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도시(2)
오데사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총독 거주성은 10만 톤이 넘었다. 면적도 400헥타르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널찍하게 있지만, 황제가 방문하면 일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일했다.
자포리자 일대가 개판이 나기 전에는 황제의 여름 휴양지로서 이름이 높았다. 160억 평 정도 되는 카스피야 초원지대와 그 반인 자포리자 일대를 다스리기엔 지나치게 큰 총독 성이었다.
시온의 눈썹이 휘어졌다.
“많이 큰데?”
자포리자 총독인 테오하리가 땀을 닦으면서 입을 열었다.
“워···. 워든 각하. 이 블랙파이어 가문의 여름 별장은 제국에서 오랫동안 가꿔진 것으로 오백 년 동안 증축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근무할 때도 증축이 있었던가?”
“이곳에 부임한 지 십 년째 삼 년마다 한 번씩 했긴 했습니다.”
“그럼 잘 됐군. 이곳의 자재 해체를 맡기도록 하지.”
“?!!!!!!!! 각하! 한 번만 더 고려를!”
“그렇다면 내가 유목민들의 침공을 막기 위한 장벽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그 자재를 어디서 구해오란 뜻이지?”
“그것은!”
“어차피 내가 전선에서 밀리게 되면 이곳은 쑥대밭이 된다. 블랙파이어 가문에서 자랑하는 온갖 귀물은 골족에게 넘어가고 이 휴양지는 그들의 번식장이 되겠지.”
“........”
테오하리는 이도 저도 꼼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시온이 봤을 때 테오하리는 황제의 충성파이지만 기회주의자였다.
정말로 황제에게 충성했다면, 체포당해 구금당해 항명했을 것이다. 이런 자를 설득하는 방법으로는,,,
에슬린과 마리온의 보고에 의하면 테오하리는 이곳 민중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제국 시민을 위한 정치를 펼쳤다는 것이었다. 본인조차도 반쪽자리 귀족인 탓에 좋은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럼 다시 한 번 말해보자. 내게 주어진 임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제국의 수호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방파제가 필요하다. 제국을 위해 일할 것인가, 아니면 황제 한 명을 위해 일할 것인가?”
이 질문은 꽤 그의 심정을 건드린 듯했다. 물론 현대인인 시온은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진 않았다. 이 질문은 총독에게 맞춰진 질문이었다.
“허, 이런. 저를 거기까지 파악하신 겁니까?”
그에게 가해질 여러 가지 방법의 하나일 뿐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여차하면 주먹맛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시온은 태연하게 그러는 척의 연기를 했다.
“그렇다.”
“그렇게 물으신다면 저의 황좌에 대한 충성을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하나일 겁니다.”
“그렇군. 그러면 나를 따라라 자포리자 총독. 나는 황제의 사위이자, 그 임무를 받아 이곳을 야만인들의 침공을 막기 위해 파견된 엑사스초르, 대원수(大元帥)다, 그리고 부패한 황권을 지탱할 자이지. 나에게 교력하고 그리고 나의 동맹이 되기를 앞으로 원한다만.”
시온의 연기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를 포섭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일단은 말로 해보자는 거였고, 매수보다는 그의 성향을 생각해서 끌어보자는 계획이었다.
여기에 어느 순간부터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시온의 마나는 그들보다도 여유 폭이 넘쳐 흘렀기에 이제 단순히 시온을 보기만 해도 비범한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거인으로 보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성인으로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악마로 보일 거였다.
시온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공명의 눈’으로 얻은 마나는 한 번 더 밀집력을 얻게 되어 억제할 수 없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과연 테오하리 총독만 넘어갔느냐, 그 정도가 아니었다. 총독의 뒤에 있는 자포리자의 백작과 관리들 귀족들의 수는 38명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직책도 다르고 영주와 비영주가 섞여 있었지만, 이들 모두가 시온에게 탄복을 한 것이었다. 순간 거대한 듯한 환상을 받은 거였다. 잠시 머리를 흔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경지가 만들어내는 건 환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환상과 현실의 교차점이 엿보인다는 거였다.
자포리자에 600만 정도를 다스리는 모든 영주가 시온에게 강한 끌림을 받았고 전통적인 황제파에서 시온 파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긴 워든 각하시면 엑사스초르를 언제 받아도 이상하진 않으시지.”
엑사스초르(Grand domestic, Exarchos)는 군사 부문에선 제국, 세기의 관직이었다. 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을 그 특별한 순간에만 임시 관직 하나가 하사되었는데, 그 하사권은 딱 두 명만 가지고 있었다.
황제와 워든이었다.
그러니 시온이 자기 자신에게 엑사스초르를 내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충돌이 있을지언정 따로 황제가 제지하지 않는다면 모든 장군에 대한 명령권이 자연스럽게 엑사스초르에게 모이게 되었다.
다만 이 경우엔 제국의 서북부에 한해서이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시온 스스로 자신에게 그런 관직을 내린다고 누구도 항거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그런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오데사에 있는 10만 톤이 넘는 황제의 별궁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오데사의 성문이 활짝 열렸고 그곳으로 오십 기의 개량 고렘과 이백오십 기의 일반 고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량 고렘은 저번의 성능 개선이 끝나 그 원동력이 되는 마나를 비축할 수 있는 마석이 더 질이 좋았고 그 크기도 거대하고 더 강한 집념체가 담겨 있었다.
한 두기는 시온이 직접 제작을 했는데 나머지는 두 명의 수석 마공 기술자 중 하나인 벤츨에게 가르쳐 생산을 맡긴 것이었다.
즉 벤츨이 시온의 기대보다 더 많은 작업을 자신의 제자들과의 수작업으로 가열차게 생산해낸 것이었다.
‘제법이군.’
비록 시온 자신이 만든 것보다는 열화판이었지만, 시온의 모호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 온 힘을 갈아 넣은 것은 분명했다.
오데사 총독인 테오하리와 38명의 자포리자의 중요 영주들, 그리고 이들이 데리고 있는 팔백여 명의 관료들은 그야말로 눈알이 빠질 것 같이 이 광경을 보았다. 말로만 들었던 고렘이 들어오는 광경은 그들이 본 어떤 기억보다도 강렬했다.
보통 이 시대의 구축 작업이라고 한다면 많이 쳐줘 봐야 노예를 주력으로 하는 공사였다. 여기에 쓰이기 좋은 영수를 배치해서 무거운 자재를 끌게 한다고는 하나,,
그들은 순간 말문을 잃었다. 변방이 있다곤 하나 세상에 영 귀를 닫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요즘 고렘 관련한 마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점은 언뜻 들은 바가 있었던 거였다.
테오하리의 옆에 있던 노년의 남자가 그에게 말했다.
“총독이시여. 세상의 흐름이 바뀐 것 같지 않으려이까? 긴 세기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흐름의 변화가 아니겠소.”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군. 르마츠.”
“예. 총독님.”
“마법사인 너는 알 것이렷다. 저 고렘의 발견자는······.”
“시온 니벨룽입니다. 마탑보다 천 년은 앞서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동안은 원소 계파에 의해 끝없는 탄압과 차별이 있었으니까요.”
르마츠의 말에는 시온에 대한 존경심이 억누를 수 없다는 듯 묻어 있었다.
고대의 제국엔 수많은 비밀이 산적해 있었고 그들의 원인불명의 멸망과 함께 비밀도 실전되었다.
그것 중 하나가 이제 드러나고 있었던 거였다. 저 고렘을 이해하면 과거 위대한 제국의 잔재물을 무엇이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곧 그들은 이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데사의 140만 명의 사람이 이 광경을 놓치기 싫어 대로(大路)에 집결되어 있었고 그들은 이것을 보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환호를 질렀다.
시온 니벨룽의 이름과 그 가문이 오데사를 진동하고 있었다.
“총독님. 역시 제국 시민은 시온 경의 것이군요. 그러니 황제께서 시기가 시기인 대도 극도로 민감하게 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40만이 내뱉는 흥분의 용광로에 서 있는 그들 역시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시온은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얼떨떨해하곤 있었다. 황제의 직할 도시들인지라 자신에게 반감을 표할 줄 알았으나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만큼 다가오는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었다. 라산 왕국이 멸망하고 거기서부터 오는 많은 얘기는 예상보다 자포리자 일대에 거주하는 제국민들에게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설마 각하께서는 이것을 알고?”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애초에 과감한 안건을 내건 것은 시온이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 당연히 미리 점찍어둔 바가 있었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던 거였다.
ㆍㆍㆍ
작업 자체는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삼백 기의 고렘이 내는 수준은 1000마력쯤은 될 것이다. 기존의 사람이나 영수를 이용한 것과는 수준이 다른 힘이었다.
물론 여기에 댈 수 있는 마나가 많아야지 가능한 것이기에 붙어있어야 할 마법사는 더욱 필요했다.
시온이 데리고 있는 고렘을 최대한 가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3단계 수준의 마법사가 열 명이 필요했고 이끌어 줘야 할 선임 마법사가 따로 필요했다.
그래서 니벨룽 마법사 교육소를 졸업한 마법사는 어딘지 마법사라고 하기엔 부족했지만 마나의 수련이나 공급을 위한 마나 법과 조종술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배운 자들로, 천 오백 명 정도의 마법사들로 차 있었다.
‘이제 좀 느낌이 나는데?’
당시에 대관도(大官途)를 건설하라 맡길 때도 이 정도의 고렘이 투입되지 않았었고 쉴 새 없이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고렘의 수는 더욱 적었다.
인력을 제대로 채워왔기에 이들을 통해 밤낮없이 고렘을 운영한다면 10만 톤이 넘는 석벽과 포졸라나 시멘트를 빠르게 나를 수 있었다.
저번에 포섭한 멩구티가 골족의 대칸에게 직접 방문 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하게 본 작업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휴. 정말이지 진귀한 광경이군요. 각하.”
“전쟁에는 여전히 쓸 수가 없나?”
대답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저 천오백 명의 마법사들은 에슬린과 마리온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선임 마법사들은 이들의 제자라고 봐야 했다.
나이야 천차만별이었다. 선임 마법사 중에는 노년의 나이에 든 자도 있었다. 그런데 워낙 마법사의 기강은 그 해당 마법사가 가진 경지에 따라서 위계가 결정되기에 상관이 없었다.
현재의 수로 보자면 이 선임 마법사는 7대3 정도로 마리온이 더 많았다. 에슬린을 데리고 다니는 동안 마리온은 나름 이 부분에 대해서 독점한 것이었다.
“전면 돌격은 불가하다라.”
“하려면 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파훼 당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랬다. 직접 시온이 통제할 수 있는 심연의 고렘을 제외하고선 대부분은 시전자가 고렘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마력 회로를 탈취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것을 간파하기는 상당히 쉬웠다.
따라서 상대가 아예 무식한 놈들이라면 모를까 오히려 엄청난 돈과 수고가 집약된 고렘이 얼마 쓰지도 못하고 파괴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러니 현재로써는 이것들은 비전투로 이러한 건축작업과 개간작업이 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움드가 10배가 넘게 커져 버린 것도 바로 이 원리였다. 그래 봐야 제국 수도를 따라잡으려면 멀었다.
“그 주술사들이 이걸 간파 못 할 리가 없습니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거든요. 방식이 기괴해서 그렇지 상대의 전력은 능히 제국에 배치된 마탑의 마법사를 상대할 만합니다.”
마리온은 반문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에슬린의 답변이 정확할 거였다. 직접 대결하고 생사를 넘었는데 그 수준을 파악 못 하면 왕국의 수석 마법사 타이틀이 아까웠다.
“각하가 아니었다면, 필시 케식들에게 전멸했을 겁니다. 항구 전투로 말입니다.”
에슬린은 그때의 아슬아슬함을 떠올렸는지 은근히 두려움을 내뱉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온도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당시 그 판단은 오판이었다.
그곳에 갇혀서 꼼짝없이 큰 공세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수준이 조금이라도 낮았다면 주력 케식들을 처리하는 데 오래 걸렸을 것이고 그 시간을 더해보면 양익이 무너져 내부까지 고루 박살이 날 가능성이 컸다.
“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에슬린이 신호를 받고 잠시 검붉은 상급 대형 영수의 모(毛)로 만들어진 막사의 천을 열고 나갔다.
이어서 잠깐의 소란이 있다가 에슬린이 곧바로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의 손에는 황제의 서신이 담겨 있었다.
황제의 서신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재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특징상 서기 넘치는 빛이 넘쳐 흘렀다. 어쨌든 거기엔 블랙파이어 가문의 자이언트 드래곤이 그려져 있었다.
누가 보면 경악을 할 일이었지만, 시온은 그것을 받자마자 단번에 서신에 걸린 마법 암호를 풀고 찢어버렸다.
마법 암호를 푸는 데만 방법을 익혔다 해도 십여 분이 투자되는 게 기본이었지만 남의 아공간을 쓸어 담는 것을 수천 번은 했던 시온에겐 무의미한 수단이었다.
게다가 황제의 서신을 받으면 여기에다가 절을 하는 둥 갖가지 의례를 하고는 했지만, 시온은 관계없다는 듯이 쭉 찢어버린 것이다.
선제후라고 해도 이렇게는 못했고 제국의 이인자인 시온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더럽게 답변을 안 주더니 건드리니까 바로 주네.”
시온은 황제의 필체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