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수도(2)
“요즘 자네 덕에 내가 늦은 나이에 후광을 보고 있어.”
“벨저 공. 오랜만입니다.”
“어딜 가나 자네에게 뭘 가르쳤단 얘기를 하고 나면 그 모임의 주인은 내가 되어버린단 말이지?”
“소소하게나마 잘 지내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상태를 보니 뭔가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됐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을 넘어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숨기고 있었는데도 귀신같이 벨저가 알아보고는 시온에게 말을 했다. 그의 눈은 호기심이 넘쳐 흘렀다. 강체술을 알아본 거였다.
아직 까지는 어디에다가 떠벌리고 다니는 일도 없고 그마저 가르쳐 놓은 기사야 모두, 적어도 시온이 판단했을 땐 입이 무거워 목이 달린 게 아니라면 벙긋하지도 않을 거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죠. 물론 거기엔 제가 얻었던 고대의 기술도 포함입니다.”
“허. 전쟁만 잘 수행한 게 아니라 그런 유적 사냥도 했나?”
“살아남고 유지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얻어걸리는 게 있더군요.”
벨저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다른 방식으로 얻었겠거니 한 거였다. 아무래도 시온 정도의 지위가 되면 본인이 직접 탐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갈수록 기본적인 상식이 파괴되는 기분이군. 그때부터 느끼긴 했던 거지만....지금은 아예 짐작되질 않는군.”
벨저가 연신 감탄을 하며 말했다.
“저자가 시온 경?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나?”
“왜?”
“그냥 그렇지 않나?”
벨저가 데려온 자들도 저 멀리서 시온을 구경하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 중이었다.
벨저가 저렇게 누군가에게 호감 있게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걸 고려해도 칭찬이 너무 과하다고 느낀 거였다.
아무리 시온의 이름이 드높다고 해도 귀족들에게까지 기사들에게까지 최고의 영예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핏줄이나 노력이나 그나마 인간처럼 보이는 전공을 생각해보면 무조건 벨저가 우상이라고 봐야 했다.
아무래도 이곳의 특성상 정보라는 것을 사람들이 그렇게 믿지는 않았다. 하물며 제국 밖에서 벌어진 전투들.
시온이 벌였던 여러 전투에 대해서는 여러 번을 걸쳐서 이들에게 들어왔기에 내용은 대게 과장되었다.
동방 제국의 술탄이 부리는 검들만 해도 단칼에 수십 명을 베었다는 얘기로 제국에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웃기게도 시온 같은 경우는 남모를 속사정이 있었다. 전투에 참여했던 보병, 귀족, 마법사들이 가족이나 친척에게 본 사실을 말하게 될 때. 벌써 자기들끼리도 골치가 아팠다.
자기들이 본 것도 시온이 벌였던 일부에 불과하기에 다시금 하나씩 서로 입을 맞추면서도 놀라게 된다.
시온이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던 탓이기도 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마 현실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달성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그래서 되려 알려줄 땐 거꾸로 되는 거였다.
“원래 마음에 드시는 자한테 좀 퍼주면서 얘기하지 않나.”
“하지만 뭔가 첫인상에서 오한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가.”
잠깐의 소란스러움.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거나 오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온을 만났을 때를 기점으로 벨저는 여러 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난 자를 집중적으로 모았던 거다.
이 중에는 출신을 생각하지 않고 평민에서 뽑은 자들도 많았다. 예전의 그였다면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황제의 방계 가문으로 태어난 그답게 철저하게 신분이라는 것을 나름 중요시했었다.
그런데 시온과의 접점 후에 천재는 아래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고정관념을 털어버린 거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 시온의 이미지와 인기는 복잡함이 가득했다.
“흠, 시온 오랜만에 대련을 한 번 해보지 않겠나?”
벨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시온에게 한마디를 했다. 지금까지 시온에 대해서 비범한 것을 느끼긴 했지만 가장 좋은 것은 부딪혀보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던 거였다.
“이왕 만난 김에 그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예전에도 곧잘 했고 제가 부탁을 했죠.”
“아니, 진짜. 요새 자네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야. 그 드센 제후들이 자네를 대제후라고 부르더군.”
“하던 대로 하십시오. 상관은 없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떠나서 기사로서 먼저 맺어졌으니까요. 저는 스승님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 내가 대제후까지 간다면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만. 여전히 사고방식이 유연하구먼.”
“제가 괜한 말을 하는 것 같습니까? 벨저 공의 무기술로 많은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벨저는 전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애초에 시온은 마법으로 무기술을 배우고 있었고 그것을 숨겼기에 벨저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시온이 천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말이라도 공손하게 해주는군.”
벨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저들은?”
“이번에 키우는 자들이야. 자네가 그런 건 잘하지 않나.”
“뭘 말입니까?”
“사람 보는 거 말이야. 이번에 창단한 자네 니벨룽 기사단. 그리고 거기에 서임된 기사들의 소문도 상당해. 마법사부터 이름이 없던 자들이었는데 자네 덕에 유명해진 자들이지.”
시온은 그들의 도전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를 향한 도전이라는 것도 알았다. 전장을 벌써 여러 차례 돌파한 시온은 이런 것을 너무나 잘 구별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자질이 다 괜찮아 보이는군요.”
솔직히 약간 놀랄 정도였다. 정확한 건 검을 맞대봐야 알겠지만, 모두 고드나 에릭급은 되어 보였다.
“사실 저 녀석들도 한 번 자네와 대련시켜보려는 속셈도 있었어.”
여전히 그 버릇은 여전한 듯 그는 시온에게 예전 비슷한 것을 요구했다.
“상관없습니다.”
“너희들 모두 여기에 와보거라.”
곧 시온은 이들에게 둘러싸이게 됐다.
“어떻습니까. 저희가 싹이 좀 보이십니까? 시온 경?”
“그러면 시온 경과 검을 맞댈 기회를 잡을 자를 우리 중에 선출해야겠는데.”
“잠시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우리 중에 우열을 가릴 필요도 있었지.”
곧바로 소란스러워졌다. 신분 구별 없이 친한 것도 있는데 그만큼 서로 경쟁심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시온이라는 것은 이름이 없는 이들에게는 최고로 값진 게 걸려 있었다. 이기기라도 한다면 바로 제국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여기서 겨룬다고? 그것도 무례한 짓이 아니야.”
“그러면 어쩌자는 거지.”
“스승님에게 물어볼까. 스승님이 하라는 자로 하는 것으로.”
대충 벨저가 고르는 식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지만, 시온은 생각이 전혀 달랐다. 강체술을 모르는 기사들은 이미 한 급수가 밀려나게 되는데 시온은 그 강체술 마저도 벌써 세 번째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전부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좋은 말씀입니다.... 음? 그게 무슨 대담한 발언이신지.”
“말 그대로야. 너희 모두 나와 동시 결투를 하는 거지.”
벨저가 바로 제지를 했다.
“이 녀석들 모두는 안 되네. 시온 자네를 헐뜯으려는 것이 아니라 이 녀석들은 강해. 두 명까지라면 모를까. 전부는 생각을 좀 해보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나름 벨저는 이들을 데리고 부여받은 전쟁터와 여러 전장을 누볐다. 그리고 각별한 훈련을 가미했고 이 중에 둘은 이미 자기의 젊은 시절을 능가한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벨저는 이들 하나하나가 자식같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온의 위치도 위치였다. 이제는 시온이 너무나 높은 곳에 있어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큰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ㆍㆍㆍ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우리가 뭘 선택할 수 있는 처지야? 상대는 제국의 절정에 기사이자 스스로 제후에 오른 자다.”
“결투가 장난인가.”
다들 불만이 많았다. 어차피 이런 식으로 이겨봐야 어디다가 말하고 다닐 수도 없었고, 이들 중엔 오히려 시온이 그걸 노리고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계략 같은 것은 앞으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지. 벨저 공이 우리를 평등하게 다뤘다고 해서 세상이 그런 건 아니니까.”
그나마 좀 더 나간 녀석은 그렇게 말하는 자도 있었지만. 정작 시온이 무기를 들고 가벼운 자세를 취하자 모두의 입에서 불만이 싹 사라졌다.
“시온 언제부터 검을 배운 건가?!!”
“여전히 메이스도 쓰고는 있습니다. 검을 익힌 건 이번 알바 왕국에 들어갔을 때입니다.”
“!!!”
벨저는 시온의 비술을 착각해 무서운 학습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간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시온의 그 능력이 더 향상됐다고밖에는 볼 수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내가 착각을 했나? 삼십 년은 검에 매진했을 것 같은 그런 노련함이 보였던 건...”
벨저가 턱을 잡고 혼잣말을 했다. 어차피 조만간 밝혀질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는 곧 시온의 세 번째 경지의 특성 때문에 사라졌다.
“방금 뭐였지?”
“아니 나도 순간 거대한 자를 본 것 같은데..”
벨저가 받는 압박보다 이들이 더 클 수밖엔 없었다. 이들은 지금 무기를 빼 들고 달려들어야 했으니까.
“아, 내가 한 번 확인해 볼 테니까.”
잠깐의 어색한 긴장이 흐르고 이들은 원래 했던 대로 여러 명이 하는 척을 하면서 한 명씩 가서 부딪히기로 한 계획을 발동했다.
‘에릭보다 강한가.’
시온은 상대가 간격을 좁히는 것을 보고 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속도나 힘과 기교를 보니 전반적으로 에릭보다 나았다. 무모한 용기라면 모를까.
“뭔 기사 중의 기사라더니 그런 무방비한 자세는....???”
긴장했던 거에 비해 너무 쉽게 끝나버리겠다는 확신이 들자 갑자기 분노가 생긴 그가 말을 내뱉다가 황급히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 일족의 비검술은 환영의 비술이 섞여 있어서 이것 자체가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 거였다.
솔직히 시온도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랐다. 어차피 동작을 한땀 한땀 익히고 비술을 돌리는 거였으니까.
누가 봐도 이상했다. 이미 승기가 끝났다고 체스 메이트를 날릴 준비를 하는 자가 거꾸로 처맞고 날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끄아악!!”
칼에 부딪힘도 없고 그가 입고 있는 물리 타격을 줄여주는 고급 갑옷을 입었는데도 한참을 굴러갔다. 게다가 이번 일격으로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흠. 계속 이런 식일 것 같은데.’
시온은 정확히 말하자면 검과 검을 부딪쳐서 흉내 내주는 것을 이 비검술로는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짓을 하든 알바 왕국에서 검증을 끝낸 이 비검술은 어중간한 것 없이 박살을 냈다.
“끄으으... 잠시.. 잠시. 한 번만 더 기회를...”
에릭 정도는 아니지만, 근성은 충분히 가지고 있는 모양. 바닥을 구르는 벨저의 제자가 그렇게 시온에게 부탁을 했다.
“일부러 저러는 건가?”
“방금 공격 뭐였지. 제대로 본 녀석 있나.”
“저 녀석이 일부러 하겠냐. 그럴 바에 검을 놓겠지.”
문제는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뭐가 됐든 어지간한 제국 기사는 농락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신들이 시온의 공격을 놓쳤고 원리를 모른다는 것은 그만큼의 격차가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자기들도 모르게 빠르게 찾아왔다. 몸이 바짝 긴장하다 못해 심하게 뻐근할 정도였다.
이성적으론 이상한데? 였지만, 이미 이들의 몸은 트라바나 대전투에서의 백병전에 펼쳐진 목숨을 건 기사 결투 때보다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런. 장난이 아니야. 시온 니벨룽은... 전설이야.”
드디어 한 명이 자기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다들 말을 줄였지만 이미 동의한 상태였다.
다음에 들어가기로 한 녀석이 간격을 좁힐만한 첫 번째 발자국도 고르지도 못하고 있었던 거였다.
“씨발. 솔직히 내가 너희보다 실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시온 경한테 달려든다는 것은 수백 명의 보병에 달려드는 것보다 숨이 막힌다고. 그냥 시온 경이 한 대로 하는 거야. 우리가 모두 달려드는 거지. 알겠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오만했던 이들 중에 이 제안을 거절할 만한 성깔을 부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 기회였던 거다. 다 같이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만한 작은 그런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