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9화 (229/304)

제국으로 가는 길(3)

“별자리를 보아하니 길조더군요. 오늘은 반드시 귀인을 볼 거로 생각했죠.”

시온은 바로 이 자가 동방에서 온 자라는 것을 알았다. 말의 높낮이가 제국어를 따라 하려는 자들이었다.

말을 거는 자는 제국의 복장이었지만 그 중 몇은 동방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확연히 났다.

은이나 실크 옷감에 구불구불한 문장이었다.

“아, 이런 갑자기 오실 줄이야.”

“과연 각오하고 볼만한 자다.”

“저자를 얻는 자가 다음 패권의 실마리란 건가.”

시온이 누구인지 이들은 바로 알아봤다. 사진 같은 것이 없는 이곳답게 초상화 같은 것을 보거나 그 사람을 본 자를 가신이나 금화를 주고 고용해 알아보지만 시온 같은 경우는 달랐다.

그냥 한미한 자가 불쑥 튀어나왔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도는 것은 거의 그렇다더라는 소문 정도였다.

“저자들은 누구지?”

“말로는 동방 제국에 비단과 진주를 대는 무역 상인들이라곤 합니다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곤란한 일이죠.”

“이번 일과 얽혀 있을 거고 아마 뒤에는 동방 제국과 깊게 이어져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들과 만나게 되면 동방 제국과 모의를 했다는 죄가 생기게 될 수도 있죠.”

이득을 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각을 보는 것마저도 제국의 입장에선 거품을 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어이! 이쪽으로 물품을 옮기거라!”

“어서 해. 따로 저지하기 전에 들여보내야 하니까.”

바깥에서도 남모를 경쟁이 있었다.

“정 그러시면 저희가 따로 만나고 위신은 챙기시는 방법도 있긴 한데. 만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긴 해요.”

“흠.”

시온은 잠시 생각했다. 현재 수도에 가서 황제를 보려는 것은 몇 가지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있을 평화가 관건이었다. 얻은 지역이 이제 광대해서 이곳을 가꾸고 가문을 만들고 여러 가지 사업을 키워내고 기반을 안정적으로 닦는 대에만 집중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서부가 내 생각엔 노다지 땅 같기도 해.’

날씨 험하고 척박해서 개간이 어렵고 식량을 대기 힘들어 인구가 한계가 있었다.

가도를 잘 피고 식량이 풍부한 지역에서 공급하고 앞으로 고렘들로 사람이 손대기 힘든 개간작업과 수로를 잇는다면 불모지가 막강한 지역으로 뒤바뀔 거였다.

“저것 들은 다 뭐지?”

“밖에는 더 더 있어요. 안에 들어오는 것들은 그중에서도 보여드릴 만한 거여요.”

“만나고 싶다고 준비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동방 제국의 이번에 들어온 유적 보물을 추렸다더군요.”

결론은 여기서 이들을 쳐내든지 아니면 만나서 대화를 해보든 지의 상황인데.

“일단 보도록 할까.”

시온이 결정했다.

“그렇군요. 이제 입단속을 시켜야겠어요. 에슬린.”

“기사들에게 말하기는 해두겠어. 밀정들에게도 다 얘기를 해 두겠고.”

다들 분위기가 긴장된 듯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시온과 교류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고 군사적인 동맹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깐 시온을 봤다가 초조하게 기다리던 자들이 시온이 안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적에 관심이 깊다고 하지 않았어. 준비한 보물을 밀어 넣은 것이 영향이 있지 않아. 맞잖아.”

“닥치고 갑시다. 그런 같잖은 것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겠다만.”

“것보다 단숨에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파악한 거겠죠.”

“끝이 보이지가 않는 자다. 기사들의 기사라는 거지. 그런 자가 우리의 정체를 알고도 문전 박대할 리가 없지.”

그리고 안으로 주르륵 들어왔다.

“시온 대제후를 뵙습니다. 저는 야부타 라고 합니다.”

“이것은 저희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밖에는 더 많은 보화가 있습니다.”

“그냥 줄 일은 없고 한 번 솔직하게 얘기를 해보자.”

허례 의식을 떠나서 단번에 용건을 물었다.

“뛰어난 명성답게 정의로운 자세이시군요. 동방 제국이라면 예의고 뭐고 얼굴도 안 보는 제후들이 많습니다.”

“그거야 지금 문제가 복잡하니 그렇지. 나를 바보로 아나?”

“자자, 일단 이것들부터 보시지요. 이브레 해안가에서 이번에 발견된 유적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안 받기에는 뭐한 것이 시온의 흥미를 끌만 한 것이 분명히 있었다.

“엄청 준비를 많이 한 것은 알겠다. 그리고 그건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고 맞나?”

“동방 제국의 환심엔 항상 대가가 있죠.”

“그런 면도 있지만, 저희는 항상 고귀한 자와 별자리가 짚어준 자에 대해서는 존경과 감사를 잊지 않는답니다.”

동방의 마법사는 흔히 점까지 보고 있고 그렇기에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가 흘렀다.

마리온이 사나운 얼굴이었지만, 비슷한 나이와 미모의 점술가 여자도 어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질질 끌건 없잖나. 나는 황제의 초대로 수도로 가는 중이고. 그리고 지금 굉장히 촉박하다.”

그들이 빠르게 속삭였다.

“베다, 안 돼. 천천히 선물을 먼저 드리고 친분을 쌓아야 해. 동행을 요구해.”

“갑작스럽군.”

“우리 모두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희한하게도 이 일행의 구성원은 동방 제국의 귀족들이 맞았다. 그런데 결정권은 베다라는 여자에게 있는 듯했다.

“예, 그러면 말씀드릴게요. 동방 제국에서는 지금 시온 님과 디드리히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저와 이들이 온 겁니다. 모두 제국의 베일릭의 자제이고 다들 동원할 수 있을 만한 군사와 영향력을 드릴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온 것이 맞겠군?”

안 그래도 오는 길에 현재 두 제국의 노골적인 충돌과 벌어지는 망명사건에 대해서 시온도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야 만은 했다.

무엇이 지금 확보한 영토와 권력을 유지 시킬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것을 노려야 하는지.

아마도 두 가지가 전부 포함이 되겠지만.

“그런 식으로 보기보다는 서로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조금씩이라도 맞춰볼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이고 앞으로의 관계까지도. 저희를 모두 여기서 포로로 만드실 건가요?”

“속내를 말하라곤 했지만, 어지간히 다 끄집어냈군. 포로로 만들겠느냐고? 그것도 가능한 일이긴 하지.”

“저희를 여기서 전부 죽이는 바보로 보이진 않습니다. 디드리히와 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옆에 있는 자가 바로 한마디를 했다. 제국끼리의 전쟁이라고 해도 봉신들이 거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따로 보병과 기사들을 시온의 영토에 침입해 보복하겠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못할 것 같나?”

모두 바로 말문이 끊겼다.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이 자의 지원을 받는 쪽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지도 모른다고.

물론, 처음엔 이들도 시온이 일으킨 새로운 권력에 강한 동기를 얻어서 온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것은 세력 적인 힘이었지 일개 개인의 힘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자라도 기본적으로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지금 시온이 주는 인상은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어떤 수단을 치러서라도 적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불연 듯이 솟는 그런 유형의 것이었다.

“어쨌든 그 말을 하신 것 자체가 저와 저희에겐 기회가 있다는 말씀이시겠죠? 만약 고려의 여지도 없었다면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모두 처리하셨을 테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정말 세간의 인식에서 한 가지를 더 넣어야겠군. 우리를 쥐락펴락하다니.”

“어찌 됐든 이 호의는 받으십시오. 저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시온 경 개인에 대해서는 존경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들은 동행을 약속받고 일단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진상이 된 상자들에는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형태의 값비싼 물건들이 가득했다.

‘상다리 휘어지게 챙겨줬군.’

밖에도 개인적인 금은보화가 있다고 하니 사람을 보내서 확인하고 바로 사람을 보내서 챙기면 되긴 했다.

“이건?”

그리고 시온은 특이한 형태의 작은 조각품을 손에 들었다. 쓰여있는 글자로는 비밀을 담고 있는 거였고 시온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총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ㆍㆍㆍ

생각보다 쉽게 총람 중 하나가 열리게 되었다. 아무래도 알바 지역과 동방 지역 두 곳에서 총람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건 가면서 차근차근 풀어보도록 하고.’

“양이 상당해서 어레이 경에게 사보이 성으로 보내라고 부탁해뒀습니다.”

“브아송 공작이 동방 제국 쪽에 가담되어 있다고 봐야겠지?”

“분명히요. 브아송 공작뿐 아니라 곳곳에서 편이 갈린 자들이 많다고 봐야지요.”

“제가 대략 얘기를 해본 결과. 동방 제국에서도 의견이 상당히 갈린 것으로 보이더군요. 저들은 모두 저희와 근접해 있는 베일릭의 자제들입니다.”

바다가 연결된 짧은 만을 포함해야만 하지만 시온의 영토는 동방 제국과도 국경지대가 닿아 있었다.

즉, 그쪽 베일릭의 의견은 최대한 자신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인 것으로 보였다.

뭐가 됐든 시온에게 직접적인 타격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비밀 협정을 맺을 수도 있겠지.’

두 제국이 충돌하면 황제는 자연스럽게 참가를 원할 것이다. 시온은 여기서 두 가지 선택할 수 있는데 봉신의 의무인 움드쪽의 병력만 내줄 것인지 전체 세력으로 참전할 것인지를 정할 수 있었다.

베다와 동방 제국의 서부 해안지대에 있는 베일릭의 자제들과 비밀 협정을 맺으면 그곳의 타격을 피해 다른 곳으로 들어가든지 우회 타격을 해서 서로서로 이득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후들끼리의 비밀 약속에 대해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죠. 그게 적이라면 더 그렇죠.”

주군이 전쟁한다고 해서 봉신들도 모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문과 자신의 영토와 이득을 철저하게 따져보는 자세가 만연해 있다.

“음, 시온. 그 점쟁이가 같이 말을 타고 싶다고 하는데.”

대강의 뼈대를 밑 기사에게 던져놓은 에릭이 빠르게 합류한 것은 어제였다. 동행이 시작된 것은 일주일이었고 그 와중에 이들은 철저하게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을 했다.

‘구워삶아 진다고 봐야지.’

시온이 딱히 제지한 것이 아니라 이들은 많은 금화와 선물들로 시온의 기사와 귀족에게 친해지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런 노력이 의미가 없지가 않았다. 대부분 귀족이 이런 짓에 몰두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동맹과 친분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친구가 되는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서 공작 출신의 가문들은 서로가 친구인 경우도 많았다.

‘라이벌일 경우엔 골치가 아프지만.’

‘뭐, 비밀 협정 정도로 맺어둘까.’

동방 제국의 사람들과 알아두는 것도 미래의 생존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입은 확실히 단속해야 했다.

이런 구실은 얼마든지 반역으로 몰아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시온이 이렇게 대담하게 진행하는 이유도 나름 있었다.

지금 많은 제후가 시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과연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시온의 결투에 대해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다른 왕이니 공국이니 그런 자들은 제후끼리 결투를 신청할 수는 없지만 시온은 엄연히 황제의 권신이었다. 

그러니 같은 제후로서 결투를 청한다면 상대도 직접 시온에게 도전하던지, 아니면 대리로 기사를 세워야 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납득하지 않으면 반복이었다. 그 자제든 본인이든 튀어나오지 않을 때까지.

“언제든 불러주시라 했지만 불러주시지를 않으니 제가 요청할 수밖에요.”

이국적인 외모에 솔직히 말하자면 시온도 옅게 화장을 한 그녀에게 감탄했다.

“그렇군.”

일행이 있는지라 강행군으로 가진 않으니 밤에는 잠시 야영지를 자고 확실히 쉬고 간다. 그녀가 잠시 말을 타자고 한 것은 확실히 이 협정에 대해서 말하는 바일 거였다.

“이제 좀 친해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번의 운명점에 대해서 말인데요.”

“아, 그랬지. 뭐가 나왔지?”

“바로 이거지요.”

카드엔 제국의 황제가 있었고 그것이 뒤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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