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저의 저택(2)
어쨌든 벨저의 저택에 방문한 것은 수도에 다른 소문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별것 없는 친분 상 만남이었다고 해도 시온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든 제국 귀족의 화두였다.
“벨저공의 사생아란 소문 말이야. 그 이야기 했던 거 누구야?”
“그 어떤 선제후와 따로 만나지도 않고 바로 벨저공이랑?”
“씨발. 여간내기가 아니잖아. 기사 아니었어?”
“벨저 공의 위치는 특이하지. 세력은 약하지만, 기사들의 집중적인 존경을 받고 있고 이렇게 되면 모든 인물이 시온에게 압박을 받는 거나 다름이 없어.”
이 해당 인물에는 물론 황제까지 포함되는 거였다. 자기의 핏줄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느냐마는, 게다가 벨저에게는 어린 시절 따로 검을 배운 적도 있던 사이였다.
그만큼 의도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시온은 제국에서 오자마자 해야 할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한 셈이었다.
황제에게 바로 갔어도 현재 위신이 까이게 되고 살랑거리는 선제후와 갑자기 손을 잡는다고 하면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고로 지금의 판단은 제국귀족으로 좀 구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혀를 내두를 만한 그런 상황이었다.
“시온. 그 정도로 만족하는가?”
“맹세가 담긴 동맹. 그리고 몇 가지의 선물들 더 필요합니까?”
“크흠. 별것 아닌 거에 만족한다니까. 한마디 하는 거야. 게다가 나와 동맹을 한다고 해서 어떤 큰 이득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선제후만큼의 병력을 가지고 있진 않아. 그만한 질 좋은 땅도 없고.”
“하지만 기사단과 수도회를 움직일 수 있고 황제가 여는 제국회의에 참석할 수 있지 않으십니까?”
“뭐, 누구를 속이고 처리하는 거에는 영 맞지를 않아서 참석한 적은 거의 없지만 있기는 하네.”
“확실하게 해두시는 겁니다. 제가 만약 황제에게 몰리게 되면 무조건 저에게 가담하시는 것으로.”
“맹세는 했네.”
“그거면 됐습니다.”
“.......음. 그래서 그 강체술은.....언제쯤 가능하겠나?”
“제가 여기에 오는 것은 아무래도 눈에 뜨일 것 같군요. 제가 묵는 거처로 비밀리에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밀리...?”
아무래도 기사가 그런 잠입 하듯이 온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자링 가문에서 암습부터 시작을 했던 시온과 달리 벨저는 그런 일은 전쟁 수행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시도해 본 적도 없는 사내였다.
“.........”
하지만 시온은 무를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이곳에서 줄일 수 있는 건 줄여야 카드를 한 장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법이었다.
시온의 굳은 표정엔 그런 감정이 흘려 있었고 벨저는 시온에게서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어떤 압박을 받았다. 신기한 일이었지만, 벨저는 스스로 간단하게 답변을 하고서도 놀랐다.
“알았네. 이 정도도 자네와 나 사이니까 양보해준 거 아닌가? 허허. 내가 생각이 짧았어.”
간혹 비겁한 전략과 정정당당한 전략 사이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작전회의에서 논쟁을 일삼던 그의 태도를 알고 있는 자라고 한다면 깜짝 놀랐을 거였다.
ㆍㆍㆍ
시온은 돌아오자마자 새로 얻은 단약을 보았다.
“그런 일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젊음의 비약 같은데요.”
그나마 이런 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에슬린이 한마디를 했다.
‘일단은 이 새로운 반지를 여는 방법으로 이것을 해결해 봐야지.’
“하여튼 벨저 공이 합류했다니 그 잠깐 사이에 큰일을 하셨군요. 그런데 그 반지는 뭡니까?”
“선물. 일단은 카롤리나를 불러와라.”
카롤리나를 불러오라고 지시한 후 에슬린이 나갔을 때 시온은 새로운 반지에 푸른 액을 붓고 반지를 가동했다.
예상대로 반지는 새로운 레시피를 보여줬다.
‘젊음의 비약이라 여기 있군.’
가장 최상단에 있는 비약을 확인한 시온은 재료가 뜻밖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모아뒀던 영수들의 재료가 들어가면 그만인 거였다.
다만.
“어째 설명이 모호한데?”
뭔가 빠져 있었다. 즉 젊음의 비약을 생성하려는 방법이 완전히 적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정수제작에서 얻은 경험이라고 한다면 실패했을 때 이 새로 얻은 고대의 반지가 가볍게 날아가 버릴 거라는 점이었다.
바로 고철이 되어 버릴 거라는 것.
고대 제작의 특징은 항상 이런 반지를 매개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새 뭔가를 하고 계셨나요.”
에슬린이 데려오는 김에 마리온도 데려온 모양이었다.
“마리온, 카롤리나 이 단약과 이 고문서를 읽어봐라.”
시온이 건네준 것은 레시피와 벨저에게서 얻었던 문서의 한 측면이었다. 혹여나 해서 이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문서해석이라면 자신보다도 더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시온은 이들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배경지식에 기대를 걸었다.
“물론 이대로 하면 만들어지기야 하겠지만 뭔가 빠진 것 같은데요?”
마리온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젊음의 비약이라면 나이를 어리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은데요! 와!”
카롤리나가 바로 그 점에 대해서 문구를 찾아내곤 흥분했다.
“그렇지. 그런데 그냥 일시적일 뿐이야.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대단하지만.”
“사실 이치 적으론 불가능한 겁니다. 보십시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드는 마나와 그 까다로운 조건은...아, 가능하시긴 하겠구나.”
대마법사라고 해도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단순무식하게 여러 명이 많은 마나를 불어넣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한 명이 강대한 마나를 불어넣어야 했다.
애초에 그런 일이 실전되었으니까 이렇게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되는 거였다.
“완성품도 가지고 있었습니까?”
시온이 벨저에게서 받은 완전한 것을 놓자 이곳저곳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실제로 벨저 공이 나와 대련을 할 때 사용했고 진짜로 젊어지더군. 이것은 그 대가로 받은 것들이야. 혹시 만들 수 있을까 해서 너희에게 물은 거다.”
어쨌든 이야기는 논의되어가고 있었지만, 딱히 진전은 없었다. 결국은 실험을 해봐야 한다는 한 가지 진실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ㆍㆍㆍ
“벨저 공의 그 제자들이 전부 팔다리가 감고 있는 것 아나. 확실하게 말하자면 비밀리에 시온과 결투를 한 모양이야.”
시온의 예상대로 벨저의 제자들 전원이 모두 강도 높은 훈련을 중단하고 궁전 의사를 달고 다니는 일은 이미 이곳저곳에 싸하게 퍼졌다.
“깜짝 놀랄까 봐 모두 입을 다물고 있지만 벨저까지 결투를 한 모양이더군.”
“벨저 공은 멀쩡히 지나다니던데?”
“봐준 거지. 그러니까 시온이 명예가 높은 것 아니겠나.”
하기야 괜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 시온은 몰래 찾아온 벨저에게 강체술을 가르쳐 주고 있는 도중이었다.
“허... 맙소사. 이런 방법들이 있었다니.”
벨저에게 강체술을 가르쳐 주는 시간은 그렇게 길진 않았다. 물론 희한한 기분이기는 했다.
“벌써 정확해지셨군요. 그런 느낌입니다.”
“이 나이에 이런 기회를 맛볼 줄이야..”
“일단은 강체술 이라는 건 경지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자네가 쓰는 건?”
“제가 쓰는 건 저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제가 벨저 공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만약에 좋은 체계를 만드시게 되면 저에게 주십시오.”
“니벨룽 기사단에게 익히게 할 생각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기사 수도회는? 또 내 제자들은?”
“아시지 않습니까. 당분간은 제가 선두에 설 수 있게끔 해주셔야 합니다.”
“알았네.”
그리고 시온이 검을 뽑았다. 벨저가 당분간 비밀리에 시온과 대련해주기로 한 것이다.
일단은 더 비검술에 익숙해지고 다른 무기술도 차근차근 벨저와 대련을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대련은 십여 분이 지속이 됐다. 결투가 아니라 일종의 연습이기에 시온도 마음껏 조절해서 검과 검이 부딪혔다.
“완벽하군. 완벽해. 시온 너를 북부 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그 빙판 전투의 한복판에 놔두고 싶구나. 멋진 그림이 나오겠지.”
“빙판 전투 말입니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당연히 제국에선 아무도 모르지. 너무나 불리해서 내가 작전을 개시하지 않았거든.”
“그거 좀 구미가 당기는데요.”
“허허. 그래.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소개해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시온은 필립스를 보내 에릭과 고드를 불러왔다.
“에릭입니다.”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자네는?? 분명 이반의 아들. 고드 부르스가 맞나?”
재능이 있는 자를 그가 잊어버릴 리 만무했다. 놀라운 건 고드 부르스의 태도였다.
“전 지금 한낱 기사일 뿐입니다.”
“그..런가? 아니 그랬나?”
“이번에 결정된 사항입니다. 시온경에게 감복한 후 위대한 자를 모시기 위해 니벨룽 기사단으로 입단했습니다.”
“!!!!”
순간 말문에 막혀 제대로 대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고드가 어디 보통 인물인가.
계승자에 차기 알바 대왕으로 확실시되던 자가 대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사로 입단했다는 건 이곳에서 절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고드를 이렇게 만들 그 정도였나???”
바로 귓속말로 시온에게 물어볼 정도. 시온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서로 목숨을 걸었으니 그의 대군을 격파한 건 사실입니다. 중간의 정치적 협상이 있었으나 그가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한 건 자발적이었습니다.”
“..........”
간단한 격식을 갖춘 대화가 끝이 나고 시온이 말했다.
“이들도 기본적인 강체술을 익혔습니다. 한 번 대련해보십시오. 니벨룽 기사단에서 가장 강한 자들입니다.”
에릭은 부단장이었고 고드는 지금은 평기사이지만 시온은 거의 부단장급 대우를 하고 있었다. 직책 적으로 단장은 어레이 였으나 그는 거의 행정적인 임무에 투입되었다.
“아마 전장에서 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고드가 벨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고드는 원래 제국의 정벌을 하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켰다.
제국의 평지 어딘가에서 검과 검을 맞댈 것으로 생각한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련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에슬린이 정보를 물고 왔다.
“시온 님. 카롤리나가 아마 비슷한 걸 제조하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
분명히 그때 일을 맡겨두긴 했다. 별 기대는 없었는데.
“젊음의 비약을 만들었다고?”
“아니요. 비슷한 거를...”
“당장 가자.”
“내버려둬도 됩니까?”
“괜찮아.”
시온은 점입가경으로 빠져있는 이들을 뒤로하고 카롤리나에게로 갔다.
어차피 시온이 거주하는 반대쪽 저택이었다. 시온에게 머무르라고 하사한 곳은 제국에 공이 깊은 장군이나 황족만 쓸 수 있는 대저택이었다.
방만 천팔백 개. 그 사치는 말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쨌든 이 저택엔 당연히 마법적 제조가 가능한 방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 카롤리나에게 일을 맡겨둔 상황이었다.
도착하자 마리온과 열띤 토의 중인 카롤리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긴 한데...”
카롤리나가 시온을 보자마자 한 첫마디는 이거였다.
“비슷하군.”
시온이 봐도 젊음의 비약과 비슷했다. 그런데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젊어지는 효과밖에는... 죄송합니다.”
“해봤나?”
“아직은 못했어요.”
“벨저 공에게 해보자.”
“!!!!!”
누가 감히 벨저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시온은 확실하게 하려면 벨저가 딱 맞는다고 보고 있었다. 총 다섯 개의 단약을 카롤리나에게 받고 돌아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푸른 액을 부어보면?
모든 일에 푸른 액이 반응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엔 줄기차게 했지만, 실제로 발현이 될 가능성은 백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든 거였다. 그래서 푸른 액을 미완성 비약에 부은 순간 강렬하고 찬란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뭐지 이건.”
원본 이상의 무언가로 시온의 손에서 변한 거였다.
어쨌든 확인은 나중에 하면 되니 바로 아공간에 넣어두고 나머지를 들고 벨저에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