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전(2)
시온이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영주를 노리는 쪽이었다.
원래라면 영주 쪽은 아예 노릴 수가 없었다.
안쪽에 대한 지리나 지도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철저한 감시 몰래 영주가 있는 곳까지 간다는 것은 시온으로서도 무리였다.
가는 것 말고도 도주하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금 무기고에 있는 그 신무기들이 공성전의 성패를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영주를 잡는 것보다는 못하지.’
물론 이것이 완벽하게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고 그저 여기에 대한 몇 가지 추론만 가능했다.
펀즈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그가 안쪽으로 안내하며 길을 열면서 시온이 몰래 쫓아가는 형태다.
마리온이 걸어둔 카멜레온의 비술이 아슬아슬하게 유지가 될 것 같았다.
애초에 마리온도 이 비술을 실전에 써보는 것은 처음이니 시온에게 조심하라고 했지만 시온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상황.
이어서 진정한 잠입이 시작됐다. 졸지에 암살 전이 된 것이다.
“펀즈님 왜 여기에?”
“잠시 형님이 불러서 말이다.”
마치 허락이 없으면 와서는 안 되는 곳에 온 것과 같은 그런 분위기가 풍기며 기사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고개를 잠시 갸웃거린다. 뭔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질 않는데 그냥 기분 탓인가 하고 지나간다.
적어도 이제 하나는 확실했다. 펀즈가 자신을 배신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받은 차별이 진짜였다는 것을 말이다.
기사들의 눈과 발언에서 이미 그런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이들은 마치 펀즈가 무언가 처벌을 받거나 훈계받기 위해서 이곳을 찾은 것처럼 보였던 것.
그리고 그렇게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기사가 다시 돌아봤다. 시온은 순간 저 녀석을 그냥 공격해서 입을 막을지 고민했을 정도.
“네 녀석! 나를 얕보는 것이냐?!”
그러나 펀즈가 된통 성을 내자 기사가 사과하며 가던 길을 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충분했다. 이젠 믿을 수 있고 이 녀석을 어지간하면 살려야 할 이유가 생겼다.
최소한 걸린다고 해도 펀즈가 여기에 남아야 공성전에서 군사기밀을 빼줄 게 아닌가.
그리고 다음 방에 들어갔을 때 정사의 소리가 났다.
‘흠.. 여기인가?’
시온이 눈짓을 하자 펀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대로라면 여기에 둘째 아들이 있었고.
그리고 펀즈가 먼저 들어갔다.
“뭐야! 펀즈 네 녀석인가? 이 자식이! 정신이 나갔나!”
그리고 희미하게 같이 들어오는 시온의 그림자. 그의 얼굴이 올라가는 와중에 시온이 그의 배를 쳤다.
“커헉허헉.”
한마디도 못하고 몇 가지를 물어봤다가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의 목에 검이 푹 하고 꽂혔다.
“뒈져라! 우리 어머니를 죽인 개자식이! 너도 마찬가지야! 창녀!”
이어서 칼부림이 빠르게 이어졌다. 생각보다 기사급의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기야 제국 대학교를 다녀왔다는 것이 허튼소리는 아니었던 거다.
“허허..”
‘이 자식 보통내기가 아니었네.’
시온이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숨통을 끊었다.
방금까지 뜨거운 사이였던 두 명이 이렇게 되는 것은 짧은 시간이었다. 다만 이렇게 감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어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최대한 죽이고, 최대한 권한이 많은 자 위주로 처리하고 거기에 몰리나 백작만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없어도 적어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뻔했다.
“다음으로 간다.”
그리고 문이 조용히 닫히고 장자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물론 방법은 지금과 같았고 살짝 피 냄새가 나는 것 말고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말이 장자지 거의 이곳 특성상 무조건 총 장군직을 맡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 녀석만 죽여도 바로 공성전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은밀하게 지나가는 와중 격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는 방 앞에 도달했다.
펀즈가 아주 흥분을 했는지 앞에 있던 하녀도 인사를 나누는 척하면서 살해해 버렸다.
저 하녀도 어지간히 펀즈를 괴롭힌 모양.
어쨌든 방 안을 펀즈가 열고 들어가자 놀랍게도 그 안에 있는 것은 시온에 대한 온갖 추측을 진행하는 몰리나 백작과 그의 아들이었다.
‘후.’
시온이 순간 기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그냥 몰리나 공성전의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순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 주제에 어딜 오는 거냐! 매질을 당하고 싶은 건가?”
“아버지!”
“이 녀석이 백작님이라고 부르라고 했거늘. 다른 곳에서 그렇게 입을 실수했다가는.. 음? 피 냄새?”
몰리나 백작과 장자는 서로 그렇게 한마디를 하고는 몰리나 백작이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누..누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온의 공격이 그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피가 분수처럼 퍼졌다.
시온이 그대로 쪼개버린 것이다. 이어서 그 장자란 녀석도 배에 칼을 맞았다.
별다른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기습공격에 검조차 뽑지 못한 것이다. 이어서 펀즈가 입을 막고 그의 목을 베어버림으로써 상황은 종결됐다.
“후욱...훅...훅..”
“됐군. 시간은 어느 정도지?”
“지금 바로 나가셔야 합니다. 첫 번째 순찰이 지금에서야 끝이 났을 겁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시온은 안 그래도 카멜레온의 비술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쪽으로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아주 안쪽의 길까지 마련해주는 덕에 시온은 손쉽게 비어있는 성벽으로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으나 잠시 발걸음이 군수 창고에 눈길이 간다.
‘저, 신 무기를 지금 부실까.’
몰리나 거성에 핵심 인물들을 지금 잡아냈다고 해도 펀즈가 서자인 탓에 펀즈에게 권력이 넘어오지는 않을 거였다.
그러니 여기서 다음 공성전을 준비하는 것이 맞기는 한데,
“왜 그러십니까?”
“저걸 부실까 하고.”
“.......”
펀즈가 순간 지독하다는 얼굴로 시온을 쳐다봤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그 정도로 철두철미하다는 것과 그리고 시온에게 협력하길 잘했다는 것.
아까 했던 말들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정말로 그의 목숨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가 그렇게 시온의 냉정함에 전율하고 있을 무렵.
시온은 등을 돌렸다.
“그냥 간다.”
어차피 시간이 이젠 정말로 모자라서 탈출할 때는 곤란해질 수도 있다. 들판이라면 어떻게든 뚫고 도망가겠지만, 이곳은 고립된 곳이니.
하지만 그것보다도 좀 더 큰 이득을 보고 싶어서였다.
‘이대로 몰리나 백국만 접수한다면 저 무기가 다 내 것이다.’
딱 보니 손을 보긴 봐야겠지만 새로운 확장된 장거리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빠르게 성벽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때 시온에게 걸려있던 카멜레온의 비술이 풀렸다.
드디어 시온의 모습이 드러났다. 펀즈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저도 합류하고 싶습니다.”
시온에게 의지하고 있었지만, 복수가 끝이 나고 이제는 불안함이 극도로 커지고 있었다.
“아니지. 너는 여기에 남는다.”
“여기에 있으면 밝혀져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아니지. 넌 이것을 잘 수행하면 이 몰리나 백국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이 마음을 내가 모를 거라곤 생각하지 말고.”
“물론, 맞는 말씀이시지만 제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버지의 형제에게 넘어갈 겁니다.”
“내가 어떤 출신인지 잊었는가? 내가 몰리나 백국을 빼앗고 그것을 너에게 다시 수여를 해주면 되는 문제다.”
여기에 유일한 문제는 시온이 과연 이 약속을 지킬지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그림같이 믿게 할 만큼 시온의 근본 없는 출신배경과 지금까지의 명성이 다시금 힘을 발휘했다.
“시도해보겠습니다.”
다시 의지가 샘솟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데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시온은 그 눈빛을 읽고는 그에게 반지 하나를 넘겼다.
“이것은?”
“나와 연락할 수 있는 마법 장비다. 소유자는 마리온. 그러니 내가 알려준 시간에 이쯤에서 있으면 짧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대마법에 가까운 고위 마법이었는데 거리가 상당히 짧고 유지해야 하는 마나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밖에는 대화하지 못했다.
여전히 까마귀의 발에다 전서를 매달아 써야 하는 이유다.
시온은 그에게 몇 가지 정보를 던져주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이어서 오래된 종탑이 정신없이 울렸다.
이 정도로 길게 울리는 거라면 딱 한 명의 죽음밖에는 없었다.
영주의 죽음!
또는 그에 준하는 자의 죽음.
시온이 저지른 것들은 다 그런 것이었고 시온은 빠르게 자리를 잡고 내려갔다.
그리고 바로 펀즈도 사라졌고 여기저기서 보병들이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이윽고 시온이 발각이 됐다.
“저깄다!!”
“누군가가 매달려 있다!”
카멜레온의 비술이 끝났으니 지극히 당연했다. 시온은 고슴도치가 되느니 그냥 바로 땅에 떨어졌다.
살짝 육체에 무리가 갔지만 이미 강건한 육체는 상당한 거리를 소화할 수 있는 수준.
이미 볼 일 다 봤으니 그렇게 유유히 빠져나갔다.
시온이 주둔지로 돌아왔을 무렵 그곳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시온의 수뇌부가 있었다.
제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지금 총공격을 대리로 명령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인 모양이었다.
“시온 공작 각하!!”
에슬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종탑이 너무 크게 여러 번 울려서 시온이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은연중 추측하고 있었다.
“작전은 나름 성공을 했다.”
“성공하셨다 하면...?”
“몰리나 백작과 그의 아들 두 명을 내가 죽였다.”
“!!!!!!!!!”
“!!!!!!!!!”
순간 수뇌부가 말을 놓았을 지경,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마리온이 너무 놀라서 혀를 물었을 정도였다.
“단순히 내부 형태만 보고 오신다고!”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그렇게 돼버렸다.”
시온의 무책임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몰리나 공성전의 결과가 눈에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만 명으로 난공불락의 성을!
백만의 군세로도 하지 못했던 그 결과가 지금 눈에 보이려는 상황.
그것보다 시온은 이들에게 전해줘야 할 것이 있었다. 품 안에서 핀게르오의 저서와 부록 몇 개를 꺼낸 것이다.
“이게 뭡니까?”
“핀게오르를 죽이고 얻었다.”
“살무사 핀게오르!!”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이름이 널리 알린 책략가였던 모양이었다. 전략과 전술에 관한 저서도 몇 권이고 낸 모양.
“이건 대체?”
“듣자하니 새로운 무기라고 하더군. 아마도 기존의 투석기보다 나은 형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내일부터는 그것이 배치될 거라고 하니까. 염두에 두고 배치를 해라.”
지금까지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강아지들 마냥 에슬린과 마리온이 정신없이 그것을 탐독했다.
그러면서도 마리온을 따로 불렀다.
“예. 각하. 보여주신 용맹은 필시 역사에...”
“아니, 아니. 나한테 줬던 것 있잖나.”
“아, 그 소리의 반지라 하면. 없어지셨군요.”
“아니다. 몰리나 백국의 서자가 나의 봉신이 되겠다고 했다. 일이 잘 풀린 건 그 서자 덕이지. 그리고 나머지 공성전의 내부까지 조율을 해주면 그 녀석을 몰리나 백국의 백작으로 삼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맞다. 살아남는다면 내일부터 안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줄 거다. 그러니 이 일의 준비를 잘해야 한다. 잘만 하면 우리가 공격 기회를 잡았을 때 성문을 열어서 달려들 수 있다.”
성문을 닫고 수성을 해야 하는 것이 공성전의 기본인데 성문이 열린 수성이라니, 이미 낙승이나 다름이 없었다.
‘몰리나 백국만 얻으면 여기를 중심으로 서남쪽의 모든 영지가 오픈되는 거나 다름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