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 (2)
“대왕의 자리에 오르셨으니 하렘을 가지는 것도 권력 유지에 필수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짓느냐가 문제인데.”
“굳이 여기에 할 필요는 없긴 합니다. 알바의 관습을 가진다 해서 이곳을 거점으로 잡기엔... 아무튼, 개방적이진 못한 곳이니까요.”
“이반에게 물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티격태격하더니 시온이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흠. 다른 왕들도 하렘을 가지고 있나?”
“현재 아일 여왕인 엘리제를 빼고는 축첩이 있습니다. 다만, 스코트 왕국은 재정이 딸린지라.”
하렘은 그것 자체로 과시적인 목적과 힘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다. 따라서 여자들이 거주할 규방은 사치스럽게 만들어지기 마련이었다.
이에 따라서 유지해야 하는 비용이 감당이 안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이 관습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충분한 재정이 받쳐줘야 가능한 것이었다.
“해볼 만한 일이고 후사를 보게 되고 동맹이 늘어나면 시온 대왕께서 확보한 영지는 굳어질 겁니다.”
“대왕님. 물론, 대왕님이 큰일이 벌어지겠다는 얘기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 밑 사람들은 긴장돼 죽을 지경입니다.”
그만큼 시온이 측근에게 권한 대행을 시켜놨지만, 그 밑에 사람들이 시온이 맡긴 사람을 신뢰하는 건 오직 시온 뿐이었다.
기이할 만큼, 단 한 번도 역사에 출현한 적이 없는 세력의 형태였다. 모든 게 시온의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밑바닥부터 위까지 시온이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과감하게 선택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긴? 무조건 움드에 거래를 터라! 무슨 일이 있으면 어차피 시온 경과 충돌할 것인데! 과연 그것을 감당할 만한 자가 있을까?
-제일 중요한 건 돈이 아니지. 바로 사람이지. 그리고 그 인기의 절정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제일 중요하지.
무역 상인들에게 있어서 시온은 일종의 보증된 투자처였다. 그러니 앞다투어 움드에 금화를 밑지고 던지고 보는 자들도 많이 있었다.
“한 번 움드에 가보시긴 하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명예를 증명하신 건 귀족이든 평민이든 제후들이든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코논과 벤츨의 제자들을 증편하셨지요?”
알블린으로 오기 전에 시온은 그들에게서 서약을 받았다.
“아. 그랬지.”
“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전 실제로 그랬거든요. 예전에 구상해둔 부분뿐만이 아니라 거대한 건물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관세에 대한 대금을 그런 자재로 받을 정돕니다. 벤츨님이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군요.”
“다른 이명 때문에 가려진 시온 경의 진면목은 전략가가 아닌가. 당연히 사람의 가치를 보고 발탁하시는 것은 세계 누구라도 감탄할 부분이지.”
‘움드라.’
시온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계속되는 보고로 처음 그렸던 그림이 맞아떨어지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듣자하니 제국이든 동방제국이든 북방의 유목제국이든 그곳을 드나드는 무역 가문들이 막대한 돈을 움드에 투자를 하는 모양.
‘그때 구상해뒀던 건 그냥 초이에게 맡기고 다른 급한 지역의 문제부터 처리해야겠다, 이긴 했는데.’
잘해준 수준이 아니라 상으로 작위를 하나 챙겨줘야 할 정도였다. 물론,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작위를 챙겨줄 계획이었다.
-잘 해줬다고요? 아닙니다. 주인님. 저는 아직도 너무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많은 일에서 제가 한 것은 그냥 펜대를 굴리고 상성에 맞는 사람들을 구별하고 대화를 했을 뿐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망상일 뿐이지요. 반드시 해야 할 위대한 일은 주인님께서 하셨으니까요.
대관식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이긴 했다. 그래서 가자고 했는데 극구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거절했다. 아르본과 움드의 해로를 뻔질나게 다니며 지금도 일을 하는 중일 거였다.
결국은, 대강의 방향이 정해진 느낌이다.
“그럼 다들 생각이 그러하니 그쪽으로 가볼까.”
대왕으로 올라간 직후 열리는 연회는 분노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시온을 반긴 것은 아니다. 게다가 시온은 분명히 일강에서 대단한 전투를 치렀다.
“어디 그 전투에서 가족을 잃은 자가 한두 명입니까? 그렇게 자기 이익을 앞세워 지금 분위기를 망치시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이 울분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좃같을 때는 여기 포도주나 처먹어! 웃으라고. 아무튼, 거기에 대한 보상도 다 따로 챙겨주실 예정이라는 소문이야.”
“어떤 또라이가 그런 얘기를 해?”
“그러면 명예가 저리 높은 시온 경이 이만한 일을 그냥 넘길 것 같나?”
공작들끼리 여러 이야기가 왁자지껄하게 돈다. 그 정도로 울분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강체술까지 익힌 시온은 자연스럽게 특유의 기세가 흐르게 되었다. 거기에 대한 점은 아무도 그 원인을 모를 정도.
그러니 다들 시온에 대한 존재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경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시온 님은 우리의 가족들보다 중요한 부르스 가문을 사면하지 않았나?”
“그것도 그렇지. 어떤 자가 적수에게 그렇게 행동한단 말인가.”
말이야 그렇지 어지간하면 자기 가족이 더 중요한 법. 그러나 이런 곳에서 암묵적으로 흐르고 있는 건 군주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온이 했던 그 장대한 결과는 외부의 사람들에게까지도 각인되어있는 사건 여기에 대해서 왈가불가하는 것도 가문의 명예에 치명적이었다. 그것은 정당한 전쟁이었으니 말이다.
굳이 여기 식대로 해야 한다면 뒷공작이 들어갈 수밖에 없긴 하지만 모두가 뒷말을 삼킨다.
-판단을 잘해야지. 실수했다간 직접 밤중에 찾아올지도.
다른 자들과 달리 기본적으로 시온의 적이었던 자들은 공포심도 동시에 각인되어 있었다.
전투를 직접 본 자들은 더욱 그랬고, 하다못해 악수를 한 번만 해봤어도 그 강대한 마나의 잔류에 정신이 번쩍들 정도다.
물 것을 태워 연기를 뿜으며 공작 하나가 말했다.
“그리고 네가 너희와 사냥도 같이 한 인연이 있어서 해주는 말인데, 내가 정보를 하나 얻었어.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하지 말고 믿어. 움드를 얻고 나서 일부러 남작들을 초대하고 함정에 빠트려 반란죄로 작위를 되돌려 받았다더군.”
“허, 지금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혀를 무조건 잘 놀려라. 우리는 지금 새로운 대왕에게 남겨야 할 자들인지 아닌지 평가를 받는 거야.”
분위기는 바로 반전이 되어 모두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다.
물론 시온은 음식 섭취와 즐거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건너온 방식들이 다른 자들의 탈선을 막고 재정립을 계속해서 시키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때 협정 내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 권한에 대한 확인을 지금 받았으면 합니다.”
이반이 그렇게 옆에서 말을 꺼냈다. 결과적으로 알블린 지역의 대행권을 여전히 부르스 가문에게 내달라는 것.
“그걸 꼭 지금 말하셔야겠습니까? 아버지.”
고드가 바로 핀잔을 줬다. 애초에 합의된 내용이 아니었던 듯.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이 가장 적기인 법이다.”
솔직히 시온도 지금이 적기라고 봤다. 예전에 비슷하게 자링 가문에게 받아낼 때 비슷하게 받아낸 적도 있었다.
에슬린이 기침을 했다.
“지금 한 번 더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격하된 지역권인 머시아 왕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랬지.”
시온이 답하자 이곳에 있는 중신이 모두 시온에게 얼굴을 쏟았다. 여기서 시온이 이반 왕을 더 격하시키겠다거나, 알블린의 대행권을 주지 않겠다 하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뭐 작위를 내준다는 것이 아니니까. 나중에 하는 거 봐서 돌려받아도 되고.’
좋은 억제 형태로 작용할 거였다. 이반으로서는 시온의 명령에 충성을 다하고 공을 세워 알블린 작위를 되찾아야 할 거였고, 시온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심사하기만 하면 됐다.
‘거절한다고 해도 이쪽이 더 나아서 어거지로 줄 거긴 했는데.’
생각보다 전전긍긍한 모양.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반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꺼져가던 가문의 촛불이 다시 목숨을 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반은 시온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봐라, 나한테서 앞으로도 계속 배우거라, 라는 표정으로 고드를 보고 있었지만 고드는 심각하게 다른 생각에 골몰해 있는 도중이었다.
머시아 왕위가 남아 있으니 다시 계승자의 지위도 회복된 상황. 아버지를 도와 남은 권력이라도 잘 추스르기만 하면 되는데.
“좋아, 말하자.”
갑자기 중얼거리더니 느닷없이 시온의 앞에 갔다. 얘 또 왜 이래? 시온은 또 무슨 돌발행동을 할지 궁금해지는 상황.
“내 방식대로 대왕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번부터 생각했던 건데 조심스러웠습니다만, 이 기회에 말을 해야겠습니다.”
“뭔데?”
“니벨룽 기사단에 입단하겠습니다.”
“???”
“아니! 무슨 소리를-”
바로 이반이 억 소리를 낼 정도였다. 기사단이라는 것에 보통 차남들이나 삼남들이 모여있는 이유가 있었다. 기사 서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입단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계승권을 버리겠다는 건가?’
시온도 바로 그 생각이 들 정도. 물론 고드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 현재 입단을 시켜도 바로 최전선에 돌진시킬 수 있을 정도의 사내라는 것은 시온이 직접 입증한 바였다.
“......”
“마치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이시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전 계승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사로서 대왕을 섬기고 전선에 나가 전장에서 숨 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전제하던 것이 다 이 녀석 때문인데.’
어차피 결과야 얻었으니 상관이 없지만 모든 협정의 중심이 고드에게 계승권과 상속권을 남기는 방향으로 요구를 맞췄던 거였다.
‘저번 결투가 원인이었나.’
시온의 강대한 힘을 확인하고 나서 그냥 숨겨왔던 꿈에 눈이 뒤집힌 모양.
음악이 뚝 끊기고 천여 명의 귀족들이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골 때리네.
딱 봐도 고집이 쇠고집이다. 그러니 거부한다고 해도 어지간히 귀찮게 할 거였고....
‘반란은 이런 놈이 일으키지. 사유야 웃기겠지만.’
“그러면 네 가문은?”
“어, 음. 막 태어난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있었다고?”
“아. 예. 공식적인 아이는 아닌데. 그래도....”
“알았다. 뭐 들어주지 않으면 난리 칠 분위기니.”
고드의 니벨룽 기사단의 입단.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볼모까지 확보해버리게 된 것이 된다.
ㆍㆍㆍ
일단은 하렘을 지을 위치와 크기도 문제였다. 여자를 구하는 방식도 결정해야 했다.
동방 제국에서는 희한하게도 사로잡은 노예 출신들을 후궁들로 만들었다. 약탈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인지라 그런 것이 관습으로 굳어버린 거다.
‘일단은 그럴 필요까진 없고.’
“자식을 보셔야 하긴 해요..”
마리온이 느릿하게 말했다.
“얻은 지역이 지나치게 넓어져서 묶어줄 직계의 피가 필요해요.”
시온의 원래 가문도 있고 형제들도 있지만, 이들에게 그만한 힘을 부여하기엔 어려웠다. 오직 시온에게서 나오는 핏줄이 각 지역의 통치권을 부여받게 될 거였다.
“성장 시기를 생각하면 지금 좀 늦긴 했습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얻어야 하고. 그리고 먼저 정실을 얻으셔야 합니다.”
그랬다. 시온도 장자상속 때문에 어이없는 차별을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 얻은 권리를 확실케 하는 것은 역시 장자 상속이었고,
‘분위기 보다가 나중엔 선출로 바꾸면 되니까.’
많은 자가 시온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은 지금 기준대로는 가주는 편이 좋다는 것이 시온의 생각이었다.
“제국에서 계속 와달라는군요. 한 번 가서 황제와 대화를 해보시는 편이 좋아 보여요.”
“잡아줘야 할 일이 있긴 합니다. 지금 황제의 눈이 뒤집혔을 겁니다.”
제국이 자신을 토사구팽 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만연해 있었다. 다만 너무나도 빨리 적을 처리하고 그 적을 흡수하니 그 음모들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