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망치
이번 전장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물론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양피지가 전해주는 숫자는 이질적이었다. 시온은 그래도 더 좋은 숫자가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포로는 삼백 명 정도고 부상자는 집중적인 치료 물품 배급이 배정돼 있습니다.”
“타격에 대한 소평은?”
“아주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의 분위기죠. 다음 이동 계획은···.”
많은 수의 기사가 죽었지만, 그 이상의 타격을 입힌 것은 확실했다. 그 상처를 제대로 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은 확실했다.
“케식은?”
“각하가 쓰러트린 케식을 제외하고도 세 명을 고드 경이 한 명 에릭 경이 두 명의 목을 베었습니다.”
“이들의 전력은 케식에 달려 있던데.”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금 손실은 거의 다음 전쟁에서 흔들릴 수준이 아니겠습니까. 듣자 하니 케식은 기본적으로 만 명 정도를 이끌 수 있는 훈련을 받는다고 합니다.”
“전서는 보냈나?”
“이미 갔습니다. 각하의 군대가 천천히 압박해 올 겁니다.”
“좋았어. 한 번에 열렸군.”
이것은 분명히 앞으로의 무난한 이동권을 확보할 것이기도 했다.
이곳을 벗어나서 이동한다고 해도 시온이 가지고 있는 병력과 접점이 일어나려고 한다면 아무래도 위험에 노출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몰래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연 쉽사리 다시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시온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가능성을 배분해 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견이 충돌하고는 있었다.
“흠.”
강렬한 빛이 열린 천막 사이에서 잠시 쏟아졌다. 시온은 전선의 지도를 문질렀다. 낯설고 거친 표면이 한 방향으로 이어진다. 시온이 가리킨 곳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항구 방어를 고수하십니까?”
“아직은.”
이렇게 이곳에 박혀 있다고 해도 이 정도의 방어 능력이 있다면 여기에서 진지를 보충을 하고 병력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거였다.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시온의 단독적인 생각이기는 했지만 지금 여기서 움직여야 한다는 거였다.
이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이동권을 얻지 않았을까. 그렇게 정리해 가고 있었다.
결정은 자신이 해야 했다.
그전에.
확보한 한 전리품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이 망치였다.
“각하. 분부하신 대로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거기에 내려놔라.”
“영광입니다.”
익숙한 모형이었고 얼마 전에 봤으니 다시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혼돈(混沌)의 망치.
그 차가운 소리는 그때완 다른 느낌을 줬다. 피 냄새는 말끔히 지워져 반듯한 기름만이 은연중에 풍겼고 시온은 그 자루를 쥐었다. 차갑고 거대한 무게였다.
“괜찮군요. 쓰실 겁니까?”
“아마도. 정확히는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각하가 쓰기에 가장 좋아 보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메이스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적 용도가 보였다.
원래 쓰던 것이 메이스인지라 예전에 명검을 얻기는 했었는데 그것은 거의 보관만 하고 있었고 실제로는 거의 쓰던 메이스를 계속 쓰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 메이스를 보충할 수 있을 만한 재료를 얻은 것 같았다.
“혼돈(混沌)의 망치.”
“어? 읽으셨습니까. 원래 이름이 이랬군요.”
“망치인 게 문제야.”
“돌아가면 따로 대장장이들을 소집하겠습니다. 제국에서 이름난 자들은 다 안달이 날 것입니다.”
메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따로 제련해야 했다. 시온은 그것을 한 번 허공에 휘둘렀다.
뭔가가 있었다면 형체를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망치 특유의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바로 첫 번째 부딪혔던 선봉장이 들고 있던 망치였다. 그 당시에는 그 녀석 스스로가 대마법에 준하는 진형파괴술을 걸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무기의 덕을 꽤 본 모양이었다.
어쩐지.
그때의 순간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힘이 모자랐다면 균형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 정도로 위력이 있었다.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 겁니까.”
“음,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보조 마법이 없으면 그대로 균형을 잃고 이 앞으로 끌려오지.”
“설마?”
“맞아. 그때 그 충격의 원흉이지.”
애초에 이것이 가하고자 하는 범위는 상상 이상이었는데 양쪽에 펼쳐져 있는 모든 기사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으니 만약에 그것이 제대로 적중했다면
순간적으로 모든 진형이 무너져서 전선이 바로 돌파가 되어 대량으로 기사를 잃을 수도 있었을 거였다. 그 원리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망치였다.
에슬린에게서 다시 혼돈의 망치를 되받았다. 이어서 붉은 알갱이들이 시온의 손목을 지나 혼돈의 망치로 넘어 들어갔다.
“뭔가 원리가 따로 있기는 한데.”
마시고 있던 찻잔이 쏟아지고 병장구가 날아왔다. 그것은 비단 물건뿐이 아니었고 에슬린도 순간 움찔했을 정도였다.
“대···. 대단하군요.”
“에슬린 경.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 아무 일도 아니다. 각하께서 잠시 마법을 시연하셨다.”
“영광입니다.”
이것이 혼돈의 망치가 품고 있는 특별한 마법이었다. 이 마법이 가지고 있는 간편함과 그 능력은 지금 시온이 익히고 있는 마법과 잘 어울렸다.
“대마법이 아니니 마나를 아낄 수 있지.”
“아하. 상대를 모은 다음에 여기에 다른 마법을 기전할 계획이시군요.”
“눈치가 좋아.”
“역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자주 하십니다. 실전에서 더블 캐스팅이라니요.”
“너도 연습해.”
“연습한다고 자유자재가 되진 않습니다. 실패하면 그대로 죽지 않습니까!”
시온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은신 상태로 숨어 있는 하나의 날을 잡고 테이블에 놓았다. 경쾌한 소리는 분명히 날붙이였다.
“유령단(幽靈斷)”
빛에 노출이 되자 그제야 표면이 서늘한 빛을 뿜었다. 이어서 기사가 올린 것은 거대한 장창이었다.
“오우거 장창.”
다음은 평범한 단풍나무 조각에 구슬 하나가 둥둥 떠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깨알 같은 보석이 선을 그리며 박혀 있었다.
“염력의 지팡이.”
여러 개의 물건이 이어서 올라왔고 그마다 묵직한 진동을 냈다. 그중에서 눈에 띌만한 것은 가장 긴 일기토를 벌였었던 선봉장 중의 하나가 입고 있던 의복이었다.
늑대 머리의 망토는 그 자체가 은신을 밝힐 수 있었고 시온은 거기에 유령 단도의 면을 갔다 대었다.
그 모습이 훤하게 보일 뿐 아니라 달린 늑대의 눈이 움직여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하군.”
“제국의 수준이 아닌데요. 형편없이 보이는 외관에 이런 수준 높은 제작술이 들어가 있다니.”
“고대의 정령에 힘까지 보조가 되는 것 같다. 근력을 보조시킬 수 있다는 거지.”
“단, 이 야만적인 형태를 해결한다면 말이죠.”
“내가 쓰면?”
“안 됩니다! 각하. 절대로 그런 체면을 상하게 하시는 일은.”
“농담이야. 농담.”
늑대 머리 의복이라든지 이런 거는 공을 세운 기사들에게 넘기면 될 것 같았다.
그냥 착용하기보다는 좀 더 제국의 관습에 맞게끔 바꿔야 했지만, 이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것 자체로 돈 뭉치였다.
“혼돈의 망치를 제외한 이것을 전부 말입니까. 자비로우십니다.”
“자비까지야.”
“그나저나 단순히 주기만 해도 기사들에게 난리가 나겠는데 이런 것까지 분배하신다면.”
여섯 명 모두 직접 일기토로 처리한 것들이라 모든 소유권은 온전히 시온의 것이었고 그것 자체로 명예의 극치였다.
“그 정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제국에 가져다가 팔기만 해도 경매장에서 얼마까지 오를지는,,,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겁니다.”
“내가 무슨 꿀단지야?”
“하하. 아니요. 일단은 제가 봤을 때 이게 가장 가치가 높습니다. 이 늑대 머리 망토.”
“왜. 그것보다 기사들에게 직접적인 효과가 좋은 건 이 장창인데.”
에슬린의 말에 의하면 늑대 머리 같은 경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시온이 직접 내려줬다는 상징물이란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온이 직접 일기토를 한 상대의 전리품이라는 거였다.
“특히 이 전리품의 사내는 각하와 손속을 좀 겨루지 않았습니까. 저는 못 봤지만 목격한 기사들도 꽤 있어서.”
“.......”
“제국에 반입만 하면 대대적인 경매가 열릴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조작하시면.”
“......”
“경매장의 물건의 핵심은 누군가의 목격담이 이어져야 하는 건데 하나하나가 지금은 니벨룽 가문의 통치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각하!”
하여튼 이런 물건을 받은 기사들에게는 재정적으로나 보유하게 됨으로써 가지게 되는 명예라든지 이런 것 자체가 좀 더 그들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이라는 거였다.
“이걸 제련해볼까.”
“하실 수 있습니까?”
“정단술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
요지는 단순히 그 강철만 녹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와 그 마법을 추출을 해내는 것인데
제련할 수 있는 적당한 대장간만 있다고 해도 충분히 대강의 모양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각하. 부르셨습니까.”
“워든 각하.”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기사가 이어서 들어왔다. 그다음 알렉시오스와 실비아의 차례였다. 실비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뵈어요.”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고 앞에 있는 물건들을 이들에게 보여줬다. 시온이 일단 써야 할 혼돈의 망치는 현재 손에 있었다.
빙글빙글 혼자서 허공을 돌던 그것은 에슬린 때보다 약하게 마법이 걸렸다.
“!!!!!!!”
간단한 시범이었다. 모두가 그 전투에서 최전선에 있었는데 설명해주지 않아도 단번에 정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 그거로군.”
“놀라워.”
“그런데 각하?”
“아, 그래. 이것들을 너희가 분배해 가지면 된다.”
“.....!!!”
“케식에게서 얻은 것들이야. 그때 선봉장의 물건이 대부분이지.”
“너희가 가져야 할 것은 이 중에 하나고, 나머지는 너희가 선발한 공을 세운 기사에게 넘겨줄 예정이다.”
“과연···. 이렇게 사기를 올리시려는.”
“그러니 모레까지 그가 세운 전공과 함께 목록을 나한테 올리도록 해라.”
전투의 승리에 대한 전리품을 나누는 것은 역시 지휘관의 몫이었다. 사기라는 것은 중요했다. 특히 이런 절벽 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곧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토론장이 되어 갔다.
“혹시 이곳에 금속을 녹일 곳이 있나?”
나름 추측은 하고 있었다. 이곳 자체가 항구였기 때문에 간이 항구라고 해도 항상 강철을 다룰 수 있는 시설은 딸려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에 분명히 비슷한 시설이 있을 것이고 아니나 다를까 에릭이 그러한 장소가 있다고 시온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단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것을 녹일 수 있는 것을 말이야.”
모두의 시선이 혼돈의 망치로 모였다. 알렉시오스가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고 그곳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ㆍㆍㆍ
방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난 순간 시온이 그 명령을 중지시켰기 때문에 대장간은 반쯤은 망가져 있었고 반쯤은 멀쩡했다.
“내부는 멀쩡하긴 한데 장담은 못 합니다. 그때 명령을 듣자마자 바로 제 기사가 이곳을 정화했습니다.”
“음, 잘했어.”
“감사합니다. 각하.”
한마디로 내부가 중요했던 건데 내부는 멀쩡해 보였다. 시온은 그 내부 장소로 가서 이 혼돈의 망치를 녹이기 시작했다.
화력을 높이자 뜨거움이 온 세상에 가득해진다. 하지만 용환의 효력 덕에 화염에 대한 내성이 있었다.
자체적으로 형성이 된 미묘한 마나의 막은 시온의 피부 위에서 불의 기운을 제어했다.
“각하. 준비됐습니다. 치시면 됩니다.”
“잘했다. 그거 줘.”
대장장이에 대한 지식이 있는 기사들 세 명을 따로 불러서 그들의 보조를 받으면서 이것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탁한 충격이 물씬물씬 올라온다. 그 열기는 기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그 망치는 한 번의 후려침마다 거미줄 같은 파문을 만들고 있었다.
지켜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흐를 지경이었다. 살벌했던 거였다.
어쨌든 기사들의 의견과 다르게 시온이 보고 있는 이 혼돈의 망치에 제련 작업의 핵심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단순한 망치질 작업이 아니라 걸려 있는 마법을 분리할 수 있는 추려내는 방법이었고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씁..”
달구어진 쇳덩이의 면을 시온이 연달아 치고 있었는데
그때, 그 안에 숨어 있던 마법의 수식과 용환이 반응을 하기 시작하는 거였다.
“설마···?”
저번에 일도 있고 해서 항상 용환을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는데 이것이 지금 이 안에 숨어 있는 무언가와 반응을 하는 것 같았고 아니나 다를까 용의 혈통과 결합이 되고 있었다.
‘미치겠군.’
아직은 뭐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무기를 매개체로 새로운 무기술이 탄생할 것 같았다.
“열기가 너무 강해!”
“일단은 뒤로 가자고.”
“그것은 죄가 아닌가.”
“제기랄. 시온 경은 전투가 아닌 곳에서 다치면 오히려 질책을 물으실 거다!”
‘말해줄 여유가 없군.’
메이스는 일단 두 개쯤 가지고 있는 게 좋았는데 환영 자아를 본격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그 환영 자아가 쓸만한 무기도 준비를 해줘야 했다.
지금까지는 환영 자아에게 대충 해결하고 했다.
직접 메이스를 쓸 때는 환영 자아는 단순한 무기든 아니면 주먹질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무기가 두 개가 준비가 된다면 환영 자아에게 하나 떼어주면 되는 거였고 여기에다가 예비 무기로 가지고 다니는 유령단을 세 번째 환영에다가 무장을 시키는 것도 가능할 거였다.
‘다중 전투를 생각할 필요가 있지. 몸은 하나니까.’
그렇게 한참을 내려쳤다. 망치 모양을 그나마 메이스 형태로 변형을 시키는 데 성공을 했다.
사실 외형적인 부분에 관한 결과는 엉성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핵심은 마법을 유지할 수 있냐의 여부였고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몇 개 있었지만, 시온은 그것을 감으로 맞추는 데 성공했다.
“잘 됐나? 씨발.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네.”
어차피 반푼이가 나온다고 해도 환영 자아가 쓸 무기를 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손해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더 무식하게 생겼었는데 외관적인 아름다움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단단함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던 거였다.
‘완전히 개판이 됐네.’
이것을 내려치기 위해서 썼던 강철은 이미 다 뭉개져 있었다. 이것을 내리치기 위해서는 따로 마나를 이용해서 망치를 보호해야 했는데
그것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재질의 차이 때문에 박살이 나버린 거였다.
시온은 망치를 던져버렸고 새롭게 형성이 된 혼돈의 메이스를 쥐었다.
마법이 잘 되어 있는지 안 되어 있는지에 대한 가장 육안으로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메이스 표면에 새겨져 있는 고대의 룬 문자가 잘 적혀 있는지였다.
그런데 그것은 여전히 선명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단의 고수인 시온이 이것을 실수할 일은 거의 없었다.
정수를 만드는 것이 이것보다도 한참은 더 어려웠다.
천지(天地) 뒤집기.
‘거창한데.’
완성했으니 그것을 시험해보기는 해야 했는데 밖으로 나가서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