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압
골족이 사라지고 나서 에릭과 고드와 실비아가 급히 나타났다.
시온은 케식의 리더인 운케이를 포박하고 있었다. 실비아가 운케이를 알아보고는 흥분했다.
“운케이!!”
아마도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흔한 관계로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운케이를 걷어찼다. 시온이 그녀를 말렸다.
알고 보니 실비아의 사람을 상당히 죽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녀석이 포로였다. 기세 좋던 상황이 뒤바뀐 거였다.
“각하 이건 대체??”
“설명하자면 좀 길다.”
이를테면 양동작전이었다. 첫 번째 기습은 가장 병력이 밀집된 식량 물자 쪽이었다. 두 번째 타격은 헐렁해진 서쪽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예가 동쪽으로 들어오는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부상자들의 신음이었다. 아군이고 적이고 뒤엉켜 있다. 고드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쓰러져 있는 골족의 목을 베려는 거였다. 분노란 것이 그랬다.
‘적은 적이고 포로는 포로긴 하지.’
명예로운 제국의 기사라면 포로를 죽이진 않았다. 다만 그건 가치가 있을 때다.
“고드 경을 말려야 합니다!!”
누군가 그렇게 입을 열었지만, 시온은 생각이 좀 달랐다. 본보기를 좀 봐줘야 하지 않나.
차라리 분노를 풀어주고 적에겐 경고를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하나하나가 가치가 높지 않습니까. 향후 휴전을 유지하는 데엔 이만한 거래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전투를 벌이는 것은 전투를 벌이는 것이고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은 협상해야 하는 일이다. 시온은 결정은 내렸다.
굳이 고드를 말리지 않은 것이다. 격노한 고드가 쓰러져 있는 골족를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감히 내 기사들을!!!!”
그리고 거기에 동조된 기사들이 같이 뛰어나가서 쓰러져 있는 골족을 같이 베기 시작했는데 골족은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살아있는 자들도 멀쩡한 꼴을 면하기에는 어려웠다. 확실한 건 바로 앞에 뻗은 골족은 운 좋게 숨을 붙이고 있었다.
시온은 분위기를 지켜봤다. 첫 번째로 이 같은 결정이 가져올 라산 귀족들의 지지다. 그런데 지지는 여전 했다. 모르는 척을 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 와중엔 다친 기사를 운반하는 작업이 더 활발했다. 시온은 잘 풀리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난 운케이가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자기 부하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핏대를 세우고 있는 거였다. 조금 곤란하기는 했다.
‘하필 이때 일어나 가지고.’
이 녀석을 통해서 정보를 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어지간하면 목숨을 담보로 해서 거래를 하려고 했었는데 꼴을 보아하니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뒤이어서 온 에릭과 에릭의 기사들은 고드의 행동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대체 뭐 하는 새끼야.”
“내 부하들을 죽인 자에게 응당 치러야 할 대가를 주고 있을 뿐이다.”
“그건 제국의 기사가 할 행동이 아니다.”
“나는 알바 사람이다.”
고드는 고드 나름대로 열받은 모양이었다. 둘이 이리저리 소리를 치면서 자기에게 불만이 있으면 결투를 청하라고 했다.
그리고 시온의 허락이 있었다고 말이다.
“각하가? 그럴 리가 없잖아. 개자식아.”
‘거참.’
순간적으로 개판이 나버리고 말았다.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분류란 분류는 전부 해야 했기 때문에 삼일 정도는 머물러야 했고 여러 가지 보강이 이루어졌다.
ㆍㆍㆍ
시온은 한 막사 앞에 있었다. 이 막사 안에는 얼마 전에 사로잡은 케식의 리더인 운케이가 있었다. 이들은 이를 악물고 대치 중이었다.
처음에 에슬린이 거래를 시도했었는데 그것이 거부당하고 이렇게 애매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던 거였다.
시온이 들어가자 안에 있는 여러 명의 귀족이 시온에게 인사를 했다. 운케이는 바로 시온을 쳐다봤는데 시온과 굳이 자기소개할 필요는 없었다.
그와 결투를 한 것은 바로 시온이었다. 하여튼 시온은 들어가자마자 이 녀석의 처우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에슬린이 전달해 온 바는 거래에 생각이 없었다는 거니까.
시온은 여기에 대해서 직접 대화로 풀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할 거면 처음부터 강력하게 대처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포로에게 대화부터 해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유약한 성격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국이라면 명예롭다고 할 것이나 골족의 관습상 그냥 바로 구타부터 시작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이런 애매한 상황,,
녀석에게서 얻어야 하는 정보의 특징상 일단은 어떤 식으로도 간에 정보를 받아내야 하는 게 중요했다. 시온은 운케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목숨을 담보로 나는 기밀을 원한다. 그리고 네 부하 다섯 명을 구하고 싶으면 말이지. 그자들의 목숨도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어.”
이런 시도를 하는 시온을 에슬린이 쳐다보며 불안한 행동을 감출 수 없었다.
골족을 몰아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웬일로 실비아와 같았던 거였다.
실비아는 애초에 전부 처형을 시키자고 강경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거는 그녀의 입장일 뿐이다.
‘복수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복수보다는 이 상황을 발판으로 더 큰 것을 봐야 했다. 그리고 운케이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시온은 그의 갈등을 확인하고서 곧바로 에슬린에게 명령했다.
“전부 다 데려와 봐.”
고드의 손에서 생존자는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살아 있는 자가 그나마 몇몇 있어서 다행이었다.
급하게 고드를 자제시켜서 5명 정도는 살아남은 거였다. 고드가 밖으로 나가더니 5명을 줄줄이 꿰듯이 끌고 들어왔다.
이들을 보여주려는 목적이었기에 곧바로 이들을 하나씩 무릎을 꿇려 자리에 주저앉게 했다. 사뭇 진지한 분위기였다.
당연한 거지만 이들 중에서 식은땀을 흘리지 않는 자는 없었다. 시온의 명령 하나에 목이 전부 달아날지 아닐지가 결정된다.
시온은 운케이의 마음이 바뀌어 가는 것을 눈치챘다. 확실하게 그 입에서 나와야 하긴 하지만 그런데 그러한 낌새만 있었을 뿐 이후에는 그 어떠한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운케이의 입이 열렸다.
“나를 굴복시킨 거는 바로 그대로군.”
‘흠.’
시온은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그 뒤에 아무런 말도 없었던 거였다.
‘그러니까 정보를 내겠다는 건가 아니면 목숨을 걸고라도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처음부터 두들겨 팼어야 했나.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 때쯤 느닷없이 5명 모두가 시온을 향해 소리쳤다.
“시온 니벨룽! 저희는 항복합니다.”
“위대한 존재여, 자비를 베푼다면 온갖 성의를 보이겠습니다!!”
“?!”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말이다. 살려만 준다면 말이다. 살려만 준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절박한 상황에서는 제국의 기사들도 전향이라는 것을 자주 하기는 했다.
그런데 대장이 앞에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이 5명은 너무나 제국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워든 각하. 골족은 원래 배신이 잦습니다.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알렉시오스가 바로 한 가지 정보를 전달해줬다.
“........그랬지.”
이들 5명을 그냥 처리해버릴지 말지에 대해서 기사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운케이가 정보를 말하겠다고 소리쳤다.
“기밀을 말하겠다.”
시온으로서는 일이 잘 풀렸다고 봐야 했다. 순간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말로 잘 풀리면 언제나 이게 더 나은 법이다.
원하는 정보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첫 번째는 가지고 있는 군단의 규모였다.
그리고 그 규모의 군단이 언제쯤 도착하는지와 적들이 가지고 있는 추가적인 케식의 규모.
그리고 이들이 확보한 라산 왕국의 포로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와 결탁하고 있는지다.
다만 마지막 기밀에 대해서는 따로 말해야 했다. 여기는 눈과 귀가 여럿이었고 간접적으로 관여된 귀족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혼선을 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시, 잠깐만 휴식을 취하지. 에슬린 나를 따라 나와라.”
“알겠습니다. 각하.”
이 같은 것들을 말하기 전에 바로 나갔다. 그 뒤에 따라온 에슬린에게 얘기를 했다.
“황제에 대해서 말이지. 황제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 말해보는 게 어떤가?”
에슬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밀은 비밀이기 때문에 굳이 이것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그 말씀은??”
“공공연하게 말하자는 거야. 마치 이미 너무 흔해서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꾸미자는 거지.”
“아하, 운케이가 쉽게 말하게끔 분위기를 잡자 이거군요.”
“어떤가?”
“아니 기발하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한번 말해봐.”
“제가 따로 들어가서 귀족과 기사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연기를 해달라고 한다면,,, 분명히 연기를 해줄 겁니다.”
“그래서?”
과연 말이 통했다. 이렇게 간계를 펼치는 것으로 얘기가 진행됐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말 그대로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같은 얘기가 황제한테 들어간다고 해도 황제 역시 헷갈릴 수도 있었다.
“진짜 정보라면 황제는 놀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가까운 측근부터 의심하겠죠. 분열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황제 성격상 참수 행진이 일어날 겁니다.”
“.....”
“가짜라고 해도 그것대로 골치 아프겠죠.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운케이가 순순히 토해낸다면 이것들을 고려할 가치도 없죠.”
진정한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는 잘 풀렸을 때의 얘기기도 했다.
잘 안 풀린다면 괜히 발등에다가 불덩이를 던지는 짓일 거였다.
“어떻게 합니까.”
에슬린이 그렇게 물어봤고 시온은 진행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에슬린이 따로 귀족들과 기사들을 데려갔다가 이 같은 간계에 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굉장히 놀랐지만 지금 처해 있는 상황과 또 다른 소모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오히려 이러한 간계를 낸 것이 누구냐고 물어보고는 했다.
시온의 명령에 따라서 에슬린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될 거였고 에슬린이 자기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주장을 하자, 뭐 그런가 하며 다른 자들도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준비가 되고 나서 나머지는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몇 명의 포로 밖에는 없었던 텅 빈 내부가 다시금 가득 차 나갔다.
포로들은 여전히 눈치를 보면서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허덕이고 있었다. 일부로 작은 물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거다. 심리적으로 더욱더 압박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얼굴색이 납 같은 그들의 모습을 시온이 내려다봤다. 그리고 철저하게 입을 맞췄던 귀족들의 눈이 시온을 긴장되게 바라봤다.
이 입을 맞춘 결정에 대해서 운케이에게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거는 네가 황제와 결탁하고 있는 것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나는 그 정보에 대해서 알고 있다. 내가 가진 정보원은 제법 솜씨가 있거든.”
이것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가짜기도 했다. 이것은 하나의 진실이면서 연기가 들어가고 있는 수였다.
이 혼란은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없는 연기이기도 했다.
귀족들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올라가고 실비아도 연신 한숨을 내쉬었으며 알렉시오스는 이들을 말리기 위해서 소리를 쳤다.
게다가 그 소리를 들은 항복하기로 마음을 먹은 골족 5명은 혼비백산했다.
상황이 계획대로 풀려가고 있음은 분명했다.
이 같은 반응을 시온은 흡족하게 바라봤다. 연기를 하게 된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운케이가 황제의 핵심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운케이 정도의 위치라면 대칸의 작전 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니 당연히 대칸이 지시하게 되는 직계 기밀에 대해서 더 밀접하게 접근되어 있을 거였다.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시온에게 뜻밖에 운케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나는 당신들의 황제와 관련이 없어. 정말이다. 내 목을 베어도 난 모른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정말일까, 원하던 답변은 아니었다. 지금 자신에게 역으로 심리전을 걸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답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거에 관해서 물어볼 수밖에는 없었다. 정보를 주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군단의 규모라든지 언제 이들이 오게 될 것인지 군단을 지휘하고 있는 케식의 수는 몇 명인지. 그 케식을 통솔하는 장군은 누구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이었는데 이런 것들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시온은 내내 아쉽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뻘짓을 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큰 손해였다. 황제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이 같은 연기를 한 건데 정보를 알아내지도 못했다면
라산의 귀족들에게 기사들에게 자신과 황제의 불화를 알린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공식적으론 황제의 사위였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은 분명히 명예에 금이 갈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