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33/304)

벨저와의 결투

“누가 먼저 하든 이건 장대한 기회지.”

시온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번에 달라졌다. 누구보다 강한 자를 만났다는 것과 설마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에 이들은 시온을 향해 움직였다.

제국에서 어떤 지역의 기사들보다 훌륭한 편인 포위공격. 누군가를 생포하기 위해 하는 집단 공격은 제국 기사들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시온에게 하는 것은 그런 유의 것이었다.

‘왼쪽인가?’

어느 자가 중심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고 시온도 하나를 골라야 했다.

길게 간다고 해서 딱히 불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시온이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왼쪽의 녀석을 향해 뛰어들자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바로 약점을 어떻게 찾아낸 거지?”

“아가드 라면 쉽게 당할 리가 없지.”

이런 얘기가 돈 것도 잠시 자세를 취하던 아가드가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분명히 방어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포위 진형이었기에 시온을 향해 몇 개의 위험한 검로를 날렸음에도 벌어진 일이었다.

“대충 하지 마라니까! 포위 진형에서는 한 명이 다른 자의 목숨도 빗대고 있다고 스승님께서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콘스탄스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아가드를 향해 소리쳤지만 공허한 소리였다. 바닥을 제대로 구른 아가드는 가슴이 패일 정도의 타격을 입은 거였다.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훈련을 해야 만들어지는 근력이야?’

그가 중요한 위치에 들어가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체격도 그랬지만 아가드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공격을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과 그가 입고 있는 갑주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벨저가 뽑은 인물 중 유일하게 남작의 아들인 그는 유적에서 얻은 것이었다.

사지의 순간에서도 반드시 목숨을 구해줄 거라 평소에 자신하기도 했고 벨저도 몇 번이고 확인을 해보고는 그 가치를 인정했던 고대의 갑주.

그것이 지금 손상된 것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강렬했다. 아가드가 단숨에 무너지자 다른 자들도 제대로 된 자세와 위치를 잡을 수 없고 이어지는 건. 연차적인 공격의 세례였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그대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우스운 꼴이 벌어지고 말았다. 차라리 이럴 바에 포위 공격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 것 같을 정도의 차이였다.

“네가 막았어야지!”

“이게 진짜 전설인가...”

“이렇게 공격해본 것도 정말 오랜만인데 이런 결과가 생기다니.”

뼈가 부러진 자도 있었고 그냥 벌어진 발작에 호흡을 가다듬는 자도 있었지만, 이들은 결과적으로 모두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공격할 때마다 무슨 이상한 기운이....’

‘검술에 마법이 들어가 있는 건가? 순간 검의 간격이 늘어났다가 줄어든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쇳덩이를 친 것 같다.’

타고난 재능에 벨저의 각별한 훈련을 받고 기본적으로 자기들 외에는 패배를 맛본 적이 없는 파릇파릇한 자들이었다.

이런 이들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패배를 맛본 정도가 아니라 어떤 절대적인 벽을 본 것 같았다.

평생을 쫓아도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벽.

“쇳덩이와 피가 구르는 곳에서도 바닥에 누워 본 적이 없었는데 물론 형제들도 마찬가지...”

겨우 기력을 차린 아가드가 이미 전멸해서 바닥을 뒹굴고 있는 형제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쉬운 듯이 이들을 보고 있는 시온을 보면서 전율했다.

‘이런 전장을, 아니 이것보다 더한 전장을 몇 번이고 재현하고 저 위치에 올라갔다는 거지....’

“이렇게나 내 제자들을 간단히 그러면 그게 나라면? 이거 궁금해지는군.”

벨저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시온이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는 것은 짐작하곤 있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시온에게서 본 처음 보는 검술은 그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딱 한 가지 밖에는 떠오르지를 않았다.

‘보이긴 보였어.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 하지만 이런 식의 검술은 내가 예전에 봤던 그나 일족의 비검술과 비슷한데...’

벨저도 사본 몇 장을 가지고 있긴 했다. 연습도 해봤지만, 결론은 이런 유형의 검술은 불가능하다였다.

시온의 영향으로 벨저도 기초적인 마법을 나이 먹고서나마 배우긴 했었다. 그러나 이내 한계를 맞이했다. 실제론 마법과 검술을 접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시온. 그 검술을 대체 어디서 구했나? 그 검술을 쓰기 위해서는 내 결론엔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거였고 그건... 지금에선 실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벨저의 목소리가 떨릴 정도였다.

“그나 일족의 검술입니다. 저번의 유적 사냥에서 얻었습니다.”

“!!!!”

“벨저 공 바로 이 열기를 이어가지 않겠습니까.”

“조건을 거는 게 어떤가? 내가 이기면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자네가 이기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이건 무게감이 있었다. 여기서 그 어떤 것이라고 한다면 황제의 세력에서 이탈해 시온과 동맹을 맺겠다는 의미도 다가온 거였다.

결투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거로는 무지막지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만큼 그나 일족의 검술과 그 검술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것을 배우고 싶다는 그 욕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투는 결투 이 대련에 대해서 약속을 이행해주셔야 합니다.”

제국에서 기사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높은 벨저는 황계의 방계 가문이기도 했고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제국의 기사들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니벨룽 기사단이 카페 왕조의 기사단에 기반을 둬서 나름 강력하다고는 하나 제국의 기사는 무서운 힘은 최정예의 기사들이 무식하게 많다는 점이었다. 

기사 수도회만 해도 다섯 개가 넘고 기사의 수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단체이긴 하나 제국의 존망이 걸렸다 하면 모두 편입해서 싸우게 된다.

“스승님과 시온 경이? 이걸 우리만 보게 된다는 건가?”

“지금 벌어지게 된다면 제국의 황제나 다른 황제들도 볼 수 없는 그런 것이나 다름이 없어.”

시온에 대한 존칭은 어느새 경의가 담겨 있었다. 이미 이들에게는 황제보다도 더 대단한 자로 보였던 거다. 

거대한 대륙을 수많은 왕과 제후를 다스리며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질서자 보다도 더 높은 경의를 시온에게 가졌다.

‘다만 이런 얘기를 한 만큼 뭔가 한 수가 있긴 한 것 같긴 한데.’

방금 이 정도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뜻. 솔직히 시온은 약간 기대가 됐지만 지게 된다면 그나 일족의 비검술이든지 강체술이든지 그냥 제국 쪽에 유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거였다.

일단은 시온이 평기사들에게 배우게 할 만한 것도 이제 에릭을 통해서 체계를 잡아가고 있는 터라 불완전하다고 봐야 했다.

“여기서 이것을 써야 할지는 몰랐지만, 전장이 아니라 이곳이 적기라는 생각이 드는군.”

벨저가 그렇게 말하더니 품에서 몇 가지 강화단약들을 꺼냈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음?”

“원래 결투에 강화단약을 먹는 쪽에는 항상 반대를 해오는 입장이었지만 내가 약자이다 보니 양해를 구함세.”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데다가 이기는 자가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결투의 특성상 강화단약을 먹는 것은 기본이었다.

벨저가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누가 들었다면 매우 놀랄 일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추스르고 포션을 덕지덕지 부은 제자들도 놀라긴 했지만 시온을 상대하려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이미 생각이 어느 정도 굳긴 했다.

“나도 소싯적에 유적 사냥을 통해 얻은 것이 있긴 하지.”

고대의 물건들이 워낙 뛰어난 탓에 시온도 지금 벨저가 먹으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다.

“오, 이런. 아무래도 신께서 자네와 좋은 결투를 시켜 주고 싶으신 모양이구먼.”

신체 변화는 바로 왔다. 벨저가 젊어지고 있었던 거였다.

“대체 그런 단약도 있었습니까??”

시온도 놀라버렸다. 단약에 대한 재주와 지식이 나름 깊은 시온이 봐도 잠깐의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진 거였다.

“잠시긴 하지만 분명히 이런 효과가 있긴 하네. 그런데 이 끓어오르는 힘은 나도 모르는 것이야.”

알고 있지도 않은 효과도 여러 개가 발동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기세가 단번에 달라졌다.

‘이것이 젊었을 때의 벨저공...’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젊었던 시절은 아닐 것이다. 정확히는 그때의 조건과 지금의 노련함이 겹쳐진 그런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잠깐의 긴장감과 시간이 흐르고 본격적인 결투가 곧바로 이어졌다. 시온은 지금까지 만나봤던 그 어떤 적수보다도 강렬한 존재를 처음 발견한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다섯 번의 검격이 나누어졌는데 그 힘과 기교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 일족의 비검술이 가지는 마법의 환영을 고민하지도 않고 거르는 자는 벨저가 처음이었다.

제국 제일의 기사답게 고민도 하지 않고 답을 찾아내는 수준이었다.

“내가 연구했던 그 비검술이 확실하군.”

시온은 순수한 자신의 기량으로 찾아낸 데다가 오히려 침투해서 애를 먹인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시온은 그 정도의 기량은 없었다. 앤드류의 비술의 힘인 거였다. 정말로 천재라는 단어는 그가 가져가고 유지하는 것이 좋을 거였다.

‘강체술을 최소 단계로 하고 있지만 대단하군. 그런데 어떻게 보면 비슷한 건가.’

그는 고대의 강화 단약을 먹었고 시온은 강체술을 쓰고 있으니 말이었다.

‘공격을 해봐야겠군.’

시온은 마음을 바꿔먹고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앤드류의 비술이 미친 듯이 비검술을 펼쳐 벨저를 향해 내려쳤다.

누군가가 봤다면 검의 폭풍을 보고 있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 환상이라는 거지만 말이다.

“아니, 대체 검이 몇 개인 거지???? 저런 검술이 존재했다고? 맞잖아. 저건 상식 밖의...”

“저기 한복판에 있는 영광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 씨발. 그럴 능력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순간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화가들이 필요해. 저 수 하나하나를 기록할 수만 있다면...”

“후대 기사들의 보물이 되겠지. 최대한... 외워라.”

결투라는 것도 이런 식으로 복기 되는 것도 많았다. 시온과 벨저 공의 결투라면 전설로 남을 게 확실했다. 이들은 그런 긴장감으로 어떻게든 수를 통째로 외우려고 피 말리는 집중을 했다.

“말을 할 틈도 없군. 예술적인 검로야. 마치 고대 영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공세가 끝나고 잠시 대치가 될 때 벨저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건 맞았다. 실제로 이 검술은 이바르가 쓰던 그 수준과 원본의 검술을 비술로 끌어온 것인지라 사실 벨저가 보는 환상은 지극히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인정하겠습니다. 그 강화단약의 지속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순수한 상태로는 제가 불리하군요. 저도 강체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써보겠습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건가? 강체술?”

단숨에 적을 죽여도 전세를 잡아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친선이라는 분위기를 띠고 있기에 시온은 강체술의 경지를 첫 번째로 고정해서 쓰고 있었다.

그러나 벨저는 명예 따지면서 상대가 준비할 시간을 주는 그런 자가 아니고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르고 별놈의 전장에서의 공식 결투만 해도 시온을 아득히 넘어가는 역전의 기사였다.

시온이 말하자마자 그가 그럴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맙소사. 벌써 준비가 끝나 있었단 말인가.”

검과 검을 가격 하는 그로서는 상대의 힘이 바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마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시온의 근처에 돌아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시온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정도로 차원이 다른 힘이 서려 있었다.

보던 제자들이 바로 스승의 목숨을 생각할 정도로 질겁할 기세였다.

“아니, 좀. 이건 끼어들어야 한다.”

“이건 중지해야 해. 시온 경은 그마저도 봐주고 있었던 거였고. 지금 진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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