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략과 덫(2)
일단은 에슬린이 천둥폭격진을 어느 정도 망쳐놓았었다. 여기다가 제 시간 안에 구동을 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차질이 생기고 있었다.
‘생각보다 작업이 더 어려워졌어. 이러면 애초에 무리한 작전이 되는데.’
이 같은 계략이 먹히려면 적을 휘어잡을 수 있을 만한 덫의 유무가 중요했다. 시온은 이 부분에서 실패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던 거였다.
다만 처음에 이 계략을 짜낸 에슬린과 시온이 몰랐던 점이라면 시온이 기존에 쓰던 마법 설치형 진을 다른 고위 진으로 바꿔 놓았다는 점이었다.
비술의 특징상 가짓수는 엄격히 정해져 있기에 그 하위 진을 쓰려면 따로 각인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럴 시간은 당연히 없었지.’
그래도 나머진 전부 다 시온이 실수하지 않았었기에 세 개의 진만 마저 해낸다면 그럭저럭 돌아가기는 할 거였다.
간절히 원하던 인물인 대칸의 아들인 주챠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인데 시온은 에슬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각하!!”
“어떤가?”
“들어가 보시죠.”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급하게 만든 막사는 열 필요도 없었다. 긴급히 조치한 에슬린의 옆엔 깨끗한 물과 수건, 그리고 그나마 에슬린을 보조하는 조수 겸 마법사인 앳된 소년이 붙어 있었다.
“어떻지?”
“각···. 각하. 영광입니다. 아마도 곧 일어나실 것 같습니다. 좀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라.”
뭐라고 하기도 그런 것이 에슬린은 최선을 다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것을 어느 정도 강요를 했던 것은 어 시온이었기에
“기력을 차리면 바로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작전은 시작됐으니 요새라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를 박차게 했다.
그렇게 세 번째 천둥폭격진을 설치하려 하고 있었다. 에슬린이 쓰러지고 가운데가 약간 박살이나 기울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건 없었다.
질퍽한 늪에 새겨지는 마법 수식이 가해질 때마다 표면이 출렁였다. 뿐만 아니라 요새 작업도 한창이라 세 기의 고렘이 돌덩이를 운반했고 기사들의 기합 소리가 내내 반복됐다.
그때 용환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빛이 시온의 주의에 잡혔다.
“.....?”
이 용환이 작용을 하는 것은 분명했다. 진동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흠, 맞지 이건? 시온은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했다.
고룡이 친우로 생각해 넘겨준 이것은 시온이 알 수 없는 작용을 해줬다. 그런 심상치 않은 느낌, 시온은 용환을 가슴팍에서 꺼내 움켜쥐었다.
‘뭘 알려주려고 하는 거냐?’
어느새 쌓인 돌덩어리는 참수대를 높이기 위한 흙더미 앞에 넉넉한 울타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시온은 미친 듯이 그 라인을 쌓아가는 고렘을 보고 있었다. 이 고렘이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정해져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저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데. 저기서 벽을 올리고 올라오는 녀석들을 순차적으로 죽여야 하는데.’
그러나 속에서 드는 생각은 이 고렘으로 용환이 반응하는 장소를 파봐야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시간이 없다!! 모두 힘을 내라!!”
고드의 격려가 이곳저곳을 치고 있었는데 굳이 여기를 파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시온은 곧바로 고렘을 멈췄다. 그러자 기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체 각하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감히 오지가 않아서 그랬다. 당장에 분초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있던 고드도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의문을 참지 못하고 기사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각하! 대체! 지금 요새 작업이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잠시만,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나머지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설명을 해봐야 다들 반대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에슬린이 부탁을 한 일이야.”
“아. 에슬린 수석 마법사가. 그러면 마법 설치 작업과 관련된,,”
“바로 그거지.”
대충 둘러댔다. 에슬린이 일어나면 설명을 해줄 거라고 말이다. 에슬린은 정작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정신이 차려야지 그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시온은 고렘을 세 번째 구역으로 데려갔다. 이 지역의 아래를 파헤치라고 명령을 내린 거였다.
푸른 눈덩이가 시온의 명령을 알았다는 듯이 인지를 하고는, 거대한 손 덩이를 늪 바닥에 집어넣었다.
심연의 고렘 하나만큼은 일반 고렘 보다 특별해서 그 덩치도 크고 정교한 작업에 쓸 수 있는 손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덩치와 크기를 생각해보면 따로 이 땅을 파는데 굳이 삽 같은 게 필요가 없었다.
미친 듯한 속도로 아래를 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늪지대 작업을 파헤치는 것은 고렘이 아니면 매우 힘들었다. 적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속도는 아니었다.
“각하?? 지대가 좀 이상해지는데요. 너무 한 곳만 파시는 것 아닙니까?”
“..........”
‘아씨···.’
늪의 물이 아래로 쏠리고 있어서 지반도 불안해졌다. 만약에 지반이 불안해지면 지금 쌓아온 요새도 흔들릴 수 있었다.
“안 됩니다. 각하. 그만하셔야 합니다.”
“에슬린 수석 마법사가 뭔가 잘 못 얘기한 것 같습니다. 일어나고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사들의 반대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시온도 흔들리고 했었다. 어쨌든 용환의 빛은 계속 더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무언가가 시온의 관심을 계속 끌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작업 중지. 고렘을 보조한다.”
“?!!!”
“각하.”
“명령이다. 모두 수행하도록.”
“각하의 명령이다!!”
오히려 다른 데 있던 고렘까지 데려와서 작업을 시작했다. 기사들도 차라리 여기다가 파라고 명령을 내렸다.
시간 내에 하기 위해서는 감수를 해야 했다. 여기에 있는 요새가 무너진다면 그냥 이대로 포로를 더미로 내준 다음에 도주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했었다.
‘뭐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지. 그러면.’
어쨌든 왜 이렇게 여기에 대해서 집착을 하는지 시온도 슬슬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까지 있었던 용환. 이 붉은 구슬이 만들어준 신기한 현상이 시온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하여튼 그런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 어느 순간, 고렘이 멈춰 섰다.
“?!!”
“됐나??”
시온은 드디어 용환이 추적한 물건이 발견됐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재빨리 고렘에게 그것을 들어 올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깊이 파인 곳을 고렘이 아래로 내려가서 들어 올리자 거대하고 네모반듯한 검은 석상이 올라왔다. 거기에는 빼곡하게 룬 문자가 들어가 있었다.
그것이 완전히 지상에 드러나자 용환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이 석상이 가지고 있는 마법에 대해서 뭔가 감이 왔다. 이 검은 석을 고대의 석상이었다.
‘하지만 모르겠어, 용도를 한 번 대충 시도해볼까?’
이 석상엔 감춰진 거대한 마나가 있었다. 자신에게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마나가 여기에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와우. 알면 알수록 놀라운데.’
워낙에 관련된 문자 해석 능력이 뛰어난 시온은 곧바로 지금 있는 진을 연결할 수 있는 연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진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어 보였다. 그 모든 작업의 애매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핵심 구동 점이 될 수 있는 물건으로 보였다.
‘일단. 혼자 판단하는 건 무리고.’
여기에 대한 다른 마법사의 식견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마탑을 졸업한 서품 마법사의 식견이 말이다. 시온은 재빨리 에슬린에 갔다.
“음? 일어났나?”
“........”
에슬린은 겨우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아 있는 엘릭서를 그에게 부어버렸다.
“!!!!”
“그 귀한 것을 전부!”
“각하가 비상시에 써야 할 물건이 아닙니까?”
아주 귀한 물건인지라 모두가 조금만 아껴 쓰라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부관에게 아낌없이 쓰는 시온을 보면서 감동을 하는 기사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릭서의 효과는 확실했다. 아무렴 선제후가 아끼던 물건인데 얼마나 아꼈으면 삼십 년을 안 썼을까.
“이런, 이런. 이런.”
에슬린은 정신을 거의 차린 모양이었다.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지 시온에게 바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각하!!! 저의 재능의 부족으로 각하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괜찮아. 괜찮아. 미안한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어쨌든 방금 있었던 일에 관해서 얘기했다. 에슬린이 화들짝 놀라서 그곳을 가고 싶어 했다.
시온은 에슬린을 곧바로 데려갔다.
“이건···. 기억에 있습니다. 문헌에서 본 적이 있어요.”
에슬린이 놀라서 얘기했다.
“이건 고대의 증폭석 같은데요. 맙소사 세계에 두 개밖에 없습니다. 두 개 전부 마탑이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이 크기는, 마탑에서 제가 본 것보다 더 거대한데요??”
어떤 마법이든 그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특별한 비석이라고 한다.
“그래? 그러면 이것으로 진을 보강하면 되지 않나?”
“당연히 가능한 일입니다. 증폭석은 단순히 증폭시켜주는 것뿐만 아니라 마나의 균형도 바로 잡아주거든요.”
시온과 에슬린은 그렇게 해서 증폭석을 가지고 천둥폭격진과 몇 가지 하위 진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에슬린이 장담했던 것처럼 신기하게도 이것이 우뚝 서자 마나의 흐름이 너무나 잘 잡힌다는 거였다.
나머진 이것으로 끝났고 파헤쳐놓은 구멍을 막으면 됐다. 이어서 멈춰있던 요새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차라리 요새 작업이 덜 된다고 해도 함정을 제대로 까는 게 더 중요하니까.’
어느 정도 작업에 대해서는 에슬린에게 맡기면 됐다. 이게 점점 완성되어갔다.
시온은 완성이 된 요새를 봤다. 높은 참수대에는 여섯 명을 처형할 장소가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돌벽이 있었다. 이것이 성벽 역할을 할 것이었다. 그 앞에는 광범위하게 낮은 늪지대와 그곳을 애매하게 높여 놓은 턱들이 있었다.
사면에 끝에는 굵은 돌담이 있었는데 그 사면을 중심으로 천둥폭격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넓고 얇은 늪지대는 상당히 질척했는데 그사이에 세워져 있는 볼품없는 돌덩이에 하위 마법 진이 깔려 있었다.
이 범위를 생각해보면 넓었다. 늪지대 자체가 엄청나게 광범위했다.
당연히 여기에 들어오게 되는 자들을 모두 덮을 수 있는 넓이였다.
상황이 이렇게 준비가 되고 나서 시온의 환영 자아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정보를 받았던 방향으로 주챠와 케식이 몰려오고 있다고 하는 곳에다가 환영 자아를 보내려는 것이었다.
‘여차하면 해제할 수 있고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니, 이것에 정체를 모르고 있다면 꼼짝없이 딸려 들어오겠지.’
이것이 다음 전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 작전을 위해 환영 자아를 보낸 것이었다.
‘비밀을 지키면 이렇게 이득을 보지. 심지어 기사들도 이것의 정체를 모르니까.’
시온은 미끼 역할을 할 환영에게 연결을 했다. 이것을 나눠야 할까, 아니면 한 곳에다가 집중시킬까.
고민하다가 현재 집중시킬 수 있는 최대치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이 틀리진 않을 거야. 정보의 질은 명확하니까.’
어쨌든 시온의 환영 자아는 현재 완전히 시온이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본체로는 계속해서 다양한 기밀로 그들이 오고 있는 방향과 속도에 대해서 연속적으로 받고 있었기에 그들이 오고 있는 진형에 대해서 그림이 그려질 정도였다.
하여튼 시온은 그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을 끌고 와야 했다.
‘저긴가.’
어설픈 천막을 지키고 있는 것은 골족 전사들이었다. 케식으로 보이진 않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게 일반적인 그들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위험하면 환영을 해제하면 되기에 시온은 그냥 그들의 앞에 등장했다.
“????”
“난 제국의 기사다.”
난데없는 시온의 등장에 정신을 놓고 있는 골족 전사의 머리를 메이스로 후려쳤다.
콰득.
골통이 깨지는 소리가 선했다. 다른 자들은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을 못 잡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잠···. 잠깐 씨발.”
“뭔 개 같은···.”
시온은 이곳을 둘러봤다. 하필 막사는 많았는데 골족이 비어있었다. 당연히 케식도 없었고.
둘이나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딱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밀집되게 막사를 설치하지 않는 유목민들의 특징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렇게 정찰 겸 군단을 점조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썼다.
게다가 너무 큰 실력 차이로 무기 교환도 하지 못했기에 한쪽에서는 자기들끼리 말술을 퍼먹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아, 천천히 해야 했는데. 각인비술이 이건 안 좋다니까. 마법을 써야 하나.’
굳이 이들에게 마나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 사망자가 다섯 명이 넘었는데도 반응이 없었기에 재빠르게 말에 올라탔다.
시온은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들 쪽으로 말을 몰고 가서 방금 사망했던 두 명의 골족을 그들의 모닥불 앞에다 던졌다.
“??????????”
그제야 시온이 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안 골족이 엄청나게 몰려와 달려들려고 했다.
시온은 여덟 명 정도를 메이스로 떨쳐낸 뒤 몸을 빼면서 언덕 쪽으로 갔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봤는데 희한하게도 추격이 붙고 있지는 않았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 잡아 온 녀석을 빤히 쳐다보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장들이 오기 전에 갈 길이나 가라 정신 나간 기사 놈아! 우리는 지금 대칸의 특별한 임무가 있다. 그건 알아둬라. 반드시 추적해서 너를 죽일 것이다.”
그냥 제국의 기사라고 지나가는 제국의 기사라고 느낌 모양이었다.
워낙에 지금 처형식을 막기 위해서 가야 하는 중요성이 너무도 명확하니. 뭐라고 말할까.
“정신 나간 제국 기사 놈들, 너희는 항상 이런단 말이지. 조만간 너희의 땅과 여자를 모두 겁탈할 것이니···. 각오를···.”
“내가 시온 니벨룽이다. 전사여.”
“???”
“풀어줄 테니 어서 가서 케식들에게 전해라. 나는 그들과 결투를 원한다. 내 명성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설마 설마 하다가 앞에 있는 자가 진짜라는 느낌이 들자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시온이 놔주자 질질 땅을 구르다가 한참이고 시온을 보더니 쏜살같이 내빼기 시작했다.
‘이젠 데려오겠지···.’
시온은 그냥 언덕에서 대충 기다렸다.
“진짜로, 설마 오해를 해서 아무도 안 오는 건 아니지···.”
그도 그럴 게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먼지구름이 자욱한 곳에서 본격적으로 케식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억센 모습에 양손 도끼를 등에 메고 거대한 말을 타고 오는 자였다. 보자마자 그자가 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온은 그 자리에서 다른 케식도 온다는 것을 바로 맨눈으로 확인을 했다. 이제는 이들을 몰아서 가기만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