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
아직도 이곳은 번화한 느낌이 물씬 흘렀다. 아마 이대로 고드를 반환하게 된다면 십오 년 정도면 일강에서 잃었던 힘을 되찾고 다시 골머리가 아플 수도 있었다.
즉 여기서 끝을 보고 이곳을 이곳의 이반을 자신의 봉신으로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에드거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일의 가닥을 잡는 것도 이제 순간이었다. 일단 급하면 그냥 가서 죽이는 식의 방법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데려가는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된다.
아무래도 고드가 남은 계승자인 만큼 할 거면 둘 다 저승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살아서 상봉을 시켜주는 편이 나았다.
‘죽이고 나오는 거와 살아서 데려오는 것은 당연히 다른 문제기도 하고.’
시온은 계속해서 새로 얻은 검술을 각인하는 작업을 가다듬으며 연마를 했다.
실전에 들어가면 완성이 됐다고 해도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법.
“대략 얘기를 들어보니 수도에 주둔하고 있던 다섯 개 기사단이 모두 대관문 쪽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에드거가 시온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현재 알블린의 기사와 병력은 헐겁습니다. 게다가 시간도 엄청나게 벌었습니다.”
“바위 띠 산맥을 과감하게 넘은 결과에 대한 시간의 확보죠. 맞지 않습니까?”
경로에 대해서 에슬린이 강력히 주장했었다. 물론 바위 띠 산맥에서도 예상할 수 없었던 많은 위험을 만났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론 잘 해결이 났지만 말이다.
“시온 왕께서 생각하시고 계신 기사들은 어느 정도인지?”
“남긴 했나?”
“예. 알바의 근위기사단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같이 남아 있는 것은 거인의 창 기사단입니다.”
“거인의 기사단이 있다고 지금?”
“아는 사람에게 들었으니 맞을 겁니다.”
“그때 전멸당한 것이 아니군요. 그냥 무턱대고 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바 대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단인 거인의 기사단은 일강에서 전멸당한 것으로 알려졌었으나,
이렇게 되면 일부가 죽은 것이지 거인의 기사단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봐야 할 거였다.
‘흠..’
시온이 잠시 생각하고 있자 아까 시온이 한 말이 생각이 난 듯 에슬린이 말했다.
“아까 왕께서 하신 말씀은 어지간하면 생포 하자였습니다만, 이렇게 되면 그냥 이반 대왕의 목을 가져가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두 개의 기사단에 단순히 여기서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빠져야 하는 길도 구상해야 합니다.”
도망가는 것도 생각은 해둬야 했다. 어차피 일을 확인하려면 그것이 최고였다.
“가장 가까운 기회가 언제지?”
시온이 에드거에게 물었다.
“정리해드리자면. 오늘입니다.”
“?”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이반이 체스를 즐기는 날이 오늘이라는 거였다. 정기적으로 이런 일을 즐기는 모양.
다음 기회에 대해서는 아직 약속도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공식 일정도 애매한 편이고.
대관문이 비어있다는 얘기가 곧 전서로 이반에게 날아갈 거였다. 그렇게 되면 상당수의 기사단이 다시 수도에 돌아오게 될 것이니.
결국은 지금 하는 게 나아 보였다.
“아니, 참여를 혼자만 하신다고요?”
이곳에 오면서 얻은 강체술의 세 번째 경지, 그리고 새롭게 얻은 무기와 새로운 무기술.
그러나 설왕설래가 이어져서 참가는 에릭까지 포함해서 두 명이 됐다. 에릭도 정수 덕에 강체술이 익숙해진 탓이다.
시온은 에릭 정도라면 박자를 좀 맞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ㆍㆍㆍ
각종 보조 단약을 먹고, 상위 각력단 및 강화 단약을 에릭에게 건넸다.
시온은 마나를 보조하는 것만 있으면 되지만 에릭 같은 경우는 이번 일은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시온도 영 만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확보하고 나가는 것까지 길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설득을 하거나 영 안되면 목을 가져가야 했고 알바 지역을 앞으로 남은 적은 시간 안에 다른 제후들이 알기 전 흡수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불안전하다고 생각이 되는 서부 지역을 토해내야 할지도 몰랐다.
‘어디로 들어갈까.’
시온은 잠시 고민을 하긴 했다. 여러 가지 방향이야 있었으니까.
“에릭, 어디로 갈래?”
“당연히 중앙이지.”
괜한 걸 물어봤다고 생각했지만, 뭐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럼 그걸로 하지.”
“정말인가?? 그 의견대로 하겠다고?”
“그러면.”
“아...아니야. 못 들은 것으로 해줘라.”
정문은 당연히 유명한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이름은 몰라도 시온은 딱 봐도 에릭급의 상위 기사라는 것은 바로 알았다.
“음? 어디 복장이지? 용병인가? 아니 기사인가?”
“용무가 있으면 신중히 골라서 말해라. 지금 여기는 이반 대왕님이 용무 중이시다.”
시온이 트루 블레이드를 뽑았다. 그리고 점점 올라오는 강체술.
‘상상할 수도 없는 명예와 용기. 대체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에릭은 시온의 대담한 행동에 잠깐 해야 할 일을 잊고 감탄을 했다.
“검? 검을 뽑아? 뭐하는 놈이야?”
“이런 미친놈을 봤나. 여기가 어디라고.”
시온이 말했다.
“물어보니까 알려주지. 용무는 이반 왕의 목이다.”
“말한다고 말해? 이런 씨발. 제대로 미친놈인데? 너는 곱게 죽진 못할 거다. 이런 시기에 감히!!”
확실히 상위 기사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이나 숙련되고 빠른 동작에 무기든 장비든 모두 최상의 상태였다.
아마 전장에서 만났더라면 보통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온도 버거웠을 정도.
그리고 시온이 바로 공격하는 자의 검을 받아냈다.
“트루 블레이드????!”
저릿한 공명음이 퍼지자마자 이 검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반응하고 알아봤다.
“이 자식이! 트루 블레이드를 가지고 있다니 라버 경을 살해한 그 놈 아닌가?”
“시온 니벨룽?”
“아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느냔 말이야. 시온이 아니라 시온이 고용한 황금 용병단의 어떤 작자지!”
그리고 그자는 시온에게 묵직한 일격을 가동했다.
땅이 진동하고 흔들릴 정도.
그러나 시온은 그 일격을 가뿐히 받아냄과 동시에 순식간에 검을 빗기듯이 내리그었다.
사실 이러한 기교는 시온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벨저의 스타일도 아니었다. 우직하게 공격하는 것이었던 거다.
원래라면 뒤로 거리를 벌렸다가, 다시 힘 싸움을 해야 했던 것. 이것은 새롭게 얻은 그나 일족의 비검술이 가지는 특징이었다.
‘이중공격.’
그나 일족의 비검술은 모두가 고도의 심리전을 담고 있어서 막음과 동시에 공격의 시점을 잡아내는 검술이었다.
그러니 이 기술에 가장 능했던 이바르가 강력한 적이 많았던 쟁쟁한 자들을 꺾고 영웅으로 분류됐던 거였다.
투구의 빗면에 기가 막히게 들어간 트루 블레이드가 그의 최상급 방어구를 간파하고 목을 잘라냈다.
이 정도 장비라면 갑주보다는 목과 머리를 보호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쏟기 마련이었다.
하필 그 틈에 박혔기에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잘려나간 거였다.
“말하다말고.....? 뭐야?”
그의 동료가 갑자기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을 정도. 그자 역시 같은 급의 기사이긴 했다. 시온은 놓치지 않고 바로 검을 내질렀다.
몇 번 검을 받아내는가 싶더니 결국 팔이 날아갔다.
“잠...깐!!! 잠깐만!!”
시온이 바로 목을 밟아 부러뜨렸다.
정면의 두 명이 허망하게 사라지고 나서 갑자기 텅 비어버렸다. 얼마나 이 둘을 믿고 있는지 나머지는 다른 곳에 있는 모양.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정원이 비어 있었다.
“정면에 가장 강한 녀석들에게 맡겨놓은 건가? 이러면.”
“정문이 정답이었군.”
바로 쭉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였다. 시온과 에릭이 정면에 뚫린 잘 닦인 길을 걸어가면서 보병 몇이 봤지만, 심지어 이들은 시온과 에릭이 적인지를 모르는 모양.
“죄송합니다만 두 기사분. 혹시 무기 소지에 대한 허락을 받으신 겁니까?”
오히려 공손하게 물어볼 지경. 허락을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있다. 강제긴 한데 받긴 한 거니까.
“아, 그러셨군요. 이반 대왕님이 요즘 신경증이 있으셔서 혹시나 하는 말씀이시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무기를 빼주시는 게 욕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가? 고맙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그러면 안쪽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그렇지. 뭘 좀 아는 녀석이구나.”
에릭이 바로 대꾸를 했다.
그래서 보병과 함께 안쪽의 문과 여러 보병을 지나치게 됐다.
누가 봐도 용무가 있어 가는 자들로 보였으니까.
“저분들은 누구시지? 지금 안으로 사람을 들이면 욕먹는 거 모르나?”
“정문에서 오신 분들이야. 이미 인정을 받으신 거지.”
“?”
자기들끼리 쑥덕거릴 정도.
에릭이 설마 여기까지 일이 잘 풀린 줄은 몰랐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원래 여기까지 강제로 들어오려면 대략 삼십 명 정도는 베어야 하고, 그것을 베어야 하는데 시간을 해결 못 한다면 따로 도망가는 이반을 추적까지 해야 할 거였다.
그래서 그걸 예상해서 추적할 방향에 대한 부분을 에슬린과 코르도바에게 맡긴 상황.
아마 밖에선 영문을 모르고 있을 소지가 다분했다.
“아니 씨발. 그래도 대왕님 성격 아시잖아?”
“체스 하는 거? 그것보단 중요하지 않겠나? 그럼 그냥 보내줬겠느냐고. 차라리 욕을 먹고 말지, 나중에 징계받을 건가?”
“하, 이 머리 좋은 놈. 그렇긴 하네. 그럼 내가 물어볼게.”
자기들끼리 격하게 얘기를 나누던 자가 헛기침을 하더니 시온의 앞으로 왔다.
에릭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했다.
“거 문제 있나? 욕을 들은 것 같은데.”
“하하.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저희도 입장이란 게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그래서 그 입장이란 게 뭔데?”
“헤헤. 그 옆에 분이 딱 봐도 유명한 기사님이신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용건인지 대략 눈치만 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센스가 있는 녀석인 듯 바로 에릭과 대화를 하다가도 시온에게 물었다.
“용건은 앞에 녀석들에게 알려줬으니 가서 물어보면 된다. 다만 이것은 왕에게 직접 물어야 할 것이니 지금 네가 듣는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인데..... 각오가 되어 있나?”
하나의 농담 없이 시온이 한 말은 거짓이라고는 없었다. 물론 그 대화는 주먹으로 했지만 말이다.
“하하하. 이거 참. 성깔이 좀 있으신 분이시네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발, 못 들은 것으로 하시고 바로 안으로 들어가셔서 대담하십시오.”
“알았다.”
그렇게 이들은 누구를 안으로 들여보내는지도 모르고 안쪽으로 한 번 더 시온과 에릭을 보냈다.
이번엔 아예 두 명이 따라붙으니 세 번째도 그냥 들어가버렸다.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방어하는 인원이 많고 에드거가 알려준 것보다 방어선이 하나 더 있었다는 점이다.
‘주먹구구로 세봐도 대략 팔십이 넘는데. 이러면...’
어디로 들어갔든 신호를 받았다면 병력이 몰릴 것이고, 이 녀석들을 처리한다면 이반의 도주는 이제 확실해진다.
추격전에도 상당한 숫자가 붙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래도 시간상 이반의 확보보다도 목을 가져가는 편이 맞으니 시온이 무리를 해서라도 죽이는 쪽이 되었을 것이다.
“어? 안 보이던 분이시네?”
그리고 이반 대왕의 첩으로 보이는 젊은 미모의 여자가 시온을 보고 한마디를 했다.
“하이고, 오늘도 아름다우십니다. 이분들은 이반 대왕님께 급한 용무가 있어서 오신 분들입니다.”
정문에서 안까지 그리고 내부 인물 둘까지 따라왔는데 여기에 의심하기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흐흥. 그러시구나. 단련된 몸을 보아하니 명망 높은 기사로 보이십니다만?”
그녀는 시온의 몸을 확인하고는 은밀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다. 시온 니벨룽에 대한 기밀을 가지고 이곳에 급히 전해드리기 위해 도착했다.”
시온의 하대에 그녀가 눈을 가늘게 하며 이리저리 눈치를 봤다.
“알겠어요. 말을 보아하니 제국 사람이신 모양이군요. 얼마 전에 황제께서 접촉하셨지요. 저도 눈치가 있답니다.”
에릭은 천연덕스러운 시온에게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종이 여러 번 울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재는지 에릭의 인상이 날카로워졌다.
“침입자라고? 어떤 새끼들이야!! 알블린 한복판에 어떤 불만이 있는 놈들이지?! 어서 이분들을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