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한 자
“뭐가 있어야 들어가지.”
블랙 드래곤의 단장 디아스는 고민하고 있었다. 재량이 부여됐고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지만 그것 이상으로 뭔가가 부족했다.
결국은 황제도 확답을 주지 못할 문제였다. 그 정도로 지금 시온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란 거였다.
“생각이 많아지는데요.”
“부단장급에서라도 압박을 넣어 보는 게.”
“디드리히를 이렇게 눈치를 보게 하다니...”
“갈 거면 어설프게 가지 말고 모두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애매하잖아. 우리가 몰려가는 정도로도 이미 문제는 커진다. 어설프게 할 바에야.”
디아스와 몇 명만 따로 가는 것이 아니고 전부 가는 것으로도 이미 시온에게 먹혀들어 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정도로 감당이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을 세간에 알리는 꼴이었다. 황제의 위신이 이미 떨어지는 꼴이라는 상황.
거기에 대한 책임도 상당한 양의, 그런 것이 디아스와 블랙 드래곤 기사단에 부여가 된다. 정말이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시온이 벌인 일은 감탄이 나온다고 할 수 있었다.
“골치가 아플 정도로 성장해 버렸군.”
디아스 비바르는 시온을 우연히 봤었던 움드에서의 전투를 떠올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금은 전장의 한복판이 아니고 힘을 쓰자고 한다면 자신이 상당히 유리하다는 점일 거였다.
“벨리사르 님이 최대의 실수 한 것이지. 존경에 존경하는 분이지만. 이 남자는....”
디아스가 이어서 결정을 내렸다. 블랙 기사단의 단장급의 기사들 최정예만으로 일차적인 압박을 하기로 말이었다.
부족할 것이다, 너무 넘친다는 의견이 둘 다 제시됐지만, 그는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기사들을 이끌었다.
“디아스의 기사단이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단 말이냐. 시온을 그 정도로 경계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긴 나도 놀랐을 정도였으니.”
황제의 최정예 부대인 블랙드래곤 기사단이 여기에 전원 모여있었고 오고 있다는 것은 오토도 놀랐다.
“이렇게 무난하게 지나갈 리는 없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황제는 설마 우리를 모두 사로잡을 셈인가?”
“그 정도로 분노에 사로잡힐 머리가 없진 않아.”
시온과 달리 다른 가문 같은 경우는 각 가주인 자신들이 사로잡힌다고 해도 그 역할을 대신할 자들은 얼마든지 많았다.
그렇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기도 한 거였다. 그러니 건드린다는 것은 복잡한 인질 정치의 시작과 곧 내전의 개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다른 선제후들이 뒤에 꼬리를 물기 전이었다. 이미 온 자들을 제외하고 다른 선제후의 가문의 문장 기가 속속히 보였다.
그걸 보는 디아스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최연소로 최정예 기사단이라 평가받는 기사단의 단장직을 수행하고 수많은 전투와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단연코 선제후들이 이렇게 한결같은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황제가 긴급한 일로 불러도 갖은 핑계를 대며 돈과 관직과 조금 더 이득을 보기 위해 음모를 꾸미며 자기들끼리 흉계를 쓰기 위해 가짜 행동으로 혼란을 줬던 거였다.
“이건 저희가 진 것 같습니다.”
“시온이 강요를 할 정도로 시간이 충분하진 않았다고 보는데...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시온은 바깥의 긴장감과 도착하는 마차를 확인하며 디아스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걸어 나갔다. 예전에 중요한 전투에서 도움을 받았던 만큼 대화와 얼굴은 익혀뒀고 곧 누가 디아스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보다 실력이 대단히 늘었군. 아마 내가 없었다면 내 명성을 가지고 있는 건 디아스였겠어.’
“오랜만이다. 디아스 단장.”
디아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상식적으로 그가 기대하고 있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선 거였다. 제국에서 가장 높은 첨탑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지금보다 충격이 작을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그의 심정이었다.
“시온 백작... 아니 왕. 반갑습니다. 실로 오랜만이군요.”
디아스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근처의 기사들은 조금 전만 해도 여기서 반란죄를 씌워서, 집행을 하느냐 마느냐 하던 사람이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디아스는 징벌자로 이름이 드높았던 거였다. 그러나 디아스는 자기의 감을 믿었다. 그는 오랫동안 강자와 만났고 어느 정도 그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시온은 예외였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신 거요?”
“무슨 뜻이지? 선제후들을 모이게 한 건 황제가 나에 대해서 가지는 부당한....”
“대체 무슨 짓을 해야 그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단 말이요. 내가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
시온만 놀란 건 아니고 거기에 있는 디아스가 데려온 기사들, 종자들, 선제후, 선제후의 호위 기사들, 귀족들 모두 눈이 커져서 디아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곱씹고 있었다.
“그게 정확히 무슨 말이지? 디아스 단장.”
오토가 바로 옆에서 입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러자 지금 무슨 실책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은 그가 갑자기 시온에게 말했다.
“이거 실례가 되었소. 당신의 승리요. 말을 끝까지 이어보시오.”
“음....”
시온은 잠시 시간을 끌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선제후들과 함께 부당한 황제의 처사를 취소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 말 황제께 전해드리지요. 그러나 내 기사들은 남겨두겠소.”
그러고는 디아스가 돌아가 버렸다. 기사들을 남겨 반역 모의를 하는지 감시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니 여기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면 될 거였다.
그나저나 디아스는 끝내 말을 내뱉지 않았다는 점에선 자신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가 본 시온의 능력은 데리고 온 기사들로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것이었다.
“산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맥의 산맥이로군. 이렇게 허무하게 잃기엔 단원들이 너무 아까워.”
한 명 한 명에게 들어간 제국의 자원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이 거친 실전경험은 그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푸념을 지은 디아스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다른 귀족과 기사들이 그를 향해 뛰어오며 말했다.
“진짜 대체 뭐 하시는 것이요? 디아스 단장.”
“뭐 이것저것 설명할 건 많은데 여기서 다 알려드릴 순 없고...”
“황제께서 정당하게 집행하라 하십니다.”
“집행을 하라?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럼 용기를 보여야 하지만.”
“용기? 그것까지 필요합니까? 어쨌든 하십시오. 심증은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정도면 이들 모두 발목 정도는 잡을 수 있습니다. 구실을 만들어서 죄를 씌우게 하는 데 실패한다고 해도 예? 디아스 단장 정도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지 않습니까?”
원래 제국에서 정말로 죄를 죄어서 처형당하는 자는 드물었다. 권신이 참수당하거나 끝없는 감금에 들어가는 건 제국에서 흔한 일이었다.
블랙드래곤 기사단의 단장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명예로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서는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지만, 마찬가지로 황제를 위해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도 해낼 줄 알아야 했다.
“지금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건 나밖엔 없는 건가?”
디아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각자의 입장이 있겠지만 모두 시온의 능력을 간과하고 있는 거였다.
디아스가 돌아오자 시온은 마음이 바뀐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이 모임에 디아스도 들어올 건지에 대한 것을 말이었다.
그러나 디아스가 한 다음 행동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황제의 기사들에게 다시 명령하고 시온과 선제후들을 향해 검을 뽑았던 거였다.
“황제의 엄명이 있어 모두 혐의가 있음을 아셔야겠습니다.”
그러나 순수히 잡힐 이들이 아니었다. 선제후는 전통적으로 황제의 강제집행에는 항상 반대할 권리가 있었고 이곳에는 그런 자들이 무려 전부가 모여있다.
“어디서 검을 뽑아들어?”
“디아스 내가 저번 전투에 군량과 무기를 지원해준 것을 잊었나?”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감히 전쟁이라도 할 생각인가.”
“이런저런 사연이 있겠지. 우리 대화로 하는 게 어떤가.”
“우리는 시온 제후가 있다! 너희들 뭐하나 시온 제후 옆으로 가서 검을 뽑아라! 내 곁에서 나를 지킬 필요가 없어!”
선제후가 여럿이니 서로가 말하는 바와 명령권도 불만도 얽혀있는 것도 많아서 이런저런 의견들에 진흙탕이 되었다.
‘아, 이거 난감한데. 이러면 자연스럽게 실력행사로 넘어가게 되겠지.’
아니나 다를까 양쪽 다 무력행사로 들어갈 수밖엔 없었다. 양쪽 다 정의롭지 못하다고 하니 서로가 어느 선에서 상대를 제압 해야 했다.
다만 여기서 시온과 황제의 기사들과 입장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시온은 이들을 죽이면 안 되고 이들은 반대로 피를 볼 수 있다는 점일 거였다.
에슬린이 바로 속삭였다.
“피를 보게 되면 그것으로 죄를 씌울 겁니다. 적당히 하셔야 합니다.”
“......”
이어서 칼 뽑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선제후가 데려온 기사들도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 자식들이! 비겁한 녀석들! 지금 이게 제국법에 옳다는 건가?”
“이제 피 없이는 그냥 지나가긴 어려울 것 같지.”
“아무리 시온 경이 명예롭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강도 같은 짓을 하다니.”
‘손을 빨리 보는 게 낫겠지...’
여기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있으니 여기서 빠르게 저들을 제압하는 일이었다. 물론 피를 보면 안 되기에 난이도가 있는 편이었다.
“제안은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간의 전장에서의 경험상 주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시온이 곧장 뛰어들었다.
시온이 들고 있는 것은 방금 옆에서 오토 한테서 뺏은 것으로 장식용 검이었다.
장식용 검은 의례상 가져오는 것이고 시온도 이게 정말 장식용 검인 줄은 들고 나서야 알았다.
일단 주먹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뺏어 들은 것인데 일단은 예상이 맞았다.
오토라면 예의를 갖춰서 이것을 가져올 거라는 생각이 말이다. 어쨌든 모두의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시온의 일격이 이어졌고 그 목표는 당연히 이들의 책임자인 디아스였다. 제국에서 순위를 가르자면 몇 손가락에 안에 들만한 강자인 디아스는 본능적으로 시온에게 반격을 했다.
누가 봐도 디아스가 시온에게 피를 보게 할 것 같았지만 결과는 영 딴판이었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디아스의 검이 허공을 허망하게 잘랐다. 그건 디아스도 디아스의 기사들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와 결과였다.
“시온 경을 공격해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도 오질..”
“단장이 당한 거지 멍청아. 검 잡아.”
“이게 시온 경인가...”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여러 명이 달려들지는 않을 거였다. 이들은 자긍심이 높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가 당면해 있었고 시온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이들의 집단행동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미...친 이게 대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설마 내가 모르는 계략이라도 있는 건가.”
“내 기사들이 끼어들 틈이.... 없군.”
시온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씩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팔이든 다리든 부러지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경무장한 자들은 부러져서 참가가 불가능하게 됐다.
전장이라면 어떻게든 달려들겠지만 지금 이곳은 수도였고 서로가 치열하게 대립해서 실력행사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어서 암묵적으로 이 정도 부상이라면 참가가 끝난 것으로 봐야 했다.
완전히 중무장한 기사 몇이 쓰러졌다가 달려드는 것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게다가 희한하게 검도 부러지지 않았다.
“이런 개같은... 마법인가? 마법이군. 그런데 무슨 마법이지?”
“허어...허... 인간이 이런 일을 하고도 숨 한번 헐떡이지 않는다고.”
“장식용 검으로 이런 농락이라니 시온의 본래 능력이 대체 어느 정도란 건가.”
황제 측의 귀족들이 결과를 두려워하기보다 이런 압도적인 광경을 구경했다는 것에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흠.. 잘 됐군.’
시온은 자신이 무난하게 어려운 일을 잘 처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구경하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디아스는 이렇게 쉽게 당할 인물도 아니었고 그만한 실력인 것도 아니었다.
‘방심, 그리고 내 선제공격이 잘 먹힌 거지.’
만약에 부하들이 먼저 나가떨어졌다면 충분히 대응할만한 무언가를 보여줬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오히려 구실은 황제가 물게 된 것이 된다. 제국이 돌아가는 방식은 언제나 두 부류였다. 황권이 너무 강하든지 아니면 권신들이 너무 강하든지.
선제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된 거였고 황제는 다른 압박을 줄 수도 없을 정도로 거꾸로 모든 구실을 먹은 것이 되었다. 단숨에 상황이 반전된 것뿐만 아니라 황제와 대등하게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