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들어가기
“뭐 하는 놈이야!!!”
시온이 방향을 바꾸자 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 전만 해도 유희에 불과했건만 어느새 생사를 가늠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와...씨. 아니야. 운인가? 어딜 봐도 대단한 기사처럼 보이진 않는데...’
결과가 너무 한순간에 난 것이 문제라면 문제. 뭐라고 실력을 보기도 전에 끝이 난 것이다.
게다가 이어지는 일이 좀 크게 작용을 했다. 에릭과 정체불명의 단장이 내는 승부가 가까워지고 있던 것.
누가 봐도 단장이란 자가 에릭을 가지고 압박하고 있었다.
“용병이 이 정도의 검술이라고? 어디에서 검을 바쳤었나. 자유 기사가 맞나?”
그렇게 둘의 결투가 심화 되고 있을 때 시온이 바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남자는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용병 따위가 아니야 기....사의 정점이.’
퍽!
그렇게 두 번째 머리를 깨자 에릭과 싸우는 남자는 에릭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네 녀석. 용병이 아니군. 그런가 시온 니벨룽이 보낸 기사들이라 이건가.”
“.......”
“시온 니벨룽은 협정할 생각이 없는 거로군.”
‘흠...’
에릭 정도면 시온이 데리고 있는 기사 중 가장 강한 자였다. 그런 에릭을 일부러 생포하는 식으로 봐주고 있는 정도니 상당히 강하다고 봐야 했다.
그가 자연스럽게 시온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차피 시온을 내버려 두면 뒤를 공격당하게 될 건데,
시온의 실력상 바로 치명상이라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어차피 시온을 이기게 되면 여기를 바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름이 뭐지?”
“라버다. 보아하니 내가 듣자마자 알아 들을만한 이름이겠군.”
그러나 시온은 굳이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라버는 시온이 이름을 밝히지 않자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다라, 내가 그 정도의 명성이 없다는 거겠지? 어차피 너를 죽이고 다른 녀석들에게서 물어보면 되는 일이지.”
그의 검에 강한 마나가 흐르고 크게 진동했다. 그의 검인 트루 블레이드는 일반적인 명검이 아니었고 그것보다 더 급이 높은 화신 급의 무기였다.
소재도 작동 방식도 거의 알려졌지 않은 그런 무기.
위력 자체를 보조해주기에 일반 기사가 내려쳐도 마나만 보조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능히 자기보다 높은 격의 기사도 잡아낼 수 있었다.
명 무기 수준인 드래곤브레이커 보다는 확실히 급이 더 높았다.
어쨌든 대충 그 거대 군세를 이끌고 온 병력을 고드 부르스가 잃었다고 해도 알바 대국 자체의 정치가 까다로워서 애초에 참가도 하지 않은 삼분에 일 정도가 남아 있었다.
저력이 넘치는 자들이 많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그의 검이 시온을 향해 내리쳐졌다. 에릭이 이 정도 일격을 받았다면 바로 반 토막이 낫겠지만.
“????”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그 광경을 보던 자들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을 정도였다.
그런데 검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사술인가? 괴..”
그리고 그의 턱에 주먹이 꽂혔다. 거대한 마나와 마나가 서로 충돌하면 이런 흡착력이 발생하기 마련.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힘을 겨뤄야 했는데 그 찰나에 비술이 간파하고 주먹을 내보낸 것이었다.
그 어려움을 알고 있는 세 명과 심지어 라버 경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턱이 나가고 자세가 허물어지자 무기의 힘이 쫙 빠졌다. 그것을 놓칠세라 두개골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차, 오랜만에 강적이라 힘 조절이..’
네다섯 대를 구겨 넣은 후에야 시온이 이제 인지했을 정도다.
이미 망자가 되어 있었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수준, 시온은 자신에게 튄 피를 닦았다.
“마나 중립 상태를 저런 식으로 푼다고? 진짜로??”
에슬린은 라버 경의 죽음보다 그것이 신기한 모양.
“아무리 봐도 저 무기는, 절정의 기사들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인데....”
“저도 그 얘기를 들어보긴 했습니다. 아무렴 등장할 때마다 역사에 이름이 남고 했다죠. 지금 중요한 인물이 간 것 같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제길.”
구석에서 에릭이 일어났을 때 시온은 조금 전에 충돌했던 검을 들었다.
공명하는 마나.
이것 말고 다른 장비는 굳이 지금 챙길 정도로 욕심이 날 급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자는 침입한 용병들이 있다고 하기에 확인 차, 연습하는 느낌으로 왔을 거니까 말이다.
“뭐해. 다들 빨리 확인해봐. 가져갈 거 있는지 없는지.”
“직접 하시지 마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저 정도 인물이라면 혹시 다른 수법도 있을 겁니다. 정말로.”
코르도바가 빠르게 뛰어와 다른 자를 살펴봤다. 에슬린은 여전히 조금 전에 봤던 것을 떠올리며 어떻게 했는지 생각에 잠긴 듯하다.
“에슬린, 아무래도 우리의 정체를 끝까지 모른 것 같지 않나?”
“모른다고요? 맞아 보입니다. 마지막엔 눈치를 깐 것 같긴 하지만...”
한 마디로 라버 경이 들고 있던 무기 말고는 얻을 건 없었다. 하나라도 살렸으면 좋았으련만 아무래도 생각외로 강했기에 속전속결을 냈다.
그리고 까마귀 하나가 시온을 찾아왔다.
간단한 거리를 잠시 소리를 나눌 수 있는 마법을 걸만한 거리는 한참을 벗어났다.
그러니 까마귀를 통해 이렇게 전통적인 의견을 나누는 방법을 써야 했다.
[단순히 보러 가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제가 잘못 진의를 들었나 해서....]
물론, 잘못 얘기를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인지라.
원래라면 대충 거리를 보고 돌아갔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길이 험한 데다가 유적을 하나 털어서 예정보다 멀리 온 것이었다.
“에슬린. 마리온한테 답장 좀 보내거라.”
“안 그래도 보내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던 참이었습니다. 뭐라고 보낼까요?”
“음, 너희 중 지금 돌아가야 할 자가 있나?”
당연히 조금이라도 시온과 있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는 자들, 한 치의 아쉬움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보내. 이곳을 더 볼 예정이라고. 그러니 일단은 돌아가라고. 그곳에 있는 건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니까.”
아직 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아 마리온은 육지로 돌아가야 했다. 중간에 발각된다면 교환해야 할 포로가 생기니 골치 아파진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서 쉬라고 하면 무조건 안전했다. 기본적으로 은닉에 능한 마법사니까 말이다.
‘일단은 근처 영지에서 대기를 시키고 무슨 일이 있으면 까마귀를 보내서 빠질 각을 잡으면 되니까.’
“제가 마리온을 옛날부터 알고 있어서 드리는 말이지만 철두철미한 면이 있어서 중간에 잡히지는 않을 겁니다.”
“아.. 그러면 저희가 지금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코르도바가 대충 망자들을 묻은 흙을 덮고는 말했다.
“관문을 두 눈으로 봐야지. 방향이야, 이 녀석들이 온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올 것 같군.”
ㆍㆍㆍ
“라버 경이 이렇게 중대 회의를 앞두고 늦다니 정말 예외적인데.”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불안하다.”
여기저기에 횃불이 올라가 있고 정신없이 사방팔방에서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런 시.. 설마 저 길게 뭉개지는 소리는.”
“뭐야, 시체를 발견한 모양인데?”
그리고 그들은 곧 코르도바가 묻었던 현장에 올 수 있었다.
“라버 경인 것 같은데...”
“이런, 너 라버 경을 이런 식으로 머리를 부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나?”
“재해 영수라도 만난 것인가.”
“세 명 다 참상이 같거든? 메이스를 든 자다.”
메이스란 얘기를 듣자마자 이들은 한 명의 이름을 떠올렸다. 시온 니벨룽. 그러나 너무도 현실성이 없는 얘기였다.
“그건 이제 중요치 않아. 이제 그 새끼를 잡아 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어떤 새끼인진 몰라도 제기랄.”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힘이 아니란 말이야? 적어도 그 정도의 무구가 있다는 건데.”
복수에 불타오르면서도 이들은 두려움을 완전히 거둘 수 없었다.
적어도 상대는 트루 블레이드를 들고 간 라버를 압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ㆍㆍㆍ
‘신기한 방식이군.’
시온은 강체술을 다 같이 익히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세 명 모두. 대강은 가르쳐 주며 하고 있었다.
강체술의 기반은 마나라 오히려 가장 진전을 보이는 것은 에슬린이었다.
그나마 코르도바가 따라오고 에릭은 이제 에슬린에게 마나 모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시작점이야 대략 비슷하지만, 이들과 다른 경지로 올라선 것이 현재 시온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마나가 가공이 되어 새로운 느낌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강기는 육체의 부하를 다양하게 줄여줬다.
즉, 보자마자 이걸 익히면 그나마 있던 아쉬운 점이 보조 될 거라는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독수리 관문이 시온의 시야에 드러났다.
‘피의 게이트는 약한 수준이었군.’
몰리나 백국에 유일하게 대량의 보병이 통과해야 할 피의 게이트보다 규모 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하기야 여기는 단순히 방어 목적으로 쓰이는 것뿐만 아니라 알바 국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의 중추였다.
어떤 무역이든 상거래든 사절이든 육로로 잡아야 한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
그러니 문도 생각보다 널찍하고 그만큼 많은 보병과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첨탑도 많았다. 애초에 여기서 계속 구경하고 있다간 걸릴 정도.
“대가로의 넓이, 첨탑의 개수, 관문의 견고함, 화살을 쉽게 쏠 수 있는 수많은 공간 틀. 정면으로 들어가면 피해가 예상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즉, 저희가 지금 침공을 하면 우리 보병대는 분명히 개판이 납니다.”
“흠. 코르도바 경이 제대로 본 것 같습니다. 과연 명성이 높다 했더니 이 정도로 까다로운 지형일 줄은.”
“들려왔던 그대로 까다롭습니다. 차라리 결투 몇 번을 더 해서 유리하게 테이블을 잡고 협정을 하는 게?”
어지간하면 돌격하기에 좋다고 할 에릭도 그렇게 말할 정도. 세 명의 의견이 오랜만에 통일이 되었다.
대략 확인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기는...
“여기부터는 엄중하니 너희 셋은 여기에서 기다리고 내가 내부에 들어갔다 오겠다.”
잠깐의 정적이 있었다.
“아. 그 용맹한 판단. 나도 거기에 동참이 되겠습니까?”
“넌 안돼. 따라오려면 강체술에 성취가 있었어야지.”
“아하. 몰리나처럼....하시려고 합니까.”
“지금, 몰리나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라버 경을 봐도 명성보다 강한 자들이 알바 대국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흘리는 시간을 잘 보셔야.”
“알겠다. 어쨌든 너희는 여기에 있어라. 나는 보고 올 테니까 말이야.”
물론 간단한 거리이니 급하게 얘기할 수 있는 소리의 반지를 에슬린에게 전달을 해놨다.
영 급하면 명령할 거를 얘기할 수가 있었다.
그날 밤 시온이 어느덧 관문 근처에 도달했다. 하나밖에 없는 대가도인지라 문제는 있었다.
당연히 항상 들어가는 자와 나오는 자들로 밀린다는 거였다.
“용병이요? 처음 보는 형씨군. 보통 용병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아무래도 서부 전선에서 고용됐던 용병인가 보구먼.”
시온을 보고 늙은 행상인 하나가 주절주절 얘기했다.
들어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어차피 나오는 거야 한둘 죽이고 그냥 빠져나오면 되는 거니까.
하나는 몰리나 때처럼 성벽을 타고 침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킬번이 준 위장 신분으로 관문에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마리온의 마법이 없으니 이번엔 위장 신분으로 들어가야겠군.’
몰리나 때보다 주위에 도는 보병의 수가 많았다. 그러니 그냥 이 방식도 나쁘진 않았다.
‘어차피 내부만 좀 보고 올 거니까.’
“그렇습니다. 좀 아시는 분이시군요?”
“나도 한때는 용병이었지. 그 단련된 신체, 아무리 모른 척해도 사람 눈빛은 못 속여. 사람 한둘 죽여본 게 아니구먼. 어느 전투에 있었나? 지금 세간에 시온 니벨룽에 대한 얘기밖에 없어. 그냥 자네가 운이 없었던 거지. 아니, 운이 있었다고 봐야지. 혼자라도 살아남긴 했으니까.”
한둘...이 아니긴 했다. 특히 서부 전선에서 학살한 수만 해도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니.
“일강 전투입니다.”
“일강? 엄청난 소문이 있던데 그곳이 피로 변했다는...”
“당연히 거짓말 아니겠습니까.”
사실대로 말해서 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