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9/304)

힘의 차이 (2)

“응? 지금 옷을 벗기라고?”

에릭이 바로 시온의 말에 반문을 보냈다. 아무리 에릭이라고 해도 이런 말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왕의 첩이면 적이라고 해도 레이디라는 것인데,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고민을 한다는 거였다.

“그럼 내가 말하지.”

그런 불명예 따위 이들에겐 심각한 문제일지라도 시온에게는 일언반구의 가치도 없는 것.

“저희의 명예를 생각을 해주시지 않는 건가요?”

“우리의 목숨을 보장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난 그냥 벗을래.”

첩들끼리도 바로 의견이 분분할 정도.

‘개새끼. 내 아들에 이어서 부인까지. 바르르 떨려오는구나.’

이반 대왕이 시온을 보며 분개했지만 절대 입 밖에는 내질 않았다. 아무리 지금까지 잘 태어나고 잘 먹었고 훌륭한 업적까지 쌓아왔다고 해도 머리가 흐리멍덩해지진 않았다.

시온이 현재 보여준 것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정점에 오른 자가 보여줄 만한 대담한 솜씨였다.

그런 그에게 불만을 표한다? 목숨이 열 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이었다.

‘아니지. 그 먼 서부의 유목민 놈들은 적의 아내를 빼앗는다지. 그래!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야. 여자들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거지!’

“하여튼,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다 벗어라.”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아까 하겠다 하던 여자가 자신의 옷을 술술 벗기 시작했다.

“아니, 저 여우 같은 게.”

“이러면 우리도 빨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평소엔 기특하더니 이를 때는 맥이네. 대왕님 앞인데 천천히 해야지!”

“지금 수줍은 척을 하면서 시온의 첩 노예로 들어가려는 거에요. 어차피 서열이 밀리니까. 소문에 아직 첫 결혼도 하지 않았대요.”

“!!!!”

“그런 건 일찍 말했어야지!”

슥슥. 다 벗어던진 이십 대의 여자가 자신의 몸을 과시하며 시온에게 수줍게 말했다.

“이렇게? 어때요?”

“?”

시온은 자신의 가슴을 이리저리 비춰주는 여자를 보고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 되었다. 말 그대로였다. 시온이 하려는 것은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마법 도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큰 것들은 치워버리면 되니 상관이 없었다. 역시나 저 목걸이가 마법 도구였다.

시온이 손가락으로 다가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언니들보다 가슴도 예쁘고 가장 어린데 나를 거절할 리가 있겠어?’

그리고 두근거리면서 시온을 보며 부푼 마음을 가졌다. 시온이 보여준 절정의 기사로서의 솜씨와 세계의 화제에 중심에 서 있는 시온의 명성이라면 그녀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앗? 목걸이는 왜? 목이 보고 싶으셨나요?”

“?”

시온은 대답하지도 않고 귀걸이도 뺏었다. 그중에 귀걸이는 바로 부숴버리고 목걸이는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아래도 벗어.”

“.....? 여기서 저를 건드시려는 건가요....”

“?”

시온이 냉정하게 보자 압박을 받고 있던 그녀는 다시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벗었다.

“없군. 이제 내 뒤로.”

아직도 시온이 하는 말에 의견이 분분한 자들이 많았다. 그만큼 시온의 행동엔 여전히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이 담겨 있었다.

‘다행히 변태는 아니구나. 안전하게 할 수 있겠다..’

여자는 얼굴이 사과처럼 변한 여자는 여전히 착각 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만큼 시온이 그녀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던 거였다.

물론, 이반 대왕은 얼굴이 뻘게져서 그 광경을 다 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년들. 조금만 더 시온에게 허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다들 단단히 벌을 받을 줄 알아라!’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누구보다도 숨 가쁜 관음이 이어지고 있다.

“저도 그렇게 하실 건가요? 노예가 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죽을 것인지 선택하라면 전 당연히...”

이반 대왕의 마른 침이 넘어갔다. 그는 내심 감동을 한 거였다.

“노예가 되겠어요.”

“!!!!!!!!”

“상황이 그렇다면 저도 받아들여야겠죠. 자 보세요. 가슴은 제가 제일 커요.”

키도 제일 큰데 가슴은 더 그랬다. 철렁거리는 게 흔들릴 정도.

그리고 거침없이 옷을 벗으며 시온에게 허락을 구하듯 앞에 섰다.

물론 이번에도 한쪽에서 반지를 끄집어내고 다른 여자에게서는 속옷을...시온은 감탄했다.

‘이야. 속옷에 소리전달 마법이라니 이거 얼마나 비싼 거야.’

에릭이 헛기침했다.

“다들. 실하네. 어쨌든 됐나.”

“그렇지. 에릭 네가 나머지 기사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묶어라.”

기사들에게는 막상 이런 보조 장비를 들고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당장에 결투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무장으로 세팅한다.

당장에 목이 달린 게 더 중요한 법이다. 그건 마법사도 비슷한 처지다. 마법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고위 마법사 정도만 털어버리면 된다.

‘고위 마법사로 보이던 녀석은 아까 추락해서 죽었고.’

나머지는 그냥 그랬다.

아무리 대왕이 지금 당장에는 허락했다고 해도 봉신들의 의견이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이참에 대왕을 보내버리고 독립하려는 왕들도 있을 거니까.

그러니 지금 하는 작업들은 모두 소리전달 같은 마법을 봉쇄하기 위한 면이 컸다.

그리고 아무리 여자라고 해서 풀어두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할 건 확실해 해야 하니까.

“너희. 하나씩 이리로 와라.”

시온이 근처의 천을 뜯어다가 가장 어린 여자를 묶기 시작했다.

“으응. 목은 살살해주세요.”

“목을 왜 묶지?”

“......!!!”

팔과 다리를 묶었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시온은 이어서 다른 여자들에게 똑같은 지시를 했다.

“저희도 발이 있는데. 꼭 이런 식으로 하셔야겠다면 할 수 없죠..”

“앗! 아파.”

그러면서 시온은 이반 대왕에게 갔다.

“할 말 있나?”

“굳이 여자가 필요하면 내가 따로 여자를 보내줄 수 있어. 나를 망신 시키려고 한다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나를 순순히 따르겠다고 한 약조를 한 번 더 물어보지.”

“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하면, 베어버릴 거 아닌가. 내 아들과 함께.”

“그렇지.”

이반은 시온을 보면서 솔직한 감정으로 숨쉬기도 어려웠다. 누가 감히 이런 작전을 꾸밀 것인가. 아니 실행할 것인가.

이쯤 되면 아랫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소문인 신의 사자라는 별칭이 어울릴 정도다.

‘그래. 이 자는 이런 식으로 움드에서 벌였던 모든 전쟁을 해결한 거였다.’

적이었지만 순간 전율이 올라온 이반.

“아, 이런 아돌프 경이 완전 맛이 갔는데?”

에릭이 쓰러진 자 중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을 무장해제 시키다가 그렇게 시온에게 말했다.

“아돌프? 아돌프가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시온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이반이 관심이 많은 모양.

시온은 버둥거리는 여자들을 확인만 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살려줘...제발 살려줘....”

“음?”

손을 잃은 아돌프가 악몽을 꾸고 있는 듯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혹시 연기인가 싶어 자세히 관찰해봤는데 역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숨통을 끊긴 해야 했는데.

“아돌프!!! 시온 왕! 내 조건을 급히 하나 더 달지. 아돌프의 목숨을 살려줬으면 하네!”

이반이 바로 시온의 앞을 막았다.

이미 마음이 바뀐 생각이었는데 대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모를 정도.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들어주는 척을 하면서 한 가지 더 받아먹는 게 좋았다.

시온이 흔쾌히 허락하며 물었다.

“단순한 관계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관계지?”

큰 기대는 하지 않은 그런 질문이긴 했는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내 사생아야!”

“?”

분명히 다른 자들도 처음 듣는 듯한 얼굴. 비밀로 보이긴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까 살려둔 것이 맞았다.

“그럼 가볼까. 이반 대왕. 내 진형으로 포로로서 따라와 줘야겠다.”

“이렇게 될 노력이 아니었는데 이게 신의 뜻인 건가...”

그가 절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드의 증언에 따르자면 알바 대국은 세대를 거쳐 군대를 모아 밖으로 권력을 확장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철저히 그 비밀을 감추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샤를 왕이 더 강한 세력이라고 보고 있었지만, 실제론 이반의 군세가 압도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 거대한 군세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각종 기사단의 충성과 연마 고드에게 계승권을 독점시키고자 했던 잔혹한 결정 등.

그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그 정도로 시온이 한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전략과 실행과 결과였다.

그렇게 시온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구석엔 이반의 첩들이 뭉기적뭉기적하고 있었다.

“우리는?”

“시온 님은 분명 다시 돌아올 거야.”

“설마, 이게 전부라고? 이러면 아까 더 노력할 건데...”

이제야 그녀들은 시온이 하려고 했던 것이 강력한 무장해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면서도 원망보다는 자신들의 운에 대한 한탄이 이어졌다.

“그냥 가버리다니. 명예롭기로 제국에서 드높은 자이긴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보통 남자가 아니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됐어, 작전이 안 좋았다고.”

“아니지. 대왕이 잡혀갔으니 뭐가 됐든 우리에겐 다시 기회가 있을 거야.”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알몸 상태로 다음번 기회의 음모를 꾸미는 여자들이었다.

그리고 안쪽 건물에서 나오자 시온과 에릭은 빡빡한 보병들을 보게 되었다.

순간 징그러울 정도였다.

수도이긴 하니 이 정도 병력은 상시 있는 것이 당연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올 때도 왕의 목을 베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것을 고민했을 정도였다.

“누구야!! 이반 왕이 포로로 잡혀 있다!!!”

“시온 니벨룽!”

“씨발. 기사들 다 죽었나 본데?”

“시온을 베기만 해도 바로 귀족 작위가 내려진 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마 무지할 정도로 요동을 쳤다.

베기만 해도 작위나 서임이라니 그 정도로 이판사판인 거였다. 이반을 내세워 협상하기도 뭐한 게 흥분한 보병이 바로 달려들 오고 있었다.

원래 군중이라는 것이 한 번 흥분하면 명령체계라곤 없었다. 베기만 해도 작위를 준다고 누군가가 소리친 것이 큰 탓일 거였다.

진형 싸움도 아니고 이렇게 뛰어난 기사를 제압하는 데에는 저만한 명령도 없었다. 용기를 불어줘서 달려들게 해서 피로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누군진 몰라도 이 순간에 정말로 필요한 명령을 한 거였다.

하지만 시온의 입장은 영 달랐다. 강체술의 세 번째 경지에 올라간 데다가 비술과의 충돌도 없앤 지금은 피로란 것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드래곤브레이커를 꺼내 급성장 마법을 걸었다.

적당한 크기로, 물론 보병들이 봤을 땐 입이 벌어질 만한 크기였다. 이반 대왕의 입은 더 크게 벌어졌다.

트루 블레이드가 아무리 좋아도 그래 봐야 일대일에서 좋다는 거지 이런 백병전에서는 드래곤 브레이커만한 것이 없었다.

“저건...”

“겁먹지 마! 베기만 해도 작위가 내려진다! 대왕이 바로 뒤에 계신다! 지금 상위 기사들과의 혼전을 겪어 시온 니벨룽은 상당히 피로한 상태다!”

여전히 냉철한 명령이 이들을 부추겼다. 그리고 그건 일견 맞는 말이기도 했기에 그들이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다섯 명이 곤죽이 되었다.

말 그대로 으깨져 버린 것이다.

‘딱 이 정도가 좋군. 손목의 부담도 적당하고.’

시온은 이 상태로 변수만 없다면 이들 전부와 싸우고도 체력을 남길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유인했다가 단번에 대마법으로 처리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이런 정면 승부도 가능해진 거였다.

물론 시온이 만든 일격은 모두를 얼어붙게 할 만했다.

“다섯 명이 동시에?”

“지친 거 맞습니까! 시온 니벨룽의 전투를 직접 보게 되어 영광이긴 합니다만. 씨발. 이건.”

그의 뒷말이 바뀐 이유는 시온이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에 적으면 두 명 많으면 다섯 명 정도가 우르르 뭉개지듯이 쓸려나가고 있었다.

머리가 터지고 팔을 맞으면 으깨져서 옆의 보병에게 날아가고 흉부에 맞아서 질식해버리는 자도 즐비했다.

“벌써 두 개의 열을 다 꼴았다. 존나 그냥 괴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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