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304)

대관식

이곳의 문화상 어느 지역의 권력의 행방이 바뀌게 되면 반드시 그 상징성을 알려야 했다.

“저 군대의 주인이 이제 우리의 대왕이시란다.”

“반지가 세 개. 저게 어디 가문이지?”

“니벨룽 가문을 몰라? 사람이야? 시온 경의 가문이잖아.”

“시온 경? 시온 님의 가문 문장 기가 저거였나?”

반지 문장은 이제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자수성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던 거였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막대기 놀이를 하다가도 자신이 시온 이라며 서로 다퉈댈 정도였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사람들의 반응이 좋지?”

마리온이 뻗어있는 인파와 성대한 개선식을 보면서 의문을 가졌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지만 배타적인 경향이 강한 이곳에서 누군가를 절실히 원한다는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내가 그러지 않았어. 지금 기사든 마법사들이든 시온 님 얘기밖에 없다고.”

“누가 그걸 몰라? 폭시 가문의 정보력은 네가 가진 새들보다 뛰어나. 의외라고 한 건 이곳이 가진 특수성이지.”

“하지만 네 가문의 새들이 마탑의 사정을 알기는 어렵지.”

에슬린이나 마리온의 신경전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원인이라고 한다면 누가 더 시온과 가깝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지 겨루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던 것. 그리고 이것이 중요할 정도로 시온의 인기와 권력은 점점 강해져 가고 있었다. 이들은 시온이 등용해서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들 주위에서 잘 나가는 자로 인식될 정도였다.

마리온 같은 경우, 샤를 왕이 몰락하고 폭시 가문은 더욱더 몰락할 예정이었지만 시온에게 등용이 되고 나서 다시 없을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시온은 거대한 돌산을 마주 보게 된다. 운명의 거석. 알블린 안에 이 지대의 권력을 쥘 수 있는 자로 판명이 나려면 운명의 거석을 올라, 그 맨 위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대왕의 권력을 계승 받으면 된다.

시온이 하려는 것은 그것이었고 제국의 권역이 아닌 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계승권을 받는 것이 최고였다.

“올라가셔서 저기 위의 운명석에 앉으시면 됩니다. 알바 대국의 모든 힘은 저 운명석에서 나오고 다른 자에게로 전해집니다.”

고드 부르스가 시온에게 나직이 설명했다. 원래라면 그가 앉았어야 할 자리. 그런데도 그의 얼굴은 침착했다.

‘그때 이후로 상당히 얌전해졌어.’

자처해서 했던 그 결투는 그의 얼굴에 상처를 남겨 놓았다. 주먹에 맞아서 쓰러졌을 때 근처의 날붙이에 긁혀서 얼굴에 흉터가 남은 것.

‘뭐, 각기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시온은 이들이 가문의 생존을 최우선시했다는 점을 점점 믿었다. 아니라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지만, 이들은 그럴 마음은 없는 듯해 보였다.

“순도 높은 성유입니다. 뭐라고 할까. 운명의 산에서 일 년에 몇 방울씩밖에 모이지 않는 겁니다. 그만큼 귀하기도 하고 아니 그걸 넘어서서 진귀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니까 이것을 신에 대한 서약이 끝나면 제가 이것을 시온 님의 머리에 뿌릴 겁니다.”

“그리고 제가 왕홀과 왕장을 드릴 것인데.”

이반은 허탈하게 고드는 여전히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런 식으로 절차가 끝나게 되면 알블린의 대한 권력과 대왕이라는 거대 작위가 가지는 권력이 시온에게 계승되게 된다.

‘어느덧 여기까지 왔군.’

시온도 긴장일 될 수밖엔 없었다. 시온이 초기에 가졌던 목표는 그냥 남작 정도의 작위에 자기만의 가문을 꾸려 나가겠다지만 어느새 판권을 좌지우지하는 패권 세력의 주인이 된 거였다.

“법의는 전통적으로 일드 왕이 주는 것이지만 현재 아버지가 통풍이 심한지라, 제가 그 권리를 대행 받아 수행하겠습니다. 예.”

귀네드 공작이 일드 왕의 대행으로.

“제 주제에 이 보검을 전해 드릴 줄이야.”

젊은 스코트 왕은 시온과 같이 결혼도 하지 않은 자였는데 알게 모르게 시온을 존경해온 듯 깍듯이 행동했다.

마지막으로 아일 왕은 어린 여자였다. 그러니 정식 명칭은 여왕이었다.

대충은 알고는 있었다. 다만 어린 여자이기 때문에 이 여자가 진정한 권력을 쥐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즉 배후가 있을 거라는 거다.

“미리 연습을 해뒀어요.. 축...축사는 제가 해드릴게요..”

긴장한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것 같은 이 여자애는 엘리제 라고 했다.

“그럼, 난. 아니 전. 운명석이 붙은 왕홀을 머리에 쓰여 드릴 거여요.”

백옥같이 흰 피부에 주근깨가 조금 섞인 소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시온은 고개만 한 번 끄덕였을 뿐이다. 이들과 올라가게 되면 이들의 공격을 받아 그곳에서 곤경에 처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계승자가 무산된 역사가 알바 대국엔 있었다.

하지만 시온이 저기서 당한다? 지나가던 소년이 비웃을 정도의 차원이 다른 개인의 무력의 차이가 있었다.

“올라가 볼까.”

시온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삼천 개 정도 있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온이 올라갈 때마다 계단에 서 있는 기사들이 칼을 뽑아서 사선으로 올렸다.

어떤 기사는 시온의 가문 깃발을 높게 올렸다. 모두가 존경심을 담은 듯이 동작 하나에도 정성이 들어 보였다. 

시온은 그냥 여기 관습이니 준비를 하라고 넌지시 지시를 해둔 것이지만 이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한 거였다.

날씨는 맑았고 주변의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매미 소리가 한창이었다.

“그 보기 어렵다는 왕들이 모두 참석을! 시온 경을 대왕으로 받아들였구나.”

“듣자하니 시온 경은 대마법사이기도 한데다가 굉장히 금전 감각도 있는가 봐. 바로 가도 사업에 착수하셨다니. 우린 대단한 행운을 맞이한 거지.”

“너무 멋져...”

“누가 시온 님의 아내가 될까?”

“조만간 그게 열리겠어. 준비 잘해야지.”

자연스럽게 시온과 결혼할 상대방이 궁금해지고 있었다. 최고의 세력가도를 달리고 있는 시온과 결혼한다는 것은 지금 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맹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시온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인 마법기술부터 신용과 평판으로 이어진 막대한 무역 거래 등. 금전적으로도 무력적으로도 시온은 어떤 제후들에게도 탐이 나는 자였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 알블린 말고도 다른 도시에서도 몰려온 탓에 인파는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을 노린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들이 돌아가게 되면 모두 시온에 대한 입방아와 각 왕과 이반과 고드가 시온에게 꺾였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여긴가.’

시온은 일반인들은 한 번도 올라올 수가 없는 특별한 장소인 이 돌산의 끝자락에 올라갔다.

그렇게 큰 산이 아니라 구릉지 같은 정도,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건 빼곡하게 룬 문자가 새겨진 운명의 돌이 놓여 있었다.

“계속- 후아. 미칠 것 같아... 후욱.”

유독 눈에 뜨이는 건 엘리제로 홀을 직접 들고 왔기에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꿋꿋이 들고 왔다.

그리고 아까 이들이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절차가 진행되었다. 축사와 시온의 서약. 다시 운명석에 권력을 반환하는 이반 대왕.

“모든 전설이 모여 있는 보검입니다. 받으시옵소서.”

스코트 왕이 보검을.

“이 법의는 왕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가 담긴 법의가 이렇게 새로운 주인과 새로운 가문을 모시게 됩니다.”

귀네드 공작이 법의를.

“후우- 모든 지혜가 담겨 있는 이 왕관을, 어떤 왕도 보지 못했던 미래를 보시는 시온 님에게 바쳐요..”

엘리제가 왕관을 주고 고드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절대로 안 된다는 법은 없겠지요. 오랫동안 저희 가문이 계승자에게 미리 보관시키곤 했던 왕장입니다. 이 쌍두독수리를 시온 님에게 전해야겠습니다.”

고드가 그렇게 독수리 왕장을 넘긴 뒤.

“옛날부터 이 순간이 언젠간 올 것이라고는 예언이 있었지만, 그것이 나일 줄이야. 그리고 이 예언을 가진 자는 정말로 세상의 경배를 받게 된다고 했소. 정말로 나는 그것이 내 아들일 줄 알았지만 이로써 이것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 같소이다. 성유를 뿌려 드리겠소. 그때 했던 그 약속을 지켜주겠소?”

약속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최종 권력을 이양받고 하나의 왕으로 하부 권력을 존속시켜 이들의 가문의 목숨을 보장해주는 것.

모든 게 눈치로 돌아가지만, 이것이 이 지역을 가장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하지.”

마나가 가득 담긴 성유가 시온의 머리 위에 뿌려졌다. 시온도 이렇게 정식으로 큰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축축할 거라는 느낌과 다르게 뿌려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바로 증발해 신기한 액이었다.

‘마나가 증진됐군.’

푸른 액보다 효과가 좋았다. 아마 에슬린에게 뿌려졌으면 바로 막대한 마나를 얻었을 것이다.

효과야 이것이 높긴 한데 애초에 들었을 때 십 년 동안 모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니 상징성이 짙은 것이라고 봐야 했다.

ㆍㆍㆍ

전체적으론 이런 느낌이었고 대국의 모든 권리가 시온에게 이양되는 것은 알바 거성 안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대왕답게 알바의 거성은 규모가 시온이 알고 있던 어떤 거성보다도 컸다. 굳이 비교할만한 대상이라고 한다면 제국의 수도밖엔 없었다.

앞에 뻗어 있는 대정원은 분수만 팔 백여 개였고, 각 후궁이 가지게 되는 거대한 방들과 대왕과 특별한 신분만이 쓸 수 있는 마나실부터 그 크기가 다 장대했다.

여기에 머무르고 일하는 자들만 해도 천 명이 넘는 귀족이 있었고, 시온은 그래서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계획은 이곳을 직접 침입해서 이반을 잡아내겠다는 거였고 정식으로 침입했다면 아마도 상당수가 죽었을 거였다.

“이제 대관식도 하셨는데, 이반을 부르긴 했습니다만, 계속 그를 쓰실 겁니까?”

“써야지. 시온 대왕님의 명성이 달려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코르도바 장군. 저는 시온 님의 의견을 물어본 겁니다. 마탑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하죠. 받았지만 여전히 그와 고드가 위험한 자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제 밀정들도 모두 애매한 정보들을 모아오고 있고요.”

“밀정 놈들은 애초에 애매한 것들을 모아오니까 밀정 놈들인 거야. 에슬린. 분별해서 보란 말이지.”

“두 분 다 맞는 말이시긴 하지만, 지금 왜 이렇게 이 문제가 뜨거운 이유를 아십니까? 누구를 처리하고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시온 님께서는 후사를 보셔야 합니다.”

“음.”

지금껏 바쁘게 달려왔으니 후사를 봐야 한다. 그건 중요한 측면이 있었다. 어쨌든 시온이 하던 것도 그런 부분에 달려 있었으니.

‘후사를 보기 위한 여자라. 아직 생각은 안 해봤는데.’

“굳이 지금 해야 하나?”

“당연하죠! 대왕님!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대왕님의 힘을, 수많은 음모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후사를 보셔야 한다는 겁니다!”

에슬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첩을 많이 두셔야 하고. 정실은 나중에 정하셔도 되긴 합니다. 하지만 첩의 숫자는 정해져 있으니 신중하긴 해야 합니다.”

꼭 정실을 미리 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시온은 대왕이니 기본적인 네 명의 제약에서 벗어나 좀 더 구할 수도 있었다.

물론 마탑에 따로 돈을 줘야 했고 대마법사들의 부탁도 들어줘야 했지만 말이다.

“수? 무슨 말이야. 여기는 알바고 이곳의 작위를 받은 시온 님은 이곳의 풍습을 따라도 돼.”

“풍습? 그러고 보니.”

시온이 중얼거렸다. 그때 봤던 여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거였다. 물론 그중에서 높아 보이던 여자들과 잘 얽히고 소개를 받아서 이반에게 도달하긴 했었는데...

“알바는 전통적으로 첩에 제한이 없습니다. 이곳은 하렘이 인정되는 제국 외 관할이니까요. 물론 마탑에서 번번이 개입하려고는 했습니다만, 긴 시간이 흐르고 굳어져 버렸습니다.”

하렘은 원래 동방 제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관습이었는데, 보통 여기에 많은 미녀를 모아놓고 관리하는 것은 후사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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