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 함락
그리고 며칠이 더 흘렀다.
시온은 그동안 이질적인 요소들을 정리했다. 가장 중점적으로 한 거라면 신무기에 대한 핀게르오의 저서를 읽어본 것이다.
물론 여기엔 에슬린과 마리온이 참여했다. 특히 에슬린이 흥분을 한 모양이다.
에슬린의 말에 의하면 마탑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에 살무사 핀게르오가 자주 찾아오곤 했다고 했다.
저명한 자였던 거다.
물론 그의 죽음에 대해선 시온은 입을 다물었다.
‘맞아 죽었다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도 이 무기를 도입할 수 있겠나?”
“오르도, 코논, 벤츨을 다 불러봐야 합니다. 단순히 마법의 원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긴 설명이 이어졌다. 즉 단순히 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작 물어볼 녀석은 죽었으니.’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지?”
배치가 어느 정도 됐기에 멀리서 구경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분명히 무리였다. 어쨌든 이번 공성전은 그 안에 있던 펀즈만 살아 있으면 된다.
그리고 성벽을 순찰한다던 보고가 들어왔다.
“펀즈가 발각이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기야 시온이 손을 본 것도 많아서 그가 주목받기에는 어려운 일일 거였다.
워낙에 격렬하게 처리한 것이 많았던 거다.
다시 새벽.
서로의 소리를 잠시 열어주는 대마법이 펼쳐졌다. 해당 위치에 있어야 하는 펀즈가 응답할지가 문제의 여부였다.
기본적으로 이런 마법은 대마법에 속하고 마리온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기에 여러 번을 시키기가 곤란했다.
그러나 신호가 바로 잡혔다.
“성문은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이미 저와 뜻을 같이한 자들을 모집해서 그들과 함께 일을 할 계획입니다.”
말이야 그런데 시온은 그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펀즈야 자기가 직접 봤다지만 다른 자들은 본 것도 아니고 그자들이 만약에 성문을 열어 주는 척을 하고 오히려 공격하게 된다면?
대충 시간과 날짜를 정하고 나서 바로 끊겼다. 이 마법이 별로인 점은 이렇게 지속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저는 정공법이 오히려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에슬린이나 마리온이나 그냥 시온이 이런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시온도 고민이 될 수밖엔 없었다.
병력이라곤 만 명밖에 없는데 이걸 잃어버리면 차후에 이곳을 점령한다고 해도 다시 보병대를 수급받을 때까지 고립된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망설이기에는 이미 해낸 일이 많았다.
대충 들어가서 영주와 그의 아들 두 명을 제거한 것만 해도 이미 몰리나 백국의 능력은 확 떨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그 공백을 메꿔줄 만한 살무사 핀게르오도 사망했고 그러니 저 무기가 제대로 작동할 거라는 생각도 잘 들진 않았다.
여러 가지가 확실하진 않았지만 시온은 만 명으로 난공불락의 성문을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잡게 되었다.
ㆍㆍㆍ
시온의 과감한 결정에 다들 놀랐지만 시온이 명령하기 전까지만 의견을 전할 수 있을 뿐 막상 결정되면 거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해당 시간이 되자 에슬린 성문을 향해 보병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리온도 마법사들을 이끌고 성벽을 타격하기 위한 배치를 잡기 위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고.
누가 보면 달걀을 바위 치기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보병대의 선봉엔 시온이 앞서고 있었다.
-시온 공작님을 따른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는 비록 침착하면 건널 수 있다고 해도 큰 불안감과 공포감을 주기 마련이지만.
이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자가 선두에 서고 있으니 그야말로 멈추기 어려울 정도에, 오히려 사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를 정도다.
다만 선두에 있는 시온은 불안한 마음이 가득 한 상황...
‘더럽게 크고 견고하군. 여기를 정면에서 부숴야 한다고? 백만이 박아대도 소용이 없지.’
정 안되면 직접 파괴를 시도해봐도 될 것 같기는 했다.
마나도 많이 써야 하고 시온도 저렇게 철저하게 여러 겹으로 보호가 되어 있는 성문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적어도 시도라도 해볼 수는 있었다.
어쨌든 희한하게도 현재 애매한 느낌에 압박을 받는 건 시온 밖에는 없었다.
시도하는 와중에 보병대가 떼죽음 당할 것은 기정사실이니까.
그때 문이 덜덜거리고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공격이 퍼부어졌다.
특히 시온이 있는 쪽으로 이 미터 만한 마법이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보병대가 들고 가는 대형 마법 장비가 그것을 흡수했다.
이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시온의 마나가 관건이었다. 즉 시온의 마나가 여기를 방어할 수 있을 만한 마법에 한한 거대한 쉴드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쾅! 쾅! 쾅!
연신 쇳덩어리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이 이어졌지만 정작 타격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맙소사..
-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저런 대마법이 있었습니까?
-????
원래 여기에 향하는 마법은 한참을 준비해서 한 번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들로서도 허무하게 다 날려버린 것이니 할 말이 없었다. 공격횟수가 정해져 있는데 전부 다 막혀 버린 거였다.
-차라리 나눠서 공격했다면!
-그 암살자 녀석에게 살무사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인데...
별 얘기가 다 나오고 있었다. 시온은 당당하게 선두에 가고 있었고 이것이 이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거였다.
시온 공작에 공격을 집중하면 이 어려운 공성전을 쉽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그나마 정신을 차렸는지 시온과 먼 방향으로 공격을 나눠서 퍼붓기 시작했다.
‘음, 슬슬 열리지 않으면 위험하다만.’
문이 열리다 만 것.
그러나 시온의 생각만큼이나 안에서도 치열하게 싸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결국, 문이 완전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겨우 진정시키고 있던 몰리나 백국의 수뇌부들은 경악과 혼비백산에 빠졌다.
“모두 돌격해라!!”
시온이 선두에서 돌격 명령을 내리고 재빨리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안은 이미 치열한 교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온은 달려드는 두세 명을 처리하고는 펀즈를 발견했다. 펀즈는 어떤 기사에게 공격을 받고 있던 도중.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시온 니벨룽?!!”
그게 그의 유언이었다. 이미 즉사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저 멀리 날아가서 굴렀다.
“잘 해줬다.”
“예상 밖의 일이 많았던지라.”
“그런 것 같더군.”
시온은 안으로 물밀 듯 들어오는 보병대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ㆍㆍㆍ
원래 난공불락이라는 성을 믿고 수비에 임하던 자들인지라 막상 시온의 정예병이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살해당했다.
기세가 밀리자마자 줄줄이 항복했고 시온은 그렇게 몰리나 백국을 손에 넣었다.
난공불락의 성을 공성이 시작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열어 버린 것이다.
사실 당한 자들이나 한 자들이나 어떻게 돌아간 지에 대해서는 시온만 제대로 알고 있는 정도다.
이렇게 서남부 지역의 교두보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세 방향으로 군대를 나눴을 때 시온이 맡은 방향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천혜의 요새인 몰리나 백국이 이곳에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쉽사리 차지하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시온의 앞에 신무기를 만들었던 대장장이들과 마법사들이 끌려왔다.
“너희가 이 무기를 만들었나?”
“그...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선택지를 주겠다. 나는 기술이 있고 능력이 있는 자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그것이 적이라도 말이지. 그러니 이대로 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바깥으로 나가서 목이 잘리든지 아니면 나에게 중임이 돼서 수행하던지 결정해라.”
사실 시온은 한 명도 죽이고 싶지 않았고 이들에게 준 것은 윽박지르기 위한 정도였다.
아직 신무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을 쉽사리 잃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핀게르오가 없어진 마당에 시온이 준 기회를 마다할 자는 전혀 없었고...
“시온 공작님께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영원한 맹세를!”
거창한 맹세들이 줄줄이 나왔다. 시온은 만족스러운 얼굴이 됐다. 원래 한 명이라도 이상한 녀석이 나오게 되면 다른 자들도 버티는 녀석이 나오기 마련인데,
전원 시온이 원했던 의견을 내준 거였다.
휘이잉.
먹구름이 끼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시온은 이제 완전히 깨달았다.
‘이 공성전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시온의 마법사들보다 더 긴 장거리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는 무기에 이 정도의 시야라니.
시온도 이 깎아지른 듯한 성벽에 올라와 보고 나서야, 그런 광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정말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백만이라니...
‘나라면 이백만도 거뜬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입구도 앞부분에 정해져 있는 데다가 이렇게 유리할 줄이야.
괜히 이곳에 마법사들이 많았던 것이 아니었다.
시온은 바로 펀즈를 새로운 몰리나 백국의 백작으로 임명했다. 이제 백국이 아니고 일개 몰리나였다.
“잘하리라 믿는다.”
“니벨룽 가문에 영원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그래.”
정말로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시온의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는 철저히 시온을 따를 것으론 보였다.
복수를 이뤄줬을 뿐만 아니라 목숨을 구해줬고 야망까지 얻어줬으니.
“일단은 지금 내가 필요한 건 그 마법사들과 대장장이들인데. 따로 이곳을 보수할 만한 자는 내가 보내주지.”
“아닙니다.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더 큰 일에 쓰시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음?”
“제가 핀게르오의 서재를 뒤져서 더 얻은 것입니다.”
받고 나서 보니 일기장이었고 저번에 빠진 부분과 그 퍼즐을 맺어줄 것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시온은 바로 오르도, 코논을 호출했다.
몰리나 백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별일 없었다. 오히려 고렘들이 이어오던 가도 작업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고렘들은 이 가도 작업만이 아니라 서남부를 침공할 만한 가도를 다시 이어갔다.
그 지치지 않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감동케 했다.
그리고 시온이 부른 자들이 몰리나 거성으로 온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왔는지 별다른 수행원도 없고 옷도 거의 해져있을 정도.
“모두 와줘서 고맙군. 너희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것이 있다.”
시온은 이들에게 핀게르오의 모든 서적과 대장장이들 여기에 관여한 마법사들 그리고 새로운 신무기를 보여줬다.
“대..대체 어디 있습니까? 이 천재적인 작품을 만든 자는!!!”
코논이 거품을 물 정도로 여기에 감탄을 한 모양이었다.
“만들 수 있겠나?”
“시도해 볼 만 합니다.”
곧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시온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것들을 작동할 방법도 필요하다.”
시온이 몰리나 거성을 공격했을 때 신무기에 공격을 받진 않았다. 사실 이들도 배치만 해놨지 정말로 가동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그 점에 대해서 여러 번에 걸쳐서 시온이 심문 아닌 질문을 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 정도 조각들을 모아놨으면 코논이 어떻게든 하겠지.’
시온은 코논과 오르도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특히 오르도의 요즘 성장은 눈부실 정도였다.
이런 건축이나 설계 쪽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속성 마법이나 마리온처럼 다양한 환술과 보조 마법에 능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였다.
이어서 시온이 난공불락 거성의 입구 쪽을 정찰하듯이 가다가 눈꼬리가 올라갔다.
‘저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칠 단계의 대마법사에 오르고 나서 시온의 기감도 거기에 발맞춰서 발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도 놀랄 정도였다. 예전에도 기감이 좋긴 했지만, 그때의 가능성은 반도 되질 않았는데 요즘은 거의 백발백중이 됐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거기엔 몰리나 백국의 상징인 몰리나 게이트가 있었다.
이 게이트에서 바로 백만의 군대를 막았던 전력이 있는 거였다.
그러니 이곳의 무시무시한 지형과 그에 걸맞은 내구성을 가진 강철 게이트, 그리고 겹겹이 걸쳐 있는 각종 보조 마법들.
‘부수자.’
시온은 간단히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