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화 (215/304)

거친 날씨

좋은 도시들이었다. 근처에 있는 남작급 영지만 해도 시온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 영지보다도 좋았다.

땅이 험한 만큼 안전하고 풍요로운 지역은 확실하게 발전이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이번 일이 잘 끝나게 되면 이 거대하고 척박한 땅에 일부가 자신의 소유로 들어오게 된다.

물론 일이 더럽게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다.

알바 대국의 천연 성벽인 바위 띠 산맥이 위험한 이유가 속속히 드러나고 있었다.

일단은 일교차도 이상한 편이었지만, 날씨와 바람은 더 지랄 맞았다.

예측이 안 될 정도.

지금도 그랬다. 벌써 하늘이 그릉그릉 하고 있었다. 비도 조금씩 내리고.

시도 때도 없이 소낙비와 강렬한 비바람을 뿌려대고 사라지니 정확한 지식이 있다 한들 이곳에 대규모 보병이 순식간에 손실될 거였다.

“이게 세간에서 말하던 바위 띠 산맥인가. 젠장. 여기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만 지나면 좀 안전해지긴 합니다만, 또 천둥인가?”

“서부 지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험지군요. 거기 모래바람이 잠깐 그리웠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머물 준비를 다들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와서 그런지 다들 숙련된 움직임을 보여준다.

시온은 바로 에릭을 불렀다.

“에릭. 너는 나와 대련을 한다.”

“여기서 할 때마다 수명이 깎이는 느낌이란 말이지....”

지금의 상황에서는 시너지가 있었다. 시온도 강체술과 새로 얻은 무기술을 시험해 봐야 했고, 에릭 역시 시온과의 대련을 통해 실력을 증진 시킨다.

일단은 전번에 에릭에게 힘의 정수를 준 것이 맞았다. 마나가 별로 없고 초보 수준인 에릭이 그냥 증발시킬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미친 듯이 많이 남았다.

물론 마나 흡수에 대한 부분만 따져보자면 에슬린에게 주는 게 무조건 맞았다. 기본적으로 마나를 최대한 얻을 거니까.

근데 지금 신기한 것이 거의 같은 양을 얻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마나가 늘어나는군?”

에릭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단기간 얻을 수 없는 마나를 얻은 셈. 아마도 이곳의 특수 지형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었다.

“점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올바른 현상이 맞습니까?”

“회복도 빨라진 것 같군.”

물론, 등급이 좋은 카롤리나의 특수 포션이 꽤 있기에 거기에 기반을 두는 것이긴 했다.

먼저 격투기부터다. 뼈가 부러지는 것만 아니면 어느 정도 거칠게 해도 된다. 워낙 에릭의 골격이 좋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쏴아아-

바로 어마어마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에드거 네가 말한 대로 여기는 정말로 답이 없구나.”

“장군. 그렇습니다. 적당히가 없다고 번번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잡담할 시간에 빨리빨리 이런 곳에서 죽고 싶어요?”

에슬린이 이곳저곳에 마법석과 진을 장대비 속에서 진을 바쁘게 그리고 있었다.

마탑 출신답게 특수한 피난처를 만들 수 있는 보조 도구가 있었다. 간단하게 막 같은 걸 만들어주는 것인데 비도 다 흘러내리게 한다.

이 도구가 이렇게 쓰기 쉽다면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바로 썼겠지만, 마나가 많이 든다는 것.

즉 마법사들이 무리 지어 갈 때나 쓸 수 있는 도구였다.

“그러게, 이번 비는 아예 앞도 안 보이는데. 이런, 여기가 산맥이라 다행이지 아래였으면.”

바로 급류가 형성되어 쓸려갈 수도 있는 가능성이 농후했다.

게다가 이 지랄 맞은 바위 띠 산맥의 특성상 밤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서 이 물 덩이들이 모두 얼어붙게 되는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거였다.

시온이라면 모를까 에슬린이 준비한 이 피난처의 마석이 없었다면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런 씨발! 적을 걸 가져오지 않은 게 한인데! 계속 기록을 해서 복습을 해봐야 하는데!”

시온에게 막 맞아서 떨어져 나간 에릭이 다시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비가 오든 말든 원래 이런 대련이나 위험한 짓을 수행하는 것을 명예라고 알고 있는 이 바보의 머릿속에서 이 상황을 적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시온의 수행능력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시온은 불만이었지만,

‘새로 얻은 것들이 열리지를 않는단 말이지.’

시온이 얻은 아주 오래된 무기술, 일반적인 기록이 아닌 마법의 언어와 암호로 이루어진 거대한 총람 같은 거였다.

‘역시 대중으로 해서 그런가 어림도 없네.’

꾸준히 대련하면서 이것저것을 시험해 보고 있었지만 새로운 무기술의 총람은 열릴 생각을 하지를 않았다.

그렇게 다시 대련이 이어지는 와중, 정말로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 불어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자들을 봤나. 이 상황에서 저런 대련이라니? 지금까지의 알바 국의 모든 기사는 놀이하고 있던 거였었나.”

나름 혹독한 훈련을 해왔다고 자부를 하던 에드거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저 짓거리를 하다 보면 연습하다가 사망자가 속출할 것 같은데.

게다가 전혀 두려움도 없다는 거였다.

‘막말로 시온은 기사로서 명성이 없었을 때부터 저 짓을 해왔다는 거 아니야. 시발. 저런 놈을 어떻게 이겨.’

에드거의 전향이 다시금 다짐이 되는 상황.

“일단은, 완성되긴 했는데 시온 님을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제 불이 붙은 두 명에게 쉽사리 말을 걸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두 번 저러셨나? 그 전에 우리부터 확실히 하자고. 우리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그 죄가 더 크니까 말이야.”

‘아주 대화가 어이가 없군. 어이가 없어.’

대왕을 보필해서 사냥에 나가는 건 에드거도 아주 닳고 달 정도였다. 이반 대왕부터, 계승자인 고드까지 두 명 다 모셨었으니까.

혈기 넘치고 개인적인 능력도 최고의 기사였던 고드와 대화를 할 때도 이런 대화의 방향은 아니었다.

쫓아가지 못할까 봐, 그것을 걱정하는 기사들이라니.

그렇게 빗줄기가 더욱더 심해져 가며 거기에 맞춰서 격렬해지는 둘의 대련을 보던 중,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동 소리가 들렸다.

“아니 엎친 데 덮친 격인가. 이건 분명히 하급영수들의 대규모 이동.”

“어으.. 어. 시온 님!! 중단하셔야 합니다!!”

“이거,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시온도 일단은 멈춘 상황. 저 끝에서 산양계열 하급영수 육 백마리 정도가 미친 듯이 근처를 지나가려는지 달려오고 있었다.

‘피난처가 있으니 알아서 피해가긴 하겠지.’

간이 피난처의 역할 중 하나, 하급 영수들이 위험하다고 인지하게 해서 비켜 가게 한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순식간에 산양계 영수 무리가 시온쪽으로 섞였다.

‘워.’

튼실한 각력을 지닌 영수 무리답게 좌우로 피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끔 몇 마리는 시온을 향해 날아왔다.

당연히 아무리 잘 훈련된 기사라고 해도 받치면 크게 다친다. 그러니 날려버리는 게 맞았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돌진하던 덩치 좋은 영수가 허공으로 붕 떴다. 손에 저릿저릿한 게 휘두르는 맛이 있었다.

고기도 얻을 겸 몇 마리는 때려잡는 게 좋았다.

게다가 잘 골라서 덩치 좋은 것들 위주로 제거만 하면 머리가 영리한 영수들이라 바로 바다가 갈라지듯 열리게 된다.

시온은 산양계 하급영수의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시온도 오지 산맥의 출신이었다. 그곳에서 첫 기술을 갈고 닦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했다.

“사실상 이것도 훈련인가!!!”

강체술을 익히고 근력이 강해졌음을 안 에릭이 시온을 보더니 빼지 않고 같은 짓을 한다.

어쨌든 그렇게 무난하게 이 일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쾅!!!!!

엄청난 벼락이 여기에 내려쳤다. 시온이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벼락과는 차원이 다른 급의 천둥이었다.

바위 띠 산맥의 명성에 맞는 최대 규모의 벼락이었던 것.

그것이 마치 시온을 노린 것처럼 시온에게 떨어진 거였다.

굵기도 그 세기도 천둥 자체가 굉장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 마나 폭발 현상까지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산맥에서 맞았으니 기저의 낙차 효과의 감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삼 초 내에 다섯 여섯 가지의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여러 가지 작용을 동반.

소리는 물론, 순간적으로 근처의 내리던 빗물이 증발하고, 수증기가 안개처럼 끼고, 거센 불까지 붙었다.

게다가 마나의 소진 때문에 벌어진 진공 현상까지도.

“후. 뭐지 이건. 살았다.”

트리플 오우거의 가죽이 그나마 제 역할을 했다. 이 산맥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는 녀석들답게 벼락에 대한 저항이 평균이상이었다.

그리고 시온이 확인한 것은 기막힌 광경이었다. 그 많던 산양계 하급영수들이 모두 즉사를 해버린 거였다.

하기야 시온도 그 위력에 놀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는데 하급 영수들은 그냥 즉사해버린 것.

말이야 산양 계열이지 외뿔계, 식육계 등 다양한 녀석들이 섞여 있었는데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몰살해 있었다.

‘대충 외뿔계열이 정수가 좋긴 한데.’

그 와중에 작업할 만한 것들을 눈여겨본 시온은 자신에게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나가 늘었는데?’

거대한 마나를 빨아버린 거였다. 그리고 전격 계열의 자질이 개선되어 있었다.

즉, 전격 계열에 대해서는 이제 누구에게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자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무지막지한 마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구별할 줄을 알았지, 자질 자체는 그렇게 분명히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 계열의 모든 정제부터, 내보내는 순환적인 모든 것이 개선되어 버린 것.

‘푸른 액이 만들어 낸 육체가 아직 끝난 게 아니었군.’

푸른 액은 아직도 시온의 육체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단지 근력 쪽에만 치중되어있는 느낌이었다면, 이걸로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 안 것 같았다.

대마법을 그냥 맞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누가 들으면 거품을 낼 소리였다.

이것은 나중에 확인해 볼 일이었고 일단은...

“총람이 열렸다...”

시온이 가지고 있던 새로운 무기술이 집약된 암호문이 조금 전의 충격으로 열린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이 정도 밝기를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정교한 서적 자체가 푸른색으로 가득 차 있던 거였다.

아주 희한한 방식으로 열어버린 상황.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지금은,

“대체 무슨 일이지? 전혀 배우지 못했던...”

“괜찮으십니까?!!!”

이제야 여러 소리가 들렸다. 시온은 뻗어있는 에릭에게 갔다. 역시나 이 정도 위력이라면 어지간한 기사도 즉사할 거 같더니.

‘이런 씨.’

갑자기 욕이 나오는 상황. 시온은 빠르게 에릭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럴 때 봐야 하는 건, 일단은 호흡이었다.

동공도 보고, 호흡도 보니. 기절 상태였다.

근육이 경련이 있기에 바로 카롤리나의 특수 포션을 꺼냈다.

이런 근육의 경련을 풀어주고 이완시키는 포션으로 카롤리나한테 예전에 받은 거였지만 시온으로선 영 쓸 일이 없던 그런 종류의 거였다.

줄줄 부어주니 바로 진정이 되는 것이 보였다.

“에릭 경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안으로!”

“제가 볼 줄 압니다.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시온 왕이시여!”

워낙에 이런 사냥터에 많이 끌려온 경력이 있는 에드거야 이런 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식이 많은 편이었다.

‘보아하니 시온 님은 이런 능력과 지식까지 갖추고 있으신 모양이군. 감히 내가 저런 사람을 낮게 평가했었단 말인가....’

요란하게 일 처리가 나고 있었다. 그러나 시온이 바로 뿌린 특수 포션 덕에 급격히 안정화가 된다.

시온은 그 와중에 외뿔계 하급영수를 수색해서 하나씩 둘러업고 피난처로 가지고 와서 쌓았다.

그리고 영수의 내단을 바로바로 꺼내고 고기 몇 점은 식용으로 내놨다.

외뿔계열 영수의 고기는 보통 허벅지 위쪽이 진미였다. 피로 해소의 효능까지 뛰어나서 마른 건포만 먹었던 일행에게 적절한 공급이 돼주는 셈.

그리고 중간에 여기서 얻었던 약초를 이용, 바로바로 정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이런 추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 그걸 버티는 게 이상한 거다. 보통 기사라면 그냥 죽었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해.”

에릭보다는 다른 자들이 그 말을 듣고 다시금 감동했다. 사실 이들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지만 시온은 고대 무기술의 총람이 열렸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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