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국의 지위
높이 600m의 다다르는 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인 제국 대의결장은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장소였다.
그러니 여기서 참석할 수 있는 기회만 얻는다고 할지라도 가문 대대로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그 규모나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층은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여기에서 올라오는 안건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며 가장 중요한 인물만 참석할 수 있는 법이었다.
시온은 이 거대한 의결장의 단독 입행자였다.
갑작스럽게 열렸으면서도 선제후 모두가 참석했다는 경이로운 기록을 보여줬고 여기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비단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블랙드래곤 기사단의 단장인 디아스였다. 그는 두 손을 포승줄이 묶인 채 죄수처럼 공석에 나와 있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지.’
이를테면 블랙드래곤 단장인 디아스는 이번 사건의 총알받이가 된 격이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아마 황제나 황제의 재상인 자의 명령일 것이나 언제나 그렇듯이 거기에 대한 책임은 그 명령을 내린 사람에게까지는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긴급하게 대의결장이 열리고 여기에서 시온이 승인을 받아야 하는 여러 안건이 이렇게 주르륵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제국의 의결장에 올라갈 만큼 이번 일은 불미스러운 일이지. 기사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이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시온 경은 니벨룽 왕조를 연 대가문의 가주이니 같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황제가 시온에게 그렇게 말했고 시온에게 매수된 여러 제후가 시온의 편을 들어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암묵적으로 지켜줘야 할 거는 바로 디아스의 일을 없던 일로 넘어가 주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일의 최종 승자가 자신이 된 셈이었다.
마인츠나 몇몇 선제후들이 이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약간 의견이 갈리는 다양한 모습이 있었지만 사실 이미 결정된 내용의 확인에 불과했다.
시온에게 매수당했던 선제후들은 시온에게서 젊음의 비약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시온의 편을 일단은 들어줘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의 위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연기라는 연기는 다 하는 셈이었다.
황제도 대략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그의 눈가는 내심 여러 가지 말이 나올 때마다 떨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디아스가 아직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그가 정중하게 시온을 향해 돌아서더니 사과를 하고 자신이 버렸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이 자리에서 무죄를 증명하려면 결투밖에는 없지만, 그것을 말하고자 한다면 이겼어야 했겠지요. 그 원칙에 따라 모든 처우를 시온 경에게 맡기며 이 일은 내가 스스로 벌인 일입니다.”
이제 바로 시온의 차례였다. 그러나 여기서 이렇게 킷대를 잡고 있는데 이것을 그냥 내주게 된다면 너무 아까운 일일 것이었다.
일단은 내건 계약들이 모두 통과가 되면 그때야 인정을 해줘도 늦지 않다는 얘기였다.
물론 어설픈 인간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황제에게 찍혀서 앞으로 그 귀족만이 아니라 그 가문의 존속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는 행위이지만 현재의 시온이라면 이러한 행동이 가능했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장중을 감싸고 모두가 시온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확답을 드리겠습니다.”
순간, 아무리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피부로 와닿는 낯선 시선과 지금까지 항상 가장 높은 위치에서 오랫동안 짓눌러왔던 황제의 날카로운 눈초리에는 명백한 적개심이 담겨 있었기에 지금 시온이 이것을,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반분해야 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쟁 선포를 의미하는 거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시온이 마음을 착하게 먹는다고 해서 그대로 대해줄 세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급격하게 확보한 영토와 수많은 영주,
종속된 영주들은 니벨룽 가문을 뒷받침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것 자체로 황제와 전면전을 벌일 수 있을 만한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존에 권력자들의 눈에는 찢어 죽일 놈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고 있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시온이 노리고 있는 것은 새롭게 선포될 선제후의 작위와 그리고 그 직위에서 나오게 되는 영토에 대한 독점권이었다.
선제후라는 직위를 가지고 영토를 다스리는 것과 일반 대영주로서 그냥 영토를 다스리는 것은 봉건 계약이 완전히 달라졌다.
봉건 계약이라는 것은 봉신이 가지게 될 작위에 따라서 다시금 차등으로 엄격하게 배분되는 게 여기의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알바 지역에 대한 왕위를 같이 계승함으로써 거기에서 생기게 될 여러 가지 이권들 예를 들면 결혼에 대한 제약이 상당히 없어진다는 것,
이것 역시 인정을 받아야 했다.
제국 내에서는 결혼이 한정적이지만 이렇게 특권을 갖게 되면 단순히 권리를 누리게 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결혼이 하나의 동맹으로 간주하기에 적어도 남들보다 더 많은 동맹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이제 막 기반을 잡으려고 하는 마당에 이러한 긴밀한 연결이 없다면 후대에 가서는 곧장 무너져버릴지도 모르는 위태한 상황에 빠지게 될수도 있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은 사실 가문과 가문이 서로의 힘을 합쳐서 새로운 봉건 계약을 맺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러한 행위였다.
현대로 표현하자면 인수합병쯤 될 것이었다.
거기에 대한 폭이 남들보다 세 자리 정도는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거고, 우긴다면은 그 이상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여기에서 오게 되는 경제적 독점권은 더욱 가치가 높을 거였다.
시온이 차지하고 있는 세 개 지역에서는 막강한 금광과 각종 특산물이 즐비해 있었고 주요한 경제의 수입원인 비단길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만 결혼 라인이 잘 형성이 되면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에 가까웠다.
황제보다 더 많은 경제권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 부리고 있는 고렘의 수와 거기에 공급이 되는 보조석들을 계속해서 가동한다면 제국의 수도에 버금가는 지역을, 여러 개 도시를 여러 개 가질 수도 있었다.
그 정도만 된다면 나머지는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 될 거였다.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망해도 3대가 간다고 할 정도로 기반을 잘 닦아놓으면 시온의 생각에 그 이상을 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수도에 온 것이었다.
온 김에 대귀족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제국의 분위기를 살펴볼 계획이었는데 어쨌든 영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완전히 알게 되었다.
선제후 작위만 받게 되면 나머지는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시의 정비나 여러 가지, 기사와 보병의 질적인 보강도 필요했다.
시온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끝나기 전에 황제 쪽에서 간단히 새로운 선제후로 인정을 하겠다는 확답이 나왔다.
“어차피 대세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군.”
황제의 인장이 제후들의 서명이 한가득한 서류에 찍히자, 시온은 침을 삼켰다.
한때 미래를 알 수 없는 작은 들짐승 같은 신세였는데 어느덧 이렇게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이 자기 자신도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혹여 몇 명 정도는 마음을 바꿔서 다시 황제에게로 붙을 것으로 생각했던 선제후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시온에게 표를 줬다.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동시에 황제의 이마에선 남모를 식은땀이 흘렀다.
보통 일이 아니니까,
새로운 구심점인 시온에게 나머지 선제후들이 편을 바꿔치기한 거였고 이것은 원래 황제가 누리고 있던 엄청난 양의 권력이 시온에게 이전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을까. 이후에 이어지는 대답은 시온에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것이었다.
“시온 니벨룽 가문에게, 가문의 가주인 너에게 남부의 관리자와 서부의 관리자 그리고 알바 지역을 탈환한 공을 염두에 둬서 워든이라는 작위를 제안한다. 시온 니벨룽 그대와 제후들은 동의하는가?”
글쎄 시온은 듣자마자 황제가 무슨 이유로 저런 권한을 내주는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부의 관리자는 제국에서 흔히 말하는 왕보다 높은 명예직으로 큰 공을 세운 왕이 그쪽 지역을 전반적으로 황제처럼 담당한다는 의미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랫동안 봉신들의 분열을 추구해왔던 제국의 황제 가문의 처지에서는 관리자라는 직함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거의 800년 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할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일반 귀족이 받을 수가 없었고 반드시 황제의 인척 정도는 돼야지 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남부의 관리자뿐만 아니라 서부의 관리자까지 들어왔고,
그 두 개의 작위를 넘어서는 워든이라는 잊혔던 작위까지 부활할 정도라니.
이러한 관리자 위에는 다시 또 그들 중에서 대표할 수 있는 자를 워든이라고 불렀는데 그 작위를 지금 내린 것이었다.
“이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나 몰래 다른 얘기라도 한건가?”
“마인츠 네 생각인가? 따로 별장에서 한 번 보지 않았나.”
“황제가 단순히 저런 수를 쓸 것 같진 않은데. 혹시 시온과 따로...?”
“미치겠군.”
“더한 것을 보고 있었단 얘기가 아니야.”
이렇게 되면 워든이라는 봉건 계약의 특징상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황제에게서 독립되어 있었고 의무 역시 거의 모든 봉건 계약을 압도할 정도로 의무가 작았다.
이것은 비단 황제뿐만이 아니라 많은 선제후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는데 선제후들이 시온에게 붙은 것은 황제를 견제하고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시온의 상승을 기대하고 붙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추측이 속으로 난무하고 눈치 보기 게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황제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까 저런 짓을 했을 것이라는 그리고 그거는 어느 정도는 맞는 생각이었다.
황제는 지금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던 거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시온이 반기를 품고 자기 영지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야말로 자신이 황제에서 내려올 수도 있게 되는 엄청난 압박이 현재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게다가 황제의 생각엔 도무지 시온의 표정에서 그 어떠한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시온이 보여주는 마나는 이미 기사나 마법사에서도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에 시온 자신은 몰랐지만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압박감을, 아니 아주 독특한 압박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황제는 아까부터 시온이 디아스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엄청나게 크게 생각하고 추측하고 있었던 거였다.
단순히 디아스를 풀어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똑바로 대가를 주지 않으면 이대로 반란에 들어가겠다는 명백한 협박으로 보였던 거였다.
그러니 그가 급한 나머지 생각한 건 일단은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시온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결론을 급하게 내리게 되었고 게다가 이대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래서 황제는 시온에게 약혼까지 제안을 하는 무리수까지 두게 되었다.
“아무래도 크게 얘기가 나겠어. 어떻게 생각하지?”
약혼하게 된다면 함부로 반란을 계획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정을 바로바로 운을 떼서 시온에게 던진 거였다.
약혼이라니 확실한 신분 상승이었다.
아마 저것을 가지려고 뭘 희생해야 하고 어떤 수고를 들어야 할지 예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것이었다.
비단 시온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선제후가 노리고 있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잠시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순수한 제안인가 아니면 다른 함정인가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어느 정도 답변을 내놨어야 했기에 시온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고 이것을 노리던 것은 시온에게 큰 호감을 보이고 있었던 마인츠 선제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의 독대에선 눈치챌 수 없던 내용인데..”
그는 자식이 많았고 시온에게 딸을 권했던 것만큼이나 황제의 딸도 노리고 있었던 거였다.
어쨌든 이들이 인제 와서 여기에서 반대 의견을 내걸기에는 이미 상황이 시온에게 너무나 기울어져 있었기에 쉽게 굳혀질 그런 것이었다.
용기 있는 자는 이 같은 제안이 잘못됐다고 웅성거리기도 했지만 정작 황제가 제안했고 시온이 거기에 대해서 확답을 내려버린 탓에 그렇게 중요한 정책적 결단이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미치겠군. 다들 뭔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은 내가 먹긴 했는데.’
시온은 대의결장을 나오면서 놀란 가슴을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어지간한 노력은 다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것은 그냥 새로운 선제후에 자리 정도에 불과했는데 아예 남부와 서부의 두 개의 관리자와 그것을 총괄할 수 있는 워든이라는 작위를 받은 것뿐만 아니라 황제와의 약혼까지 확답을 받은 이상 그 뒤의 안건은 사실 그렇게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워든 정도가 되면 거의 자기 스스로 법을 만들어서 자기 지역에다가 적용을 지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거의 워든이라는 자가 내부에 소영주들 대영주들을 모은 뒤 자기와 관련된 자기에게 유리한 어떤 법을 제정한다고 해도 여기에 대해서 황제가 반론을 하려면 엄청난 수고와 비밀 거래가 요구가 되었다.
“워든 각하. 인사드립니다.”
“새로운 남서부 관리자인 니벨룽 각하께 무궁한 영광을!!”
소식이 빛보다 빠르게 퍼져가고 있었다. 나열해 있던 기사들이 모두 경의에 차서 시온을 보면서 누구의 소속이든지 칼을 바닥에 내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수천 명이 도미노처럼 무너져가는데 그건 그것 그대로 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