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파괴
“저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여기서 죽었어.”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내 용병 경력을 걸고 보자면 용병 따위가 아니야. 좀 더... 위대한....”
“아, 씨발. 솔직히 말하자고. 난 지금 뒤질뻔했어. 알바 국에 현상금이 걸리고 추적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고맙다고 말이야.”
“아, 어떻게 고마워해야지?”
상인들부터 걸걸한 용병에 간간이 있는 여자까지. 목숨을 받은 나머지 다들 흥분해 있다.
아무리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상대의 몸집이 크면 악에 대해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알바 대국이 이런 식으로 입을 막은 것도 영 없는 일은 아니었다. 다른 지역의 기사들과 달리 추적에 능해서 한 번 표적이 되고 현상금이 붙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런 두려움에 대한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은 시온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용병을 결집할 수 있을 정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으는데?”
딱히 이름을 공개한 것이 아닌데도 무명의 사내에게 전투집단이 모인다는 건 큰 의미였다.
시온이 바로 이들의 대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한 번 물어봐도 되긴 하겠어.”
코르도바도 순간 감이 안 올 지경이다. 이들을 이용해서 관문을 제 병력이 도달할 때까지 지킬 수 있을까?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위대하신 분의 이름을!”
시온은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원래 일행도 보였다.
“허어. 저렇게 대단한 자였다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겠구나.”
“처음엔 어디로 갔나 했는데. 중간엔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너무 빨라서!”
하기야 이 정도 난리를 쳤으면 이제 위장 신분은 좀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이름을 밝히면 적은 더 혼란스러워지기 마련.
“나는 시온이다.”
“!!!!!!!!!!!!!!!!!!!!!!!!!”
“그러고 보니 모습에 대한 소문이나 메이스를 쓰는 것이나 비슷하지 않아??”
“기사의 명성이란 명성은 다 가지고 있는데, 정말 여기에 한 개가 더 붙어야 해야겠어요.”
“시온 경이라고? 왕에게 모두 무릎을 꿇어!”
그러다 보니 물결이 이어질 정도. 어쨌든 그런 시온에게 코르도바와 에슬린이 다가왔다.
“대관문, 도주, 그리고 용병들의 결합. 이거라면 작전을 구상해 볼까요?”
“머리를 굴리고 마리온이 제때 병력만 대준다면 완전히 무리수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만.”
코르도바와 에슬린이 차례차례 의견을 구했다. 하기야 에릭을 저들의 대장으로 놓은 다음 집중적으로 방어를, 그러고 나면.
‘나머진 내 몫이지.’
그렇긴 한데 이쪽으로 완전히 병력을 데리고 오는 것이 좀 그러긴 했다.
여전히 마탑과 라레테저닛,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인 황제가 시온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끊었다는 것,
‘차라리.’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이들을 모두 내 땅으로 옮기고 일을 줘라. 물론, 가기 전에 이 관문을 최대한 부시긴 해야겠지.”
애매한 면이 애초에 많았다. 그러니 딱히 불같이 반대 의견을 놓는 자는 없었다.
“제가 가지고 대마법보다는 시온 님의 대마법이 더 좋지 않습니까?”
“입구를 작살을 내려면 같이 하는 것이 좋긴 하지. 그리고 코르도바. 네가 저들을 규합하고 하나로 만들 수 있겠나?”
“명령하셨는데 어떤 상황이라도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저의 서약. 아, 그런데 이들 중엔 상인도 많고 비전투 인원도 많아서.”
“용병으로 무조건 쓰겠다는 건 아니다. 나머지는 정착할 수 있게 다리를 놔주고. 그럴 만한 부관이 많이 있지 않나?”
ㆍㆍㆍ
“대체 시온 왕은 나와 언제 대화를 해준단 말인가.”
알바 대국의 대왕인 이반은 탄식을 거듭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이렇게 끌던 상황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젠 금화와 영토는 충분하다는 거겠죠.”
“그러니까 내 아들을 처형하고 이대로 나의 영토를 공격할 것 같다는 느낌이란 말이냐?”
“이대로 침공할 수도 있고 끌 수도 있고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고 재단할 수 없는 자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어린 재상은 이제 나이가 스물 후반밖에는 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원정에서 원래의 재상이었던 파샤는 수장된 상황이었다.
강이 그의 무덤이 된 것.
“대왕. 대왕님. 독수리 관문에서 온 전언입니다.”
“관문에 병력 증강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나라의 위기이니 강제 징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소. 지금도 훈련 중이오.”
“아닙니다!! 재상님. 대왕님. 독수리 관문이 함락되었습니다!!”
“아니?? 거기엔 라버 경과 그의 기사들도 있고 정예만 추려서 놓지를 않았나?”
“그러긴 합니다. 근데 라버 경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됐고 삼인 방도 사망. 휘하 기사도 상당히 죽었다고 합니다.”
“독수리 관문이 공격당할 정도의 군세가 들어오고 있었다면 내 정보망을 통과했을 리가 없는데.”
“메이스를 든 사내라고...”
“시온 니벨룽??”
“뭣?? 왕이 직접 돌파했단 말을 믿으란 말이냐?”
“아마도... 그래 보입니다.”
충격에 충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단신으로 돌파했다는 것이라 의문을 가지기에도 모호한 상황.
이것을 침공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ㆍㆍㆍ
‘내부를 보려다가 일단은 함락한 게 됐군.’
지금까지 돌파된 전력이 거의 없던 곳인 만큼 사실 지레 겁먹고 내부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
워낙에 중간에 물자를 받지 않으면 식량이 떨어지거나 쉽사리 몬스터나 영수에게 공격받는 지형 때문이었다.
만약에 침공을 받을 것 같으면 중간에 식량 물자를 대주는 곳을 빼게 되면 지형 자체가 방해하는 구조다.
그러니 독수리 관문의 명성엔 거기로 가는 가도의 명성이 반이었다.
“이 은혜를 절대로 갚고 싶습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지만 말이지요. 허허.”
그리고 원래의 그 위장 일행.
“되게 놀라웠어요. 어젯밤부터 한숨도 못 잤어요.”
“그래, 그래.”
시온은 칸나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는 칸나에게서 마법사의 재능을 봤기 때문이다.
“부르셔서 왔습니다. 어라? 단독 독대인 줄 알았는데 손님이 먼저 와 있군요.”
그리고 에슬린이 문을 열고 등장했다.
“해둘 말이 있어서 여기 얘의 마법사 재능을 확인해봐라.”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마법사라고요. 이유가 있으십니까?”
“칸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본 적이 있나?”
“호신 정도라면 삼 년 정도 가르쳤습니다. 나머진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칸나가 마법을 배워 나에게 서약을 해서 은혜를 갚으면 되겠군.”
이어서 에슬린이 확인을 하고 눈이 커졌다.
“이 여자애는 분명히 마탑에서도 무조건 노릴 만한 인재입니다.”
“그러면 마리온한테 전서 하나 넣어둬라.”
“지원만 괜찮다면 사실상 고위 마법사까지는 그냥 갈 것 같습니다. 하여튼 알겠습니다. 마리온한테 가기 전에 조금 가르쳐보고 싶습니다.”
“그래라.”
그렇게 세 명을 보내고 나서 시온은 이제 원래 하던 일로 돌아왔다. 강체술을 보조할 수 있는 유물을 얻은 탓이다.
정확히는 부록같이 달린 정도라 여러 번 시도는 해봐야겠지만.
시온은 이번에 강체술의 위력을 확인한 것 같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이것만 경지를 잘 높여놔도 잘만 하면 군세에 단독으로 돌진해도 될 정도였다.
원래 이런 짓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의 마나의 고갈 문제도 있지만, 모든 일은 육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피로해져 버리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
이제 그 문제가 해결될 뿐만 아니라,
‘장비의 제약도 벗어나게 되는군.’
일정 경지에 올라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각종 검과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서를 확인한 마리온과 나머지 귀족들은 시온의 행동이 다시금 큰 도약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는. 대체 뭘 보고 계시는 거지.”
마리온은 몇 가지 주문에 대해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정말 이런 경우는 또 처음입니다.”
“아무리 경험을 역사를 되새겨도 배울 수가 없는 분이시니. 어쨌든 지금 배를 보내 사람을 받아내야 합니다.”
이들은 지치지 않고 시온의 숨은 뜻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며 여러 물자 배치와 보병의 배치에 거침없이 날을 샜다.
그리고 관문은 다시 비어갔다. 이들을 보내고 나서도 시온은 강체술이 가지고 있는 비술과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흠. 이렇게 되면. 저번보다 세 배는 더 오래 운용할 수 있겠군.”
이 정도면 기사단과 일대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젠 대마법을 섞어서 써도 마음이 놓일 정도다.
이어서 관문을 부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원래 이런 관문일수록 한 번 부쉈다 하면 만드는데 되게 오래 걸린다.
특히 이런 험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다시 이곳을 뺏긴다 하더라도 전략적인 장소는 철저하게 부숴놓으면 제 역할을 할 수가 없었다.
즉, 시온의 보병 군세가 받아야 할 상처가 적게 들어온다는 뜻.
“대체 코논 님은 그 무기를 뭐로 만드셨기에...”
에슬린이 시온의 마나를 보조해주면서 철저하게 급성장을 먹인 드래곤 브레이커를 보면서 감탄을 했다.
거인들이 들고 다닌다는 쇳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물론 이 특수한 마법은 시온이 이상한 아공간에서 챙긴 부속 덩어리 덕이었다.
나중에 코논에게 물어봤지만 코논도 우연히 작업 중에 생긴 효과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재해 영수를 사냥할 때보다 더 무지막지해졌다. 이렇게 한 급의 더 큰 크기를 하기 위해서는 마나도 마나지만 시간이 배로 들었다.
“신화서나 나오는 거인의 무기구나. 이러면 아무리 오랫동안 다듬어진 이곳이라고 해도. 휘두를 수만 있다면.”
에슬린은 진심으로 이런 순간을 자신만 봐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코르도바와 에릭이 사람들의 무리를 이끌고 빠졌고 그동안에 시온과 이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
특히 에릭이 이 모습을 봤다면 평생 잠을 못 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씨발.. 그런데 정말로 휘두를 순 있어??’
이 모든 영광스러운 순간은 결국 몇 번이라도 휘두를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일단 단순히 육체의 힘으로 드는 것이라 하면 그건 불가능해졌다.
각종 근력을 보조해주는 장비, 단약을 다 먹어도 드는 게 고작일 거였다. 이건 아무리 폭넓게 보고 있는 그라고 할지라도 일정 기준을 확실히 넘어섰다.
“가능합니까?!! 저는 일단 마나가, 바로 단약을 좀 먹겠습니다!”
“됐다. 에슬린.”
“어떤 요구를 더?”
“아니. 이번에 배운 강체술의 경지 중 하나다. 한 번 봐두라고.”
이론적으론 가능했지만, 일단은 시온도 경험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강체술 자체도 마나에 의지하고 있고 배분을 생각하지 않고 이후의 위협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이런 무식한 짓도 할 수 있다는 점.
시온의 방대한 마나가 강체술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대체 몇 개의 마나의 기원이 이런 속도로???”
에슬린이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시온의 몸에서 각종 마나의 기류들이 무섭게 넘실거렸다.
그리고 시온이 에슬린의 마나를 다 먹고 거인의 철봉이 된 드래곤 브레이커를 휘둘렀다.
작은 인간이 이만한 짓을 한다는 것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일이다. 누가 잡혀도 가냘픈 뼈는 그대로 으스러질 터였다.
쿠웅....!
흡사 지진이라도 난 듯 산사태가 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원래는 대마법을 섞어서 하려고 했는데 시온은 이번에 문제를 해결한 강체술로 그냥 해결을 보기로 한 것.
그런데 그게 맞았다.
대관문의 성벽이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균열이 쩍쩍 거미줄처럼 갈라지다가 이윽고 무서울 정도로 형체가 퍼져나갔다.
‘시....신이여. 이자의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은 내 생애 최대의 행운이다...’
에슬린은 오히려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좀 거리를 한참 벌리지 않으면 저 휘둘러지는 사거리에 걸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