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모임(2)
원래 이런 곳에 온다는 것 자체가 이들로서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게다가 여자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니. 그런데도 선제후 전원이 이곳에 모였다.
“지금까지 별일이 다 있었지만, 한 명 때문에 이렇게 된 건 또 처음이군.”
선제후들도 서로를 놀라워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 자식. 자기는 죽어도 오지 않는다더니.”
“어쩐지 일찍 사라진다 했더니 여기에 올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던 거로군?”
“내가 그러지 않았어. 오토 녀석 이런 식으로 선수 친 게 한두 번 아닐 거라고.”
갑자기 많아진 인원이 안은 당황을 넘어서 난감해졌다. 그 정도로 모여드는 인물들이 제국 내에서 가지는 권위는 바로 황제 밑이었다.
게다가 이들이 동행한 자들도 다들 한 가닥 하는 자들이었다.
“저자가 소문의 시온 니벨룽.”
“과연 흠이 없어.”
“영광이군.”
“넋 놓고 있지 마라. 시온 경이 어찌 됐든 선제후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저 검은? 트루 블레이드가 아닌가?”
기사들도 시온을 보고 구경하기에 바쁠 정도였다. 거기에 워낙 유명한 무기인지라 트루 블레이드를 알아보는 자도 있었다.
무구라고 한다면 자다가도 일어날 자들인지라 유명세가 있는 무기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 거였다.
갑자기 침을 삼키는 자도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달려든다고 해도 시온이 여기 있는 제후들을 모두 베어버린다면 막아낼 수가 있을지를 따져봤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상당히 어려워 보였기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어이가 터지긴 하는데, 일어난 일이니. 어서 다들 차와 의자와 테이블, 디저트를 더 가져와!”
“이래서 이렇게 후진 곳에서 무작정 하면 안 된다니까.”
귀부인들도 귀부인들대로 어지러운 양상이 보였다. 어쨌든 조금씩 각을 보려던 시온으로서는 한 방에 모두를 집결시켰으니 이것만으로도 남는 장사였다.
선제후들이 그냥 움직이는 법은 전혀 없었고 오죽하면 나리님이 움직이면 돈도 움직이겠느냐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냥 만나기만 해도 엄청난 돈을 요구하는 자들도 많았다.
잠깐의 소란스러움이 진정될 시간이 흐르고 이곳은 이제 어설프게나마 가닥이 잡혔다.
그나마 먼저 대화를 텄다고 오토가 다른 제후들을 제압하려는 모습도 있었고, 다시 말다툼이 불거질 무렵.
시온은 선제후들이 지독히도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상속에 대해서는 그렇게 처리했던 거냐!! 피로연의 기습 사건에 대해서도 이참에 설명을 좀 해보시지! 이 강도 자식아.”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래에서 벌어진 일을 다 계획할 수는 없어. 시온 경 앞에서 정신 좀 차리지그래?”
“조용, 조용! 그런 다툼을 할 거면 다른 곳에서 해라.”
“너희 둘이 이득을 봤다고 내가 여기서 입을 다물란 말이냐?”
기사들도 칼부림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인지 칼자루를 쥐었다.
‘차라리 이곳에선 대충 둘러대고 따로 친한 자들끼리 구분을 지어서 만나는 것이 좋을까.’
시온이 본론을 바로 꺼낼지 고민을 하자 다른 의미로 긴장하는 자들도 많았다.
“시온 경, 열 받은 거 아닌가?”
“아무리 앙금이 있어도 그렇지. 너무 예의가 없어.”
“그만들 해.”
기사든 다툼에 참여하지 않은 선제후든 시온이 말이 없자 바짝 긴장했다.
“내가 각 선제후들을 부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는 거래를 할까 합니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든지 아니면 입을 다물고 나와 거래에 응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하십시오.”
말이야 이렇게 뱉었지만 일어나질 않길 바라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다툼은 거기서 끝이었다. 시온의 경고는 이들에게 단순히 여기서 나가라, 라는 정도로 들리지는 않았던 거였다.
나와 적이 될 것이라면 나가라는 것으로 보였던 것. 게다가 시온에게서 흐르는 기세는 이들을 질겁하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장신구가 붉게 변한 선제후도 있었다. 그것을 알아본 다른 선제후들도 덩달아 침을 삼켰다.
각종 마법을 막아내기 위한 대마법방어진이 걸려 있는 보석들인데 적색이 되었다는 것은 시온이 여기서 마법을 쓴다면 막을 수 없으니 여기서 도망치라고 신호를 주는 거였다.
“크흠. 이거 참. 분위기가 많이 안 좋게 됐습니다. 모두 시온 경과 협상을 하고 싶어서 온 것이니 진행을 하십시오.”
오토가 나서서 한 번 분위기를 잡아주자 방금 같은 긴장은 사라졌지만, 이들은 방금 시온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필립스 물건을 가져와라.”
시온이 기다렸다는 듯이 필립스에게 입을 열었다. 다들 무슨 소리인가 할 정도.
사실 이들은 시온이 정말로 무언가를 꺼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였다.
그저 젊음의 비약이라는 것은 자기들을 꿰기 위한 영양가 없는 미끼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고 보니 내가 정보 하나를 입수하긴 했어. 벨저 공이 귀하디귀하게 여기던 단약의 개수가 모자라게 됐다고.”
이어서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비약들이 이들의 눈앞에 드러나자 모두 감탄을 내뱉었다.
“예상도 못 한 게 나왔잖아.”
“자네 이거 아나?”
“이건 처음 보는 형태인데 진본인 것 같습니다...”
기사만 데리고 온 것은 아니고 마법사도 대동한 선제후들도 있었다. 보자마자 여러 가지 정보를 물어봤지만, 마법사 중 정확히 말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제 사람이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는 일은 상당히 드뭅니다. 시온 님 설명해주십시오.”
“이미 드리지 않았습니까? 다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 말입니까?”
“진짜니까 불렀지요. 영원한 게 아니라 잠시뿐입니다만, 젊었을 때로 돌아가게 해주는 비약입니다.”
그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뉘앙스로 알아차리자마자 순간 술렁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보기 전에는 쉽게 못 믿을 것 같습니다.”
결론은 그거였다. 시온도 한 개는 그냥 보여주기로 풀려고 했으니 상관이 없었다.
“누가 참여해볼 겁니까?”
다들 망설인다. 선제후 특성상 의심이 많은 것이다. 먹는 것도 따로 사람을 두고 확인해보고 먹는 게 다반사인데 이런 일에 무턱대고 하기엔 평소에 쌓인 습관이 많았다.
“자네가 이런 건 능숙하지 않나.”
그러나 시온이 바로 참여자를 제지했다. 어차피 나머지는 거래용이니 한 알로 끝을 봐야 했기에 선제후를 직접 복용시키고 싶었다.
“선제후가 아니면 안 됩니다.”
“???”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갑자기 두려움부터 드는 모양이었다. 시온이 기사이기도 하지만 고명한 마법사이기도 하다는 것은 제국에서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수상한 짓을 했을지도 몰른다는 가정.
다른 자가 권했다면 황제라고 해도 얼굴을 붉히고 버럭 했을 것인데 시온의 이런 강권에도 선 듯 화를 내지 못하고 다들 쩔쩔맸다.
“그러면 강제로 정할까요.”
“그럴 필요가 있나 내가 하지.”
그러나 바로 지원자가 나왔다. 오토 였다. 그는 이미 시온을 굳게 믿고 있었고 어떻게든 동맹 이상의 관계가 되리라고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다.
시온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토 님이 하십시오.”
다들 긴장한 가운데 오토가 젊음의 비약을 먹었다. 시온이 생각하기에 완전본이 되려면 멀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추측이 있었다.
물론, 오토도 마나를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고, 보조 도구를 이용해서 단약을 소모했다. 시온이 알려준 대로 운용을 하자 오토가 점점 젊어지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순간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 당사자인 오토는 말할 것도 없었다. 원래 비약이라고 해봐야 이 정도 효과는 절대로 없었다. 고작 해봐야 피부가 단단해져서 물리 공격에 저항을 갖추게 된 다던가 그 정도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리로 오십시오.”
“시온. 이게 대체...”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 다른 선제후들도 보십시오. 이건 제가 제작이 가능한 고대의 비약입니다. 원래의 나이를 잠시 찾게 해주죠. 제한 시간은 물론 있습니다. 다만 다른 능력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있는 제후 중 몇몇은 필요가 없으실 수도 있습니다.”
어린 선제후도 있고 나이도 서른 후반이니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시온의 생각이었다. 모든 선제후가 이것을 보자마자 얻은 생각은 반드시 가지고 싶다는 거였다.
“직접 만들었다는 겁니까?”
“핵심은 제가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제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정도지?”
“얼마 정도를 원합니까. 시온 경.”
“금화가 아니라 영지를 원하는 건가?”
“어떻게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거지?”
“대마법사라더니 이젠 의심할 수가 없지 않아.”
다시 소란스러워졌지만 시온은 이들의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추측은 맞았다. 별다른 효과가 없지만, 이들 모두가 이 소모품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럴..수가. 시온 반드시 내 사위가 되어야 하네....”
“오토 경? 오토 경 지금 울고 있는 겁니까????”
오토는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자신의 오만했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 모습에 흥분하다 못해 눈물을 보였다.
‘이 정도면 다들 넘어온 거라고 봐야 하나.’
괜히 분란을 걱정했을 정도로 분위기는 완전히 시온의 생각 이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론 뛰어난 효과가 있기는 하나 이런 소모품에 얼마나 이들이 열광할지는 미지수였던 거였다. 육체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마나를 보조해준다든가 어떤 영지에 도움이 도움되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이런 단약에 말이다.
어쨌든 대충 정리해줄 필요가 있었다.
“금화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황제와의 회의에서 저에게 표를 던져주길 바란다는 겁니다. 표를 주실 선제후들에게는 두 알씩 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내용이었고 시온은 두 알에 상당한 금화를 더 얹혀줘야 하지 않을까 견적을 잡고 있었다.
두 알로 이들이 움직일 터는 없지만, 일단은 던졌다.
“그거면 되나??”
“나도 오토와 같이 장기적으로 함께하고 싶군. 같이 하면 좀 더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건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고려해드릴 순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는 자가 오토 외에 한 명 더 등장했고 다른 자들도 회의에 던져줄 푯값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모두??’
모두 의향이 있었고 모든 표를 시온에게 던져준다는 것. 두 명은 장기적인 관계를 맺겠다고 했으니 완전히 같은 편이 된 거고, 벨저까지 포함하면 세 개의 표는 무조건 확보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제국의 특성상 황제가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곤 있지만, 결국엔 선제후의 다수결로 의사결정이 힘을 얻게 된다.
‘모든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겠군.’
시온은 이들에게 젊음의 비약을 나누어주었다.
어차피 시간을 내서 다시 제작하면 됐고, 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좀 더 값어치를 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에 있는 마법사들은 모두 시온의 말에 의아해했다. 하나하나가 고도의 마나가 필요한 것이 분명한데 이것을 정기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선제후 뿐 아니라 다른 자들도 비약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을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는데 이들 중 시온의 암살 계획을 잡던 자들도 목표가 애매해지고 있었다.
어쨌든 이 비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시온 뿐이라면 시온은 계속해서 살아있어야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간단한 이치가 따라오게 된다.
그리고 이 중 몇은 받자마자 오토와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있을까 싶어 비약을 먹었다.
에슬린이 그에게 붙어서 알려줘야 할 일들을 알려주고 비슷한 일이 벌어지자 그 신기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기야 시온도 얼마 전에 벨저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하다 보니 제작법까지 손에 넣게 된 것이지만.
‘음?’
그리고 시온은 느닷없이 몸의 변화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저번에 먹었던 비약이 원인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