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문에서의 전투
“그러면 시온 니벨룽을 봤겠구먼? 부러운 일이야. 그런 사람을 전장에서 볼 수 있다면, 나이가 좀만 덜 먹었어도.”
시온의 인기는 날로 커지고 있었다. 실제로 부하들이 몇 번이고 보고했지만, 믿지는 않았다.
원래 높은 자리에 가면 아부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걸려들었다.
“아니, 뭐야. 아는 분이야?”
어린 여자 하나가 나왔다. 호기심 많은 눈동자.
시온도 한때는 이랬었다. 한 번은 사냥감을 팔기 위해서 움직였을 때, 그리고 용병으로 활동했을 때.
이들은 전형적인 작은 규모의 보따리상 정도라고 봐야 했다. 보아하니 손녀 정도로 보였고.
“이것아. 나올 때는 허락을 맡고 나왔어야지.”
“아~ 답답해 죽겠다고. 재밌게 해줘야 안 나오지. 근데 되게 친숙해 보이는데 부탁할 거야?”
“끙..”
현대처럼 먼저 온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건 신분이 되어야 하고, 아니면 규모가 있던지 특수한 신분이어야 한다.
혀를 내밀고 여자가 흥미로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잘 됐군. 어차피 이들에게 묻어가면 더 자연스러울 테니.’
“뭐, 상관없습니다. 동행하도록 하죠.”
“충분히 돈을 받을 만한 무력이 있어 보이는구먼. 그러니 자네는 용병이면서 명예로워 보이는군. 그런 용병은 드물지. 자유 기사인가?”
“아니요. 용병이 맞습니다.”
시온의 합류는 주위에 이목을 끌었다. 적어도 이 둘보단 인원을 갖춘 부유한 자들도 보였다.
“아니 근데, 영감. 너무 운이 좋은 거 아니야? 딱 봐도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금패급 용병이야. 진작에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볼 걸 그랬나.”
말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건장한 금패급 용병이 시온의 합류를 보면서 한소리 했다.
“에? 진짜요?”
‘금패일 리가 없지. 킬번이 따로 해준 건데.’
확인은 해보지 않았지만, 최소 그것보단 두 단계는 높은 패일 거였다.
그 얘기를 주워들었는지 뚱뚱한 상인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금패 하나 더 들어오면 내가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내가 금화를 챙겨 줄 터이니 짧은 계약을 맺어 보는 게?”
대충 독수리 관문을 넘어가기 위한 계약조건.
보통 용병 계약에 목숨이 요소로 들어가기 마련인데 단순히 관문을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돈을 쳐주겠다니.
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게 훨씬 안전하니까.
“이거 참, 이렇게 되면 내가 미안하지. 금화를 내줄 순 없고 은화라도 좀 주겠네.”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말하려고 했습니다.”
“와! 뭔가 기사다운 용병이네.”
“?”
자꾸 촐싹거리는 게 붙은 느낌이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됐다. 시온은 건성건성 대답했다. 아주 관심이 샘솟는 모양...
“다음! 지금은 여전히 시온 공작과 여전히 전시상태다! 어서 움직여라!”
사람을 집어넣는 자들도 아주 바쁜 모양.
“시온 왕이 사절을 거절한다는 얘기가 있더라니, 그게 어느 정도 맞는 소문인가 보네.”
“왕? 공작 아닌가?”
“특이한 경우지. 바르셀 왕이 죽고 서부의 제후들이 대패한 후 항복했다 하더구먼.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보통은 몸값을 받겠지만, 아마도 추대가 된 모양이야.”
“허. 피 끓는 소리군. 그 한미한 가문의 젊은 사내가 용병으로 떠돌았다가 이젠 왕이라고? 세상 모를 일이야.”
‘정확히 영지랑 작위랑 추대까지 다 받았다만..’
시온은 상인과 용병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다.
“시온 님을 발치 끝에서라도 한 번만 봐서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다...”
칸나가 곁에서 같이 듣고는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거 끝이 없군.’
시온은 따로 수를 써야 할 필요를 느꼈다. 여기서 아까 강조됐던 건 전시라는 단어.
즉, 용병은 이런 상황에서 증명만 하면 그냥 통과할 수 있는 법이었다.
“어르신. 내가 가서 증명할 터이니. 따라오십시오.”
“칸나야. 거기서 구시렁대지 말고 얼른 붙어라.”
그리고 시온이 통제하고 있던 마나를 술술 풀었다. 즉 그것을 알자마자 바다가 갈라지듯 사람이 퍼졌다.
“누구지?”
“어서 비켜. 고강한 자야.”
“일단 비키라고. 저런 자라면 분명히 유명한 자다. 왜 복장이 저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들끼리 아무리 아우성 거린 다고 해도 이런 눈치는 귀신 같다. 이런 자가 보통 신분일 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특권이었다. 기사든 용병이든 이런 자와 계약을 맺을 수만 있다면 금이 아깝지 않은 게 지금 상황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고 이곳을 관리하는 보병과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도 저자에게서?”
“난 어떤 느낌인지 안다. 저자는... 분명히 우리가 모를 뿐이지. 제후와 계약을 맺은 자다.”
“이럴 때 융통성을 발휘해야지. 기사여도 명성이 자자한 자일 건데.”
기사들이 간단한 대화를 하다가 시온에게로 왔다.
“예..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바로 저자세가 된다. 물론 시온은 어느 정도 실랑이를 예상했지만.
바로 킬번이 준 위장신분을 보내자 당황한다.
“황금 용병단의 저승 추적자.... 우르메.”
물론 시온도 놀랄 정도다. 그냥 위장 정도가 아니라 현재 용병 중 정점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우르메의 신분이었던 거다.
황금 용병단만 해도 제국과 동방을 왔다 갔다 하는 손으로 꼽히는 곳인데 이런 곳에 있다니 놀랄 수밖에.
순식간에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야.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귀가 먹었냐. 황금 용병단의 우르메란다. 와 실물이 저렇게 생겼었구나. 전쟁이 재개될 모양인데? 우르메가 여기에 고용되다니.”
이어서 다른 기사가 빠르게 뛰어왔다.
“뭐 하나! 그 얼빠진 행동은! 알아서 움직여야지!”
“그게.. 너무 놀라서. 죄송합니다. 우르메 님.”
‘흠...’
시온은 사실 우르메가 정확히 누군지는 몰랐다. 황금 용병단 정도만 알고 있었다.
황금 용병단이야 원래 명성이 자자했으니까. 그냥 거기에 있는 아무개의 위장을 하나 얻어온 줄 알았다.
‘빚으로 받아냈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시온은 킬번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껴야 되냐고요? 마음대로 쓰십시오. 우르메 놈. 저한테 단단히 빚을 졌으니까 말입니다. 끌끌. 그 신분으로 깽판이랑 깽판은 다 치셔도 됩니다. 문제 될 거 같으면 이름, 신분 다 바꿀 겁니다.”
‘근데 이 정도 녀석이면 돈이 상당히 많을 건데? 도대체 우르메가 킬번한테 얼마를 빚진 거지?’
황금 용병단 보수가 상당할 것인데, 시온도 살짝 궁금해지려는 마당에.
“콜록. 콜록. 황금 용병단의 우르메...? 정말...요?”
“......”
“설마 우르메 님이 혼자서 올 줄은... 독특하시다고는 듣긴 했지만,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라.”
“한 명 더 일행이 있다.”
다른 기사가 와서 그에게 속삭였다.
“야이, 멍청아. 뒤에 있는 여자애도, 저 늙은이도 다 위장 신분이잖아. 이해하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이 신분 패는 진짜니까.”
그리고 멈춰 있던 작은 수레가 움직였다.
강압적이던 자들은 아예 보병이 아니라 기사들이 나와서 길을 만들어줄 정도.
“으.. 이 녀석들아 베이기 싫으면 모두 비켜라!”
이 정도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리고 당황해하는 영감에게는 공손했다.
‘이걸 생각하고 온 건 아닌데.’
절차적으로는 한 번 검으로 실력 증명을 해서 전쟁에 계약을 맺을 만한 용병이란 걸 입증한 후 들어가려고 했던 게 맞았다.
그런데 이렇게 쓱 풀리게 된 것.
그 갑갑했던 상황에서 벗어나서 두 번째 내성으로 들어갔다. 여기에도 사람은 많았다.
바깥보다야 조금 나았지만, 그리고 여기는 보병이나 기사가 더 많았다. 사실 여기를 확인하고 싶어서 이 짓을 한 것이다.
‘거대하군. 정상적으로는 피해가 심각하겠군.’
정말로 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규모에 아예 상당한 정예가 주둔해 있었다.
‘어차피 여기만 막아내면 다른 곳에선 들어오기 힘드니까. 이렇게 집중적으로 일을 만들어 놨군.’
“그냥 용병이 아니고, 엄청난 용병이었어! 최고야.”
“칸나야. 제발 목소리를 낮춰..”
칸나의 조잘거림이 멈추질 않는 마당. 영감이 시온의 눈치를 보며 제지했다.
그리고 시온의 눈에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엄청난 높이의 기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것도.
‘뭔가 있군.’
정확히는 올라가 봐야 알겠지만 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 끝에 뭔가 있나?”
시온이 앞에 있는 기사에게 말하자 그가 빠르게 답했다.
“난감합니다. 지금 아무래도 여기에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아니. 저 위의 것 말이야.”
“아, 저건. 독수리 관문에서 자랑하는 오벨리스크입니다.”
“오벨리스크?”
“예. 위에 유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는 신성한 것이지요. 적어도 오백 년은 넘었을 겁니다.”
“오백 년?”
“원래는 더 오래된 것이 있었습니다만, 한번 벼락에 맞은 적이 있어서, 소실이 될 때마다 수도에서 대체할 만한 유물을 다시 올려놓습니다.”
‘챙길까.’
그렇게 기사가 확인해보겠다며 어디로 갔다.
“여기에 그 녀석이 들어간 것 같다고? 그리고 여기를 다 죽이자고? 그러진 말자고.”
“지금 악명을 쓰는 게 중요합니까. 오히려 여기서 머뭇거리는 게 잘못된 겁니다. 라버 경이 죽었는데, 그의 무기도 없어졌습니다.”
“확실히 트루 블레이드의 회수는 중요하지....”
“전시라 저희 목숨이 붙어 있는 거지 만약에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난리가 납니다.”
“그러면 존나 빨리해버리자.”
알바 대국의 기사단이 빠르게 도착하고 바로 관문을 담당하는 기사에게 전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 라버 님이 사망했고 여기를 정리해서 그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대부분은 그냥 관련이 없습니다만..”
“운이지. 그리고 녀석이 여기에 들어온 것이 확실해진 이상. 이제 관련이 있는 거고.”
둘의 대화는 얼마 더 이어지지 못했다. 바로 바깥에서 죽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체술을 되새기고 있던 시온은 진전을 맛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마나 효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은데 그건 나니까 그런 거고. 대부분 기사한테는 혁명적인 비법이군..’
시온이 그렇게 평가하면서도 시온 자신은 벌써 강체술의 경지가 세 개가 높아져 있었다.
마나의 이해도가 워낙 높은 탓에 틈틈이 연습한 것만으로도 높아졌다.
여기에 문제는 시온이 가지고 있는 행동각인비술과 마찰이 있다는 점인데, 시간이 나면 해결은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시온은 바로 알아챘다.
‘습격했군. 나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자들이?’
시온은 바로 선택을 해야 했다. 정보는 별로 없지만 지금 선제공격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다릴 것인지.
그러나 답은 곧 나왔다. 바로 자리에서 이탈한 시온은 관문 위의 성벽으로 올라갔다.
아래를 보자 난리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냐! 라버 경을 살해한 녀석. 어서 나와라!!!”
‘나 맞는구나.’
그 소리가 울리는 사이에 벌써 오십여 명이 죽었다. 꼴을 보아하니 이대로 다 죽일 생각인 모양.
그러고 있는데 옆에서 날 선 목소리가 났다.
“지금 명령 못 들었나? 아니, 넌 누구냐.”
“저기 저 찾는 사람이 나야.”
“이런 빌어먹을. 설마 여기에 있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올라온 거지?”
검을 뽑으면서 말하던 기사가 시온을 향해 뛰어왔다.
‘강체술이 적용된 전투는 처음이겠군.’
그리고 시온이 그의 검 손잡이를 같이 잡았다. 일종의 힘겨루기.
당연히 시온을 이길 리가 없었다.
“달..달려드는 게 아닌데...”
이 간단한 수만으로도 실력의 격차를 느낀 기사가 그렇게 말했다. 달려오는 자세로 상대의 검을 붙잡다니,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힘 싸움밖에는 없는데 손가락이 큰 소리를 내곤 부러져 버렸다.
시온은 그의 목을 잡아다가 바깥에 던졌다. 긴소리와 함께 중무장한 기사 하나가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전장 한복판이라면 저 갑옷은 훌륭한 장비이지만 이런 높이에서는 오히려 독.
‘작전을 바꿔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