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전
이건 좀 고민이 됐다.
옆에 있는 기사의 무장 상태라든지 마법사까지, 상당히 강한 녀석들이니 당연히 다들 한자리 하고 있을 것이다.
‘근무를 돌기 위해 병사가 당하는 것과 저 녀석들이 당하는 것은 차이가 있지..’
어쩔 수 없는 법칙이었다. 저것을 건드리면 벌집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왕 이렇게 방심을 이용해 침투했으니 공성전의 기초를 파괴하는 편이 좋았다. 재배지, 저장소, 내부 구조, 녹이 슨 부위, 물의 경로지.
우선 적으로 노려야 할 곳은 일단은 이런 쪽이었다. 전장에서는 저런 귀족이 먼저이긴 하지만,
여기서 저런 귀족을 잡는다고 해도 데려갈 방법이 없고 상황을 고려하면 거의 죽여서 입을 막아야 했다.
벌써 침투 시에만 세 명의 목을 딴 것도 있었고.
‘가라.’
시온이 어느 정도 마음을 결정했다. 일단은 여기 올라왔을 때 장비가 부실했다. 오랜만에 메이스도 놓고 올라왔다.
갑옷도 거의 없었고 가볍게 걸치고 있는 티 하나가 정도.
카멜레온의 비술에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제약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만큼 시온의 목적이 정해져 있던 것도 있었지만.
‘가볍게 올라와 본 거니까. 난공불락의 성인지 아닌지 내부에서 보면 반드시 약점이 드러나기 마련.’
그런데 기묘한 것처럼 잘 가던 귀족과 병사들이 걸음을 뚝 멈추고 시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치 시온이 숨은 방향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까 회의 중 논쟁을 했던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지 제대로 앞도 안 보는 것을 보아 우려하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들은 거침없이 시온이 숨어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어둠 속에 있는 시온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마법사도. 그만큼 시온에게 걸려 있는 마법의 수준과 시온 스스로 마나에 대한 통제가 대단하기에 걸리지를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막상 전장에 서면 이 녀석들을 제거하기엔 신경이 쓰일 자들일 거였다. 공성전 상황에서는 보병대에게 얼마나 피해 입힐 지도 감이 잘 안 왔고.
행동각인비술을 최고단계로 급발진을 시킨다.
시온이 조금 전에 처리했던 자에게서 얻어낸 단도가 단숨에 고위 마법사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마법 장비가 튕겨냈다. 아마도 쉴드 종류일 터. 하지만 거기에 시온이 빼앗은 보병의 철검이 빛살같이 떨어졌다.
고위 마법사가 쓰는 장비답게 이 쉴드는 단검뿐이 아니라 시온의 일격에 목숨을 부지시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 사용했기에 딜레이가 있기 마련 간단하게 목이 잘려나갔다.
“!!!!!!”
그러면서도 시온의 손이 기사에게 날아갔다. 주먹으로 턱을 날렸는데 순간 이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그의 얼굴이 어두워질 정도다.
놀랍게도 시온에게 반격하려고 했으나 그대로 손이 으깨지고 얼굴에 주먹세례가 떨어졌다.
콰득! 퍽! 퍽!
‘음.. 반응하는 것을 보니 대단한 녀석들이군.’
시온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인데도.
문제는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두 명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
잠깐만 시온의 공격을 버티면 충분했고 그대로 살아남은 귀족이 경비를 부르면 끝.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인내하지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녀석은 너무나 놀라 엉덩방아를 찌고는 발을 밀면서 거리를 벌리려고 시도 중이었다.
그렇기에 아직 한 가지 방법이 남았다. 희박했지만.
“입을 열어서 경비병을 부르면 너를 여기서 죽이겠다. 그리고 다른 녀석을 찾아보지. 하지만 입을 다물고 내 응답을 잘 들으면 네 목숨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고 머리만 잘 굴리면 살 수도 있을 거다.”
시온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지금 공성전이 벌어지려고 하는 그 순간인데 이 상황에 설마 이런 것을 듣겠느냐며 포기하면서 검을 빼앗아 들어 던지려고 했다.
“...........”
그런데 정적이 찾아왔다.
입을 다무는 선택을 했다. 하기야 이곳에 아무리 바보가 많다고 해도 당장에 자기 목숨이 날아가는 데 공성전이니,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드문 것이다.
“선택한 건가?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거기 마법사의 목을 들고 이쪽으로 와라.”
살아남은 자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는 시온은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아직도 카멜레온 비술이 풀리지 않아 시온은 흡사 어둠 속에 나온 괴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적이라기보다는 재해영수취급.
‘흠..?’
마법사의 목을 벌벌 떨리는 손으로 들고 왔고 그사이에 시온은 두 망자에 마리온이 준 마법 도구를 달아주고 있는 힘껏 바깥에 던졌다.
풀썩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소리를 줄여주는 마법 도구였다.
“그래. 넌 누구지? 이름을 밝히고 방금 내가 처리한 자에 대해서도 말해라.”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입에서 정보가 줄줄 나왔다.
이미 공포에 사로잡힌 터라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음???”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서 들은 정보는 제법 시온을 놀라게 했다.
첫 번째는 몰리나의 수석마법사였고 두 번째는 더탈 경이라고 몰리나 백국의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던 거다.
더탈 이라면 그룬벨에게 대략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
바르셀 왕이 샤를 왕의 포위 공격에 위기에 처해있을 때 단독으로 전선으로 되돌아가 그를 구해왔다고 한다.
‘둘 다 내 손에 죽은 게 됐군..’
후대에 전해질 정도의 놀라운 무용담과 업적을 가진 둘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둘 다 전선이 아닌 비 전선에서 시온에게 죽은 것이다.
바르셀 왕은 사막의 전술인 군주 그림자 전술 때문에 시온이 던진 창에 꿰뚫려 죽었고,
더탈은 조금 전에 시온의 공격에 턱이 깨지고 이어지는 난타로 즉사했다.
솔직히 그 와중에 반격하려는 것으로 보아 예상보다 강한 자라는 것을 알았는데 더탈 경이라.
어쨌든 지금 앞에서 주절거리고 있는 녀석은 펀즈라는 몰리나 백작의 사생아였다.
즉...
‘하길 잘했네.’
“네가 사생아란 말이지? 그러면 너를 죽여도 상관없겠구나. 아무런 가치가 없는 녀석이군.”
물론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이곳에서 사생아는 어지간히 차별을 받긴 한다.
따로 아버지가 사생아에게 업적을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그런 분위기는 평생 벗어나질 않고 운이 좋으면 한 자리 정도는 해먹는 편이지만,
나쁘면 새롭게 잡은 형제들이 바로바로 가문의 명예가 떨어졌다고 제거해 버린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당돌한 놈이군.”
“어차피 저를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혹시 시온 경이십니까?”
“그래 맞다.”
“!!!!!!”
“왜,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내 위치를 알려야겠나? 가문의 서자라면 그 정도는 가능하긴 하겠지.”
“아... 아닙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여기에 올 만한 대담한 인물이라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시온 경밖에는 생각이 나질 않아서.”
“그래서?”
“협력하겠습니다. 저만큼 몰리나 성의 약점과 가문 구성원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는 자는 없을 겁니다. 심지어 아버지도 말입니다...”
“?”
이 녀석도 그룬벨 과로 보였지만, 그런 인물이 서부에 널려 있는 것도 아니고 시온은 이런 허술한 수에 넘어갈 정도로 만만한 삶을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유년 시절만 해도 사냥을 빌미로 암살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 무력을 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시온 경께서는 어떻게든 몰리나 백국을 공략하시고 말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이 극한에 몰리면 세 치의 혀가 날아다니는 법이다. 그러니...
“그냥 너를 죽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계획을 진행해도 상관이 없다. 나로서는 말이지. 그러니 지금부터 삼분 안에 나에게 협력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봐라.”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목숨을 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얘기인즉슨 불우한 가정사였다. 사생아여서 형제들에게 긴 차별과 괴롭힘을 받았고 어머니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는.
그래서 가문의 복수를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나름의 야심도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제국 수도에 있는 대학교를 나왔군.’
사생아인데도 어떻게 거기까지 가서 공부를 마치고 온 것으로 보아 분명히 머리는 좋아 보였다.
그러나 이를 갈고 분개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이중적인 태도 때문인 듯.
여기는 첩의 수에도 계급의 영향을 받았는데 백작은 많아 봐야 세 명이 고정이었다. 공작은 다섯 명까지, 왕은 그 이상이다.
“그게 전부인가?”
하지만 어떻다는 건가.
“아..아닙니다!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펀즈가 갑자기 귀걸이를 하나를 꺼냈다.
“음?”
“아까 그 마법사는 핀게르오의 저작물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죽인 자의 이름이 핀게르오였나?”
“예. 그는 여기에 자기의 저서를 넣어놨습니다. 그것이 지금 저희가 내일부터 배치하게 될 신무기입니다.”
“신무기?”
손가락이 어디 한 곳을 가리킨다. 건물이 겹겹이 있어서 보기 힘들지만, 그 뒤쪽에 군수창고가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을 각 성벽에 배치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을 확인해보자고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이 아공간 액세서리를 열어보면 되기에.
예전에 연습을 해두었기에 이 정도는 쉽게 해제할 수 있었다. 원리만 알면 나머지는 마나의 문제인 탓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권의 저서와 몇 가지 부록 책자를 발견했다.
“거기에 평소에 스케치하던 것이 담겨 있습니다.”
부록 책자에 담겨 있다는 말에 시온은 그것을 빠르게 열어 훑었다.
‘대충 대포로군...’
물론 순수 화약으로 발사되는 것이 아닌 이곳 방식대로의 작품이지만 분명히 그 초안 모델로 보였다.
‘저 군수창고는 갈 때 꼭 부숴야겠다.’
무리해서라도 그것만은 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시온은 이것이 일 순위인 재배지를 태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이 있으면...’
대충 봐도 여기에 대한 설계도가 담겨 있는 저서였다. 시온은 그것을 챙기고 펀즈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니 네 뜻은 너를 이곳의 백작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겠지?”
“충..충성 서약을 이행하겠습니다.”
“짧게 해.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나중에 이곳을 공략하고 정식으로 한다.”
시온은 일단 이 녀석의 정보를 이용해 작전을 심화시키기로 했다.
원래 가볍게 이곳을 등반하고 중요한 자원을 파괴한 후 나오려고 했던 것에 비교하자면 일이 좀 커졌다.
‘한 번 믿어보자고.’
적어도 이제 새로운 무기의 설계도를 얻었으니.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이곳이 험준한 탓에 본격적으로 공성전이 벌어지지 않은 지금은 순찰 시간이 깁니다.”
군사 기밀까지 척척 알려준다. 그룬벨과 같은 과지만 상당히 다른 녀석이라고 봐야 했다.
복수심과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하나. 말에서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문제는 시간이 여유가 있다 한들 무기를 파괴하든지 아니면 지금 서자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서 암살을 수행할지 말이다.
‘이 공성전은 그냥 실패했겠어.’
사실 시온은 최대한 머리를 짜고 대마법을 이용하면 난공불락의 몰리나 거성을 공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오산이었다. 이 신무기를 견적에 넣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배치되고 적어도 시온이 아는 그 위력이 있다면 일만의 보병대로는 여기를 공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를 하고 나면 둘 다 심각한 일이라 여력이 없을 것은 분명했다.
일단 펀즈가 자신하고는 있으나 거기에 영주의 아들 말고 영주 자신이 있는지는 가능성이 떨어지고...
무기를 파괴하고 도주하자니 펀즈가 가지고 있는 지금 시기의 상황과 기회가 너무 아깝고.
잘만 하면 한 번에 영주를 죽이고 몰리나 거성의 사기를 박살을 낼 수 있었다.
뭐가 됐든 둘 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