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8화 (228/304)

제국으로 가는 길(2)

새롭게 건설된 사보이 항구는 여러 물자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 항만엔 군사적 긴장감이 차 있었다.

“해적들은 끝이 났습니다. 엔츠 단장이 잘 해줬습니다. 기사 서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일단은 포로들을 한 번 보시지요.”

“알았다.”

시온은 어레이가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기본적으론 처형이 답이긴 한데.’

법을 확립하고 공포를 주면 이런 해적단이 겁을 먹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항상 효과는 좋았다.

“어지간하면 살리는 게 좋긴 합니다.”

엔츠가 시온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지만 코르도바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당연히 법대로 처형해야 합니다. 예전부터 해적 놈에게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제 얘기를 하는 겁니까?”

“음. 아니라곤 못하겠군.”

코르도바의 공공연한 모욕에 엔츠의 얼굴이 빨개졌지만, 코르도바가 만만한 인물은 전혀 아니었다.

기사로서도 용맹함과 실력을 갖췄고 시온이 신임하는 장군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단독적으로 죄를 물어 엔츠를 처형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했다.

엔츠가 기사였다면 여기서 바로 결투를 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용병들은 원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 시온이 기사 서임을 내려준다고 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발언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코르도바뿐만 아니라 주위의 시선도 곱진 않았고, 그는 공이 있지만 여기서 시온에게 잘 말해야 했다.

‘요즘 들어 상당히 시선이 부담스럽군.’

적뿐만 아니라 입지가 애매한 자들은 모두 시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게 되었다.

‘대략, 마리온에게 들었을 때 내가 한두 번 말을 잘못 던지면 다른 자들도 그를 따돌린다는 얘기도 있고.’

“제가 잡은 녀석들이 굵직한 녀석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해적 놈들이란 건 꼬리가 상당히 길기 마련입니다. 보십시오. 이들을 처리한다면 겁에 질린 녀석도 있겠지만, 이를 물고 복수에 혈안이 되는 녀석도 많을 겁니다.”

“그 녀석들도 죽이면?”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기색이 달라졌다. 시온이 마음을 먹고 직접 움직이면 해적 따위는 시간문제일 거였다.

‘다만 여기에 퍼붓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약간의 보복 약탈이 있다고 해도 그냥 감수할만 했다.

크게 보자면 더 큰 것을 노리고 기생충 같은 건 감수하는 게 맞았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만, 이들을 규합한다면 제대로 된 함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기야 동방 제국에 감당할 만한 함대가 있어야 했다. 전통적으로 동방 제국은 서방의 여러 나라에 인신매매를 강행했다.

그것을 군도의 여러 해적이 수행했고 다시 동방제국에서 덮어주는 식이었다.

시온이 그것을 잡는다고 그들이 자기들의 전통인 약탈 문화를 포기할까? 그럴 리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압박할 거였고 이제 시온도 세력이 커져서 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

“얄미운 자네요. 그렇지만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는 에슬린이라면 분명히 좋아했을 제안이에요.”

마리온이 가만히 보다가 시온에게 조언했다.

“보병과 달리 수군은 키우는데, 배의 힘이 들어요. 지휘할 기사들은 더 손에 꼽죠. 동방 제국에서는 대를 물어 바다에 나갈 기사를 키우지만, 제국은 그런 부분까지 기사의 자유를 뺏지는 않아요. 기사 중의 기사이신 대왕님이 더 잘 아실 거여요.”

‘그랬나?’

시온은 매달려 있는 자들을 쓱 훑어보며 말했다. 시온이 등장하자 아주 난리가 났다.

“드디어! 대왕님. 목숨을 간청합니다!!”

“간청한다고 살 수 있겠나? 소문대로라면 우린 어림 없이 참수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수밖에는.”

나쁜 짓을 하던 놈들도 자기 목숨이 급하면 저자세가 되기 마련이었다.

시온이 소리가 가라앉고 한참이나 지나 정적이 찾아왔을 때 이들이 간절히 바라던 한 마디의 대답을 해줬다.

“좋다.”

“설마!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는 겁니까?”

“허. 해적 놈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건. 언제든 배신을 하고 동방 제국에게 붙을 녀석들입니다.”

“승인? 그러시다면 조건만 좀 더 까다롭게 잡는다면 괜찮다고 봐요.”

“그래. 마리온이 세부 조건을 잡고 엔츠, 네가 책임을 진다. 어레이. 네가 엔츠에게 서임을 준비해주고, 이러면 그림이 나오는군.”

순간 여기저기서 시온이 벌인 기적에 흥분한 목소리들로 가득 찼다. 조건이라곤 별것 없었다. 

일단은 볼모로 잡을 만한 아들이나 부인, 조카나 형제가 있을 것.

두 번째는 엔츠가 책임을 질 것. 그의 계획이니 문제가 있다면 그의 목을 날려버리겠다는 전제조건을 주면 된다.

“기...기사를? 영광에 감사드립니다.”

“계단을 잘 밟아봐라. 어레이에게 받아야 하는 건 약식 서임이니 공을 세우면 내가 서임을 내려주마. 그 공이 뭔지는 잘 알 것이고, 다른 자들도 그만한 공로가 생기면 기사로 승격할 기회를 주겠다.”

ㆍㆍㆍ

사보이에서 도착한 시온은 간단한 시찰을 마치고 바로 제국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야영을 해야 하는 밤. 합류한 에슬린이 시온에게 대화를 청했다.

“아니 뭐, 지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니 일단은 알아 두셔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해 드립니다.”

“뭐지?”

“동방 제국이 드디어 연합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했답니다. 당연히 개판인 그곳에서 동방 제국을 감당할 수 있지는 않고 누가 봐도 실제 노리는 바는 디드리히의 제국이지요.”

“흠....”

“북부에서 막 만들어진 유목제국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원래는 자기들끼리 싸우는 일이 많았는데 새롭게 오른 대칸이라는 자가 벌이는 침략 전쟁으로 동방의 대국 두 개가 멸망했습니다.”

“그 녀석들도 황제에게 시비를 털고 있나?”

“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살아남은 왕의 혈족이 마탑에 망명 신청을 했습니다. 그냥 다 죽었으면 합니다만, 실제론 굉장히 복잡한 일이 에게 해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

“마탑에서는 끌어오려고 하고 제국은 비밀리에 암살자를 보냈습니다. 게... 다가 라레테저닛의 헨리는 거꾸로 그걸 방해하려고 사람을 따로 꾸려서 보낸 것 같고. 거기에 샤를 왕도 가담한 모양입니다.”

“샤를이? 마리온을 불러와.”

시온은 새롭게 연습 중인 쇠뇌를 겨누고 앞에다가 쏘는 걸 반복했다.

‘활은 각궁 쪽으로 도입해야겠다.’

유목민족이 쓰는 각궁에 대한 얘기는 예전에 사냥꾼들의 모임에서도 종종 들었었다.

“대강의 얘기는 오면서 들었어요. 따로 사람을 꾸려서 보내보겠습니다.”

“몰랐나?”

마리온의 얼굴이 당황해서 붉게 물들었다.

“제 오빠들과 여동생들이 힘을 주고 열심히 하곤 있긴 한데 죄송해요.”

“당연한 순서입니다. 폭시 가문이 카페 왕국에서 영향력을 잃는 건 말이죠. 샤를 왕이 절대 바보는 아니죠.”

“샤를이 가담하는 의도가 뭐라고 보지?”

“샤를 왕의 성격상... 이대로 포기할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니 이건 그의 어렸을 때의 일로 유추해볼 수 있죠. 힘든 상황에 놓일 때마다 약간 방향을 바꾸곤 해요.”

마탑 쪽의 의견은 에슬린을 믿을만 하지만 나라의 귀퉁이를 뜯긴 샤를 왕에 행보에 대한 뜻은 마리온보다 정확한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서부와 남부로의 방향은 포기했다고 봐야죠. 오히려 제국 쪽 땅을 얻는 것이 맞는다고 본 거에요. 그간의 전투 덕에 시온 님한테 노이로제가 걸렸으니까요.”

“노이로제?”

“예... 저번에 비슷한 얘기를 드렸던 적이 있죠. 길게 국사를 다루지 않거나 술을 먹고 괜한 중신을 감옥에 가두는 둥. 안 좋은 쪽의 성향이 강해졌다고 해야 하나.”

확실히 시온이 가지고 있는 두 명의 마법사들이 꾸린 밀정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이 가지고 있는 얘기와 조각들을 모으다 보니 대략의 정세가 나오고 있었다.

“새롭게 성장한 제국도 동방 제국도 디드리히가 가지는 제국도 이 세 개의 제국의 힘이 예측이 안 될 정돕니다.”

원래라고 한다면 제국이 무조건 가장 강했다. 가장 강하고 가장 영토도 넓고 좋은 지역이란 지역은 다 가지고 있었다.

제후들이 협조해야 한다고 해야 하는 제약이 없었다면 진작에 여러 왕을 전부 복속하고 다른 제국까지 침공했을 거였다.

하다못해 마탑 자체도 제국의 영토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형태인지라 이들이 가져오는 마법사 수급의 혜택도 가장 먼저 누리고 있었다.

최근에 시온이 그 양의 일부를 가로채긴 했어도 여전히 명실상부한 강자이다.

“하지만 거인이라고 해도 적이 많으면 다리가 꺾이고 쓰러지기 마련이죠.”

“적이 많아요. 동방 제국의 황제인 레이만은 제국 사상 최고의 술탄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어요.”

“일단은, 정리를 해보자.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향은?”

“아직은 명확하진 않아요. 외상을 봐야지 치료가 가능한 법이지요.”

에슬린이 바로 말했다.

“누구보다 얽매임에 자유로웠던 건 지금에선 강점입니다. 황제가 저희에게 가지고 있는 권한은 고작 움드와 사보이 지역에 대한 요구뿐입니다.”

코르도바도 깊은 고민에 빠진 모양이었다.

“고드가 니벨룽 기사단에 가입하고 나서 알바 지역과 서부 지역이 덩달아 안정화가 됐습니다. 운명산에서 대왕의 대관식을 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귀족이 아닌 민중들은 시온 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무슨 선택을 하든 민중이 기반이 되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힘이 없고 머리만 새우고 있는 꼴이 된다. 처음에 서쪽 지역을 받아들이면서 걱정했던 것은 이 단계에 도달하기 전이었다.

알폰소를 위시한 서쪽에서 목숨을 부지한 제후들의 의견이야 처음엔 중요했지만, 밑바닥이 깨지면 답이 없다. 

그들이 이끄는 백작, 그 백작에 딸려 있는 남작들의 수만 해도 여기에 줄을 세워도 끝도 없이 이어질 거였다.

게다가 기사부터 시작한 시온을 남작들이 미친 듯이 좋아했다.

위에서 낌새가 좋지 않으면 바로 시온에게 보고해올 정도였다.

“선택해야 한다는 거군. 그리고 그건 내 자유고 말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제국을 나눠 먹을지 아니면 제국에 힘을 실어주고 다른 지역을 챙겨 갈지.

물론 지금까지 그래 왔듯 시온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상황에서 시온이 무너지면 이 거대한 나라는 한 줌의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기반이 되어야 할 니벨룽 가문은 여전히 작았고 시온이 따로 이들을 챙겨주곤 있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나머지 가문의 구성원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머지 형제분들을 키워주시는 것도 한 가지 방향성이 되긴 해요.”

“마탑에서 벌어지는 꼬라지를 보면... 그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키워주면 고맙다지만 크고 나면 가장 걸림돌이 되어 버리는 것이 바로 다른 형제에게 작위를 주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열 받긴 하네. 어렸을 때 내 편이 없었는데 말이지.’

이런 개인적인 생각조차 들어가 있다. 굳이 차별 못 해서 안달이 나 있던 자들에게 지금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은 시온도 꺼려지는 일.

‘이것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아예 여기서 가문을 새로 만들어 버리거나. 좀 더 니벨룽 가문의 위명이 필요해지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시온은 다시 첫 번째 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그 망명 왕에 혈족의 도피에 별놈의 계략이 다 들어가 있다는 거잖느냐. 나도 참가해야 하나?”

“흐음.. 할 거면 뭐가 됐든 간에 보낸 기사가 사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제 밀정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라즘을 차지한 대칸이 보낸 장수들이 실력이 솔직히 잔혹하면서도 엄청납니다.”

“보내야 한다면 어설프면 안 되니 에릭 경이 가야 하겠네요. 하지만 최고의 가능성을 보자면.”

“내가 가야겠지.”

여기서 에릭을 잃을 수도 있는 곳에 보낸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들을 내 나라로 빼돌린다면 당연히 지금 치열한 정세를 주무를 수 있는 주도권을 쥐겠지만.

뭐가 됐든 지금 논의되는 것은 단순한 야영지의 밤에서 결정하기엔 후폭풍이 컸다.

‘관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

시온은 그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당장에 강체술조차도 기사들에게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에릭의 수준도 시온이 보기엔 위험도가 높았다.

그렇게 사보이 지역을 떠난 시온이 길을 따라서 브아송 가문이 다스리는 권역에 도달했을 때 낯선 자가 시온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딱 봐도 제국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