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1화 (231/304)

제국 수도

“역사적으로 이런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제국에서 황제에게서 서임을 받은 기사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커져서 돌아온 자는 다시는 없을 겁니다.”

에슬린이 감회가 새로운지 그렇게 말했다.

“사람이 많네요.... 긴장 되게.”

카롤리나가 살짝 두건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수도의 인구는 예나 지금이나 절정이었다. 그리고 요즘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유목민들이 수 개의 왕국을 부쉈다더니 그 인구가 다 여기에 몰려버린 것 같군요.”

코르도바가 끝없는 인파를 보면서 말했다. 새로운 대칸이 거대한 정복을 거듭하는 와중이었고, 그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듣자하니 처음엔 교류할 생각이었나 봅니다. 문화를 배우고 문명을 배우고 좀 더 기틀을 잡으려고 한 거죠. 그런데 지금 망명 중인 그 왕조의 혈족이 보낸 사신들을 모두 대못을 박고 목을 잘라서 되돌려 보냈다더군요.”

어떤 문화가 더 중요하고 우위에 있는가.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거였다. 가장 무시 받는 건 당연히 유목민들이었다.

그들은 거주할 집조차 없어서 이동용 천막을 치고 잤다.

“그 이유만으로?”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넣어야 합니다. 형제들도 당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그자도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시온님. 시온님 만큼이나 대단한 자입니다. 유목민들이 지금까지 뭉치지 못했던 건 단순히 그들이 무지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까마귀 하나가 재빠르게 날아와 에슬린의 어깨에 앉았다. 당연히 그 서신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암투와 관련이 깊었다.

“이건. 제 부하가 많이 죽었군요.”

“어떻게 됐지?”

“일단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세력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니까요. 승자는 유목민들의 승리인 것 같습니다. 망명을 위시해 도주 중이던 왕이 병사했다고 합니다.”

“흠? 과도한 압박 때문인가?”

“찬물을 먹었는데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수상하긴 한데. 그래서, 그 아들이 계승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나라가 그냥 공중분해 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동맹과 인맥을 요구할 수 있는 자가 죽어버린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안으로 들어온 수도엔 여지없이 고렘들이 곳곳에 보였다.

‘내 영향으로 세계가 바뀌고 있군.’

시온이 발견한 기술을 이곳저곳에서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 봤자 걸음마 수준이다.

정작 비술이란 비술은 시온이 다 가지고 있는바. 그 벽을 넘으려면 시온이 풀지 않는 이상 다른 천재가 나와서 밝혀내야 했다.

저 멀리에 거대한 건축물의 극치들이 이제 눈에 보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수도의 성이라든지 세계의 상인들이 모여든다는 대통로부터, 대경기장까지.

“아니. 저자가. 시온 니벨룽!”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군.”

“저렇게 단출하게 온 건가. 대범하다. 그러나 대범할 만 하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이런 위대한 분을 볼 수 있다니.”

수도에서 가장 큰가도. 보통 개선식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각종 선제후 가문부터 유명한 명문가는 다 기다리고 있었다.

깃발을 올리고 다들 시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맞이한 거였다.

“어허. 퀼른, 마인츠, 트리어, 라인팔츠, 작센, 브란덴부르크. 모든 선제후 가문이 여기에?”

“가문 문장 보는 맛이 쏠쏠한데요.”

“다음 황제 추대식도 아닌데 이건 조심해야겠는데.”

선제후의 힘은 강력해서 황제라고 해서 모든 소집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들이 모두 자기 영지를 내팽개치고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시온 니벨룽.

사람들이 시온을 암묵적으로 부르는 단어가 있었다. 대제후. 역사적으로 몇 번 등장하지 않았던 독보적인 위치였다.

누가 내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그럴만해 보여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보인다는 거였다.

제국 안에서 가장 높은 봉신이라고 봐야 했다. 한미한 가문으로서는 최초였다.

“예상보다 늦게 오셨군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곧바로 서로 먼저 소개를 해대는 통에 아주 시장판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시온과 끈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노력들.

“서로 거만을 떨더니 다들 시온 경 앞에서 공평해지는군.”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상대가 아닌가? 느껴지나 저 마나가? 이것 좀 봐.”

그가 보여준 것은 시온의 마나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의 처음 보는 색을 하고 있었다.

측정되지 않는 수준인 거였다.

“저렇게 보여도 마음만 먹으면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돌아갈 수도 있다. 내가 봤을 땐 이미 군대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다.”

“크흠. 부정할 수가 없군.”

반면에 다른 곳에서도 시온을 보는 시선은 만만치 않았다.

“움드, 사보이, 아르본, 서부지대, 알바, 그 광대한 지역이 모두 저자의 것이라고? 과욕이다. 신의 벌을 받을 자다. 저자만 없다면....”

마인츠 선제후가 시온을 보면서 그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자고로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는 게 바로 이곳이었다.

“가능...하려나.”

“빌어먹게 힘들지. 게다가 실패하면 바로 시온의 보복이야. 지금 시온이 가지게 된 영토가 어떻게 넓어졌는지에 대해서 내가 읊어줄까?”

바로 마음이 맞는 자들끼리는 암살에 대해서 토의할 정도다.

“저 밑에 있는 자들과 안면을 틀 수 있나? 한두 명만 넘어온다면 어떤 인간이든 필요한 건 있는 법이지 맞잖아.”

“코르도바 저 녀석은 내가 알지. 내가 따로 저자를 빼 와서 내 사람으로 쓰려고 했는데, 제안을 주느니 그냥 죽이는 게 빠르겠다고 그때 기억이 나는군.”

“에슬린이나 마리온이라면 사람을 알아볼 수 있어. 수준 되는 마법사들이야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

단순한 기회를 부여하려는 조치든 아니면 시온의 패권이 부담스럽든 선제후 중 반은 시온에게 적대적이었다.

겉으로는 끈을 구하기 위한 척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다른 부분을 노리려고 하기도 한다.

ㆍㆍㆍ

선제후 회의가 연장돼서 다시 열리게 되었다. 보통 이런 선제후 회의는 자기들끼리 하기 마련이었고 시온을 넣어줄 리가 없었는데 시온을 공식적으로 제후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로 황제가 마음을 먹은 거였다.

하기야 선제후 세 명의 영토를 한 사람이 다 가지고 있으니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커질 터였다.

“동방 제국의 문제와 망명사건부터 논의해야 할 사항부터 거기에 시온 경이 빠진다는 건 웃긴 일이지.”

나이가 지긋한 퀼른 선제후가 시온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특정 신분만 참여할 수 있는 회의라 해도 결국엔 최대 영토와 그 영토에서 나오는 세금과 모병의 숫자에서 그 사람을 인정할지 하지 않을지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직접 알려주시는 연유는 뭔지?”

선제후들이 그렇게 막역한 사이도 아니고 시온은 더욱이 아니었다. 사람을 시켜서 알려줘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퀼른 선제후가 직접 찾아와서 알려준 것이다.

“당연히 얼마나 칠 수 있는 자인지 보기 위해서지. 내 눈으로 보는 것만큼 잘나가는 자가 자신의 힘으로 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으니까. 내 젊은 시절이 생각나는구먼. 으하하하.”

“........그러신가요.”

“자네가 참여해줘야 가장 영토가 거대한 봉신이 참여하는 것인데 끗발이 좀 살지 않겠나?”

퀼른 선제후는 꽤 활발한 사람이었다. 시온은 이 자가 진심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속셈이 있는지 잠시 생각을 해봐야 했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다니 우리를 얼마나 애를 먹일 작정인가?”

“애를 먹다니요?”

“나도 창창한 손녀가 둘 있네. 마음 같아선 둘 다 주고 싶네만. 고려는 해볼 수 있는가? 그리고 혼수로는 슈바벤 지역이 어떤가.”

“슈바벤? 혼수로서는 너무 큰 게 아닙니까.”

그도 그럴 것이 슈바벤은 퀼른 선제후를 지탱하는 은행 도시 중 하나였다. 거의 사보이 급이었다. 아무리 결혼이라고 해봐야 동맹을 생각하고 하는 것인데 손녀의 결혼식으로 권력에 일부를 내준다는 것은 너무 지나쳤다.

그 정도 도시를 얻어내려면 무조건 전쟁을 해야 할 정도로 그것 외에는 입에 오를 일이 없는 그런 상징적인 곳이기도 했다.

‘그렇군. 인상 좋은 사람으로 보이더니 이런 식으로 협상에 능한 자로군.’

“슈바벤보다 자네와 연결될 기회를 잃는 게 더 아깝다만? 보아하니 대단한 대마법사이기도 하더니만 내 눈은 못 속이지. 마탑에서 왜 죽어라, 자네를 깎아내리는지 알겠네.”

퀼른 선제후와 걸어가는 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중에 그의 손녀를 한 번은 만나기로 하고 말이다.

이후로는 적당한 활을 하나 얻어다가 활을 연습했다. 사실 이곳에서 활은 거의 중요도가 낮았다.

대부분 원거리 능력, 특히 전쟁에서 가지는 부분은 마법사가 거의 다 해버리니 굳이 이런 병종과 무기의 중요도가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고대에서는 상당히 빈번했기에 이렇게 고대의 총람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동방 제국의 베이만의 선물에서 건진 조각으로 활과 관련된 총람을 풀어보기 위해 조각을 꺼냈다.

“이렇게 하는 건가?”

그냥 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느낌상 강체술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비슷한 방식으로 그 조각과 총람을 결합하자마자 덜컥거리고 총람이 반응했다.

그리고 세 개가 한 번에 열려 버렸다.

“.........”

위험한 난전에 일부러 들어가려고 마음을 먹고도 얼마나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던 것들이 어이없게도 풀려버린 것이다.

“이거 한 번 물어봐야겠는데.”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더 구할 수 있는지. 총 열린 것은 활과 메이스, 그리고 랜스였다.

모두 고대 영웅의 원본의 기술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시온은 그것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드디어 랜스와 메이스를 다른 기술로 바꾸게 되는군.”

특히 랜스는 제국 랜스 교본을 아직도 토대로 하고 있었다. 나쁜 건 아니지만 뛰어난 것도 아닌 그런 거였다.

얻자마자 시온은 그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반복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동방 제국의 베이만들과 동맹을 하지 않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괜히 약점 잡힐 구실을 잡히지 않겠다 해서 거절했다면 이것을 얻지 못했을 거였다.

“그 조각을 어디서 얻었느냐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에 얻은 유적에서 들어온 것인지라. 그것 때문에 마음이 드신 모양입니다.”

“마음에 들었지. 정말로.”

사실 이번 여기에서 온 가장 큰 소득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부러 황제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위험한 상황에 들어갈까 했는데...

“그럼요. 야심 차게 준비한 선물들인데요. 마음에 드실 줄 알았어요. 사실, 한 곳에서 모은 게 아니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럼 부탁하지.”

“그러면 저희와의 동맹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앞으로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전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어요.”

시온이 황당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물론 조건이 그녀가 첩으로 들어온다는 거였지만.

“........”

“아... 저희 쪽에서는 그런 단어가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제국에 대해서 소상히 배우긴 했지만 온 것을 얼마 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죄송까지야.”

“그러면 진행이 된 게 맞겠죠?”

“그...그렇지.”

시온이 완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통해서 동방 제국 쪽과 인맥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움드의 위치상 앞으로도 더욱 커질 수 있었다.

‘동방제국의 베이만까지 연결이 된다면 대체 움드가 어디까지 커지려나.’

“시온 경. 사람이 왔습니다.”

필립스가 바깥에서 조심히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이 저녁에?”

“예. 벨저 공이십니다.”

“........어서 오시라고 해.”

벨저가 전수해준 메이스 기술로 얼마나 많은 난관을 돌파했던가. 벨저는 사실상 시온의 스승이나 다름이 없었다.

따로 여러 작위를 내려주고 싶을 정도다. 다만 벨저는 벨저대로 황제가 내보낸 전쟁터에 있었고 시온은 시온대로 남부 전쟁에 휘말려 있었으니 서로가 만날 일이 없었던 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