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21/304)

대국의 합병

총람을 보던 시온은 나머지가 모두 강체술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다음 경지에 가기 위해서는 강체술의 경지를 올려야 했다.

“어째 안 보신 사이에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시온이 맡긴 임무는 서부에 횡횡하는 강도기사들의 소탕작업이었고 필립스는 그 임무를 소수의 기사와 잘 수행하고 왔다.

사실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고 다급히 돌아와서 얘기를 듣고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아쉬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제법 성장했구나. 필립스. 에릭! 이쪽으로 와봐라.”

“오! 필립스. 왕께서 명하신 영광스러운 임무는 다 마쳤나?”

“마치지 못할 바에야 그냥 죽겠습니다. 시온 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인데.”

시온이 한마디 했다.

“목숨까지야. 필립스 그런 거에 목숨을 걸면 안 된다. 그냥 목숨이 위험하면 재빠르게 빠지는 거다.”

여기의 사고방식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시온은 자기들의 기사들에게 이런 유연한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시온 왕께서 무엇을 위해 날 불렀는지 알겠군. 필립스 놀라지 마라. 시온 경이 고대 기사들의 전투법을 얻으셨으니까.”

“고대 제국의 전투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전에 동방이나 서방이나 그냥 다 하나의 대제국이었다. 그런 거대한 제국이 어느 날 정체불명의 이유로 사라졌다.

통치권이 없어지자 서로가 그 뿌리를 강조하며 각 지역으로 갈라져 나간 게 시초였다.

그때 단절된 기술을 생각하면 그냥 문명의 후퇴였다. 그러니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서 유적을 털어대는 거였다.

꼭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영문 모르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계절처럼 사라지곤 한다. 침투 중에 본 것은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그래. 필립스. 내가 강체술을 얻었다. 물론 불완전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여정에서 입증한 것이다.”

“강체술, 어디서 들었던 것 같던데. 설마 미아가 말하던 그거 맞습니까?”

“그래. 바로 그거지. 나도 그때만 해도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전 애인이자 아직도 연분이 강하게 얽혀 있는 미아는 현재 움드에서 용병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당시 사보이가 워낙 위험해서 그냥 거기에 내버려 두고 왔었다. 어쨌든 에릭은 강체술의 좋은 교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에릭 네가. 필립스에게 바로 가르쳐 줘라.”

“아, 이런. 조금 체계를 쌓아뒀어야 했는데, 이런 임무가 갑자기. 제가 좀 아쉽군요.”

“모르는 건 코르도바와 에슬린과 상의해서 필립스에게 가르쳐라.”

근본적으로 시온이 운용하고 있는 강체술은 이들이 가진 것과는 달랐다. 그러니 따로 가르쳐 줄 수가 없었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ㆍㆍㆍ

아르본으로 오는 길은 한산한 편이었다. 일단 봉신 소집까지 걸어놨다. 시온은 서부의 제후들. 알폰소를 위시한 무리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알바 대국과 교착이 길어졌으면 살살 각을 봤겠지.’

어쨌든 서부 지역을 순식간에 삼키기 위해서 그리고 바로 알바 쪽의 각을 보기 위해서 독을 살짝 마신 거였다.

“시온 대왕님을 뵙습니다. 그동안 서부 지역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하...”

오랜만에 보는 알폰소는 시온을 보자마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서부 동맹의 키는 알폰소가 쥐고 있었다.

“혹시 나를 떠보려고 했나?”

“아이고, 대왕님 한 번으로 넉넉합니다. 겨우 목숨을 얻었는데 이렇게 잃겠습니까.”

“난 아직 대왕이 아니다.”

“사실상 모두가 이제 시온 경을 대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의하도록 전해둬라. 아직은 아니니까.”

아르본은 어느새 규모가 더 커져 있었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성벽이 커지고 있었고 그곳에 들어오는 사람이 무섭게 늘어났다.

서부의 교역이 이제 움드와 본격적으로 연결되니 아르본의 역할이 늘어난 거였다.

돈 냄새가 나기만 하면 각종 상인이 무역이 절로 모여든다. 시온은 여기에 초이를 배치해놨고 권한을 내줬다.

초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금전적 감각이 있는지라 아르본을 양쪽을 잇는 무역도시로 만드는 작업을 잘하고 있었다.

“소식은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초이. 정말 일을 잘해줬다.”

“어휴. 제가 한 일은 주인님의 반의 반푼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여기에 몇 년을 쓴다고 해도 적 세력이 활개를 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고드는 잘 데리고 왔나?”

“예, 이미. 그때 전투가 끝이 나고 코르도바 경이 비밀리에 고드를 아르본으로 넘겼습니다. 그 사실은 당연히 제가 극비로 담고 있었습니다.”

“오. 그렇군. 그래서 고드는 어디에 있지? 대우는?”

사실 시온이 어떻게 포로의 대우를 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까지 권한을 내준 상황이었고.

“대우에 대해서 말씀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일단은 고급 저택에 계승자에 걸맞은 대우를 해드렸습니다.”

역시나 실수를 하지 않고 중도의 방향을 잘 골랐다. 미리 언급을 주지 않은 것은 시온도 막상 그 앞까지 가서 목을 잘라낼지 아니면 사로잡을지 결정도 하지 못했었다.

‘이제는 알바 국의 협상을 잘 받아내는 것인데.’

어쨌든 모든 선택권은 시온에게 달려 있었다. 그냥 둘을 처리해버려도 되고 아니면 마찬가지로 복속하는 것도 좋을 거였다.

‘둘을 계속 떼놓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붙여줘야 하나.’

에슬린은 예전의 샤를 왕에게서 이런 성과를 낸 적이 있기에 변함없이 둘을 고립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고드와 이반을 바로 붙이겠다.”

“음. 지금 바로 말이십니까. 으음... 알겠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것 같았지만 초이도 어느샌가 시온이 고도의 수를 짜놓고 움직인다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에슬린과 결론이 같았던 거였다.

“아르본. 내가 예전에 아버지를 따라 봤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번창함이로구나.”

“예.... 사실 이반 대왕님이 어렸을 때 보시던 것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서부 반란에 샤를 왕의 정복전에 자원을 대주느라.”

“그래, 그러니까 지금 시온이 했다는 말이냐?”

“워낙 정보가 시온의 측근들끼리만 들고 있어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습니다.”

“그래. 아까 봤던 그 고렘들이 그 원인이겠군. 내가 알던 것과는 이제 다른 시대가 펼쳐지는 건가.”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길버트는? 길버트의 가문은 한때 나에게 은공을 입었다.”

“예, 그런데 오히려 반응이 아예 없습니다.”

길버트의 가문은 아르본에서 유력 귀족 중 하나였다. 이반이 여기에 오자마자 자신의 밀정으로 길버트에게 접근을 시켰다.

완전히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거였다.

첫 번째 계획이 수포가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들려온 얘기는 그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지금 바로 고드님과 접견이 승인되었습니다.”

“갑자기? 시온이 그냥 허락했을 리는 없는데 말이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어지는 기사들의 입장에 이반은 순간의 의심도 잊을 정도였다.

어쨌든 그때 시온의 제안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시온의 함정일까. 여기서 우리 둘을 모두 베어버릴 수도 있겠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자로다.”

보통 이런 일에 기사보다는 백작급의 귀족을 쓰기 마련이었는데 모두 기사들인지라 이반의 마음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덜컥 열리고 고드의 얼굴을 본 순간. 이반은 눈물이 맺히려고 했다. 그만큼 가문을 이끌어가야 하는 마지막 계승자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은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아버지인가?”

“고드.”

“대체 왜 여기에? 나라가 멸망했습니까? 도대체 시온이 또 어떤 마법을 부린 것입니까?”

“일단 네가 무사하니 됐다. 시온의 말이 진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겠군. 과연 기사 중의 기사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이 진짜로 다가왔다. 그 명예에 감탄하면서도 불가능한 작전을 실행할 수 있는 법칙 외의 무력.

즉, 시온이 말한 차선책은 언제든지 가동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이었다는 얘기지 우리 둘을 모두 처리해 부르스 가문을 종지부 내고 나라를 차지하겠다는 것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냥 오신 게 아닌 것으로 보이는군요. 저와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지금 맞습니까?”

고드에게 주어진 정보라고는 단 한 줌의 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때의 대첩 이후로는 점심조차도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러면서도 내심 시온의 명예에 감탄한 와중이었다.

‘나였다면 바로 독살을 지시했겠지.’

그게 고드의 방식이었다. 그냥 죽음으로 끝을 내는 것. 계승권의 복잡함도 그런 식으로 끝을 봤다.

“맞다. 지금 상황을 전해주마. 우리 가문은 지난 세기 동안 단 한 번도 맞이해보지 않았던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이반의 입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반은 시온이 주는 경고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이제 마음이 기울어졌다.

‘이제야 나를 바로 안내해 준 의미를 알겠다. 선택하라는 뜻이구나. 설득하든지 아니면 둘 다 끝을 내겠다는 거겠지.’

거기까지 염두에 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시온이 본 것은 그냥 호의 정도를 사기 위해서 이렇게 조치를 한 것. 둘 다 베어버리면 딱히 병력에 손대지 않은 이반에게 속해있는 왕들이 바로 협력해 버틸 것인데.

다시금 전쟁이라는 수단을 잡지 않는 이상 쉽게 되진 않을 거였다. 일일이 찾아다니는 건 이제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시온에게 있어서는 이반이 그냥 대왕이라는 작위를 넘기고 그냥 봉신으로 들어오면 가장 좋았다.

여전히 강력한 배신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남기야 하지만, 그것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이것만큼 효과가 좋은 수가 없었다.

“그렇지. 무조건 그렇게 하는 거다.”

“약간 정신적인 힘이 많이 드는군요.”

시온은 강체술을 가르치는 에릭과 필립스를 보고 있었다. 필립스는 예전에 봐둔 자질대로 대성하고 있었다.

말이야 에릭한테 존칭을 붙이고 있었지만, 실력이라고 한다면 거의 동급에 육박했다.

‘혹시 모르니까. 아주 위험한 건 투입을 안 시켰지.’

그래서 일단은 경험을 쌓으라고 서부 지역의 무법자들을 정리하라고 보내둔 거였다.

‘필립스까지 강체술이 잘 돌아가게 된다면 한 번 의견을 모으게 해서 체계적인 훈련법을 만들어도 상관이 없겠군.’

원래 이런 것은 제국의 기사수도회에서 독점적으로 하는 거였다. 아니면 뿌리가 거기에 있어야 하거나. 당연히 시온의 기사단은 그런 것이 없었다.

얼마든지 트집 잡힐 수도 있다는 뜻.

황제가 얼마나 시온을 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봐야지만 다음의 수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말씀하신 대로 이반과 고드를 접견시켰습니다. 그리고 왕을 뵙고 싶다는 요청이 왔습니다.”

“벌써? 뭐 상관없나.”

초이의 고드에 대한 평가는 아주 각박했다. 어지간히 고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벌써 말입니까? 저는 한 일주일은 넘게 걸릴 줄 알았는데요.”

에슬린이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말했다.

“예상 밖인데요??”

마리온도 의견이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갇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시온도 긴장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이들을 처형하고 재침략을 짜야 하든지 아니면 알바의 거대한 지대가 세력으로 들어오든 지의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왔군.... 시온 니벨룽.”

고드가 여전히 고집스러운 얼굴이었다.

“시온 왕. 아들과 결정을 내린 일이고 이것은 그대가 나에게 약속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 그래서 생각은 잘 해봤나? 나는 그대들에게 충분한 조건을 제공했다. 선택의 순간이다.”

“가문을 살리는 것이 명예보다는 우선이겠지.... 눈으로 보니 그때보다 강해졌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시온 니벨룽! 나와 아버지는 당신의 가문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

에슬린이나 마리온이나 이 줄다리기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온 지 이틀 만에 결정이 난 거였다.

“받아들인다. 나에게 서약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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