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3화 (293/304)

파멸자(2)

고풍스러운 자태가 일어났다. 인제 보니 높이는 6~8m 사이였다. 그 중간쯤 될 거였다. 검이 그윽하게 뻗어 있었다. 뭐라도 토막 치기엔 날이 무뎠다. 다만 그 무식한 크기였다. 한 번이라도 휘두르면 강타자는 따논 당상이었다.

“이게 대체, 하늘에서 추락하다니!”

시온은 놀란 눈을 한두 명의 마법사인 에슬린과 마리온을 향해 말했다. 이 정도면 단숨에 이해할 것이라며,

“방금 시간이 멈췄다.”

“!!!!!!!”

“정확힌 그 경계지. 몇 초 정돈 흘렀을 것이다.”

바로 진리를 꿰뚫은 에슬린이 되물었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랬지. 세계의 지식.”

“세계의 지식······.”

둘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어쨌든. 시온은 다시 멸망의 검날, 파멸자(破滅自)에 시선을 돌렸다.

단순하지가 않다. 그저 쇳덩이를 회 친다 하기엔 그 수준과 깊이가 아득했다. 진가는 대수식(大數式)에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수준에 모순의 포석이 늘어져 있었다. 시온은 한 가지 문구를 떠올렸다.

“대(對)결전병기(決戰兵器) 인가.” 

재현은 불가능, 다만 그 용도는 안다. 6개의 마법이 무장돼 있었고 주인, 멸망의 검날마저도 미제였다.

한 마디로 전방에 놓을 수 있는 최강의 돌일 것이다. 6개 마법의 수준도 비술(秘術), 각각의 대처는 자동, 마나의 공급이 김빠지지만 않으면······. 그게 핵심이었다.

ㆍㆍㆍ

완공을 앞둔 영원의 방벽은 딱 두 구역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것을 올리면 대강의 그림이 완성된다.

강제 평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실제로 골 제국이 얌전히 있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베어 물을 사냥감이 핏물을 흘리는데 마다할 녀석이 있을까.

대칸이 약정을 둔다 해도 유목 민족의 특징상 반드시 말을 듣지 않는 부족이 있을 거였다. 

따라서 기물을 비느 포위 전의 지원에 보탠다 해도 무방비 된 자포리자 일대와 서북부의 여럿, 지대는 강간당할 거였다.

그때쯤이면 후회는 늦을 것이었다. 시온은 상념의 실타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마리온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리온은 잠이 부족해 보였다. 눈에는 피로가 물씬 묻어 있었고 내려앉은 다크서클엔 시온의 주문을 해결하기 위한 아둥바둥이 보인다.

“각하. 완성됐어요.”

“됐나?”

“용환은 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마나의 밀도는 올라가고 고렘의 탈취는 이제 어려워요. 새로운 마나 회로가 만들어졌구요.”

“환이 깨질 줄 알았는데.”

“뭔가 그때 그곳에 다녀오셨을 때 용환도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요. 관련된 얘기는 많습니다.”

마법사가 실종되거나 실종됐던 자가 시간이 흐르고 짠하고 나타난다거나 헛소리를 한다거나 미래를 봤다거나, 생각보다 빈번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닥 신뢰하지 않는 풍조는 이것을 제외하고도 워낙에 갖가지 약물을 복용하며 취해있는 탓일 터였다.

마법사 중에는 환각 버섯에 취해있는 자가 상당히 많았다. 당장에 지금 데리고 있는 천오백 명의 원소 마법사만 들들 볶아도 한 줌은 나올 것이다.

“좋아, 그러면 진형 배치를 해볼까. 코르도바가 여섯 명의 마법사에 기사를 넣자고 하더군. 그러니 이들이 한 묶음이 되겠고.”

마리온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도 낄 수 있는 얘긴가요.”

“물론이지. 한 번 코르도바에게 끼어들도록 해.”

“감사드리옵니다.”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세계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혁신일 것인데 마탑을 나오지 않았다 해도 그녀 역시 마법사인 것이다.

“아니다, 지금 가보자고.”

“??”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온과 찾아간 곳은 한창 강체술과 여럿 진형이 연습 중이었다. 

천여 명을 몇 번이고 짰는지 이들의 모습은 다소 지쳐있었으나, 강체술의 특징상 체력 소모가 적어 여전히 여유 있어 보였다.

코르도바, 에릭, 고드가 적당한 돌덩이 사이에 얽혀서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주제에 대해선 묻지 않아도 뻔했다. 고렘에 배치할 기사의 수에 대한 것이 제목이었다.

“각하???”

“다들, 무서울 정도의 토론이로군.”

“아직 적당한 답을 드리지 못해 애석할 따름입니다.”

사실 여기에 정답이야 뻔했다. 강한 기사를 최대한 배치 하는 것이 맞았다. 고렘이 전장에 놓이면 약점은 하나로 쏠리게 된다. 

마나의 공급을 쥐고 있는 마법사들, 여기에 원소 마법사까지 집어넣을 작정이었다.

기사의 임무는 본연이 가지고 있던 백병전(白兵戰)에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들어갈 기사는 그 돌격과 충격에 무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단한 방벽. 마법사를 지키고 각종 공격을 차단할 수 있을 만한 역할이 필요했다.

“다만, 지원자가 많습니다. 호기심 때문이지요.”

“가장 강한 자를 뽑아야 한다니까?”

에릭이 비죽거렸지만, 고드는 반대였다.

“가장 강한 기사는 깊숙이 투입이 돼야지.”

기병과(奇兵)의 역할은 여전히 이곳에선 최 중요로 뽑을 수 있었다. 판이 깔리면 해야 할 건 내리치는 일뿐이다. 

각종 심리전과 그때그때 벌어지는 즉결대응능력이 배부른 장군과 배고픈 장군을 가른다.

“너무 고렘과 마법사를 무시하는 발언이세요. 고드 경. 원소 마법사가 배치되고 고렘의 힘이면 기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은 에릭과 고드 모두에게 거슬린 모양이었다. 다만 시온은 마리온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결과야 눈으로 봐야겠지만 생각보다 세상엔 변수가 많은 것이다.

“각하! 각하! 각하!!!”

저쪽 끝에서 애타게 자신을 찾는 목소리는 자신을 향해 뛰어왔다. 에슬린의 이마에선 땀이 쏟아졌고, 숨은 가빴다. 겨우 다리를 쥐는 포즈로 숨을 고르더니 시온에게 단어를 토해냈다.

“골 제국의 대칸이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곧 이곳에 당도할 겁니다.”

“왔나? 멩구티는 아직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았는데.”

“놈이 배신할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명예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놈들이야. 애초에 그 자리에서 참수했어야 합니다.”

“사신의 얼굴은?”

시온이 되물었다. 에슬린이라면 근처에 밀정을 빽빽하게 박아놨을 것이고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얼굴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황금 말 부족의 사람인지 문장기가 황금 말이었고 사신은 거기에 있던 자들과 멩구티의 부족 사람들이 섞여 있답니다.”

시온은 그 말을 듣고서 속이 풀렸다. 멩구티가 일을 잘 처리한 모양이었다.

ㆍㆍㆍ

원래라면 아무것도 없었을 허허벌판이었다. 그런데 뭔가 벽돌과 강철이 무성해졌다. 안으로 들어오는 골족 스무 명은 식은땀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시온은 이들과 만났다. 대번 이들이 쭉 쪼개져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 한 명은 낯이 익었다. 그러니까······. 이름은 딱히 기억이 나진 않았다.

바짝 얼어있던 남자가 해동이라도 됐는지 시온의 앞에 함 하나와 서신 하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사자를 맞이한 양 바짝 머리를 박고선 석상이 됐다.

‘멩구티가 제대로 교육해놨네.’

골족인지라 예의가 사실 시온이 알던 상식보다도 더 높은 상수(上數)였다. 어쨌든 시온은 놈에게 물었다.

“멩구티가 보낸 건가?”

“그렇습니다. 위대한 늑대여.”

위대한 늑대란, 고저 골족이 영웅을 칭할 때 하는 발언이었다. 적수에게 그런 칭호를 붙였다면 골족에 돌고 있을 자신의 평판이 얼추 계산됐다.

‘녀석이 돌아가서 영원의 방벽까지 입을 놀리곤, 강제평화만 떨어진다 하면 제압할 건 동방제국뿐이겠지.’

동방제국의 장엄제(莊嚴帝)가 보통 황제가 아니라 하나 시온은 상대의 수도를 불바다로 침수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 전공까지 얹혀진다면 나머진 황제를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매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대칸의 전언과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시는 것을 먼저 보십시오.”

시온은 속으로 주사위를 던졌고 나온 수는 함이었다.

“함으로 하지.”

“그걸로 하시겠습니까?”

그가 질질 끌리는 자세로 앞으로 나오더니 함을 열었다. 시온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안에는 멩구티의 머리가 소금에 절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경직됐다. 선물이랏고 사람 머리를 달려오면 답은 뻔한 거였다.

“?”

“?!!!”

“설마!”

“대칸께서 보내는 전언이다!!”

가까이에서 숨죽이고 있던 전사가 단숨에 뛰어들었다. 아마도 접근하기 위해서 이런 극진한 예의를 인내한 모양이었다.

“씁···. 이것들은 진짜. 정신을 못 차렸군.”

전사의 몸이 털이 급성장하고 근육이 찢어졌다. 그것은 더 거대하게 변하기 위한 탈피였다. 자라난 손톱은 뭔가를 찌르기 충분, 어금니는 물어뜯기 위한 방식으로 진화해버린다. 늑대인간이었다.

시온은 휘파람을 불었다. 이건 또 처음 보는 타입이었다. 이미 짐승으로 변한 면상이 목덜미를 뜯기 위해 쩌억 벌어졌는데, 시온은 늑대의 주둥이를 잡아챘다. 손째로 물기 위해 닫으려고 했으나 어째 꼼짝을 안 했다.

“???????????”

‘무······. 무슨 사람 힘이 건물을 당기는 것 같지???????’

손가락 사이로 늑대인간의 침이 공포에 젖어서 쏟아져 내렸다. 빼려고 해도 안 빼지고 눈알이 핏줄로 벌게진다.

연이어 동행한 스무 명의 전사가 시온의 기사와 엉켰다. 그중 미로를 통과한 자가 이리저리 튕기더니 시온을 향해 맹렬히 쏘아졌다.

“일단 너에게선 얘기를 좀 들어봐야겠다. 너 거기 있던 놈이 맞던 것 같던데.”

시온은 쏘아지는 전사 두 명을 보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안절부절못하던 늑대 인간의 턱이 빠개져 버리고 시온은 혼돈의 메이스를 적적하게 꺼내 또 다른 늑대 인간의 머리에 후려갈겼다.

골통이 쪼개지고 그 안에서 뭔가가 철철 흘렀다. 사령탑을 잃은 그것은 허망하게 쓰러졌다. 네 발을 쭉 뻗은 뒤 발발하며 사지를 경련한다.

“너는 안 올 거냐?”

남은 녀석이 급정지하듯 멈추고선 눈알을 굴렸다. 두 곳을 빠르게 훔쳤는데 뻔했다. 하나는 머리가 없었고 하나는 병신이었다.

“살···. 살려!! 읍!!! 항복!! 항복합니다!! 위대한 늑대여!!”

“?”

용맹하게 달려든 것치고는 김빠졌다. 어쨌든 굳이 멸종시킬 건 없었다. 골 제국 쪽이 대견 어떻게 형세가 돌아가고 있는지는 엿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온은 잔반 정리되는 과정을 보다가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피를 먹은 혼돈의 메이스는 그 투박한 면에 맛있게 침을 흘리는 도중이었다.

“위대한 늑대여!!!”

두 손을 벌 받듯 올리고 폭우가 쏟아지듯 흠뻑 젖은 한 마리의 최후에 늑대인간의 잘 벼려진 털에 메이스를 쓱쓱 닦았다.

“!!!!!”

시온이 그것을 그의 머리 위까지 비벼대자 늑대 인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을 직감한 대신 내려진 건 가벼운 딱콩이었다.

“아무래도 입을 뜯어버린지라 네 대장이 말을 해줄 건 같진 않군. 대칸이 뭐라고 했는데, 끝까진 들어봐야지.”

“복······. 복······. 복······. 복···.”

렉이라도 걸린 마냥 한 단어를 반복했다. 내뱉었다간 이승하직인데 그 정도의 만용은 없었던 거였다.

“복수라고? 맞으면 고개라도 끄덕여라.”

“.............”

늑대 인간에게 있어선 영원과도 같을 찰나.

“그렇군.”

시온은 간단하게 납득했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그보단 얘네들이 괜찮아 보이진 않거든. 여기 이 녀석, 일단 고쳐봐.”

“아? 아. 아하.”

다양한 반복어가 들리더니 잽싸게 기사 하나가 빠졌다. 원소 마법사 중 치료에 능한 놈을 데려올 거였다.

“그래, 멩구티가 왜 이렇게 매섭게 절여졌지?”

시온이 함쪽을 바라보며 말하자, 살아남은 녀석이 바로 조각을 던졌다.

“멩구티 장군이 대칸을 암살 시도했습니다. 위대한 늑대여.”

“???”

“.....진짜입니다.”

“그러라고 안 보냈는데??”

“그게, 대칸이 진노(震怒)했습니다. 다만, 저주를 걱정해 사흘 밤낮을 자지 못하다, 일을 꾸미곤 발각되어 말에 밟혀 죽었습니다.”

“밟혀 죽었다고???”

“아, 그게 황금 말 부족은 그럴 만한 존재인지라 피를 보지 않고 죽이는 게······.”

보통 제국 귀족의 죄는 참수였다. 참수가 명예롭다고 본 것이다. 목 매이는 건 수치였다.

시온은 곧장 턱을 괴었다. 이런 잔재주를 쓴 게 오히려 독이 된 거였다. 차라리 그냥 보냈으면 나았을 뻔했다. 바닥에 처량히 굴러다니는 전서를 까보니 일이 명확해졌다.

[내 아들을 화형에 처해 죽이고 그 일부를 능욕하여 보내다니, 제국에 매인 개여, 그대가 전쟁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생각보다 성격 화끈한 데?”

총력전 선포가 짤막하게 놓여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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