 배의 속도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뒤에서 보병 주둔지와 연결하기 위해 가도를 연결했다.

“제가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 봤을 때 여기서부터는 너무 함부로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에슬린이 그렇게 말하자 마리온도 바로 동의를 했다.

마법사라는 것은 단순히 마법만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전쟁이 역사까지 줄줄 꿰어야 했다.

참모 역할까지 겸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알바 대국은 여기보다 지형이 험난해요. 시온 공작 각하.”

마리온이 추가적인 정보를 줬다. 중간에 반드시 다시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곳이나 그러겠지만, 방어하는 것보다 공격하는 쪽이 더 많은 부담을 지기 마련이었고 그것은 이곳에선 더욱 심했다.

지금까지 시온도 공성전이란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었다. 

보통 문제가 있다고 하면 워낙 약속한 시온의 영지를 공략하기 위해서 압박하는 경우가 다였고 그때마다 기지와 개인적인 무력과 운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알바 대국이 여기보다 더 심하단 말이지.”

시온이 서부 침략에 대해 운을 띄워놨을 때 최종 목표까지 걸어 놓은 것은 당연히 알바 대국이었다.

그러니 알바 대국의 정보가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서부지대에 알바 대국까지 흡수한다면 시온은 완전히 새로운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가면 이제 후사를 보려고 노력을 해야 할 정도.

이제 내실을 가꾸고 평생을 편안하게 지내도 좋았다.

즉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은 더 거창한 것이었다.

‘갖가지 정책을 다국적기업처럼 내실을 가꾸게 되면....’

이곳에서 대략 현대와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어 놓는 것.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정복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저곳을 공격하는 것은 나도 어려운 일처럼 보이는군. 뭔가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 보이는데. 앞으로 두 명은 이 거리를 극복할 방법에 대해서 연구를 해봐라.”

시온이 새로운 화두를 던져 주었다. 

이곳은 그렇다 해도 확실하게 알바 대국을 공략하는 법은 역시나 새로운 장거리 공격 능력을 갖추면 되는 법이다.

그리고 주둔지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새로운 주둔지와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은 하나의 통로와 거대한 몰리나 거성.

이곳의 위치는 실도 지대해서 이곳이 이렇게 강짜를 부리는 이유가 다 있었다.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뚫려본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것이다.

시온이 지금 가져온 일만의 군대의 백배도 막아낸 전력이 있는 지역이었다. 

제국에서 백만의 군세를 이끌고 왔을 때 몰리나 거성을 뚫지 못해 돌아가야 했던 일은 거의 전설이 되었다.

‘심지어 이대로 완성된 가도로 수송부대가 온다 한들 저자들을 굶주리게 할 방법이 없다.’

마나가 풍부해서 자체적으로 산 위에서 재배하는 특이한 지형 때문이었다.

결론은 저곳을 물량으로 공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지를 시온도 전혀 몰랐다.

‘흠...올라가서 확인해볼까?’

쭉 돌아보다가 시온은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자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전략.

문제는 올라갈 때까지 최대한 눈속임을 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한 방법을 시온은 가지고 있었다.

마리온.

마리온은 왕 정도 되는 세력에서 한둘 정도밖에 데리고 있지 않은 대마법사였다.

시온도 대마법사이긴 하지만 마리온의 특기는 보조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샤를이 아르강에서의 삽질을 가속화 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시온의 경우는 달랐다.

“마리온.”

“부르셨어요. 공작 각하.”

“내가 저기에 올라가 볼까 하는데...”

“??????”

“....”

너무 매우 놀라서 들고 있던 구슬까지 떨어트렸다.

시온은 그녀가 당황해서 그것을 다시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위장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대마법급으로.”

“할 수야 있지만 제가 걸 수 있는 것은 거기서 생환하게 하실 수 있는 공간 이동 마법은 아닙니다!”

그녀가 바로 그렇게 말할 정도지만, 시온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준비를 해봐. 최대한 정석으로 에슬린이랑 다른 마법사를 모두 불러서 지금부터 준비하거라.”

“대체..... 아무리 시온 공작 각하시다고 해도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강에서도 말도 안 되게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보였을 뿐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벽한 지원과 준비가 있었던 것.

그러나 지금은 위장 마법을 걸어 달라고만 할 뿐 그냥 올라간다고 했으니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를 표하는 거였다.

‘어느새 내가 샤를 왕보다 중요해졌나 보군.’

그녀는 예전의 모습과 부쩍 이나 달라져 있었다. 

그나저나 시온도 혼자 올라가서 난공불락의 성을 정복하겠다고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온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대강 지형이라도 좀 보고 식수의 위치라든지 망쳐야 할 식량이 있다면 불이라도 질러주고 여러 가지 방해 공작을 하려고 하는 거였다.

상황을 봐서 이것이 효과적이다고 생각이 되면 공성전에 들어갈 것이고.

아마 이 방향이 맞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고 달이 떠 있는 시각, 시온에게 대마법이 걸렸다. 

순간 출렁거리는 마나. 그러나 에슬린이 다른 대마법을 쓰는 척을 해서 시선을 그쪽으로 잡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시온은 어둠과 비슷한 색이 되었다.

“카멜레온의 비술입니다. 다만 위험도를 생각해서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여요. 시온 공작 각하님이라면 알아서 그 시간을 보충하거나 아실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돼서..”

시온이 손을 들었다. 그만 설명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온이 성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묘한 일이었고, 심지어 위에는 마법사들이 정찰에 동원될 정도로 감시가 제법 있는 편이었지만, 지금의 시온이라면 아이러니하게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현재 시온이 칠 단계의 마나를 얻고 나서 얻은 통제 효과 때문이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일반인으로 보일 정도로 한 톨의 마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런 곳에는 더욱 알 수가 없었다. 시온은 거침없이 성벽을 한땀 한땀 올라갔다.

어느덧 중턱이었다.

‘지금은 멈춰야겠군.’

고요한 소리지만 자그마한 발소리가 들린다. 마법사가 따로 정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법사가 시온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단계의 차이라는 것은 이렇게 하위 마법사가 상위 마법사를 마법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거꾸로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게다가 시온은 다른 보조 마법 도구가 없이도 순수하게 마나를 쉽게 느낄 수 있게 된 체질의 변화, 

기감만으로 상대의 위치를 알 수 있으니 올라가는 일은 인내를 요구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온은 천 년 동안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성의 담을 넘었다. 

막상 올라가자 시온도 육안으로는 자기를 보기 힘들 정도로 마법이 잘 걸려 있었다.

‘마리온이 없었으면 진작 발견이 돼서 저기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겠군.’

당연히 이런 방해공작이나 일인 침입은 그때의 방심에 작용하는 면이 컸다.

설마 혼자서 들어오는 인간이 있을까 싶은 그런 면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시온의 손이 그곳을 도는 마법사의 얼굴에 떨어졌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곳을 도는 마법사 하나가 골이 깨지고 시온은 나머지 두 명도 바로 레슬링으로 하나씩 질식사시켰다.

내부의 구조가 한 번에 보였다. 창고로 보이는 것과 넓은 면적의 재배지가 보였다. 

적어도 이번엔 저 두 곳을 집중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좋아 보이는데, 저쪽 끝에서 잘 차려입은 귀족이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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