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협상(2)
제국 사람이 아니라서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컸는데, 군말 없이 시온의 말을 알아들었다.
멩구티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멩구티가 말했다.
“이만 주챠님 일부분을 가지고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멩구티가 조심스럽게 시온에게 물었다. 멩구티는 실제로 케식의 부대장을 할 정도로 실세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포함된 황금 말 부족은 한때 초원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는 해야 할 말을 한자씩 골랐고 그 태도는 평소와는 달랐다. 그의 속은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상대의 실력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감이 없지는 않았다.
‘피 냄새야. 시온 니벨룽에게는 짙은 피 냄새가 난다.’
“안 되겠다.”
시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멩구티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이 빠르게 죽어갔다. 시온의 말투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멩구티는 바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굴종의 표시였다.
“???”
시온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멩구티의 부하들도 놀랐다. 그러나 멩구티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너희가 뭘 알아. 죽어야 하는 건 나라고!’
자존심을 챙기고 주먹에 맞아 죽어 내내 비웃음을 당하느니 살아서 술이나 퍼마시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시온은 멩구티를 내려다보았다.
“뭐하는 짓이지?”
“다얀 장군의 죄를 한 번 더 사죄드리는 겁니다.”
“다얀? 아까부터 말하던 다얀이 저 녀석인가?”
시온은 이미 간단한 신음도 내지 못하며 골이 깨져 숨이 끊어져 있는 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위대한 늑대여.”
“늑대?”
에슬린이 와서 시온에게 귀띔을 했다. 저들은 뛰어난 자일수록 늑대라고 칭한다는 거였다. 시온도 이쯤 되자 앞에 있는 멩구티가 오해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되면 이 녀석을 이용하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골족과 관련된 핵심 인사라고 한다면 나인만 부족밖엔 없는데 나인만 부족은 황금 말 부족보다 급이 낮았다.
대칸의 회의에 들어갈 수가 없는 녀석들인 거였다. 게다가 위험하기도 했다. 그것보다야 이 멩구티를 이용해서 협정을 끌어내는 편이 나을 거였다.
“멩구티 너는 대칸과 접견이 가능한가? 아니라고 한다면....”
시온은 일부로 말을 끌었다. 겁을 먹은 멩구티를 몰아붙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위치를 재고해보고 노력 시키기 위해서 그의 입을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 제일 빨랐다.
“물론입니다. 저는 황금 말 부족의 사람입니다. 늑대여. 저는 대칸의 사냥제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오, 나인만 부족 녀석들보단 높아 보이는군.’
“그거 가지곤 부족하다만······.”
시온은 다시 그의 말을 끌었다. 한 번 먹혔으면 두 번 먹히는 법이었다.
“제 아버지와 형은 대칸의 활 중의 활입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건 억측입니다. 제 부하들에게만 물어봐도···.”
“그런가. 그러면 네가 설득을 하면 되겠군.”
시온은 대강의 정보를 캐낸 뒤에 멩구티를 압박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렇게 겁을 먹은 상대를 다뤄본 적이 있었기에 약간의 효과만 내줘도 꼼짝없이 협력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리로 와보거라.”
시온이 그렇게 말하자 멍한 얼굴로 있던 멩구티가 잽싸게 가까이 왔다. 시온은 그에게 최대한 화려하게 마나를 움집 시켰다.
“무슨???”
“가만히 있어.”
검붉은 마나가 그의 주위를 덮었는데 아무래도 불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그렇게 느끼게 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고.
근데 사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가 차고 있는 마법 장비가 있는 힘껏 방어하기 위해서 요동을 쳤으나 별 의미 없이 하나씩 마비가 되어 갔다. 그것이 감당할 수 없는 퀄리티를 지닌 마나였다.
시온 수준에서는 멩구티가 아무리 대마법방어진을 아무리 잘 차려입었다고 해도 손쉽게 격파를 시킬 수 있었다.
밥 먹고 이 짓만 했는데 그 잘난 주챠와 케식들도 막지 못해 산화가 되었는데 황금 말 부족의 족장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수준이 떨어지는 편인 멩구티가 이것을 막아낼 것은 만무했다.
당연히 움집이 되는 마나는 공포심을 자아냈다.
“살···. 살려줘!!”
골족의 특징상 달려들 법도 한데 워낙에 실력의 차이를 직감한 멩구티는 부족의 전사들에게 뛰어갔다. 심리적으로 겁을 먹은 거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빠르게 번진다. 다른 자들도 무슨 덩달아서 공포에 질려서 멩구티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거리를 벌렸다.
“살려달란 말이다!!! 누가 나 좀 도와줘!!”
아예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바닥을 뒹굴기 시작한 멩구티의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에슬린이 슬쩍 물어봤다.
“각하, 어떤 무서운 마법을 건 것입니까?”
“축제에 쓰는 거?”
“........설마 견습 마법사들이 연습을 위해 축제에 쓰는 그···.”
“바로 그거야. 대신 고단계 마나가 들어갔을 뿐이지.”
“그렇다는 말은.”
“보이기만 저렇지 아무런 효과도 없어.”
“........”
사람을 들고 놨다 하는 시온의 재치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시온의 행보는 꼭 대단한 마법을 써서 포로를 통제해야 한다는 상식을 깨부수고 있었다.
시온은 바닥을 뒹굴고 있는 멩구티를 향해 말했다.
“다 굴렀나?”
“살려···.”
“넌 멀쩡하다.”
“감사···. 감사하오. 늑대여. 그렇다는 것은.”
“맞다. 너는 살아있다.”
“텐신이시여! 앞으로 열심히 살겠나이다.”
하지만 그의 감동과 달리 이제 본격적인 속내를 드러낼 생각이었다.
“너에게 저주를 걸었다.”
마법이라고 하는 것보단 저주라고 하는 편이 훨씬 잘 먹힐 거였다. 시온이 상대해본 바로는 저들의 마법사는 주술사의 개념이었고 그 발현체계도 미묘하게 달랐다.
기괴한 공격의 타입이 많았다.
그의 눈이 부릅떠진 것으로 보아 진심으로 믿은 모양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 장구 중에는 단순한 마법 저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주를 막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으니 시온이 말한 바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거였다.
“고로 너는 전념을 다 해야 할 거다. 일의 결과가 너의 목숨과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과연 어디까지 자신의 말을 믿을지 시온은 알 수는 없었지만, 일을 맡기고 멀리 보낼 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였다.
“그렇다는 건 주챠님의 일부분은?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면 전 말에 밟혀 죽습니다.”
“그러다면야 조금은 내주도록 하지 나름의 너희의 방식대로 이게 진짜인지 봐야 할 거니까 말이야. 나머지는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겠다.”
그마저도 가져온 주챠의 부분에서 또 일부분만 떼어주기로 했다. 이래도 괜찮은 것이 이것은 제국이나 골족이나 같았는데 일부분 가지고는 제사를 제대로 지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런 미신적인 부분이 유목민들이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는 않을 거였다. 시온은 반드시 다음 대칸과의 직결 협상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기 아들이 걸려 있는 것인데 구천을 떠돌게 하는 것보다는 얘기해서 가져오는 게 나을 거기 때문이었다.
ㆍㆍㆍ
속속히 고렘들이 도착을 하고 있었다. 움드에서 제작되거나 새로이 도시를 확장하는 데 쓰이던 고렘을 장벽을 만들기 위해 불러오게 하고 있었다. 대략 삼백 기 정도였다.
거기에 딸려 있는 고렘 조종 마법사도 수준이 높았다. 일단은 니벨룽 마법사 교육소에서 나온 인재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러 평민 위주로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았기에 능력은 더 좋은 편이었다. 이들에게 투자할 만한 금액도 비단 무역의 독점권과 새로이 얻은 서부와 움드 근처에서 만들어 내는 영수 사냥터 관리만 해도 충분했다.
정수의 주 소모자인 마탑은 꼼짝없이 시온이 던지는 물량을 소화하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국의 이인자라는 것은 그것 자체로 무한한 신뢰와 선택을 하게끔 했다.
즉, 허수아비 작위도 아니고 황제와 권력 대결이 가능한 수준의 워든이라는 작위가 가지는 가치는 제국의 대도시 여덟 개가 넘는 수준일 것이었다.
앞으로 시온이 그 위치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이 흐름은 계속될 거였다.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흑석 덕분에 추가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계약자는?”
“저와 마리온이 부리고 있는 마법사들입니다.”
에슬린과 마리온의 위치는 니벨룽 왕국의 수석 마법사였다. 따라서 수석 마법사답게 교육소에 나오는 유수의 인재를 모집할 수 있었는데 이 자들의 첫 번째 만남은 서부지역에서 한 번했었다.
그러니 이들은 두 번째들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마탑의 마법사처럼 모든 면에서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각하가 원하셨던 것은 고렘을 조종할 수 있는 마법사였으니까요.”
마리온이 그렇게 말했다.
“맞다. 따로 시험해볼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전투적이기보다는 고렘을 매개로 이용할 수 있는 마법사를 길러내는 데에 집중했던 거였다.
‘전반적으로 지방에 있는 영지나 영주들이 황제에게 대들지 못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바로 도시의 격에 있지.’
황제가 거주하는 수도는 상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집결된 정치적인 장소였고 그 지리적인 유리함과 풍요한 곡창 지대의 면적 세기를 이어온 잘 관리된 관도는 황제가 허튼짓한다고 해도 지탱시켜줄 수 있을 만한 수익을 만들었다.
거기에 대해서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은 그 수도의 규모에 맞는 대도시를 완성 시키는 거였다.
“여기 지금까지 완성된 움드의 모습입니다.”
마리온이 품 안에서 고이 가지고 있던 도시의 전경이 담긴 마법 도구를 시온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것을 가동하자 도시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온도 눈썹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알고 있던 움드의 규모보다, 열 배가 확장되어 있던 거였다.
“........?!”
“놀라셨습니까? 하지만 각하가 정해놓은 정책대로라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움드에 집중시키라고 하셨죠. 움드는 이미 제국에서 손꼽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움드에 집중하실 계획입니까?”
일단 고렘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움드의 성장은 이제 발목이 잡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서부 지역도 이제 도로만 놨을 뿐 그 척박한 땅을 개간하기 위해서는 고렘의 배분이 여전히 중요했다.
“그건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지. 그런데 배신자는?”
“..... 존재는 했습니다. 따로 추격 중입니다. 제작 과정에서 제자들 몇 명이 도주한 모양입니다. 아마 매수를 당했겠지요.”
“쉽사리 찾을 순 없었어요. 방향 지는 그렇다면 뻔하죠. 황제가 이들을 유혹하고 보호하고 있는 거여요.”
완벽할 수는 없었다. 아마 고렘 제작에 대한 유출은 동방 제국 쪽에도 미친 듯이 일어날 거였다. 에슬린에게 듣자하니 마탑에서도 천시받던 고렘 계열의 마법사가 원소 마법사와 나란히 서게 됐다는 얘기였다.
시온이 수련 마법사 자격을 얻을 때는 어림 반푼도 없는 얘기였다.
저쪽 끝에서 코르도바가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군단의 훈련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참석이 항상 느릴 수밖에 없었다.
“각하, 늦어서 죄송합니다. 에릭과 고드가 새로운 강체술의 진형 버전을 들고 와서 연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자 이제, 세 명이 다 있으니 계획에 대해서 말인데. 나는 지금 이 골든 평원을 만(灣)까지 잇기 위한 장벽을 건설하고 싶단 말이지.”
“고렘이 있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엔 저도 찬성합니다.”
“하기야 녀석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앞은 모르는 일이긴 합니다.”
문제는 적들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협상이 깨지고 침공이 결정된다면 오게 될 규모였다. 대략 봐도 백만이 넘을 것 같았다.
아들을 건드렸으니 무슨 짓을 할지는 몰랐던 거였다. 다만 유목 민족에게서는 장남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들은 적자생존 방식을 고수하기에 상속분이 남아 있을 땐 그들끼리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고 거기에 대해서 모든 지지자가 강한 자에게 붙게 되는 형제 몰살이 밥 먹듯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러니 여전히 협상의 가치는 있었다. 대칸은 아마 아들이 삼십 명이 넘을 것인데 그중 하나가 죽었다고 총력전을 무조건 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장벽에 들어가야 하는 석벽이 문제입니다.”
고대 제국에서 현재까지 남은 유산 중 하나인 시멘트는 석회와 석고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장벽을 형성하기 위한 강력한 기둥을 형성해야 할 쓸만한 재질의 돌무더기는 지금 든 수준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규모가 필요했다.
“황제는?”
“스무 번을 요청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입니다. 동방 제국과의 전쟁이 아래쪽에서 가시화가 됐는지라.”
“그게 아니라고 해도 방해하면 방해했지 줄 생각이 아닐 겁니다. 고렘이 이동하는 데에도 온갖 일이 일어나서 예정보다 늦은 것은 단순한 이유가 아닙니다.”
“흠···. 그냥 황제의 도시를 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