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8화 (208/304)

강체술

“왜 이렇게 흔들려?”

“흐어어. 그게...죄송합니다.”

마리온은 배에 남고 시온, 에릭, 코르도바 이 셋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높이가 한, 천 미터 정도 된다. 당연히 떨어지면 곱게 죽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에슬린을 데려가야 하기에 시온이 매달아서 올라가고 있었다.

기사 훈련에는 이런 맨몸등반까지 들어간다. 여기에 마리온이 각종 보조 마법을 에릭과 코르도바에게 걸어 놔서 그나마 안전하긴 했다.

그나 마다.

투루룩.

돌이 떨어질 정도. 하지만 어지간히 재수 없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지금까지 복용한 육체는 한 단계 더 높은 곳을 향해 구성되고 있었다.

“히익.”

“죽지는 않는다. 떨어지면 정신 차리고 마법을 걸어 바닷물로 떨어지면 살 수 있다.”

시온이 농담이랍시고 던졌는데 에슬린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묶여 있는 끈을 살살 흔드니까 아래에서 바로 소리가 나온다.

“왕이시여! 저를 죽이시려거든 목을 잘라 주십시오. 이렇게는 못 죽습니다!!”

“안 죽는다니까.”

시온이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자 따라가고 있던 에릭과 코르도바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넋이 나갔다.

‘저게 사람 새끼야.’

‘정확히는, 왕이 될 사람은 아니었지. 강제로 왕이 된 거지.’

시온이 행했던 그 온갖 단독수행과 극단적인 결과들이 대번 이해될 정도.

시온이 보여줬던 다양한 측면의 행동 때문에 잊고 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다.

애초에 저런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고된 제국 기사 학교와 기사 수도회의 고된 수련 생활을 다 마친 전적이 있는 코르도바는 저 사람을 걱정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도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벌어진 거리.

“한 명을 더 달고 올라가도 저희가 쫓아갈 수가 없어 보이는군요. 코르도바 경.”

“그렇지. 나를 저기에다 묶어도 자네보다 빠를 것 같구먼.”

“하하하-”

어색한 웃음소리가 흘렀지만,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이 둘은 알았다.

“자, 어서 서두르게나. 시온 경께서는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시니. 늦으면 질책을 받겠지.”

물론.... 오해였다.

이들의 끊임없는 채찍질은 자기들끼리 만들어가고 있는 거였다. 시온이 가끔 던지는 것은 말 그대로 그 정도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적으로 판단되면 무자비한 모습이 있었고 포로로 잡은 자들을 지옥 끝까지 털어먹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자 밑에 따르는 부하들은 점점 그렇게 채찍질을 하는 기풍이 생기고 있던 거였다.

게다가 뒤에서 명령만 하고 안전한 곳에서 소리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가장 위험한 곳에서 움직이는 시온의 행동들은 밑바닥부터 존경심을 끌어오고 있었다.

막상 도착한 에슬린과 시온은 누가 보면 처지가 바뀐 것처럼 보인다. 

에슬린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다리를 후들거렸고, 시온은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어서 나머지 둘이 올라왔다.

“미....미친.”

“올라왔나.”

“죽어도 전장에서 죽었지 여기선 못 죽습니다.”

코르도바도 동의하는 모양.

어쨌든 두 명이 모두 도착을 했으니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어째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이럴 때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되기는 하는데, 애초에 상당히 거친 지형이었다.

“적어도 여기로 보병대는 투입할 수 없겠군요.”

“가능하지 않을까?”

“???”

“여기 와본 사람 없나? 코르도바.”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녀온 곳은 알블린인지라... 이런 경로로는 와보진 않았습니다...”

“그럼 뭐, 일단 가보자고.”

시온이 그렇게 말하고 영수를 소환했다. 서부 지역에 비밀리에 전해지는 비법인데 이번에 왕이 되는 김에 알폰소한테서 얻었다.

횟수에 제한이 있었고 소환하는 것은 사막 지역의 영수인데.

대략 험지란 험지는 잘 타고 다녔다. 다만 횟수가 끝나게 되면 그냥 야생 상태로 끝이 난다.

조련 시간만 오 년에서 십 년 정도라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면이 있었다.

근데 웃기게도 실제 용도는 과시용이었다. 시온은 당장 알폰소에게서 받아냈을 때 이런 식으로 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었다.

“군마하고는 좀 다른 느낌이군요. 근데 이것들은 최면에 걸려 있는 겁니까?”

“그렇지. 그러니 아주 조심히 다뤄. 최면이 풀리면 바로 야생으로 돌아가니까. 뛰어서 올 생각을 해야 할 거다.”

그렇게 빠르게 험지를 타던 시온의 눈에 무언가가 걸렸다.

“으음???”

“저건...”

“허어..”

갑작스럽게 등장한 곳은 고대의 유적지였다. 딱 봐도 한 번도 사람이 방문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에슬린, 확인해봐라.”

그리고 이 유적지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을 들여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시온이 봐도 그랬고, 에슬린도 확답을 했으니.

“예전에 유적 조수를 했을 때 한 번 들어가서 못 나온 자들의 보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느낌이 납니다.”

에슬린이 흘깃 시온을 보면서 말했다. 위험한 건 위험한 거였으니까. 원래 이런 고대의 유적은 기사단이 희생을 각오하고 들어와서 터는 곳이었다.

“느낌 팍 오는데 들어갑시다.”

“지금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많습니다. 왕이시여. 일단은 도시를 찾아야 합니다.”

에릭과 코르도바가 서로 동시에 말하고는 쳐다봤다.

하기야 자신은 괜찮다 해도 여기서 이 셋 중 하나라도 잃으면 여간 손해가 아니긴 했다.

그만큼 유적을 터는 것은 많은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빈 유적지를 발견하는 것도 운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위험하다는 것은 그만한 좋은 고대의 유산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시온은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라고 했더니 기어코 따라오는 녀석들. 잠깐 실랑이를 하다가 시온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설마 이런 곳에서 한 명이라도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들어가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재해 영수였다.

라베스크.

사자와 황소를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영수는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시온이 만났던 재해 영수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녀석이었다.

“라베스크라니! 우리를 먹이로 본 거냐??”

“이런 기사단을 데려와도 부족할 판에 고양이 입에 물고기를 대준 격입니다!!”

그리고 시온이 뛰어들었다.

급성장한 드래곤 브레이커에 첫 일격에 라베스크의 뿔이 깨지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일격에 두개골이 박살이 났다.

쿠웅-

삼 미터가 넘는 거구의 재해 영수가 너무 허망하게 죽은 거였다.

‘베히모스랑 약점이 비슷하군.’

시온은 풀썩 이는 먼지 속에서 드래곤 브레이커를 들어 올렸다. 함몰된 머리에서 그것이 슬슬 올라왔다.

‘좀 뻐근한데.’

요즘 시도 중인 방법으로 충전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다만 마나가 너무 많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일격을 날리기 위해 마나가 텅 비어버렸다.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해도 허허...”

“두 대???? 시온 경. 대체 급성장 마법을 그렇게 빨리 사용하시다니, 어떻게 하신 겁니까???”

에슬린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듯이 시온에게 물어봤다.

“미친 녀석. 최고잖아. 다시 없을 광경을 보다니.”

에릭은 대단한 광경을 본 것으로 희열에 찬 모양. 그런 와중에 시온은 뿔을 뽑고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재해 영수급 내단을 꺼내 집어넣고, 그러던 중 목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발견하게 된다.

‘이게 뭐지?’

그리고 거대한 열쇠를 찾아냈다. 너무나 오래돼서 녹이 슬긴 했지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녀석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에슬린, 여기 발견한 게 있다.”

재해 영수의 내단을 혼자서 작업할 정도로 능숙한 처리에 넋을 놓고 있던 에슬린이 빠르게 뛰어왔다.

“발견하셨다고요? 진짜 무언가 더 있었습니까?”

시온이 거대한 사슬을 들어다가 거기에 얽혀 있는 적당한 크기의 열쇠를 보여줬다.

“이건 분명히 저희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다. 고대의 뛰어난 마법사들은 자신의 물건을 이런 식으로 파수꾼에게 맡겼었다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탐험해볼까.’

시작부터 라베스크라니, 이 안으로 더 들어가면 라베스크 이상의 재해 영수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조금 전에 무리한 탓에 마나가 비었다는 점이다. 라베스크보다 더 강한 녀석이 있으면...

“살살 확인만 해볼까 하는데.”

“맞지. 나는 아직 검도 못 뽑아봤는데 더 들어가 보자고.”

에릭이야 아까부터 그랬으니 그랬고.

“절대, 그만 가셔야 합니다. 라베스크가 문지기라면 안은 더 위험하다는 것인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열쇠가 있으면 반드시 안에 뭐가 있다는 얘기인데 저도 가는 게 맞는다고 보고 있달까요...”

이제는 두 표.

열쇠를 보더니 에슬린은 생각이 완전히 바뀐 모양.

시온은 안쪽 깊숙이 신중하게 들어갔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우려하던 일은 전혀 없었다. 먼지만 가득할 뿐 어떤 영수도 없었다.

라베스크 혼자서 지키고 있던 거였다. 그리고 면밀하게 봐와도 딱히 함정이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 열쇠 구멍에 아까 얻었던 그것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안에는 무기술 같은 것이 있었다.

시온은 그것을 잡아 들었고 제목을 읽었다.

“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군요. 시온님. 그게 뭡니까?”

“강체술 인 것 같다.”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실전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던 거였다.

“다른 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알아볼 수도 없어 보입니다. 맞지 않습니까?”

닳고 닳은 에슬린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혹시 시온이라면 하는 생각에 시온에게 다시 한 번 되물어봤다.

“그런 것 같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한데 재질의 차이에 있었다. 어쨌든 코르도바의 재촉에 다시 밖으로 나왔고 시온은 강체술을 쭉쭉 읽었다.

‘육체에 마나를 씌우는 일이라.’

‘기사들한테서 혁명적일 것 같은데?’

“과연 알바 대국의 험지답군요. 설마 아직도 이런 급의 유적이 이런 곳에 남아 있을 줄이야.”

“영 저하고는 맞지 않는 곳입니다. 그나저나 설마 라베스크를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둘이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 다른 녀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김빠지게 말입니다. 맞지 않습니까. 시온 경.”

여러 잡담이 이어지고 빠르게 유적지를 벗어나 새로운 지대로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금의 약점을 없앨 방법을 찾은 것 같군.’

시온도 과도한 장기전은 무리였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하면서 항상 전투에 임하는 편이었다. 중간에 피로를 해소해야 할 것도 준비하는 편이고.

그 날 시온은 강체술을 익혔다. 익히는 것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하면서 발전시켜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몸 주위에 흐르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장비가 아닌 육체를 기반으로 마나를 넣을 수 있구나.’

알고 나니 간단한 편이었고 왜 지금까지는 이런 일을 생각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다.

“확실히 지금까지 라인을 지켜봐도 제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습니다. 들어온다고 해도 대군을 운용하는 이상 식량이 필요할 것인데, 보급할 방법이 없습니다.”

알바 대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딱 두 곳밖에는 없다.

그리고 낯선 자들을 발견한 건 동시였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 같다고 해서 믿지를 않았는데 거기 웬 잡놈들이냐. 용병 무리인가?”

“잘 됐습니다. 사냥감을 놓쳐서 심심하던 차에 여기서 즉결 처형을 해버리죠. 단장.”

완전무장한 자들이었다.

“잡놈?”

에릭이 대번 검을 뽑아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아까부터 피가 끓던 참인지 에릭은 단장이란 자에게 달려들었는데, 그 부하 두 명이 낄낄거리고 웃더니 시온을 향해 뛰었다.

“어? 제일 약한 사냥감부터 처리하는 게 내 방식이지!”

사실 이들이 착각할 만도 했다. 변장은 기본이니 대략 허름한 용병 정도의 무장으로 온 데다가 유적을 털고 나와서 먼지까지 쓴 상황이니.

게다가 시온을 알고 있는 게 아니면 약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녀석은 달려드는 자세로 머리에 메이스가 박혔다.

“살살하라고. 어???? 야! 뭐해!”

정작 답해줄 자는 그냥 바닥에 퍼져 버렸다. 그런 와중에 에릭과 남자가 검을 교환하는 철 소리가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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