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략과 덫
명예에 금이 좀 간 것은 확실했다. 밥 먹고 맨날 줄 타는 생각을 하는 게 본 일인 귀족들,
기사들도 군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면 적당한 단장 자리를 들어갈 수 없었다.
겉으로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기사들도 머리를 돌린다.
황제에게 갈 것인지 아니면 시온에게 설 것인지에 대한 갈림길이다.
거기에 대한 확실한 실마리 중 하나를 라산의 망명 귀족들에게 제공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하여튼 이들보다는 이들 꼭대기에 있는 실비아와 알렉시오스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봐야 했다.
이 둘은 블랙파이어 가문의 분명한 인척이기 때문에 이들이 제국에 합류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정치적인 포지션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실비아와의 결혼도 그것까지 보자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결혼하게 되면 유목 제국에 칼을 넣어야 한단 말이지.’
실타래가 꼬이는 듯한 생각이 들고 있는 와중이었다. 어쨌든 5명의 골족들과 운케이의 얘기는 굉장히 진실성이 있어 보였다.
이들이 알려주는 군사기밀은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기는 했다.
“각하,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아니야, 고드나, 실비아나 알렉시오스가 쓸 수 있는 기사까지 다 보내야겠어.”
그렇게 에릭이나 나머지를 확인시키기 위한 곳에 모두 정찰에 내보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들의 기밀은 신뢰가 있어 보였다.
군단의 규모와 그들이 오고 있는 숲과 평원의 방향과 걸릴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 기밀을 토했었다.
‘다만 윤곽을 잡는데 그치겠지.’
이 확인 절차를 정확하게 마칠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당장 무리를 움직여야 하는 건 확실했다.
포로들이 뱉은 기밀이 진짜가 아니라고 해도 시간이 촉박했다.
ㆍㆍㆍ
시온은 바로 행군에 대한 명령을 내렸다. 바로 행군이 다시 시작이 됐다.
이들과 거래한 기밀을 기반으로 해서 기사들을 투입한 것뿐만 아니라 시온 자신도 환영 자아를 동원해서 그 기밀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여긴가.’
그래서 지금 환영 자아는 상당한 거리를 주파했다. 환영 자아 마법의 특징상 과감한 잠입을 시도하고 있는 거였다.
여기에 대한 것은 에슬린하고만 공유했는지라 다른 기사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시온은 운케이와 5명의 골족들이 준 군사기밀이 어느 정도는 맞아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환영 자아의 맨눈에는 거대한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많군.’
‘예상보다 많아.’
막사와 막사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수많은 말과 많은 골족들이 긴급하게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오래 있으면 이들의 기동력의 특징상 들킬 수 있기에 시온은 장거리에서 환영 자아를 해제해야 했다.
걸리게 되는 그 순간에 해제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 풀숲 사이에서 아니나 다를까 크리쳐가 시온을 발견하는 데 성공을 했다. 환영 자아가 그것을 즉시 전달하자마자 해제를 해서 반지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대가는 여전했다.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들이 준 기밀은 60% 정도는 맞는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더 있거나 재수만 좋았다면 다 확인하는 것도 가능은 했을 것인데 워낙에 위험한 진영에 들어갔다 오는 것이지라 제대로 이것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 체험을 흡수하고 시온은 생각에 잠겼다.
ㆍㆍㆍ
그날 저녁 에릭과 고드가 차례차례 도착했었다. 최소한으로 갈 수 있는 거리에서 군단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포지션.
거기서 정찰병과 마주친 모양이었다.
“전투가 있기는 했는데, 드릴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예 없었습니다. 애초에 무리할 형편은 아니니까요. 여기 정리한 정보입니다.”
시온은 전서를 몇 개 받았다.
“음, 잘했다.”
이로써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시온은 5명의 골족을 불렀다. 5명의 골족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눈은 긴장이 역력했다. 툭 건드려도 곧바로 터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위대한 자를 뵙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희가 드린 건 전부 진실입니다.”
그만큼 순식간에 편을 바꿔버릴 수 있을 만한 이유는 시온에게 있었다. 시온이 보여줬던 그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전투 수행 때문에 그것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본 이들에게 영향이 있었던 거였다.
하여튼 이들이 몇 가지 기밀을 더 뱉어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온이 불만족스럽다는 듯한 어조로 이들에게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 지점으로 가게 되면 거미의 늪이 있습니다.”
“대칸의 장자인 주챠가 이곳에 합류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아마 전권을 바로 이어받았을 겁니다.”
“......?”
사실 여기까지는 에슬린과 입을 맞춰본 거였다. 완전한 그림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좀 더 이들을 위협하면 기밀이 더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한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관련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운케이와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 이 운케이가 대칸의 아들과 죽마고우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이것을 이용한다면 군단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각하, 잠시 드릴 말씀이.”
에슬린이 뭔가가 번뜩한 듯 곧바로 따로 대화를 요청했다.
“좋은 지형에, 대칸의 장자와 케식을 따로 끌어드릴 수 있다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지 않습니까?”
“덫을 놓자는 거군.”
“맞습니다. 각하에게서 저도 배운 게 있죠. 각하가 할 수 있는 진 중에 늪지대에 걸맞던 게 있었던 것 같던데요.”
“진은 설치할 수 있지 다만 어떻게 끌어들이지?”
“간단합니다. 운케이를 처형시키는 거죠. 그 정보를 고의로 빼는 겁니다.”
“?”
시온은 생각을 해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들의 의견을 듣는다면 거기에 운케이를 놓고 처형을 할 거라는 기밀을 흘려야 했다.
당연히 함정도 파야 했지만, 그곳에 다른 케식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거였다. 사실 나쁘지 않았다.
잘만 풀리면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들의 지휘관인 케식을 줄여버릴 기회였다. 결론은 함정을 얼마나 잘 칠 수 있냐고 문제였다. 시온은 자신이 있었다.
관련된 마법을 에슬린과 같이 미리 준비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다만 이들을 더 믿을 수 있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좀 더 위협적으로 말해보시죠.”
“알았다.”
시온과 에슬린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준비했던 대로 포로들을 더욱더 윽박을 해봤다. 여전히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에슬린이 귀띔했다.
“이 정도면 진짜로 다 발설한 모양인데요.”
애초에 운케이가 이 5명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에 관해서 물어봤다.
“토크타! 네가 빨리 말해!”
“위대한 자에게 빨리 말해!”
“워든이시여. 운케이와 제 누이가 연인 사이입니다.”
“???? 진짜인가?”
그래서 운케이가 기밀을 나눴고 자신에게 토해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것만 가지고서도 여전히 일을 믿을 수 있게 진행할지는 좀 의문이 들었지만 말이다.
“흠,,,”
시온은 좀 장기적인 측면을 보고 이들의 숫자를 좀 더 일망타진할 이 기회를 놓치긴 싫었다.
결국은 하기로 했다.
이것은 단독 결정이었기 때문에 따로 다른 자들이 의견을 묻지는 않았다. 워낙에 에릭과 고드는 전투를 좋아했기에 대동시킬 기사들은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 꾸며야 할 일은 이 포로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에슬린, 이들을 내보내고 운케이를 데려와.”
나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봤는데 운케이와의 협조에 대해서는 아주 손쉽게 일이 풀렸다.
시온이 그냥 운케이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했는데 운케이가 아주 황당한 듯이 시온을 바라봤다.
“그건, 지금 우리 대칸을 무시하는 발언인 건 아나?”
“그래서 하겠다는 건가?”
“나는 내 대칸과 대칸의 검과 창들을 믿네.”
“.........”
이윽고 운케이가 동의를 해버렸다. 아마도 그가 동의한 이유는 유목 정예들을 믿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이기게 된다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기에 그는 참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기로 했다.
‘해보자는 거지.’
이렇게 되면 일을 빠르게 진행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같은 얘기에 대해서 에슬린을 다시 불러서 얘기했다.
“벌써 끝났습니까?”
“좀 빨리 끝났다.”
“마법으로 정신이라도 건드렸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나에게 도전을 하겠다더군.”
관건은 여기에다가 함정을 설치하는 거였다.
“각하, 그런데 거기에 설치할 진이 설마,,,”
“수도에서 따로 개발한 건데..”
“제가 알고 있던 게 아닌지라.”
“이미 다른 마법은 폐기했어. 이걸로 간다. 효과는 내가 보장하지.”
“당연히 효과야 대단하겠죠. 다만, 제가 실수를 하게 된다면,,”
“해봐.”
“알,,, 알겠습니다.”
앤드류의 비술로 이미 진 설치에 대해서 교체를 해버렸기에 사실 이것보다 전 단계의 전격진을 만들 수가 없었다.
ㆍㆍㆍ
하여튼 모든 명령권을 가진 자들을 불러 모았다. 시온은 이 같은 작전에 대해서 지시를 했다.
이거를 대체 누구한테 연기를 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이어졌다.
‘운케이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 최대 목표는 대칸의 장자인 주챠를 끌어와야 하는 건데.’
다만 운케이 자체에 대한 믿음은 거의 없었다. 이 같은 기밀을 흘린다고 한 것은 토크타였기에 토크타가 적극적인 건 확실했다.
“당연히 주챠를 끌어 들어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실비아는 내심 주챠를 잡아 대칸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다만 다른 기사들은 의견이 달랐다. 어차피 전투를 제대로 치러야 하는 것은 이들이었기에 굳이 운케이로 일을 진행하게 할 필요는 없던 거였다.
잠깐의 의견 교환으로도 5명의 주장은 곧바로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아, 그만, 그만. 토크타로 간다.”
그냥 토크타로 작전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알렉시오스가 끼어들었다.
“차라리 그러지 마시고 두 명 다 써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떻게 보면 괜찮겠다 싶어서 알렉시오스의 말을 듣고 다시 말했다.
“그게 더 좋아 보이는군.”
첫 번째로 이 두 명이 보내는 전서엔 긴급한 내용이 담겨 있어야 했다.
이 같은 이중 계략은 당연히 이 두 명에게도 숨겼다. 이 두 명은 각자 자신이 탈출했다는 얘기로 내용을 만들었다.
이 전서를 자연스럽게 흘려야 했다. 이들의 도주의 경로가 될 것이다.
실제로는 도주를 시키는 게 아니라 그 늪지대로 이들을 데려가려고 하는 거였다.
시온은 따로 기사들을 추려놓고 알렉시오스에게 행군을 맡긴 뒤에 이동했다.
그 와중엔 이곳을 배회하는 밀정들에게 전서가 흘러 들어갔다.
ㆍㆍㆍ
질척한 늪지대에 도착했다. 그나마 약한 지대였다. 이 늪지대에다가 간단한 요새를 쌓아야 했다.
동시에 여기에 거대한 마법진을 설치해야 했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준비를 해놨기에 기사들은 각자 삽을 들고 고렘은 물자를 쌓았다. 엄청난 속도로 진척이 되고 있었다.
빠르게 진지 구축이 일어났다. 에슬린이 안으로 들어와서 몇 가지를 물어봤다.
“참수대가 좋지 않겠습니까?”
“확실하게 보이는 곳에다가 만들어.”
“그나저나 연습해보긴 했는데 천둥폭격진,, 이름부터 무시무시하군요.”
“개량을 많이 했거든.”
에슬린이 이곳에 설치하기 위한 진의 난이도가 상당해서 제한된 시간 내에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을 시온이 덜어줬다.
“말했다시피 대부분은 내가 환영 자아로 만들어낸 나와 같이 작업을 할 거다.”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환영 자아를 통해서 하는 거였다. 하지만 에슬린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천둥 폭격진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나 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완벽하면 한 번에 끝나겠지. 실전에는 처음 써보는 거긴 한데.’
일단은 그런 완성도의 문제보다는 그냥 이것을 빨리 형성시키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기에 이 같은 작업을 강행 진행을 했다.
요새화된 진지에는 천둥폭격진이 들어가야 한다. 작업을 하는 시온이 세 명인지라 의문을 가진 기사들에게 에슬린이 대충 둘러댔다.
‘나머지는 숨겨야 하고. 넓은 지대로 끌어 들어야 하니까. 이쯤이 좋은가.’
시온이 본격적으로 환영 자아를 각 위치에다 배치해서 진을 본격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쓸 수 있는 마석 같은 경우는 넘쳐났기에 재료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일어나지 않았다.
촉박하게 제대로 구현하려고 하는 욕심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순간적으로 마나가 쏠려버리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으로 천둥 폭격진을 만들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마나의 흐름이 안 좋아지더니 늪지대에 물이 가운데로 쏠리기 시작했다.
‘징조네.’
이것이 마나의 급격한 폭증 현상의 전조였다. 시온이 바로 에슬린이 담당하고 있는 부분을 봤다. 에슬린이 잘해야지만 저 가운데에서 마나가 폭발을 안했다.
다행스럽게도 에슬린이 필사적으로 시온의 페이스를 따라오고 있었다.
가운데 밀집된 양이 늘어나더니 결국엔 시온이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가운데가 폭발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조심해!!!”
에슬린이 수행하지를 못한 거였다. 에슬린 자체도 다치었고 진 자체가 이렇게 되면 완벽한 천둥폭격진이 구성이 될 수가 없었다.
‘꼬였는데.’
시온이 이렇게 고심하는 상황, 건장한 기사들이 뛰어왔다. 기밀에 대해서 빠르게 보고를 했다.
“각하! 주챠가 오고 있습니다!”
“그래? 이쪽은 제대로군.”
원했던 그림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거였다. 운케이와 토크타 둘의 전서가 모두 효과가 있었는지, 골족의 군단에서 내부적으로 폭동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지?”
“상당한 듯합니다. 군단 자체가 갈라졌답니다.”
“흠. 그런가.”
그 폭동에서 다시금 갈라져 나온 무리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들은 어떻게든 운케이와 토크타의 처형을 막겠다고 하는 자들이었다.
오고 있는 속도라든지 끌어들여야 할 무리의 수라든가 가장 중요한 건 대칸의 자식이 직접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팽팽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