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1화 (271/304)

백병전(2)

케식이 가까워질수록 시온은 정신을 집중했다. 뾰족한 송곳니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얼뜨기들과는 달랐다. 

‘뭔 속도냐.’ 

흘깃 보면 적포도주 선 가닥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신 놓고 있으면 그것에 물려서 살 한 덩이는 내줘야 할 거였다.

시온은 침을 그득 흘리는 그것의 아가리에 메이스를 박았다. 그것의 이빨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으스러졌다.

‘쇳덩이를 친 것 같은데 용의 혈통으로 쳤는데도 말이지.’

깨진 머리에서 쿨럭쿨럭하는 소리가 났다. 시온은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방금 일격으로 잔뜩 흥분한 그것의 몸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씨발.”

줄줄이 케식이 도착하기 전에 끝을 봐야 했다. 하지만 본체가 깨진 모양인지 영 시원찮았다. 

찌그러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까지 여럿 후려친 다음 거기에 진화(眞火)를 붙였다.

이제야 썩 좋지 않던 혐오감이 내려갔다. 얼추 탄 내가 콧등에서 맴 돌쯤 격한 분노의 소리가 귀를 때렸다.

“안 돼!! 형제!!”

희미한 안개가 주위로 스며들 듯이 감싸고 돌았다. 구불구불한 연기의 중심엔 형제라고 소리친 남자가 서 있었다. 

저런 흉악한 사술을 쓰는 놈한테 형제라니.

창백한 얼굴에 이것저것 기운 듯한 짐승의 의복이었다. 형성한 것은 안개의 칼날이었다. 

‘안개화?’

묘한 형태의 흐물거리는 것이 시온에게 날아들었다. 여기는 단순한 칼날만 있는 게 아니었고 여러 가지 마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이 미세한 연기는 끈적거리기도 했고 발을 잡기도 했는데 중간중간에 사각지대에서 공격하기도 했다.

그 공격은 모두 무효로 돌아갔기에 순간적으로 잠시나마 고요해졌다. 

시각과 갑옷에 의지하는 기사와 다르게 시온의 모든 행동의 선택은 앤드류의 비술이 제어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런 기사의 유형은 흔치 않았다.

“최초의 존재!”

여러 수작질이 허무하게 돌아가자 녀석이 소리를 쳤다. 눈치는 빠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안개냐 위냐. 

지금 메워 가는 녀석의 수법에 정체를 잡아야 했다.

사나워지는 주변의 공세와 분위기 속에서 시온이 잡은 방향은 안개였다. 이 안개를 제거해야지 변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여분에 마나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위였네.”

공중에서 직격 하는 것은 분명히 기둥이었다. 시온이 있는 자리에 떨어졌고 피하긴 했는데 적중당했다면 영 좋은 꼴을 보지는 못했을 거였다.

묵직한 소리가 났는데 인제 보니 토템 같은 거였다. 지면에 깊게 들어박혔고 이것은 잡다한 장식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보조 수단인가.’

차라리 직격타를 주던지 곧바로 파괴 마법으로 이어지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 안개를 흩뿌리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마나를 거기에 써야 했을 거니까 말이다.

둘둘 말려 있는 마나를 해방하기만 하면 됐고 시온은 바로 그렇게 움직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토템이 주는 효과가 흥미진진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사치였다.

주위가 펄럭거리며 흔들렸는데 마나가 안개를 밀어내는 거였다. 이어서 공간이 확 트였다. 노출된 녀석과 일기토의 상황이 만들어졌고 시온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빠른 속도로 거리가 좁혀지고 순식간에 여섯 번의 공세가 이어졌다. 이러한 순환이 빙그레 이어지다가 벼락에 맞은 듯한 느낌이 손 언저리에서 올라왔다.

‘끝냈군.’

보지 않아도 이 감각이 전해주는 바는 항상 올곧았다. 바닥에 들러붙은 녀석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를 못했다. 안개는 없어졌고 토템은 그냥 나뭇덩어리였다.

마나의 근원지를 잃은 토템은 물을 잃은 나무처럼 쓰러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냐.”

“선봉장들이 쓰러졌어!!”

“이게 맞는 거야?”

시온이 이 세 명의 케식을 이승에서 날려 버린 것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들이 맡은 능력은 선봉에서 유지가 되어야 다른 골족 전사의 무리를 강화할 수 있었던 거였다.

즉 중요한 선봉 세 명이 찰나에 사라진 꼴이었고 이것은 진짜로 이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전술을 깨트렸다.

시온의 기사들은 물론이고 라산의 기사들이 안전하게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건 덤이었다.

딱 봐도 이젠 이 같은 파도를 헤쳐낼 수 있어 보였다. 오히려 여섯 발자국 정도 유리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남은 케식의 공격이 시온에게 집중이 될 것이었는데 시온은 여전히 힘을 거의 쓰지 않았다.

‘아마 한 번에 들어왔으면 마나를 좀 썼어야 했을 건데.’

조급했던 그 첫 번째 거구가 문제였고 두 번째 녀석도 문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대가일 게 뻔했다. 특히 두 번째 녀석은 이성을 줄이고 광기에 몸을 맡겨 터질 듯한 전투 능력을 얻었을 것이었다.

‘일단은. 여기를 정화해야지.’

시온은 주춤주춤하며 다시 달려드려는 골족 전사를 쳐다봤다. 한 모금의 숨만 있어도 깔아 놓은 마나는 곧바로 불덩이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마나를 희석해야 했지만 그런 수단을 케식이 아닌 이 골족들이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방에서 검붉은 불길이 이들을 뒤덮자 시온은 안도감이 돌았다. 약간의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탓이었다.

‘음?’

그리고, 불길을 부채질하듯 갈라내며 그 사이로 아까보다 더 거대한 화살이 날아왔다.

교활할 정도로 은밀하게 지금까지 압축된 힘을 감춘 모양이었는데 앤드류의 비술의 수식을 벗어날 순 없었다.

“후우.”

피하자마자 뒤가 시원해졌는데 뒤를 흘깃 보니 바닥 사이를 갈라버리고 그곳에 갖가지 것들이 잠겨가고 있었다.

‘아까 저격술 보다 더 강한 화살이군. 동일한 느낌이야. 그러니 같은 녀석이 쐈다고 봐야겠지.’

그 공기가 갈라지고 마나가 흔들리는 파장이 만들어내는 떨림만으로도 수준이 가늠되었다. 이어서 저것을 쉽사리 발사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똑같은 찰나를 노리거나 더 강한 타격을 준비해야 할 게 뻔했기에 그동안은 안전하다고 할 거였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갈라진 불길과 그 연기가 만들어내는 뿌연 사이에는 세 명의 케식이 연이어 보였다.

‘다섯? 아니 셋.’

이들이 앞서 죽은 케식의 죽음으로부터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양이었고 다른 케식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뒤엉킨 바람이 시온을 훑었다. 이제는 셋을 정리했으니 안전한 곳에 가서 환영 자아를 통해서 교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였다.

필사적으로 현재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 궁리를 했다. 결과적으론 분명히 저 녀석들이 이 파도의 핵심이기에 죽여야 할 거는 뻔했고,,,

잠시 검붉은 불길이 누그러졌을 때 시온은 바로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마나의 의해 휙 굽어진 불길 사이로 다급해 하는 케식의 눈동자가 보였다. 

뭔가 했더니 딱 봐도 앞에 세 명하고 합을 맞췄어야 할 케식이었던 거였다.

이들은 매섭게 반응하고자 했으나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졌다.

가시넝쿨이 무럭무럭 자라나더니 그 가시가 휘감기 위해서 커졌다. 

다급하게 도망가기 위한 포석으로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리고자 한다는 것을 시온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마법은 너무나 목숨이 경각에 빠져있었기에 부족했고 허술한 방법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공격인 탓에 시온의 공격은 무난하게 그의 가슴을 후려칠 수 있었다.

“이.... 이건 아니잖아.”

다른 자의 얼굴엔 땀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는데 그나마 이 상황을 틀어막을 수 있는 유일한 자로 보였다.

아래에서부터 뻣뻣해지는 게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 빙결 마법의 주인일 것인데 시온의 몸에서 다른 환영 자아가 나타나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아득할 정도의 힘으로 계속 그 얼음 소용돌이 주인의 머리를 내려쳤고 그자는 결국엔 뭐가 됐든 간에 곤죽이 되어 끝이 나버렸다.

그 와중에 뭔가 단단히 잘 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등을 보였던 한 명의 뒤를 메이스로 깨버린 시온은 이렇게 남은 케식마저도 정리를 해버렸다.

충격에 뒷걸음질 치며 주절거리는 골족의 전사들을 내버려 두고 시온은 바로 안쪽으로 내뺐다.

환영 자아는 자연스럽게 반지로 푹 꺼졌고 그 마나는 약간의 손실이 일어났지만 거리가 가깝기에 무시할 정도의 손실밖에는 되지 않아 상관은 없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동자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던 에슬린은 시온이 불길에서 뛰어나오자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맙소사. 각하. 어서! 어떻게 된 겁니까!! 부상을 입었습니까? 고강도의 마나가 몇 번 있긴 했었는데.”

한 번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가는 데다가 시야가 보이지 않게 되면 에슬린 같은 마법사는 기다려야지 함부로 공격해서는 안 됐다.

오히려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오는 지원이 살 수 있는 자도 죽게 만들기도 하는 거였다.

“케식 여섯 명을 제거했다. 공격을 참은 건 잘한 일이야. 정신없었거든.”

이제는 완전히 시온 측이 유리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막상 올라가다 보니 벌집이 되어 있는 나무통들이 시온의 눈에 보였다. 

‘놀라운 사격술이군. 돌진 능력도 높은데.’

케식의 수를 줄이지 않았더라면 아찔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벌써 여섯 명을 죽였다. 아마 몇몇 케식이 남아 있기야 하겠지만 전세의 영향엔 주기 어려울 거였다. 전세 자체가 꺾였다고 봐도 됐다. 

‘좋아. 잘 처리됐군.’

그 정도로 사방에선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거였다. 어쨌든 긴장했던 신경이 한 꺼풀 꺾이고 여유를 좀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환영 자아로 교란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지금 사용한 마나가 얼마 되지를 않았다. 

달려들었어야 하는 후미의 골족과 케식은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저격하던 거한과 시온의 시선이 우연히 마주쳤다. 

“저 녀석이 대장인가.”

그의 눈동자는 핏줄이 붉어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아마도 이곳을 밀어버리고 그 전공을 독차지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모든 전세가 자신에게 기울어져 가고 있었고 

이 전세를 뒤집어야 할 여러 명의 케식이 시온에게 단숨에 제거되어 버렸으니 

그가 원했던 전공이 아니라 지금 전멸해야 할지 아니면 후퇴를 해야 할지를 결정을 해야 했던 거였다. 

“날려버려!”

“밀어버려라!!”

“대항해!!”

그가 고민에 빠져있는 상황에서도 양익에서 죽어가는 골족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기사들의 검은 이런 식으로 경험의 허기를 잔뜩 채우고 있었다. 

시온은 에슬린에게서 받은 가죽 물병을 받고 그 뚜껑을 딴 뒤에 물을 입에 부었다. 

안에 있는 물을 거의 위에다가 쏟아내 버리고 나서 시온은 곧바로 환영 자아를 만들었다. 

공명의 눈을 흡수하고 나서 전반적인 마나의 효율이 늘어나게 됐는데 하여튼 여기엔 환영 자아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반지가 빛무리로 인해 잠시 하얗게 변했다가 시온이 걸고 있는 술식을 통해 환영을 투영했다. 

그리고 분리된 두 개의 자신은 서로의 임무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감각은 차단하고 독립시킨다. 

이후 환영 자아를 아래로 내보냈다. 나중에 그 환영 자아가 체험한 경험을 흡수하면 그만인 탓이었다. 

ㆍㆍㆍ

전장이 용암처럼 들끓었고 환영 자아는 시온의 능력을 35% 정도밖에는 받아 가지 않았지만 크게 활약하고 있었다. 

이미 시온이 벌였던 그 어마어마한 전투 능력이 빠르게 그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돌아버린 거였다. 

그러니 여기에 쉽사리 뛰어들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케식들도 멀리서 공격하려고 할 뿐 쉽사리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거한이 쓰고 있는 저격술을 이 환영 자아에 쓴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 이번엔 그가 가지고 있는 냉철한 안목이 문제였다. 그의 감각엔 둘 중 진짜는 저기 성벽 위에 올라가 있는 시온뿐이었기 때문에 시온에게 남은 공격을 퍼부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분명히 시온은 그것을 확실하게 피하거나 받아냈고 

이윽고 모든 전투가 기울어져 가고 있는지 사방팔방에서 꾸역꾸역 흘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방어만 하던 기사 중 좌익에 있는 기사는 고드였는데 고드는 오히려 역공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던 거였다. 

그의 몸은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자기 자신의 피뿐만이 아니라 적의 피가 대부분이었다. 

이 공세를 유지했다간 단순히 패배한 정도가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임이 눈에 보였기에 거한의 판단은 잔뜩 흐려졌다. 이어서 그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후퇴하겠다.”

들어올 때처럼 후퇴할 때도 유연한 후퇴였으나 이번엔 가슴이 시원한 듯한 느낌이었다.

비단 시온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여기저기서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자들이 많았다.

‘그래도 챙길 건 챙겨야지.’

시온의 환영 자아는 아직도 치열하게 마나를 빨아들이며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대가리 몇 개를 더 깨고 나서야 대치하던 골족이 물러났다.

화염에 휩싸여 볼썽사나운 케식의 몸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고 시온은 환영 자아를 하나 더 만들어서 그것을 안쪽으로 옮겼다.

손속을 나눠본 결과 하나는 확실했다. 쓸만한 장비를 가졌을 거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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