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304)

알블린

알블린은 오랫동안 세 개의 왕위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 도시로 그만큼 경제와 문화가 발전한 곳이었다.

그나마 남쪽이 낡은 건축물이 늘어서 있었고 서쪽은 그 위세가 대단해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곳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이곳의 특성상 수도라고 불리는 곳에서의 인간의 수가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그 원리를 철저히 따르고 있는 대도시. 사보이 거성과 그 주변 도시도 처음 받았을 때부터 높은 수준이었지만 이 정도로 광활하진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넓네.”

에릭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제 바위 띠 산맥에서 벗어나서 일반 가도를 향해 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구가 있는지라 알블린으로 들어갈 만한 가도는 유동층이 있었다.

“상당히 밝아 보입니다? 얼마 전에 벼락 맞은 사람치고는.”

“잠깐 사지를 보긴 했지만, 기사라면 영광스러운 순간!”

“벼락 맞고 죽는다면 후대에서 이름이 높기야 하겠지. 시온 경에게 고마워하게. 처음엔 나도 자네의 회복이 특별난 거라고 봤는데, 그 포션의 역할이 중요했어.”

“아, 근육회복포션. 카롤리나의 역작 중 하나이긴 하지요. 설마 시온 님께서 가지고 있을 줄은.”

아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아무래도 시전자의 마나 크기에 크게 영향을 받곤 한다.

그래도 시온이 근육제가 필요할 거 같지는 않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철저하기도 하고 그게 진면목이긴 하지만.’

“살만한 운명이었던 거지. 그나저나 마리온한테서 온 전서는 있나?”

“예. 할 얘기가 많긴 한데, 완전히 안전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미루고 있었습니다.”

전서를 받긴 받은 모양.

“나중까지 미뤄둘 일이라면 안타까운 일은 없겠군.”

시온의 말에 에슬린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를 따로 안으로 들여보냈답니다. 최대한 작전의 순간을 맞추기 위해서 침투 경로에 비용을 제법 쓴 것 같고.”

시온은 에슬린에게서 전서를 받았다. 까마귀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바위 띠 산맥의 그 비바람에도 용케 찾아오다니, 기특할 정도였다.

당연히 마법사들이 부리는 까마귀들은 특수 훈련이 된 영수들이었다. 흔히 그러듯이 지능이 높고 주인과의 교감이 높았다.

마법사가 보통 참모를 차지하는 꽤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명령을 전달하는 데에 차질이 있어서도 안 되고 적이 부리는 까마귀 사냥꾼들에게서도 은밀하게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했다.

지금 같은 경우야 그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젊은 여자가 아니랄까 봐 화려한 필체에 정성스럽게 담긴 글자를 바로 읽었다.

-에슬린이 보내주는 정보에는 애매한 것이 많아서! 왕이시여! 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한시도 잠을 못 자고 있을 정도입니다!

“얘 화났나?”

“아마도...”

“그냥 네가 요약해주는 것으로 하지.”

“저희의 움직임을 파악한 자는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다고는 보곤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온과 저의 밀정들이 방해하고는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는 거지?”

“예. 아무래도 한계가 있긴 합니다. 듣자하니 마리온이 제법 이런 쪽에 능력이 더 있는 모양이더군요. 원래 샤를 왕을 보필하기 위해 키운 자들인 것 같던데.”

“흠. 조금 더 충성의 증명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죠. 밀정들을 키워내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아마 폭시 가문이 가지고 쌓아오던 내실 중 하나일 겁니다.”

잠시 쉬는 시간. 시온은 그사이에 정수의 작업을 마무리했다.

외뿔계 산양 영수에게서 얻은 정수들.

‘플로라의 정수.’

플로라라는 고대 신에 기반을 둔 정수로 모든 양치기의 어머니에 상으로 모셔지곤 했다.

실전되어 있었지만, 레시피가 있는 시온은 비교적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물 중 하나.

하던 대로 하나는 자신이 나머지는 강체술을 익혀야 하는 세 명에게 줬다.

“아. 그사이에 이런 것을. 정말 끝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또 주시다니 이런 재료 법으로 강체술의 경지를 빠르게 올리겠습니다.”

“제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할 만한 공헌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들 먹어둬라. 지금 조금이라도 경지를 단단히 해야 지금 도움이 되니까.”

어차피 시온도 보통 상황에서는 한 개가 기본이다. 중급 정수에 이것저것 자리를 잡아야 가능한 것인데 지금 할 수 있을 리는 없고.

‘나도. 저 봉신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서약만 다시 할 수 있다면,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일수록 더욱 매몰차기 마련인데.’

에드거는 시온의 면모 하나하나가 한 번 더 가슴에 와 닿는 상황.

그리고 시온은 지금 몇 가지 선택이 필요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거라고 한다면 알블린으로 들어가려는 방법이었다.

합법으로 할지, 불법으로 할지, 아니면 변수로 할지.

예의 방법처럼 그냥 용병으로 위장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 경우는 누구의 것을 그냥 뺏어야 했다.

두 번 통할지도 약간 의문이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확실하게 들어가는 방법은 바로 저기에 있었다.

에드거.

지금까지의 태도를 보면 영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에드거가 복귀하는 것처럼 해서 그의 소개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

물론, 위험한 거야 당연하지만, 이 방법이 먹혀들기만 한다면 이반을 잡아낼 방법도 쉽게 만들어지는 법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부의 칼이 가장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에드거.”

“예. 왕이시여.”

“널 믿을 수 있겠나?”

시온이 진지하게 그의 눈을 보고 말했다.

“이반 왕은 지금껏 제국을 따라 하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래서 자기 세대에선 그저 병사를 모으기만 했습니다. 저는 시온 왕께서야 말로. 앞으로의 거대한 행보를 하실 자라고 믿습니다.”

“?”

여기까지 물어본 것은 아닌데, 어쨌든 자신이 믿을만한 인물이라고 상당히 호소하는 분위기였다.

“제가 복귀한 것으로 하고, 그렇게 신분을 인증을 받으시면 알블린의 내벽까지 쉽게 가실 수 있습니다. 저만 믿어주신다면 말이지요.”

“음..”

“그렇게 말로만 해결될 일이 많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자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엄연히 왕의 목숨을 노렸던 자.”

바로 에릭이 화가 난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 자가 말한 약속만 이루어진다면 저희가 전략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 채울 수 있습니다.”

코르도바는 에릭과 뜻이 같고 에슬린은 만약에 이루어지게 될 가능성을 보고 에드거를 믿자고 말한 상황.

에슬린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도 나름 있었다. 어설픈 병력으로는 시온이 절대로 붙잡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직감하고 있었던 것.

“에드거.”

“예. 왕이시여.”

“만약, 일을 잘 돕는다면 항상 하던 대로 나에게 협조한 공훈을 생각해 작위와 지위를 약속한다. 다만, 아닐 시에는.”

시온이 말을 끊었지만, 뒤 내용을 짐작하고 있는 에드거가 침을 삼켰다.

그리고 가도를 타고 빠르게 알블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ㆍㆍㆍ

이번에 얻은 무기술의 총람은 고대에서 다루던 여러 개의 무기술과 관련이 있었다.

즉 필요한 부분을 익힐 수 있었다. 총 여섯 가지가 있었고 각 무기의 무기술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술의 저자들이 시온의 눈에 들어왔는데 이들 하나하나가 과거 영웅이라고 칭송받던 자들이라고 추측이 됐다.

그리고 분명히 훌륭하긴 한데 현재의 시간상 다 익히는 것은 무리였고, 하나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총람이 열리면 다른 것이 닫혀버리기에 하나를 잘 골라야 하는 상황.

의도해도 어쩐 이유인지 쉽사리 골라지지는 않는다. 시온이 고르려고 했던 건 둔기술이었는데.

검이 나왔다.

‘이걸로 할까? 아니면 다음으로..’

순간 고민이 됐지만, 시온은 트루 블레이드를 떠올렸다.

어설프다고 해도 쓸 수 있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각인 과정에 들어갔다.

휘두르고 휘둘러서 가장 좋은 부분을 비술에 각인하는 과정,

그렇게 틈만 나면 바로바로 검술 각인 작업을 했다. 그나마 벨저 공에게 처음 그의 검술을 받았을 때 뼈대를 익힌 상황이었고 간접경험이 많아서 보내야 할 시간이 빠르게 줄었다.

“후. 끝도 없이 노력하는구나. 존경스러운 자야.”

“허, 강체술에 섞어서 쓰시는 건가?”

예전엔 숨기면서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 시온이 그렇게 대놓고 해도 아예 눈치를 못 챘다.

오히려 덩달아서 다들 강체술의 훈련에 몰입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강체술 덕분에 뭔가 예전과는 다른데..?’

시온은 아예 각인 작업에 강체술까지 포함해 각인해서 하나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시온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게 되었고 시온은 알블린 근처에 도달할 때쯤 그나 일족의 검술을 익히게 되었다.

게다가 총람의 원저자는 그나 일족의 영웅이었던 이바르. 이바르의 원본 급의 기술이 시온에게 들어왔다.

시온도 정확한 원리는 몰랐다. 하다 보니 원본 영웅의 기술을 통째로 비술에 각인한 상황이었다.

“흠...”

벨저보다 몇 수 위의 기술이라는 점은 그와 몇 번이고 합을 나누었던 경험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진정한 확인은 역시 실전에서 드러날 것이었으나 일단은 느낌상 원본 급의 기술을 얻었다는 건 여전히 부인할 순 없었다.

“알블린에 슬슬 도착했으니 각기 역할의 수행을 부탁합니다.”

코르도바가 다가오는 알바 국의 수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해야 할 수행이란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차피 나머지는 만난 호위나 부관이나 부하 역할만 하면 되고, 포로였던 에드거가 복귀하는 것처럼 움직이면 됐다.

“에드거님???”

그리고 에드거의 말대로 바로 그를 알아보는 자들.

“일단은 다들 무슨 상황인진 알잖나? 겨우 살아 돌아왔다. 안으로 들여보내 줘라.”

“복..장이. 심하시군요. 모진 고초를 이겨내고 오셨습니까.”

바위 띠 산맥을 건너면서 그곳의 가죽을 덧대지 않고서는 알몸으로 왔어야 했을 거였다.

“트..리플 오우거의 가죽. 산맥을 넘으셨습니까.”

“어?! 빨리 안쪽의 길을 터라!”

어, 라는 말과 함께 살짝 시온의 반응을 보기 위해 흘겨봤지만, 이내 안심하고는 그곳의 기사에게 호통을 쳤다.

“옆에 있는 자들도 같이 모진 복장이군요. 알바 국의 기사들입니까?”

“그렇지. 네가 알 리가 없는 자들이다. 셋은 용병이고 한 명은 운이 좋았다. 내 생명의 은인이니, 각별하게 모실 계획이다.”

이렇게 어설픈 설명만으로? 설마 했는데 바로 잠깐 쑥덕거렸을 뿐 오히려 어설픈 대응에 보복을 생각했는지 다들 굽신거리며 길을 텄다.

“정말 오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머지 기사단은 어떻게 됐지?”

“라버 경이 죽었다고 얘기가 돌았는데요. 그 뒤로는 대관문이 함락됐다는 얘기까지 돌아서.. 바로 모든 기사단과 군대가 그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확인좀...”

“뭐?? 지금 겨우 돌아온 나를 이렇게 대하겠다는 거냐? 라버 경이 왔으면 아주 간을 빼줬을 것이!”

“죄..죄송합니다. 그냥 분위기가 조금 그랬습니다.”

에드거가 그렇게 분을 토해내고 놀랍게도 아무런 언급도 없이 바로 알블린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배신할 마음이었다면 여기서 시온의 골탕을 먹였을 것인데, 이것은 시온에게 완전히 전향하겠다는 뜻.

‘이러면 다음 작전도 쉽게 열리지.’

에드거의 행동을 보아하니 나름 인맥 관리가 철저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시온은 에드거에게 이 정도의 활약과 신뢰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셋의 시선이 서로 교차할 정도.

그 정도로 에드거가 생각보다 높은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개새끼들아!!! 이 정도밖에 못 해!!! 상대는 황금 용병단의 우르메다!! 잘못 알아도 상당히 잘못 알고 있어!”

“근데 듣자하니 시온 왕이 직접 했다는데요...”

“지금 들은 네가 맞는다는 거냐, 아니면 직접 상대하다가 탈출한 내가 맞는다는 거냐?”

“하기야. 사실 왕이 대관문을 급습했다는 쪽이 더 좋아서 의견이 분분하긴 합니다.”

게다가 연막까지 잘 쳐줘 경계심까지 조금 늦춰주기까지.

굉장한 인파와 끝도 보이지 않는 독특한 양식이 수천 개의 건물이 늘어선 대로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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