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화 (273/304)

천지뒤집기

기사들 열두 명이 나열했다.

“간단한 시연을 할 거니 최대한 버텨봐라.”

“알겠습니다!”

“영광입니다!”

기사들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기대 반의 눈빛으로 시온을 쳐다봤다. 

작업에 대한 정보는 비밀리에 들어갔으니. 혼돈의 망치에 대한 제련을 알고 있는 것은 최측근의 밖에는 없었다. 

기사들의 화제는 아무래도 각하에게 받을 수 있는 한정된 전리품에 대한 최종적인 선발자가 누구인지인가. 이런 거에 온 신경이 다 있었던 거였다.

“각하, 하시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지?”

“각하의 전리품 때문에 결투를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

마치 당연하다는 듯 당당한 자세와 턱을 올리고 있는 이 기사의 눈빛은 극도의 존중에 의미를 품고 있었다.

“알았다, 알았어. 결투를 허락하지. 단 종목은 맨손 타격과 레슬링이야.”

“관람해주시겠다는 영예를 주시겠다는 겁니까?”

“......... 그럼 저녁에 잠깐 경기를 열지.”

공을 객관적으로 나눠봤는데도 전공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면 벌이게 되는 것이 기사 결투였다. 

또 전리품의 우위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도전하고야 만다. 시온도 기사 생활을 해봤지만 도전하게 되면 거절한다는 것부터가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무조건 결투 하게 되고야 만다.

“양보하면 안 되나.”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는 자들이 한가득 입니다. 다들 불만이 많습니다.”

‘그렇게 의미를 두고 있다면 간단한 거라도 여러 개 내릴까.’

시온이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이렇게 되면 이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물건을 위장을 시켜서 이들에게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어느 정도 드는 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막 만들어낸 혼돈의 메이스를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생각보다 투박한 형태의 그것을 보여주자 기사들의 얼굴에서 의문이 솟았다.

그러고 나서 여기에 걸려 있는 마법인 천지 뒤집기를 사용을 했다. 

사실 이 마법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영수마의 돌진이 필요했는데 이런 제약을 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비슷한 착각을 넣어줘야 했다. 

“뭐지···?”

“다들 강체술을 끌어 올려라!! 각하의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마!”

정 중앙에서 작은 마나의 회오리가 빙글빙글 가속했다. 뭔지 몰라서 그런지 기사들의 숨은 가쁘게 돌아갔다. 바짝 긴장한 거였다.

‘이 기전이 맞는다면···.’

작은 고회전의 마나가 공기를 흔들었다. 극히 불안해 보이는 원 덩어리, 그것이 점차 몸집을 불려갔다. 삽시간에 모두를 삼킬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기사들에겐 각오가 필요해졌다. 

이게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이변이 벌어질 거라는 것은 바보도 알 수 있을 거였다.

천지 뒤집기가 시연이 되자 기사들의 몸이 휘청였다. 마치 장대를 땅에 꽂아 놓은 것처럼 흔들렸는데 얼마 가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한순간의 극점으로 양쪽의 공간이 뒤집혀 버린 거였다. 엉킨 그들은 간신히 일어났지만, 전장에서의 이것은 분명히 끝이 났음을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더 뛰어난 제련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던 것처럼 정말로 탁월한 묘리가 숨어 있었던 거였다. 

기사들을 자빠트린 것부터가 보통이 아니었다. 시온의 기사들은 강체술을 익히게 했고 강체술을 익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상당했다. 

마법 자체에 대해서 저항을 가지기도 하지만 마법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고 피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거였다. 

“이건,,, 그자의 것보다 강력한데요. 일부러 조절하신 거 아닙니까?”

“그렇지.”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합격이라고 봐야 했다. 

실전에서는 지금보다 더욱 위력적인 상황을 연출해 줄 거였다. 여기서 이어질 수 있는 연계 마법뿐만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녀석들을 메이스로 공격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은 넘쳐났던 거였다. 

“대마법하고는 원리가 다르군요.”

“뭐가 다른 것 같나.”

“매개체가 무기란 거죠. 그러니까 마나도 덜 들게 될 거고 시전 속도도 비할 바가 안 돼요. 방대한 마나를 보조해 줄 마석과 마법사들의 소모도 줄겠죠.” 

“내가 봐도 그래.”

‘이들은 제국과는 완전히 규모가 다른 방식의 무기술의 체계를 가졌다.’

기사들은 겨우 정신을 차렸었는데 맨정신이 들고 나자 하는 소리는 아우성이었다.

“각하!! 용서하십시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지요!!”

“실망하게 해드렸습니다.” 

시온에게 죄송하다거나 시온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거나 그런 애원 섞인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전장에서 쓰러지는 것보다 이것이 더 부끄러웠다. 체면이 서지가 않는 거다.

“그럴 필요 없다. 예상했던 결과니까. 난 너희들이 부끄럽지 않다. 모두 일어나서 제 임무로 복귀하도록.”

애초에 이들이 버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측정하기 위해서 했던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시온이 그렇게 등을 돌리고 나서 기사들끼리는 격론이 벌어졌다.

“우리를 위해서 이런 자비를 베풀어 주시다니.”

“깨우쳐주시려는 게 아닌가?”

“강체술을 익히고 자만했던 건 사실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각하의 의도된 일이겠군,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아무래도 그게 맞아 보입니다. 질책 없이, 징벌 없이 자연스럽게 유도하시는 거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기사들에게 있어서는 이상향에 가까운 존재였다. 

누군가에게 기사의 사상을 배울 땐 언제나 현실은 냉정하게 다른 법이었다. 

보통 그 키를 가지고 있는 권력자나 군주는 많은 기사의 실망을 야기하고는 했다.

시온의 기사들은 한껏 충심을 더욱 불태웠다. 저분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목숨을 던지겠다고 말이다.

ㆍㆍㆍ

저녁이 되고 나서 기사 중에 서로의 힘을 겨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세 팀이 준비됐다. 

“니벨룽 가문의 명예를 돋보이겠습니다.”

“이런 영예를 주시다니.”

극히 절제된 동작으로 검과 무구를 시온의 앞에 올려놓고 이들은 결의를 다졌다.

이 두 명의 공을 생각해 보면 상당한 수준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20명 정도를 처리한 거다. 그나저나 간이 경기장과 동시에 펼쳐져 있는 만찬은 라산 연합 왕국의 많은 인물이 줄지어서 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투박한 진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가재와 훈제 오리, 테이블은 점점이 흩어져 있었고 사이 사이엔 수많은 귀족이 바글거렸다.

그 최고의 상석엔 모두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이였다. 거기엔 시온이 있었다.

“제국은 이런 경기를 쉽게 허락하시는군요. 저희라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알렉시오스가 신중히 단어를 선택하고는 시온에게 말했다.

“그런가? 하지만 이것은 필요한 절차야. 제국의 기사들은 모두 이렇게 일 처리를 하는 경향이 있지.”

“격투와 레슬링.”

“두 개 전부 있다는 것도 흥미로워요. 격투는 위험하잖아요.”

포도주 한잔이 들어간 실비아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올라탔다.

“보통은 그렇지.”

맨손 격투나 레슬링을 봐야 했는데 종목은 결투의 당사자가 선택해야 했다. 

이것을 통해서 그들이 가지는 전리품의 승자를 정하게 된다. 잠시 고요함이 흐르던 분위기에 실비아가 운을 뗐다.

“세 팀이라고 했는데 한 팀은 어디에 있죠? 각하.”

“그러고 보니까? 나머지는 어디 갔나. 에슬린.”

“그···. 그게 말이죠. 각하.”

에슬린의 자신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말꼬리가 흐려지더니 갑자기 두 명이 상하석(上下席)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릭과 고드였다.

“설마 너희들이야?”

“허락해 주십시오. 각하.”

둘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눈빛에 전류가 번쩍였다.

“아니. 내가 하나씩 주지 않았나.”

“그렇지만 의견의 차이가 있습니다.” 

둘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고 시온은 이들이 왜 사이가 나빠졌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시온은 에슬린에게 귀띔했다.

“쟤들 전리품 때문에 그런가?”

“아, 그렇죠. 제가 한 번 언질 드리지 않았습니까. 믿으시진 않으셨지만.”

“.......”

에릭과 고드 둘 다 늑대 머리 망토를 차지하고 싶었던 거였다. 케식의 전리품 배분은 이들에게 맡겼는데 하나 실수한 게 있다면 이들의 권한이 동등했다는 점일 거다.

문제는 사람 보는 게 똑같은지라 둘 다 늑대 머리 망토를 선택한 거였다.

“그 망토가 가장 가치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매에 올리면 제국이 흔들릴 겁니다.”

“......”

“사려고 하는 기사와 귀족, 특히 돈 좀 꽤 있다 하는 상인 귀족들이 난리가 날 겁니다. 돈은 많지만, 영지가 없는 자들이죠. 그들에겐 명예가 필요해요.”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무려 시온이 직접 일기토를 벌였던 적장의 물건이라는 것. 

그거 말고도 둘의 갈등이 숨어 있기는 했을 거였다. 이들을 데리고 수행을 했을 때도 의견의 차이가 꽤 있었던 둘은 가지고 있는 니벨룽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지위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한바탕 손속을 겨뤘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저번에 임무 배정을 했을 때 구출 임무에 고드를 데려갔던 것에 대한 에릭의 불만인 것 같기도 한데.’

“알았다. 앙금은 할 수 있을 때 처리하는 게 좋지. 대신 졌을 땐 깔끔하게 해결한 거야. 기사답게 말이지.”

“니벨룽 가문에 맹세하겠습니다.”

이 둘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경기장으로 나갔다. 임시로 만들어진 모래 경기장에는 좌우 다섯 곳에서 횃불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이 펼치기 위한 퍼포먼스를 위한 기름을 당긴 항아리를 들어 올렸다. 숨 막히는 긴장과 북소리가 천천히 둥둥거렸다. 시온이 말했다.

“시작해.”

허락하면 그것을 몸에 붓게 된다. 종목은 레슬링이었는데 에릭과 고드 같은 경우에는 맨손 타격이었다. 

실제로 맨손 타격을 기사들끼리 하면 그야말로 살인 기술이기에 사망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다만 이것을 허락한 이유는 이들 모두가 강체술에 익숙한 자이기 때문에 그랬다. 

치명적인 부분을 공격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강체술에서 나오는 기본 원리상 보호할 수가 있었다. 

그 보호가 능숙한 자들로만 이 결투를 허락했기 때문에 별일이 없을 거였다. 그 힘의 양도 어느 정도 제어를 해놨으니 말이다.

기준치 이상이면 실격이었다.

둘은 항아리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냈다. 이것만으로도 흥분한 귀족과 기사와 마법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승자들의 여유지. 모두 잔뜩 긴장했었으니 반드시 풀어줘야 하는 법.’

에릭과 고드도 서로의 손을 보호할 만한 붕대를 천천히 감고 있을 즈음에 항아리를 들고 있던 두 명의 건장한 기사가 기름 단지를 내려놓았다. 

기름 액이 피부 면을 타고 들어가 그들의 피부에 막을 씌워 간다.

“시작인가!!!”

“이것이 제국의 결투!!”

단순히 기름을 붓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서로에게 가해질 수 있을 만한 치명상을 줄이고 한 번의 기술로 끝나지 않게 하게끔 안전장치를 놓는 것이다. 

최대한 오랫동안 서로의 기술을 공평하게 걸을 수 있게 하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제국의 관습이었다. 

제국에서는 항상 이렇게 하기에 이 과정을 라산 연합의 왕국에선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의 라산 연합 왕국의 기사들은 질투심 넘치는 표정으로 이들을 보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에슬린이 은밀하게 다시 귀띔했다.

“,,,,음.”

“제 첩보에 의하면 라산의 기사들은 각하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더 심해졌죠.”

“설마.”

“허락해 주시면 핵심 인물을 전향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몇몇은 기회만 있다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그 검을 바칠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라산 기사들과 니벨룽 기사들끼리 불만이 일어난 것 말입니까.”

“라산의 기사들이 나를 숭배한다면서.”

“그것 때문이죠. 각하께서 처리한 케식의 전리품은 모두 니벨룽 기사단에게만 돌아가니까요.”

“.........?”

“예. 당연한 일입니다. 각하가 처리한 물건이니 그 소유권은 당연히 각하의 것이지요. 문제는 바로 그 부분입니다. 저들도 받고 싶은 거지요.”

어쨌든 배분의 우선은 자신의 기사들에게 먼저 배분이 되는 게 당연한 건데도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라는 거였다. 

“얼마 전까진 이 정도로 나를 생각하곤 있지 않지 않았어.”

“얼마 전은 무슨요. 바로 며칠 전까지는 그랬죠. 제련하시려고 잠적하시는 동안 기사들의 목격담을 통해 이미 전설이 되셨습니다.”

전투에서 벌였던 압도적인 광경을 목격했던 기사들이 그것을 다시 소문을 퍼뜨렸고 소문이 퍼지는 과정에서 좀 더 과장이 되었던 거였다. 

사실 그 과장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압도적인 수준의 실력 차이를 보여줬기에 그들의 왕국을 멸망시킨 케식의 집중적인 공격에도 그들을 농락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 있어서는 경악할 수준이었던 거였다.

에슬린은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을 한 자가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 인간을 따라야만 된다는 그런 희한한 충동,,, 나도 겪었었지.’ 

그렇게 레슬링이 시작되었다. 시온은 그 레슬링을 보면서 오랜만에 저기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알코올도 돌기 시작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이어졌다. 실비아도 아주 흥미롭게 그것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에는 승자가 결정됐다. 이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시온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시온에게 모였고 시온은 오른손을 들어서 승자를 결정해줬다. 

진 쪽은 벌게져서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래도 후련하다는 얼굴이었다. 

시온이 관람을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경력에 거대한 가치가 부여될 정도 중요한 순간이었던 거였다. 

고드와 에릭의 경기는 바로 다음 차례였고 이들이 양쪽에서 가볍게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시온에게 절제된 존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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