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8화 (268/304)

강제 정박

시온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니벨룽 기사들은 자랑스러운 감정을 만 얼굴에 띄웠다. 모두 제 각기에서 임무를 수행하라 하니 목소릴 높이고 차근차근 제 자리로들 간다.

시온은 너절한 해변을 보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정련할 때가 좋았지.’

지금은 많은 일과 작업과 인명이 걸려 있고 이 귀족과 망명자들을 온전히 다음 위치로 건져내야 했다.

그리고 이 해안의 모래 위는 시온이 벌인 붉은 비 덕분에 그마저도 실타래가 엉키듯 엉켜 있었다.

불타던 침엽수는 얼음이라도 던져 넣은 그것처럼 팍 식어 있었고 그 위로는 열기가 공기와 함께 흔들렸다.

그나마 확보된 암반 위의 공터엔 부상자들을 천막이 이어져 있었고 그곳엔 지쳐 보이는 소녀가 피가 묻은 수건을 빨고 있었다.

그 아래엔 귀족의 천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 라인을 따라서 기사들과 그리고 신분 여하에 따른 천막이 줄지어져 있었다.

‘그래도 하는 게 맞았지.’

생각보다 힘없는 자들이 많았다. 이것도 황제의 속임수 중 하나일 거였다. 말 대로라면 왕족과 귀족 몇 무리와 왕국의 기사들만이 있었어야 할 거였다.

시온은 진창에 빠진 수레를 보았다. 이어서 마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림자 비술을 끌어올렸다. 

수레의 그림자는 살아 있는 것처럼 수레를 들어 올렸고 이건 무슨 해괴한 현상인가 쳐다보는 왕국의 기사들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번져갔다.

“각하 아닌가?”

“각하!”

진창에 빠진 수레와 동력을 읽은 수레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백 개의 동력을 잃은 수레들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느낌이다.

부족한 거 없는 기분에 공명의 눈이 준 퀄리티의 마나는 더할 나위 없는 여유를 안겨 주었다.

분명히 이 안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내용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용환이 흡수했던 화마의 기운, 그것을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근질근질했다.

했다간 불바다였다.

물론 시온은 그 마음을 꺾었다. 그림자 비술에 진화(眞火)를 담을 수 있었다. 수백의 수레가 인력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곤 시온은 소모되는 마나의 양을 집중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전보다 마나가 늘었군. 전반적인 효율도 늘어났고.’

테스트는 좀 더 해봐야 할 터이지만 일단은 에테르 그림자 비술의 소모 마나는 확연하게 줄었다.

환영 자아든 다른 대마법이든 같이 효율이 증진되었을 것 같으니 초반의 술식이라도 확인해 보기 위해 마나를 약식으로 개방하려고 하는데, 에슬린이 찾아왔다.

“범선이 준비되어 오고 있답니다. 그런데 나오시자마자 참.... ‘그걸’ 결국 해내셨군요.”

“공명의 눈.”

“이런. 하하.”

혼단으로 공명의 눈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거대한 가능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변변찮은 곳에서 정련하는 것은 또 대담한 짓이었다. 이런 곳에서 폭주라도 하게 된다면 목숨이 끊긴다고 봐야 했다.

둘 다 어려웠지만, 정련 작업이 더 심했다. 에슬린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누가 볼까 봐 이마를 훔친 에슬린의 눈엔 해안가로 수백의 수레들이 덜컹덜컹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집중도 제대로 하지 않고. 경지가 더 올랐다. 맙소사.’

“범선을 어디에다 댈 건가?”

“대충 놓으십시오. 각하. 그 정도만 해도 혹사했던 자들이 눈물이라도 한바탕 흘리겠어요.”

“흠. 그리고 제국으로 돌아가면 준비해둔 재료를 나에게 보내.”

“무슨 말씀이신지?”

“정단을 하나 해줄 테니까 말이야.”

“아, 괜찮습니다. 누구한테 그러지 마십시오. 욕 뒤지게 먹습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내심 기대하곤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에슬린이 자리에서 비켰다.

“다른 자들을 데려오겠습니다.”

“음, 그래.”

ㆍㆍㆍ

안 그래도 위중하다더니 마누엘은 그 와중에 사망해버렸다. 잘 버티나 했더니 이번의 정련 단계에서 불러온 붉은 비가 그의 촛불을 밀어버린 모양이었다.

‘.......이런. 곤란해지네.’

실비아 두카스가 넋 나간 얼굴이었다. 시온은 커피 한잔을 마셨다. 이들의 물건에는 동방의 물품이 있었고 커피와 차는 제국으로 넘어올 때 폭리가 붙고야 만다.

“쓴데.”

차분한 시온과는 달리 왕국의 대귀족들은 논란이 일어났다. 그들이 소리를 높일 때마다 논란은 격분이 되어 간다.

제국이나 여기나.

차남인 알렉시오스는 대귀족들을 노려보다가 머리를 부여잡는다. 여기에 도는 논지는 대충은 엿들을 수 있었다.

정략결혼.

마누엘이 사망했으니 그들의 법에 따르면 실비아의 위치가 공중에 붕 떴다. 정략결혼이란 것은 일종의 한쪽에 희생이라고 봐야 했다.

그것이 원점으로 돌아갔으니 이들은 이것을 물리고 그들의 권력을 되찾아줄 동맹을 찾아야 했다.

이들은 이것을 위해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있을 거였다. 시온은 몇 가지 올 문제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례라는 것은 진행이 된다. 것도 동방의 비옥한 곡창 지대의 지배자인 두카스 가문의 실지왕(失地王) 마누엘은 분명히 성대한 장례를 치를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승인을 해야 하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곳은 적지고 장례 치르다 적기에 탈출이 안 되는 것은 죄악이었다.

두카스 가문과 그 가문을 따르는 대가문의 체면이란 것은 시온에겐 이제 의미가 없었다.

망국의 왕과 귀족만큼 허울 좋은 놈들은 없었고 시온 입장에서는 차라리 저 불쌍한 평민들을 최대한 살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시온은 커피를 조금 더 마셨다. 이어서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그건 자신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해둔 말이 있었고 이번 일이 자기 때문에 벌어진 과실인 것을 밝혔다. 

기대가 가득 찬 귀족들의 눈은 다시 혼란스럽게 바뀌었다. 시온도 사실 어떻게 일이 풀릴지는 전혀 몰랐다. 

여기다가 얘기를 하든지 아니면 실비아나 알렉시오스에게 얘기할 예정이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여기다가 저지르기로 했다. 

“.........”

시온은 다시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김은 식어 가고 있었다. 그 온도가 다시금 올라갔다 출렁출렁하더니 가열된다. 

검은 액체가 흔들리고 소용돌이 졌다. 아주 작은 컵에서 누군가가 그것을 데우고 돌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시온은 그냥 따뜻하게 먹고 싶어서 한 무의식적인 선택이었지만 귀족 무리에게서는 가뿐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협박하는 거 맞지 않소.”

“저런 진귀한 현상을 볼 줄이야.”

뜨거운 온도를 가지게 된 커피잔에 손을 잡았고 그것을 마시려고 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 알렉시오스가 말했다. 

“제 아버지는 실비아를 벨리사리우스 공에게 약속했어요. 제 의견은 좀 다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 이번 일은 내가 저지른 일이야.” 

시온에게 걸려 있는 절정(絶頂)의 명예. 하늘 같은 명예 그것이 깨질 수도 있었다. 

슬며시 의자를 뒤로 깊게 젖혔다. 어차피 신경 쓰지도 않았지만, 막상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쉽긴 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니, 정략결혼은 거절하겠다는 뜻이었다. 실비아는 안색이 나빠졌다. 물론 자신도 이 정략결혼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을 느끼고는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가슴이 불편했다.

“내가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

순간 시온은 제대로 말을 붙일 순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 싫은 티를 팍팍 내지 않았던가. 게다가 벨리사르 공의 아들이라면 안면이 있고 큰 도움을 받았었는데, 무턱 대곤 할 순 없는 거였다.

하여튼 말을 하지 않은 건 오히려 잘 풀렸다. 알렉시오스가 대번 불같이 화를 낸 거였다.

“진짜 이게 어이가 없어서. 시온 각하 앞에서 입 안 다물어?”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멍청한 년. 지금 아버지가 옆에 있었으면 넌.”

적어도 가지고 있던 의구심은 풀렸다. 이들은 지금 시온이 만들었던 화마와 붉은 비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다. 

실비아에게 주먹을 한 번 맞은 알렉시오스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라산 지대의 대귀족들은 자기들끼리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와우.’

즉 시기가 무르익었다. 하나는 그냥 해결할 수 있었다.

“마누엘 두카스의 장례는 간이로 진행할 테니 모두 여기를 떠날 준비를 해라.”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지만, 딱히 반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이들의 서로에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던 거였다.

ㆍㆍㆍ

나인만 부족은 거래가 끝이 났기에 카이샨과 라카이가 나머지 전사들과 그대로 배를 구해서 떠났고 밀수 범선은 시온이 탈취한 것으로 했다.

더 이상은 그들로서도 위험했다.

시온은 이제 선장을 잃은 상황이었다. 대략의 방향은 시온이 정해야 했다. 

그래서 방향을 정해야 했는데 방향은 둘 중의 하나였다. 하나는 왔던 방향으로 그대로 다시 돌아가는 방향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 추적이 붙을 수도 있으니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방향이었다. 

에슬린과 에릭, 고드, 알렉시우스와 여러모로 논의를 해봤지만 아무래도 나인만 부족의 사람들이 빠졌기 때문에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이 됐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 한복판에서 엄청난 수의 함선에 둘러싸게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절대로 비밀리에 빠져나갈 수 없었고 전투 자체에는 분명히 해야 했다. 

범선이 이젠 좀 많았던 거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럴 바에야 그냥 익숙한 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수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놀랍게도 돌아오는 길에는 그 어떤 범선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포위망 자체도 헐거워져 있었고 시온이 생각해 봤던 그 정도에 난이도는 아니었던 거였다. 그렇게 해안가에 정박했다. 정확히는 강제 정박이었다.

쿵-

갑작스럽게 배가 연달아 항구에 들이박으니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이었다. 이어서 선박에서 기사들이 뛰어내렸다. 기사들은 칼을 꺼내고 곧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피가 낭자하게 뿌려졌다.

“명예(名譽)를 위해!!”

“워든 각하에게 목숨을 바쳐라!!”

나름 인부가 많았던 항구는 피바다가 되었다. 범선에 있는 자 중에 전투할 수 있는다면 모두 날붙이를 들고 나무때기를 뛰어넘었다.

‘해안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정박의 허락을 맡는 건 악수지.’

이 작은 항구를 점령한다고 해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여기를 넘어야 했다. 

시온이 타고 있는 범선이 무너질 듯 흔들흔들했다. 후속 마법을 막아야 했기 때문에 시온은 아래로 뛰어내렸다. 메이스를 움켜쥐었다.

상위 마법인 지진격(地震格)이었다. 이것에 직격하면 범선은 바로 침몰한다. 하지만 시온은 그것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땅이 울리며 갈라지곤 거대한 뼈 형태의 구조물이 몰려들었고 시온은 용격점으로 그것을 받아쳤다.

퀄리티 높은 두 개의 이형(二形)의 마나가 시온의 메이스에서 충돌했고 용격점의 마나가 이어서 그것을 잡아먹었다.

숨어 있던 시전자는 울컥울컥 피를 토했다.

“거기 있구나.”

시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시전자는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안쪽 가슴팍에 손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손은 빠지지 않았다. 아래에서 올라온 그림자가 그의 목과 손을 움켜쥔 거였다.

그림자의 다음 행동은 이내 간단했다. 그대로 그것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거리. 공명의 눈을 흡수한 시온의 전반적인 마법의 숙련도는 30%의 증진이 있었다.

그림자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전염이 되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번지고 다른 자들을 잡아 들어갔다. 벗어나려고 해봐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시온은 이어져 있는 수십 개의 그림자 끈을 잡아당겼다. 와르르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수준 높은 전사들이 자빠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들이 그곳을 돌파했다.

전부 들어가기도 전에 선두의 에릭이 벌써 대번의 골족 전사를 끝을 냈다. 그럴 때마다 시온은 끈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림자 비술은 근력이 약하면 쓸 수가 없겠어. 따라서 쓸 수 있는 마법사는 아주 아주 드물겠지.’

가벼워지고는 있었으나 시온은 더 큰 미지의 존재를 파악하고는 비술을 재빨리 풀었다.

볼 것도 없이 메이스를 왼쪽 사각지대에 집어넣었다. 녀석은 희끄무레했다. 은신(隱身) 계열. 찌르는 속도를 보아 분명히 케식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두세 바퀴를 뒤로 돌면서 빠져나가려는 녀석의 다리를 염동력 기본 마법으로 억제했다.

기본 마법이라고 해도 시온의 밀도 높은 마나의 특징상 강력했기에 그가 가지고 있는 마법 방진을 뚫는 건 쉬운 일이었다.

방심 상태에 있던 그 작은 체구의 케식은 나뒹굴었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씨..씨발.”

그의 눈앞에는 시온의 메이스가 내려쳐지고 있었다. 얼어붙은 표정은 수많은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고 시온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가장 골치 아픈 타입이었던 거다.

곧이어 케식의 몸이 허물어졌는데 그것을 지탱할 만한 머리는 이미 없었다. 아마도 자신을 진즉에 관통했어야 할 단검은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시온은 그것을 들었다.

시퍼런 독과 예리한 날에 걸려 있는 복잡한 저주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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