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3화 (213/304)

왕 납치 계획

이번의 일은 일단은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준비였다. 

이곳에 보병을, 군세를 진입시킬지 아닐지는 아직은 모르겠지만,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눈이 많지. 여기를 공략할지 하지 않을지도..’

마음껏 자유로운 상황이었다면 물론, 바로 모든 권력을 강제해서 이곳을 밀어내 대국과의 보복 전쟁을 준비했을 것이다.

‘눈치가 생명이지. 지금 얻었다고 좋아했다가는 다 내놔야 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도 이곳에선 비일비재했다. 

흔히 말하는 다구리란 것인데 덩치가 커진다고 세대를 거쳐서 폼 좀 잡게 됐다고 그 습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살짝, 그렇긴 한데.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는 것도 있고.”

어지간하면 끄떡없을 강체술의 세 번째 경지인데 시온이 하는 짓은 무지막지한 짓거리였다.

누가 봤으면 큰 지진이라도 있는 줄 알 거였다. 자세히 보면 신화 속의 거인을 바로 떠올릴 거지만 말이다.

어쨌든 시온은 에슬린의 말도 있고 이제야 그 의견을 받아들여 피라미드처럼 무너진 돌 위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이 정도라면 여기서 회전을 벌여도 할만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체술에 진전은 있나?”

‘좃됐다...’

에슬린은 시온의 질문에 바짝 긴장했다. 시온이 오는 길에 가르쳐주고 이렇게 중간중간 물어보는 것은 나름 기대를 하고 있다는 뜻.

이 보이지 않는 기대를 착각하고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바짝 긴장하는 것이었다.

괜히 천재란 별명을 달고 있는 게 아닌 만큼 한때는 마탑의 모든 선생의 머리를 아프게 한 그로서는 예외적인 상태.

‘한 척을 해야 하나?’

지금까지 이런 유의 기만을 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최초의 행위가 되는 셈.

예전에 따라가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던 존재가 어느새 그를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다른 자들이 빠르게 복귀를 했다.

“내가 치매가 걸렸나? 내가 약간 요즘 깜빡하는 게 있긴 한데.”

코르도바가 파괴된 관문의 흔적을 보면서 말했다.

“이 흔적은 뭐지? 설마 혼자 한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이들은 가까이 가서 보고는 시온 혼자서 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에슬린이 쓰는 대마법이야 정해져 있어서 이제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허 씨발..”

이것들은 그냥 두들긴 수준이었다.

“모두 모여봐라.”

슬슬 의견을 모아야 할 시간이었다. 일단은 모으고 지금부터 완전히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지금이 적기였다. 가만히 시간을 흘렸다가는 곧 불리해져 버린다. 불리해지고 나면, 이제는 끌려다니거나 급급히 움직여야 할 수도 있었다.

“비밀 동맹도 확실해졌고 황제도 이제 시온 경을 견제하려고 하는데, 저는 이번 결정에 대해서도 좀 더 수비적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온이 바로 화두를 꺼내자 코르도바가 그렇게 말을 했다. 

즉 관문 공격이 길게 보면 좋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시온도 여기엔 동의했다. 하다 보니까 여기를 차지한 것이지 애초에 상황이 꼬이긴 했다.

오는 길에 만났던 기사가 중요 인물이었고 그자의 무기가 너무 훌륭해서 설마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이야. 

코르도바는 여전히 지형을 보고 나니 더욱 전투가 힘들어 보여서 차라리 포로로 잡은 계승자인 고드 부르스를 넘기고 지금처럼 지역을 받아내고 휴전 협정을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가벼운 정찰에서 이 정도면 전세를 바꿀 정도지요. 코르도바 장군. 이제 휴전 협정이 과연 제대로 유지가 될 것 같습니까?”

휴전 협정이라는 것도 결국엔 군주끼리의 암묵적인 합의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군주는 당연히 황제였고, 다른 대왕이나 제후들인데 이들 모두가 갑자기 거대해지는 세력에 대해서 일관성 있게 행동하리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서로서로 앞으로 있을 일에 신뢰를 주기 위해 협정이 존재한 것이지 모두가 그것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

에슬린이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결국, 대왕을 잡으면 모르는 거 아닌가?”

에릭이 생각 없이 한마디를 했다. 알바 대국의 왕은 총 세 명. 그리고 그 세 명의 왕을 봉신으로 두고 있는 자는 딱 한 명.

“하하. 에릭 넌 진짜. 체스판에서도 그런 바보짓은 쉽지 않아.”

에슬린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뭔가 바보 같은 소리긴 합니다만, 가능하기만 한다면 유일해 보이긴 합니다. 지금,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점을 보자면. 이곳에 병력을 대는 것 자체를 제국이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흠..’

여러 가지 의견이 더욱 빠르게 돌았다. 원래라면 에릭의 의견은 바로 무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강체술의 세 번째 경지에 들어서고 여기에 대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단독 납치가 될 것 같단 말이지. 아니면 암살을 해버리고.’

중세의 문제는 위의 가문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 거꾸로 그 해당 인물이 없어지면 혼란에 빠진다는 점에 있었다.

게다가 유일한 계승자인 고드 부르스가 자신의 손에 있는 마당에 다시 복임해 대왕이 된 이반마저 무너뜨린다면.....

‘바로 대국이 쪼개지겠지.’

격이 낮아졌으니 자기와 비슷한 가문을 대왕으로 만들어주느니 이 기회에 자기 나라를 챙기려는 게 보통의 현상.

시온의 생각에 알바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 앞으로의 일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봤다.

서부지역이 넓긴 하지만 그만큼 여전히 위험성이 컸고 십 년 이상 여기에 골머리를 쓰느니 그냥 다스리던 자들의 가문을 인정함으로써 바로 흡수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앞으로 건재하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주는 것이 중요했다. 

이곳저곳의 공격을 받아서 휘청거리면 바로 전적이 있다시피 바로 반란이 터지면서 얻은 것을 다 토해내야 할지도 몰랐다.

‘게다가 황제가 수도로 오라고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안 갔단 말이지.’

그거 자체도 나름의 괘씸함과 앙갚음을 하려고 벼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억울한 일이긴 했다. 논 것도 아니고 사방에서 조여오는 걸 대처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니까.

그런데 어디 그렇다고 해서 윗놈이 자비를 베풀겠느냐마는.

왕이 되었다고 해서 시온이 독립한 것은 아니었다. 

시온은 왕이면서도 동시에 제국의 봉신이었다. 애초에 첫 작위의 뿌리가 황제가 준 움드에 기초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황제가 이러이러해서 올 필요가 있다 하면 거기에 얼굴을 비출 의무가 있긴 했던 것.

결국은 다 핑계고, 시온이 서부지역을 삼키고 제후로서 왕으로서 발돋움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결정을 내리겠다.”

시온이 말을 하자 모두가 긴장 어린 얼굴로 시온을 바라봤다. 

시온의 한 마디에 바로 전쟁이 될지 내부를 견고하게 다질지 정치전이 될지 결정이 되니 말이다.

“알바 대국을 남겨 놓는 건 단순한 문제인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그러니 여기서 알바의 작위를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 은밀함까지 염두 해 본다면...”

“.........”

“대왕과 각 왕을 포로로 만드는 쪽으로 가보도록 하지.”

세 명에게서 탄성이 나왔다.

시온이 말한 바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시온 스스로가 주역이 돼서 은밀함을 살려 침투하겠다는 뜻.

각 세력이 군대를 결집하고 견제하기 위해 여러 압박을 넣는 것은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그런 의사가 있다고 해서 쉽사리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시온의 말은 달성만 한다면 알바 지역을 차지하고 각 세력에게 경고의 의미를 내줄 수 있었다.

건드리면 각오를 해야 할 거라는 것.

“그렇게 하신다면 지금 주어진 시간으로 보아.... 저희끼리, 마리온이 보내주는 소수의 기사와 강행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에릭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이렇게 이득을 계속 보는군. 게다가 우리가 부족한 게 지형에 대한 것이었는데, 한 명 구했잖아?”

그랬다. 시온은 얼마 전의 난투에서 상위 기사 하나를 얻었다. 

거짓말을 말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긴 했는데 여전히 배신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도 대부분 지형에 대한 정보를, 군사 정보를, 세밀한 도시 정보를 얻게 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잠깐의 여유를 꾸리는 와중, 에슬린은 마리온에게 까마귀를 날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시온은 그 사이에 오벨리스크를 후려쳤다.

“아...! 이런 식으로 성을? 이것을 할 수 있게 된 원인이 강체술 때문인가?”

코르도바가 옆에서 넋을 놓으면서 말했다. 

굳이 이것을 부수려는 것은 분명히 어떤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었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이 관문을 수호하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준다는 것.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혹시 여기서 회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부숴버리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 이곳에 우뚝 서 있던 오벨리스크가 나무토막 베이듯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보기완 다르게 튼튼해서 몇 번을 더 버틸 정도. 시온은 계속 휘둘렀다. 

마나 보조 없이 쓰는 것이기에 성문을 부술 때보다는 작은 형식이었지만, 강체술이 가미가 되니 보는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무너졌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긴 역사를 자랑하던 유물이 무너지고, 거기엔 희한한 공간이 있었다.

‘음?’

시온이 겁 없이 바로 들어갔다. 아공간이라고 해봐야 작은 틈 정도였는데, 여기에 몇 가지 무기술과 약초가 놓여 있었다.

아주 오래된 책자로 딱 봐도 고대나 더 오래된 것으로 보였다. 약초도 처음 보는 것이어서 따로 에슬린과 마리온에게 물어봐야 할 정도.

일단은 그것들을 모두 챙기고 나오자 잠깐 있던 공간이 바로 사라졌다.

“제 경험에 거기에서 뭘 얻으신 것 같기는 한데...”

“몇 개 있었다. 일단은 나중에 확인을 해보고.”

그리고 무너진 오벨리스크가 어떤 작용을 하고 있던 게 맞는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추가로 무너지는 현상이, 산사태처럼 요란하게 일어났다. 

이것 말고도 오아시스처럼 있던 내부의 물이 흐르던 곳이 급속도로 말라붙는 다던가.

일단은 예상은 맞았다.

ㆍㆍㆍ

그렇게 시온은 대관문을 넘어서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소식을 들은 마리온은 혈압이 팍팍 떨어지고 있었다.

“대왕을 직접 처리 하신다고..? 너무 변수가 많아. 그리고 위험하고, 에슬린과 코르도바 장군은 옆에서 뭘 하고 있던 거지? 이걸 동의했다는 게. 다시 결정하게끔 해야 하는데.”

“저희가 모르는 요소가 더 있는 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 물론 지금까지 전장에서 대단한 실력을 보여주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자들이 준비된 상황이었고... 지금 같은 경우는.”

“하지만 지는 싸움은 안 하시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론 항상 그렇지. 그런데 내가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나에게 이런 중요한 임무를 맡기는 걸까. 내가 배신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잘 된 거 아닙니까? 이틀 전만 해도 어떻게 해야 더 믿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또 그랬다. 

물론 마리온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 시온에게 합류했을 때는 샤를 왕을 구하기 위해서였고 불길한 예언을 막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샤를 왕이 뭘 하자고 해도 바로 말릴 정도다.

단순히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진짜 시온의 황당한 선택도 근거가 있다고 생각이 될 정도.

아니나 다를까 이미 대관문이 파괴됐다는 것은 이곳과의 전면전에서도 상당히 유리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시 지형을 보러 가는 척을 하고 며칠 뒤에 그곳을 함락했단 말이야.’

“어쨌든 그 계획이 사실이라면 그곳에 침투해야 할 기사를 뽑아야 합니다.”

애초에 험지와 험지를 넘어서는 행군이 이어져야 하고, 식량 수급도 거기서 알아서들 해야 하니 보병 정도로는 턱도 없었다.

바로 기사를 모아서 시온의 계획을 보조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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