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9화 (289/304)

영원의 방벽

“제국에 대한 모욕이라.”

500년의 역사가 있다곤 하나 휴양지 하나 가지고 모욕이라고 하기엔 너무 급이 낮았다. 여기 하나 해체된다고 해도 어디 여기만 휴양지가 있겠는가.

서쪽에도 있고 남부에도 있는데, 합쳐도 다섯 개는 넘는 것이다. 하기야 그중에 가장 크기는 컸다.

“그래서?”

“아마, 모든 지원을 중단할 예정이랍니다.”

“???”

웃기는 말이었다. 어차피 하지도 않을 거면서 할 예정이었다니.

“물자는 있었나 봅니다. 예프에 5만 톤 정도를 보관할 수 있는 삼백 개의 식량 창고가 준비돼 있다고 하더군요.”

“알려준 건가?”

“당연히, 제 밀정들로 알아낸 정보입니다.”

“흠.”

“이것으로 쥐락펴락할 생각이었겠지요. 그리고 열 개 군단이 예프로 배치될 거랍니다.”

“아, 배치만.”

“그렇습니다.”

열 개 군단이면 대략 10만에서 13만 명의 제국 군이었다. 이것을 예프에 배치한다는 것은 뻔했다.

2억 5천 평이 넘는 예프는 예부터 제국의 방어선이었다. 여기가 진정한 방어선인지라 자포리자 일대와는 방어선이 차원이 달랐다. 거기에 있는 장미의 장벽은 200km를 아우르고 있었고 그 높이는 70미터가 넘었다.

제국이 만든 것이 아니라 고대 제국의 유물이었다. 그러니 그 규모와 밀도와 탑의 개수 마법에 대한 전반적인 저항력은 기준 이상이었다.

“뭐 도와주겠다는 것으로 보이진 않고.”

“아마도, 여기에 주둔할 예정일 겁니다. 여러 목적으로 인해 출병이 불가가 될 것이고요. 정작 황제가 출진 명령에 승인해야 하는 데 말이죠.”

여기에 대한 복수와 전에 있던 일의 연속인 것이다. 황제는 비밀리에 골 제국과 협력을 해서 기밀 정보를 넘기고 있었고, 그것은 곧 시온을 밀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황제가 모르고 있는 점은, 골 제국은 이제 막 기틀이 형성되고 있는 신생 세력인지라 유목 민족 특유의 배신성과 함께 그들의 힘을 결집한 대칸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근데 예프에 열 개 군단을 배치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선제후들에게 갈 지원군을 줄인다는 뜻인지라.”

코르도바가 한마디를 했다.

“동방 제국이 비느를 포위하는 이상 그곳을 구원하기 위한 병력도 모자랄 것인데, 어지간히 이번 일이 괘씸한 모양인데요.”

그만큼 선제후들이 잘 대처를 해야 하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비느를 잃게 될 수도 있었다. 거점 지대를 잃는 순간 근처에 있는 도시들이 모두 공격에 노출됐다.

“부족하면 빼겠지.”

다만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여기서 약속된 약혼을 파혼한다거나 말을 바꾼다거나 그런 일은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시온의 생각이 맞았던 거였다.

만약에 시온이 여기를 비우고 원래의 영지도 돌아간다면? 황제는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을 맞이하게 될 거였다.

그래도 하난 확실했다. 황제의 도시에서 10만 톤 이상의 석벽과 포졸리나 시멘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으로 카스피아 초원 지대의 요지를 막아 낼 수 있는 장벽을 건설한다면 남는 장사였다.

ㆍㆍㆍ

생각보다 재질이 많이 확보된 터라 카스피아 초원에 지을 방벽은 50km까지 확장을 시키고 240만 평에 기본적인 진지와 서른 개의 타워를 구축하기로 결정이 됐다.

오데사에 있는 10만 톤의 재료가 붕괴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오데사 총독인 테오하리가 적극적으로 임했기 때문이었다.

총독 테오하리와 자포리자 일대의 백작들은 이제 시온의 사람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대세를 따라 따로 군대로 포위하지도 않았는데 올비아, 오카치프, 티라스풀의 소규모 도시마저도 줄줄이 방벽에 댈만한 물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풍족한데.”

이곳의 특징상 자기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반란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그러면 따로 공성전을 해야 했다. 한 곳 정도는 그럴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던 거였다.

“테오하리 총독이 자포리자 귀족들을 꽉 잡고 있더군요.”

“그래 보이긴 했어.”

“아, 역시 알고 계셨었군요.”

“방벽의 이름 말인데, 좋은 이름 없나?”

“니벨룽 방벽 어떻습니까?”

“뭐든지 니벨룽을 붙이기는 그렇잖아.”

마리온이 아이디어를 냈다.

“영원의 방벽으로 해요.”

“그거 좋은데? 영원의 방벽으로 하지.”

시온은 영원의 방벽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어설픈 평지라고 해도 돌무더기를 이끄는 짐수레 다섯 개는 연결한 짐수레가 돌무더기를 채우고 고렘에 끌리고 있었다.

워낙에 무게가 무게인 탓에 듬성듬성 있던 풀은 사라졌고 어느새 벌판이 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관도를 만들기 위한 돌까지 깔렸었다.

“실력이 늘었군.”

“각하께서 서부 대관도(大官途)를 만들라 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백 명 정도가 서부 대관도의 경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어쩐지.’

벌써 고렘은 방벽을 쌓고 있었고 높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높은 수준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건 개량 고렘 뿐이었다. 여기에 다섯 명의 마법사들이 매달려 있었고 마나를 넣어주거나 수련을 했다.

움드의 영수 사냥터에서 추출되는 하급 정수를 단순한 마나 회복용으로 복용하기도 한다. 세밀하게 지시할 수 있는 선임 마법사는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그런 개량 고렘은 오십 기였다. 거미줄 같은 느낌으로 퍼져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돌덩이와 포졸리나 시멘트가 쌓여 가고 있었다.

그런 시온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목소리를 높였다.

“각하. 약간의 일이 있어 늦게 도착했습니다.”

멋들어진 턱수염이 돋보이는 벤츨이었다. 마공 대장장이로 이름이 높은 벤츨에게 맡겼었던 건 움드의 확장이었다.

그를 급히 부른 이유는 당연히 영원의 방벽을 짓는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였다.

“오, 그래. 움드의 일은 잘 들었다. 훌륭히 해주고 있더군.”

“각하의 위대한 여정에 동참한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마탑에서 마공 기술자로 이름이 드높은 자는 세 명 밖에 되질 않았는데 그중 두 명을 시온이 얻었다.

그런데 마탑에 남아 있어 봐야 만들 수 있는 수준은 한계가 있었다. 고렘이 없으니까 말이다. 

대규모 작업을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역사에 이름이 남을 만한 업적이기에 모두 그것을 얻기 위해 서로를 암살하기까지 했다.

마탑의 입장에서는 오십 년에 한 번 밖에 그럼 대규모 작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기에 마탑의 이름 높은 장인들이 여러 명이라면 나머지 두 명은 다음 오십 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온이 이들에게 맡긴 일은 벌써 다섯, 여섯 가지 정도였다. 하나만 성공적으로 끝나도 이름이 남을 것인데 여러 개를 독점하는 탓에 이들의 이름은 세계까지 뻗어 나가고 있었다.

“영원의 방벽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과연, 제국을 영원히 방어할 수 있는 장벽이 되겠군요.”

“꼭 그런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일단은 시간이 촉박하니까 틀만 만들어줘도 좋다.”

“어느 정도 시간이 가능합니까?”

“대강의 얘기는 들었겠지만, 내가 골족의 황금 말 부족의 아들을 포섭해서 대칸과 평화협정을 유도하도록 보냈다.”

“아, 그렇다면 그게 잘못될 수도 있음을 알고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이겠군요.”

“그렇지. 멩구티에게 듣자하니 백만 정도가 침공할 수 있다더군.”

“백···. 만···. 크흠.”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전력은 제국보다 수준이 높다.”

“!!!!”

“자세한 건 틈틈이 에슬린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하여튼 이곳의 임시 독재관(Dictator) 직위를 줄 테니까. 영원의 방벽을 완공하도록 해라.”

“그런 영예를 주시다니!!!”

자포리자의 총독에 준하는 관직으로 당연히 특정 임무에서는 총독보다도 권위가 앞섰다. 영원의 방벽 문제에서는 시온을 제외하고는 관여하기 힘든 관직인 거였다.

잠깐이라고는 하나 그냥 마공 기술자로 일하는 것과 관직에 한 번 앉아서 일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그것 자체가 영예이고, 곧 그의 가문과 세력의 번창을 의미했다. 벤츨은 따로 가문이 있지는 않지만, 그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길드, 연합 공방은 벌써 제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움드의 확장에서 확보한 금액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 목숨을 걸고 완공하겠습니다.”

“목숨까지야.”

“반드시 하겠습니다.”

의례적인 것도 있지만 벤츨은 진심으로 보였다.

ㆍㆍㆍ

고드가 수도로 가고 있는 마법사들을 데려왔다. 천오백 명을 아우르는 행렬이 고풍스럽게 이어졌다. 

마탑의 전통적인 의복과 개개인이 귀족인 경우가 많기에 수행원이나 조수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고, 각종 사치품을 두르고 있는 경우도 많았기에 망명자들의 행렬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름의 자존심도 높았는데 당연히 이들은 마탑에서 단계와 수련을 거친 정식 마법사들이었다.

나이가 어리건 많건 모두가 일신을 넘어 많은 금은보화와 신분상승이 보장된 자들이기도 했다.

이런 이들이 천 명이 넘는 기사에게 꼼짝없이 딸려왔다. 상태는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당연히 이들 입장에서는 황제의 인가를 받아 제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는데 그 가는 길 중에 시온에게 잡혀 왔으니 말이 많을 수밖엔 없었다.

“아무리 워든이라고 해도 이 같은 일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요. 이건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나? 각하께서 만나기를 원하신다.”

“황제보다 워든이 높아 보이진 않는단 말이요.”

“감히 시온 워든 각하를 모욕하는 건가? 모욕엔 대가가 따른다 마법사. 위대한 자를 모욕하다니.”

고드와 가장 앞에 있는 마법사가 계속 말다툼을 했다. 하지만 고드가 검을 뽑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조용히 해. 솔직히 말해서 황제보다, 시온 니벨룽, 남서부의 관리자가 더 궁금하니까 말이야.”

“우리를 제국의 권위에 이용하려는 자보단 제국에 우뚝 서버린 마법사가 낫지.”

천오백 명의 마법사는 한 명의 마법사 리더가 있는 게 아니었다. 마탑이 그렇고 제국의 황제 선출에 대한 법칙이 그렇듯 선출이 중요했다.

다만 마법사들은 그 선출이 더욱 고풍스러웠는데 그마저도 권리를 쪼개놔서 협의 결정하기 위한 각 계파의 대표가 있을 뿐이었다.

그 계파의 대표조차도 언제든 무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치워 버릴 수 있었다. 각 마법사 하나하나가 주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그나마 진정시켜줄 수 있는 건 뚜렷한 경지뿐이었는데, 비슷한 경지의 수가 많으면 언제든지 계파의 대표는 바뀔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 무리는 마탑에서 수련이 끝나, 마탑을 떠나 금과 일을 줄 수 있는 영주를 만나기 위해 떠난 자들이다. 입이 많고 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시온 워든 각하께서 오고 계십니다.”

“직접? 내가 이들을 끌고 간다고 말씀드렸다만!”

고드가 당황했다. 고드 입장에서는 이들이 아주 고까웠다. 기사와 마법사는 앙숙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가장 먼저 배우는 전술도 마법사 살해이기도 했다.

그걸 떠나서 시온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누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좀 얕잡아 보일 수도 있는 게 제국의 문화였다.

하지만 시온은 워낙 그런 걸 따지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얻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여덟 번이 넘도록 찾아갈 수 있다.

“저자들인가?”

시온은 삼백여 명의 마법사 무리를 보았다. 남자와 여자 젊은 자와 나이 든 자가 섞여 있었다. 복장만 봐도 마탑의 느낌이 물씬 흘렀다.

시온은 단번에 이들의 수준을 알아챘는데 이번 기수는 6단계 마법사가 많았다. 단계를 올리기에는 마탑에 있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경우가 많아서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예 안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같은 경우는 전쟁이 일어났으니 공을 세워서 작게나마 영지를 얻겠다는 욕심과 저울질해 수련을 끝내고 나온 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설득한다.’ 

시온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어지간하면 반 정도는 자신에게 남게 하고 싶었다.

용도는 많았다. 

대칸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 강제 평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시온의 군단엔 원소 마법사가 상당히 부족해서 동방 제국에 투입될 때 굉장한 균형을 잡아줄 것이었다.

‘대규모 전쟁으로 번지고 있단 말이지.’

삼만 이상만 돼도 시온이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줄어들게 되는데 십만 이상으로 넘어가면 전반적인 군대의 질이 전세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었다.

“?????”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는데 삼백 쌍이 넘는 뜨거운 눈초리는 어쩔 수 없이 시온에게 의문을 표하게 하였다.

“경······. 경이의 마법사!!!”

누군가 그 잊힌 칭호를 내뱉었다. 삼백 명의 마법사의 눈엔 시온에게서 대해(大海) 같은 마나를 느꼈을 뿐만 아니라 시온의 온몸이 찬란한 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 같은 환각을 보고 있던 거였다.

그 수준은 대마법사를 한 달에 두세 번은 간접적으로 만났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다섯 명의 대마법사를 합친 수준의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너희 뭐 하고 있지? 삼백 명이 전부 계파의 대표인가?”

“그···. 그···. 그것이···.”

“말을 똑바로 해라.”

“그것이···. 눈이 부셔서.”

“?”

시온은 고개를 까닥이다가 말했다.

“고드 횃불을 치워라.”

“이게 눈이 부시다고? 저 마법사들이 또 무슨 무례를 저지르려고 하는 것이지. 너희 감히 각하에게 한 번만 더 오만한 말을 했다간 내 검이 그대로 박힐 줄 알아라.”

“고드. 조용히 해라. 한 번만 더 그러면 여기서 내보내겠다.”

“아···. 죄···. 죄송합니다.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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