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들
‘나한테도 다른 효과가 일어난 건가?’
시온은 자신의 단점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특정 마법이 아니면 제약이 있다고 봐야 했는데 그러한 제약이 없어진 것처럼 보였다.
시온이 자신의 둔한 재능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 것은 무식하게 마나를 쌓아서 해결하는 식이었다. 그러한 기점이 사라진 거였다.
곧 분위기는 바뀌었다.
“다들 기대하지도 않은 것을 얻은 얼굴이군.”
“이러면 또 시온의 승리로 보이는데.”
“얼마나 이 젊음이 지속하는 겁니까?”
“나도 구할 수 있습니까.”
“이건 장난이 아니야.”
시온은 자기에게 쏟아지는 말들을 구별해야 할 정도로 자신의 변화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만들려면 양을 늘릴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원하는 건 제국 내에서의 안정된 기반과 자기를 지지해줄 권세들 그리고 황제와의 주도권 싸움에 있었다.
“말했다시피 제가 드릴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고 그중 대부분은 저와 거래를 트게 될 제후분들이 전부일 것 같군요.”
“나랑 한 번 겨뤄보겠나? 검을 가져와 봐!”
젊어진 오토가 흥분해서 자신의 기사에게 소리쳤다.
“그냥 즐기면 되는 거지 오토 저 녀석은 쯧.”
“아직도 믿기지 않는군. 한 번에 분위기를 바꿔 버렸어. 처리해야 할 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만약에 조금만 풀리게 된다면 이것 없이 귀족들이 살 수 있을 것 같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여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동방 제국을 순간 진정시킬 수 있지 않을 것 같나?”
“아무리 우리랑 달라도 그쪽도 별반 다를 바 없겠지.”
“강제로 휴전을 시켜줄 정도의 물건....”
“어떻게든 다음 방법을 만들어 내는군. 저자는.”
“이것저것을 떠나서 이렇게 대화하는 게 오랜만인 것 같지 않나?”
그리고 하나씩 거래가 이루어졌다. 자신의 편을 만든 것이다. 외부와 전쟁을 하는 편이 항상 답인 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지금 시온이 확보한 영지는 거덜이 나 있었고 회복할 만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ㆍㆍㆍ
“생각하신 것 이상의 결과가 아닙니까? 어째 만족스럽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나? 아니야. 만족스럽지. 제국의 반이 내 편이 됐는데.”
“일단은 말이죠. 예전부터 선제후들은 약삭빠르기로 소문이 났었죠. 여전히 무슨 일이 생기면 기존의 권력에 부합해 간단히 버릴지도 모릅니다.”
마리온이 끼어들어 이야기했다.
“그건 나중의 일이지. 무게 잡다 하나씩 무너져서 나중엔 서로 경쟁까지 붙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그런데 오토 님이 검을 잘 휘두르는 것이 육체에도 영향이 있나 본데요.”
“설마 피부만 그렇게 변하겠나.”
“선제후들의 힘을 얻었으니 이대로 황제와의 접견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
“애초에 지금 벌이고 있는 상황은 다른 선제후들이 묵인해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다 같이 압박을 넣는다면 황제가 양보하는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심하면 두 달 석 달이고 미뤄버릴 수 있는 것이 이번 일의 요지였다. 어쩌면 육 개월을 끌 수도 있었다. 몸이 아프니 어찌하니 하면서 미뤄버리고 다른 선제후들이 묵인하게 된다면 관례상 수도에 발을 들였기 때문에 시온은 꼼짝없이 이곳에서 강제 휴양을 보내야 했다.
‘뭐 그것도 영 나쁘진 않지만.’
“계속 기다리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이긴 합니다. 대신 비약은 충분하게 준비를 해놔야 할 테지만요.”
“만약에 강요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를 풀기는 쉽진 않을 것 같은데요.”
“대규모 반란으로 볼 수도 있다는 건가?”
“성인이 되자마자 이브셤 대전투로 정권을 잡은 사내입니다. 그리고 관련 귀족들은 오체를 찢어버렸죠. 황제는 아무도 안 믿어요.”
“그가 믿는 것은 자기 검밖엔 없을 겁니다. 선제후들이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한 것도 황제의 손이 적잖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많고요.”
“계략이 뛰어나다? 그렇게 보이진 않던데.”
시온은 예전에서의 만남을 잠시 떠올렸다. 그런 유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외적으로 전부 뛰어난 자죠. 동생과는 전혀 다른...”
“벨리사르 공에겐 내가 빚이 있지.”
황제의 동생인 벨리사르가 아니었다면 움드를 받아낼 순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큰 차질이 있었을 거였다.
“하지만 시간적인 부분을 제하고도 지금 힘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상황에서 고집을 부리면 재미없을 거라는 거죠.”
“지금 선제후들이 이렇게 호의적인 것은 비약을 받아내고 새로운 제후와 손을 잡으려는 것도 있지만 결국은 반란까지 기울어지면 바로 편을 바꿀 자도 있을 겁니다.”
“마인츠는 무조건 있겠군.”
시온은 바로 한 명을 집어봤다. 웃으면서 칼을 품는다는 말이 있다. 시온의 현대에서의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였다. 물론, 얻은 것은 컸다. 황제의 뜻대로 시간을 허비한다 해도 각종 무역을 트고 동맹 관계를 다루거나 비밀리에 맺은 협정에 관한 건수들을 정리하기만 해도 그럭저럭 알차게는 보낼 순 있었다.
“선제후들에게 따로 만남 시간을 주고 초청해.”
“그 말씀은 지금 관계를 부수고 새로운 입장을 표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지. 한두 명은 내가 준 비약을 포기하겠지만, 지금 싸움을 걸어왔는데 가만히 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밑바닥 중의 밑바닥. 귀족 중에 가장 밑바닥에서 겪었던 그런 형제들의 다툼이 자연스럽게 지금 도움이 되고 있었다.
시기를 놓치면 더 귀찮아질지도 모른다는 것.
“과감하군.... 이 정도로 과감할 줄이야. 기사가 적지 않았나?”
“수도에 군이나 기사단을 데리고 왔으면 황제께서 문제가 있는 인물인 시온 경을 안으로 보내셨겠습니까.”
오토가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일러도 일러. 비약으로 관련 건에 대해선 표를 주기로 했지만 이건 공공연한 황제에 대한 압박이 아닌가?”
오토의 눈에 살짝 두려움이 퍼졌다. 자칫 잘못하면 동방 제국과 다른 북부 유목 제국과의 결전을 두고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고 해도 세 개의 적을 동시에 감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유목민들의 행태는 제국에 소상히 전해져 오는 상황이었다. 무엇이든 불태우고 부수고 약탈을 한다는 데 비교적 변경에 있는 오토의 거대한 영토가 그 불길에 노출이 될 거였다.
“조심히 해야 하는 것이 맞아 보인다만, 내가 직접 가서 설득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이미 각 제후에게 모두 전서가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늦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치겠군. 좋은 사윗감은 아니야. 좋은 사위는. 다 얻든지 아니면 다 잃겠지.”
“이미 수도의 중기병과 제국 중보병 마법사들 오만 정예가 블랙 기사단의 인도하에 우연히 이곳을 오고 있습니다. 서펜서 백작이 유적지의 유물을 내놓지 않아 그것을 황제의 적법한 권리로 제국의 국고로 반환시키기 위한 출진이라곤 하지만 누가 봐도 시온 니벨룽 때문이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런 얘기도 있지 않지 않았습니까. 시온 니벨룽이라면 오만 정예를 농락하고 이곳을 벗어날 거라는 거라고요.”
“그걸 정말로 믿나? 아무리 전투가 유명했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과장이 되기 마련이야. 에슬린도 그렇고 마리온 이 여자가 애초에 카페 왕조에서 비밀스러운 일을 하지 않았어. 이런 식으로 부풀리는 것은 그녀의 특기겠지.”
“제국에서 다시 없을 강대한 사내로 보였는데? 시온 경의 그 결투 전적은 진짜다.”
“다시 없을 기사고 대마법사이기도 하지. 하나 거대한 군세에 노려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야.”
오토의 가신들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시온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가늠하기 어려웠다.
“망설일수록 지금 내 자리를 누군가 밀어낼 수도 있겠지.”
오토는 지금 선제후 중에서 시온과 가장 친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법칙상 결혼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무너질지 모르는 그런 위험한 위치였다.
“시온의 기사는 아래에 있나?”
“예.”
“내가 가지. 다들 논의한 흔적은 없었던 것처럼 해라. 잠시 골치 아픈 자식 문제에 대해서 내가 언성을 높인 거다.”
실제로 그는 비뚤어진 자식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 정도면 시온이오해하지 않을 만한 그럴싸한 변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온이??? 벌써 거기까지 일을 진행했단 말이냐?”
황제인 디드리히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첩보장을 보면서 말했다.
“내부적으로 제가 놓친 것이 많아 죄송합니다.”
“그런 실수를 했단 말입니까. 책임지고 목을 내놓으셔야겠군.”
“아니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해도 괜찮지 않소. 내가 여기서 공백이 되면 오히려 지금 사태를 막을 수가 없어.”
“그래서 시온이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이냐. 일어난 것은 일어난 거야. 다들 조용히 해라.”
술렁거리는 분위기와 기반이 약한 첩보장이 순간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선제후의 상당수가 시온에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자세한 건 치열하게 조사중이긴 합니다만, 시온이 뭔가를 거래한 모양입니다.”
“뭔가를?”
“거기까지는 아직.... 다만 선제후들을 모두 끌어당길 수 있을 만한 강력한 물품으로 보이긴 합니다.”
“기사단과 보병의 움직임은?”
“딱히 없습니다.”
“블랙 기사단은 준비가 됐습니다!”
“블랙 기사단? 벌써 왔었나?”
“디아스 단장이 독단적으로 강행군으로 왔다 합니다.”
“역시 디아스로군. 내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군.”
“번번이 시온 니벨룽에 대해서 디아스가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장차 제국을 위협하게 될 터이니 싹을 미리 제거하자고...”
“내가 막았지. 빌어먹을.”
황제 디드리히가 동공이 커진 눈으로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샤를에다가 서부지대까지는 괜찮다고 봤는데, 그 사이에 알바까지 해결할 줄은... 신만이 아셨을 거야.”
황제인 디드리히의 판단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오히려 움드에 다녀온 디아스 단장이 자신의 명성에 거슬린다고 험담을 하고 다닌다며 빈축을 샀었다.
그 정도로 황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권신들도 견해가 같았던 거였다.
“디아스 단장은 준비를 제대로 하고 왔습니다. 블랙 기사단의 흩어져 있는 기사단이 지금 국경 분쟁 위기에도 모여있죠. 결정은 황제께서 하셔야겠지만.”
“디아스의 판단은 역시 대단하군. 과연 제국의 대들보.”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이런 디아스의 개인적인 판단은 결과적으론 빛이 났지만, 위험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중요 관직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몰랐다.
“디아스가 블랙 기사단을 동원한다고 해도 선제후를 포함해서 시온을 잡아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
나이가 지긋한 기사가 바로 반론을 내세웠다. 다들 조용해졌다. 그 정도로 시온에 대한 평가는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시온의 왕국은 유례없는 불길이 될 것이요. 그리고 선제후를 잡는다고 해도 승기가 보인다면 우리가 수로 밀리게 되고.”
“신중하게 가야 합니다. 시온 니벨룽의 결투 전적과 전쟁 수행 전적은 지금까지 패한 적이 없습니다!”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빠르게 논의를 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일도 문제였다. 사로잡는다고 해도 이것으로 반란죄를 물을 순 없는 것이다.
“일단은 디아스에게 압박만 넣으라고 하고 그 뒤의 일은 이후에 벌어지는 대로 대처하기로 하지...”
결국, 애매한 결정을 내린 디드리히는 이것이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의 결정과 실패로 단숨에 제국이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르기에 시온의 존재 변수를 좀 더 고려해야 했던 거였다.
ㆍㆍㆍ
“퀼른, 트리어, 라인팔츠, 작센..”
시온은 네 명의 선제후가 공개적인 장소로 오는 것을 보았다. 이들 네 명만으로도 벌써 제국의 사 분의 일이었다.
나머지는 아직 오고 있지 않았고 예상했던 숫자는 이쯤 정도였지만 조금 더 기대가 되는 건 시온으로서는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마인츠의 문장이 눈에 보였다.
“마인츠? 저자는 안 올줄 알았는데.”
가장 거슬리고 바로 배신할 거로 생각한 마인츠가 후속으로 따라 붙고 있던 거였다.
마인츠는 황제파에서 최 중요 인물이니 그가 시온에게 온다는 것은 이미 잣대가 휘어지고 있다는 강력한 뜻이기도 했다.
시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른 자들이 빠진다고 해도 적 내부를 훤히 아는 자가 합류하게 된다면 이후의 대처는 대단히 편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