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성공
“아니, 들어가라고 말 만하지 말고 자기가 들어가 보던가.”
“지금 머뭇거리는 자식들 전부 기억하고 있다!”
“기억은 살아 있어야 하지요. 누가 봐도 시온에게 갔다가 살아남지를 못하는데.”
이제는 슬슬 말이 잘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시온의 움직임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잠깐만!”
“항복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죽느냐의 문제잖아.”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 시온에게 대항하기는커녕 검을 떨어트리고 눈을 감고 손을 올렸다.
휘말려서 처리되는 것 말고는 시온도 굳이 의사가 없다는 애들을 때려죽일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결단도 나름대로 용기가 있어야 했다. 이곳의 법상 기본이 사형이었다.
왕의 안전을 위해서 그 밑에 자들의 목숨이야 아무리 써도 상관없다는 그런 암묵적인 묵인들.
시온도 어느 정도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건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차례 정도 반복이 되자 그걸 보고 있던 자들의 입에서 억 소리가 나왔다.
“잠깐만 저 새끼들 다 뭐하는 거야.”
“잠깐만, 항복하면 살려주는데? 맞지?”
“그러면 그렇지 시온 경의 명예는 제국에서 제일 높지 않나.”
이러한 흐름이 잡히자마자 우르르 손을 들고 검을 놓는 보병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이상하기에 대부분 이래 버리니 다른 자들도 고삐 풀린 것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곧 검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
“조금만 더하면 되는데! 대체 너희!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냐?”
그리고 지금까지 연신 명령을 내리던 자. 보병들은 다 들으면서도 모르는 척을 했다.
했다가는 바로 세상 하직할 것인데 모르는 척이 차라리 나았다. 그냥 이 흐름에 묻혀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던 거였다.
“귀족인가? 기사인가? 이리 나와서 내 결투를 받아라.”
저 녀석만 잡으면 이제 다 해결될 일인지라 시온이 바로 그렇게 소리를 쳤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고. 턱도 없는 얘기지.’
예전이었다면 머리를 좀 굴려봤을 것이었으나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강체술 덕에 전혀 지치지 않았던 거였다.
만약 여기에 이만한 자들과 기사들이 한 무더기가 더 있다면 그때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거였다.
“결투? 내가 왜 그런 짓을.”
좀 중요한 대답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쨌든 뭔가 사기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형편없다고 봐야 했다. 누가 봐도 위험한 거에 자신은 쏙 빼고 하려는 것이 보였기 때문.
“그래? 그럼 그냥 나의 단독의사로 하지. 거기, 비켜라.”
시온이 바로 달려들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수많은 갈등이 섞여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지만, 선택이 너무 늦었다.
“항복.. 항복합니다! 진짜로 합니!”
어설픈 실력의 기사급 정도가 이 자의 전투능력. 당연히 한 대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머리가 으깨지고 조금 전까지 소리를 지르며 명령을 내리던 자가 죽어버리자 안 그래도 의지가 없던 보병들이 전원 항복을 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후 예상외로 여기도 일이 확 풀렸군.’
“와- 벌써 조져버렸네. 다들 손 올려라! 없으면 내가 시온 니벨룽의 권한을 대행해서 즉시 목을 잘라 내겠다.”
에릭이 바로 고함을 치고 자기들끼리 포박을 하라도 이리저리 이어서 소리쳤다.
원래라면 일일이 당연히 하여야 하는데 두 명이 하기엔 보병이 너무 많았다.
진풍경이 펼쳐졌다.
손을 올리던 자들이 무기를 모아서 버리고 간부로 추정되는 자들 위주로 묶었다.
게다가 이반 왕이 이어서 항복을 선언했다.
“나 이반은 시온 니벨룽에게 항복했으니 더는 피를 흘리는 것을 원치 않노라!”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갈대 같은 것이 있어서 미리 이렇게 말해줬으면 보병들이 이렇게까지 죽었을 리는 없지만, 이반이 끝까지 어떤 각을 봤다는 것이 지금의 요지였다.
그러니 추정 상태에 있던 시온의 능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지금, 시온이 아까 말했던 이반 왕과 그의 아들인 고드의 목을 모두 참수하고 알바 대국을 침공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제 장난이 아닌 셈이었다.
‘시온 니벨룽, 단순한 자가 아니야.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것도 일부러 나에게 보여준 거겠지. 분명히 그러겠지.’
이반은 아예 이렇게 생각의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서로 꼬여있지 말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 이반 왕의 명령이다!”
시온의 명령에 이반 대왕의 명령대행권까지 받은 에릭이 신나 가지고 이리저리 발로 쳐대며 보병들을 건물 안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 안에는 물론 대왕의 첩들이 알몸으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지금 여기가 이들을 몰아넣기 가장 좋은 장소는 없었다.
끼익. 쿵.
거대한 문을 닫고 이제 위험한 부분이 제거된 길을 걸어갔다. 가끔 보이는 하인이나 시종들은 모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시선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밖은 여러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은 시온을 보며 모두 숨을 죽였다.
“잠깐 저 사람. 이반 대왕님이신 것 같다.”
“무슨 소리야 방금 저 안으로 몇 명이나 들어갔는데 대왕님이 따로 고용한 용병들이겠지.”
아직 인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이었다. 이들이 모인 것도 종소리와 이 안으로 들어간 보병들 때문이었다.
이들은 이곳에 침입한 자가 시온이고 시온이 왕을 사로잡은 뒤 나오고 있다는 것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러려니 한다.
“잠시만요. 이쪽입니다.”
그리고 한쪽에서 에슬린이 나왔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대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놀란 얼굴의 코르도바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을 했다. 어떻게 보면 결국 시온이 이곳에 도착해야지 만이 모든 게 이뤄지는 것이었다.
“그런가. 나가는 길은?”
“첫 번째 계획대로입니다. 에드거가 항구 관리자를 매수하는 데 성공해서.”
작전이 바로 이루어진 탓에 에드거도 잠을 자지 않고 자기의 인맥을 동원해 매수한 상황.
보병을 잘 묶어 놨으니 추격대 걱정도 덜었다. 그냥 붙잡아 놓은 것도 아니고 시온이 실력행사를 통해 공포로 잡아놓은 거였다.
그리고 거기까지 이동할 수단에 포획한 왕의 입을 다물게 할 만한 제안까지.
그리고 일행은 빠르게 항구를 향해 움직였다. 큰 항구가 있고 작은 항구가 여러 개가 있었다.
쓰려는 것은 당연히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항구와 배.
그 앞에 있던 로브를 쓴 자가 세 명 부둣가에 서 있었다.
시온은 아직도 방심한 건 아니었다. 주변을 잘 둘러보고 에드거가 배신했는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부둣가에서의 난전이라, 헤쳐나가질 못할 것은 없지만 물을 끼고 싸우면 불리한 것은 불리한 거였다.
“닥치고 조용히 해 그냥. 내 말 맞잖아. 저분이 바로 시온 니벨룽이시다. 그리고 뒤에 있는 자는.”
“씨발. 이반 대왕이군.”
“그러니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란 말이야. 너도 직접 보면 저분이야말로 세상에 우뚝 설 분이란 걸 알게 될 거다.”
“갑자기 이렇게 되다니. 분명히 몇 달 전만 해도 서부에서 올 승전보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예상처럼 흐르지는 않는 법. 시류를 잘 타야지 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였다. 그리고 이들은 시온을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극한으로 단련된 자다. 끝이 보이질 않아.’
순간 잘못 봤는지 눈을 비볐을 정도.
그리고 이들이 이런저런 마음을 결정하고 있을 무렵. 시온이 가까이 다가왔다.
“에드거인가?”
“옛.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온은 에드거와 옆에 있는 자들을 봤다. 그리고 에드거의 다시 한 번 이어지는 행동을 통해 전향된 것을 확인했다.
“이들은?”
“능력이 나쁘지 않은 녀석들입니다. 다들 저를 따라 시온 님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이런 운을 가지게 되다니 너무 좋습니다. 영광입니다.”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옆에 바닷물 좀 먹은 것 같은 선장은 허겁지겁 말을 내뱉을 정도.
‘나가는 길이 좀 고민이었는데 에드거를 믿은 게 이렇게 돌아왔군.’
시온은 적당한 배를 타며 멀어지는 알블린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게다가 지금쯤이면 슬슬 나와서 왕이 납치됐다고 동네방네 떠다니도록 얘기했어야 했는데 희한하게도 도시는 조용했다.
사실 갇혀 있는 보병들은 서로가 나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겨우겨우 살아났는데 나가서 다시 죽고 싶은 자는 없었던 거였다.
항해는 별건 없었다. 워낙에 수로가 잘 잡혀 있는 곳이기도 했고 선장의 실력이 좋았다.
“저쪽엔 암석이 있으니 좀 거칠게 돌아야 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추적이 붙질 않는군요. 에드거 녀석이 그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진 않고...”
눈을 보아하니 시온이 어떤 수를 썼는지를 물어보는 모양새였다.
“하하, 당연히 하셨겠죠. 죄송합니다.”
사실 시온도 몰랐지만, 어림짐작 되는 건 있었다. 그때 보병들이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추측이긴 한데. 아니겠지.’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야이 멍청아. 후궁님들께서 모두 입을 다물라 하지 않았나. 그러고 들어보니 이반 왕이 이미 항복을 했다 하지 않아. 불난 집에 물을 끼얹어서 뭐할 셈이야. 우린 그냥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야. 적어도 해안선을 넘어가는 시간 이후부터 까지는 꾹 다물고 있는 거지.”
“그..그렇지.”
그곳에 있던 후궁, 기사, 귀족들은 모두 시온의 거대한 힘에 질려 버린 상황이었다. 시온이 따로 알바의 대왕 작위를 가져간다는 말도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시온을 새로운 대왕으로 보고 있었다.
차라리 새로 열리게 될 기회를 노리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시온의 항해는 무사히 끝이 났고 시온은 다시 자신의 영토로 합병된 서부 지대에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건 마리온이었다. 부랴부랴 채비해서 여간 부산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
“그래? 서신을 스무 통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래 보이진 않았는데.”
“다 왕을 보호하기 위한 위험에 대해서 알려드리기 위한 정보들이었어요.”
에슬린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마리온, 그러고 보니 투입한 기사들은 어떻게 했어.”
“아직, 보내지 않았어... 너무 급해서. 이제 보내야지.”
시온이 육로로 탈출 방향을 정했을 때 도움을 주려는 기사들이었기에 그것을 뽑고 몰래 진입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애바야. 진짜 이반 대왕이구나.”
마리온이 순간 혼잣말을 할 정도로 마리온도 두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이 같은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 그때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 너무 한이 될 정도.
“지금 이반을 시온 님이 직접 챙겨 오셨으니, 우리가 번 것은 단순한 시간 정도가 아니다.”
코르도바도 여기에 끼어들었다.
“누가 보면 말도 안 되는 수라고 했겠죠. 세상천지에 그 누가 이런 일을 생각하고 할까요. 딱 한 분밖에는 없죠.”
“그렇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제국과 다른 제후들의 동맹과 왕이 얻으신 서부의 안정화. 여기에 알바 대국까지.”
“알바 대국은 아직 너무 섣부르긴 해요. 하지만 왕위 지역이든 직할 지역이든 노른자위를 뜯어낼 수 있겠죠.”
“그건 너무 시온 님을 모르는 소리지. 내가 가장 오래 모셨으니 내가 알아. 시온 님은 이미 이반을 잡으러 갔을 때 알바 대국을 얻을 방금까지 수를 짜내고 간 거야.”
물론... 오해였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시온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진 않았다.
일단은 여독을 풀고 몇 가지 협상을 풀어나가기 전 총람의 다른 고대의 무기술을 훑어볼 계획이었다.
여섯 개중 하나를 얻었으니 둔기류를 볼 계획이었다.
‘알바 대국에 독특한 마법이 많은 것 같으니 그건 차근차근 받아내 보도록 하고.’
분명히 알바 대국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대마법을 가지고 있을 거였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대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들이 일강 대첩에서 몰살당했지만, 그들이 남긴 마법서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시온의 생각이었다.
‘에드거에게 미리 언질 좀 해둬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