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
자빠진 대형 영수의 몸체가 짓이겨 있었다. 핏물이 쏟아졌다. 뼈가 훤했다. 고통에 버둥거리는데 사실 이게 메인은 아니었다.
“소모되는 마나 봐라.”
혈관을 타고 파멸자에게 빨려 들어간다. 시온이 시선을 돌렸고 고대의 기사 주변에 몇 개의 비술이 담긴 수식이 열렸다.
한 마리가 단숨에 나가떨어졌는데도 두 마리는 지치지도 않고 소리를 질렀다. 동족의 피 냄새를 맡으면 되레 강해지는 타입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정말로.”
“각하께서 하신 건가?”
“아니다. 저건, 분명히 애초에 내재가 되어 있는 형태다······.”
어쨌든, 공중으로 튀어 오른 육중한 무게와 몸체에 비술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불덩이가 쪼개지더니 쏘아졌다.
기본적으로 비술 3개는 같았는데 원형의 형태를 분해해서 사방에다가 쏴내리는 방식이었다. 속성은 시전자의 마나의 성질에 영향을 받는 듯했다.
자연히 시온이 가지고 있는 전격과 염력이 주였는데, 이것이 적이라 판단되는 녀석에게 적나라하게 쏟아졌다. 찰나에 수백의 구멍을 뚫었다.
각 속성에 따라 이차 속성이 부여됐는데, 염력에 노출된 녀석은 균형을 잃고 자빠졌고, 전격에 먹힌 녀석은 속에서 익어버렸다.
마지막으로 가운데에 있는 녀석은 거대한 불길에 휘말렸다. 애초에 첫 번째 검질에 상처를 입은 터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방비로 당한 거였다.
“............”
충격에 빠진 세 명이 숨만 겨우 쉬고 있을 무렵, 물론 시온도 놀랐다. 단순히 거대한 골렘이 움직이고 그것이 검을 휘두르기만 해도 위협적인데 이런 대규모 전투를 염두에 둔 마법도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줄은 몰랐던 거였다.
‘단순히 보조인 줄 알았는데. 장난이 아니군.’
시온이 턱을 짚었다. 어떤 전선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 녀석은 그곳을 밀어버릴 것이다. 한 마디로 해결사였다.
고대 기사의 오른쪽 어깨에서 뛰어내린 시온은 바닥에 착지했다. 앞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대형 영수가 화끈화끈했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이 정도라면 마나 폭주가 있을 수도.”
“아니야, 이건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로 효율적이다. 흐름 자체가 마법사가 주가 아니야, 그냥 마나를 넘겨주는 거지.”
시온은 짧은 소감을 마쳤다. 이런 게 3개에 이것보다 전술적인 용도가 있는 비술이 2개 그리고 마지막은······.
벌써부터 그림이 그려졌다. 솔직히 말하면 소규모 인원을 상대할 때는 효율이 너무 안 좋았다. 당장에 여기에 공급해야 할 마나만 해도 어질어질했다.
따라서 기본적인 움직임으로 소규모 인원을 상대하는 편이 나았는데 케식 정도만 돼도 저 뭉툭한 검격에 맞을 자는 반수 이하였다.
시간이 주어지면 약점도 금방 알아차릴 거였다. 약점은 마법사였다. 고대의 골렘을 피해서 마법사만 집요하게 노리면 됐다.
“위험하겠군.”
“예? 어떤 점이 말입니까?”
“아니, 나 말고.”
시온이 직접 하면 이런저런 대응이 가능하긴 하나 상황에 따라서 맡기는 편도 좋았다. 둘 다 준비하는 편이 좋기에 시온은 이 고대의 기사에게도 한 무리의 마법사와 기사를 붙이고 싶었다.
“설마??”
“음, 그 설마가 맞다. 너희 셋 중에 하나가 이끌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겠는데.”
셋 다 놀라면서도 욕심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서로 한 번씩 노려봤다. 그 전에 아르눌프가 바짝 앞으로 나와 시온에게 말했다.
“각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뭐지?”
“단독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두 명을 보다가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듣고 판단해도 상관없었다. 구미 있는 제안을 하면 아르눌프에 이 자리를 줘도 됐다.
‘암만 생각해도 무진장 위험한 자리야.’
같이 들어간 기사가 가드를 해주긴 할 것이나 온갖 공격에 노출되면서 방향을 정하고 하위 마법사의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했다.
게다가 아마 이것이 배치될 위치는 맨 앞일 것이고 많이 봐줘 봐야 이미 전세가 밀린 희망 없는 장소일 거였다.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두 명이 자리를 비키자 적당해졌다 싶은 즘에, 시온이 아르눌프에게 물었다. 아르눌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했다.
“각하! 제 신분에 대해선 알고 계실 겁니다. 이번에 황제에게 처형당한 자는 제 아버지입니다.”
“보두앙, 그렇지.”
두 번이나 봤었다. 한 번은 움드를 받기 전의 연회에서 두 번째는 마인츠의 만찬에서였다. 결국엔 형장의 이슬이 되었지만, 그는 예전에 세력이 없던 시절 시온이 노리고 있던 인물 중 하나였다.
동맹으로 후원만 맺을 수 있다면, 움드에 들어갈 자금을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는 드래곤 상회로 돌아가 버려 그 뒤로는 영 보지는 못했지만, 황제의 다음 조력자로 떠오른 자였다.
“다음 판 란데런의 차기 상속자는 저였습니다. 란데런의 귀족들은 저에게 거래했습니다. 차기 공작으로 추진할 터이니 워든 각하의 고렘을 빼 오라고 말입니다.”
“???”
“저는 그 서신을 찢었습니다. 대신 솎아내기 위해 명단을 준비했습니다. 여깄습니다.”
시온은 공포에 젖은 명단을 받았다. 이름을 쭉 훑어보니 대강 마탑의 원소 마법사들이었다. 음.
“알았다. 일어나라.”
가장 흔한 방식이라면 모두 목을 매달아 버리면 됐다.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목록엔 귀족이 포함되어 있었다.
둘째로 지금은 마법사가 귀했다. 협박해서 다시 쓰는 위험을 부담할지, 아니면 정리하고 군기를 잡을지의 여부였다.
“저는······. 분명히 죄가 있으나, 각하에게 온몸을 바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란데런 공작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종군하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밝혀진 이상 죄가 없다고 볼 순 없었다. 자연히 이 녀석을 처리하는 게 법대로이긴 하나 그것을 내리칠 사람은 시온 밖에는 없었다.
시온이 고민하자, 그의 이마에서 땀이 쏟아졌다. 이어서 시온이 결정을 했다. 아르눌프는 쓰기로 말이다.
“일어나라. 아르눌프. 네 결심을 증명하기는 해야 할 거다.”
“감···. 감사하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ㆍㆍㆍ
황제의 열 개 군단의 대원수인 벨리사르는 난감한 서신에 얼굴을 구겼다. 그의 발아래에는 수천의 기사가 서로가 얽혀 격투하고 있었다.
부상 가능성이 있지만, 제국 전통의 기사의 훈련법이었다. 그런 부글부글 끓는 장소에서 전해 받은 소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군단장을 모두 불러라.”
“전부 말입니까?”
“그래, 하나도 빠짐없이.”
총력전이라니, 벨리사르가 중얼거리며 좌우로 불안하게 왔다 갔다 했다. 우려가 사실이 되었다. 근데 요지가 이상했다.
‘시온 니벨룽이 대칸의 자식을 태워 죽였다고, 언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지? 내가 모르는 어떤 음모가.’
그는 타고난 기사였기에 이런 쪽에는 늘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위치까지 별 탈 없이 있을 수 있던 거지만 그동안 보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의 판단엔 시온은 죄가 없었다.
“벨리사르 장군 부르셨습니까? 긴급사태라 하여.”
한참 훈련 도중이었는지 부원수 흐라비세는 한바탕 닦아야 할 판이었다. 피가 흩뿌려진 것이 직접 결투 지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골 제국이 침공한다고 한다. 선전 포고다. 그리고 곧 황제의 명령이 되돌아올 거다.”
나머지 군단장들도 하나둘 모였다. 총 일곱 명이었다. 한 명은 란데런에서 반란이 일어날까 이동한 지 오래였다.
“비느도 함락이 되기 직전이라 하던데요. 제가 듣기론 저의 모두를 아래에 움직이게 할 예정이랍니다.”
“이곳은?”
“어차피 워든이 방어에 실패해야 오게 될 장소입니다.”
“따로 군단을 만들고 있겠죠. 분명히.”
수도의 인구에서 나오는 신규 군단은 그냥 금화가 얼마가 드느냐의 문제였다. 베테랑은 아니라고 해도 이곳 장미의 장벽에 있는 곳에 일반 수준의 군단이 방어에 임해도 뚫기가 쉽지 않았다.
고대에서부터 있던 장벽인지라 수준은 세대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어지간한 공성 무기엔 꿈쩍을 하지를 않고, 대마법도 일부분 방어가 가능했다.
그 위에서 2억 5천 평의 예프 일대의 풍족한 식량 수급 덕에 굶주리게 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난 솔직히 말하겠다. 시온에게 군단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벽을 만들었다 하더군요. 믿기진 않지만 50키로미터 정도의 요지를 장악했다 합니다.”
“과연!”
군단장 모두가 들은 바가 있어서인지 곳곳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러면 누가 시온에게 군단을 데리고 가냐의 문제가 남는다. 단 가는 자는 이제 황제의 벌을 당하게 될 거였다.
어쩔 수 없이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일말의 사정조차도 날려버릴 만한 얘기를 흐라비세 군단장이 꺼냈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제의 재산에 손을 댔다 하더군요. 수많은 예술품이 마탑에게 팔렸습니다. 대가로는 추정컨대 8만 톤의 밀입니다.”
“맙소사. 그런 판단을 했다고??”
“역시 파격적인 분이군.”
칭찬 일색이었으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벨리사르는 한숨을 푹 쉬었다. 누구를 보냈던 간에 벌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한통속으로 몰려 장군직을 내놔야 할 수도 있었던 거였다.
“없던 일로 해야겠군. 압수하고 있던 식량 정도만 보내는 것으로 하지.”
억류하고 있던 5만 톤의 반을, 식량 창고를 열어 시온에게 밀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ㆍㆍㆍ
160억 평의 카스피아 초원지대는 조용했으나 그 앞에 있는 도시인 에가는 인간의 홍수였다. 도대체 얼마나 모였는지 감이 오질 않을 정도로 많았다.
모두가 전투 인원이었는데 그 수가 백 오십만이었다. 군단으로 따지자고 해도 백오십 군단이라는 대규모 공세였는데 추후에 도착할 오십만까지 더한다면 이백만 군세의 침공이었다.
“어서 제국을 먹어 버리자!”
외치고 있는 구호도 뻔했다. 새로운 대칸인 바트는 이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던진 것이다. 갈라지려고 하는 이 모든 부족에게 힘을 합쳐 제국을 먹어버리자는 것.
“대칸, 그런데 듣자하니 시온 니벨룽이 카스피아와 자포리자 사이에 영원의 방벽을 건설했다 합니다.”
“다른 길은 없나?”
“힘듭니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제국 놈들은 보기만 해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나저나 신기한 일이군. 시온 니벨룽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려 이 짧은 시간에 거대한 장벽을 만든 것이지.”
“소문은 많습니다······.”
“젠장. 그러니까 녀석을 죽여야 내가 위대해질 수 있단 얘기가 아니냐.”
“.......”
시온이 망명자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생긴 전투가 벌써 전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못해 물릴 수준이었다.
공포까지 생길 정도였는데 라산 왕국에서 어떤 전쟁을 거쳤어도 한줌의 두려움이 없던 이들이란 점을 보면 놀라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ㆍㆍㆍ
“준비됐습니다. 각하.”
아르눌프의 목소리가 들리고 시온은 잠시 있다가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삼십여 명의 마법사가 꿰이듯 결박당해 있었다. 아르눌프가 넘긴 자들이었다.
“너희들인가?”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한 명이 자비를 꺼내자 곧 모두가 매달려서 아우성이었다. 시온은 아까 정했던 바를 꺼냈다.
기존의 원소 마법사들에게 공포를 줘서 이탈자를 막는 것보다 이들을 조금이라도 쓰임새 있게 쓰는 게 나아 보였다.
‘어차피 나 때문에 다들 똘똘 뭉쳐 있잖아?’
희한하게도 장벽 안의 분위기는 그랬다. 어떻게든 시온이 해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가득했다. 그런 것을 시온도 가지고는 있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고대의 기사가 그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원하시는 게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저는 황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조용히 해라.”
저번에 괜히 저주를 걸은 척해서 일 터진 일도 있고 이번엔 좀 더 대화로써 풀어볼까 했다. 대신, 겁은 확실히 줘야 했다. 곧바로 수줍어진 삼십여 명의 마법사에게 시온이 몸을 침묵을 깨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죽을래?”
“!!!!!!!!!!”
“말하지 않으면 매달겠다.”
“!!!!!!!!!”
“가장 명예로운 건 나에게 결투를 걸어서 죽는 거다.”
“!!!!!!!!!”
다들 부들부들하는 게 얼굴빛이 납으로 변했다. 이제 자신이 하는 말 하나하나는 마치 황제가 내린 결단 명령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시온의 입에서 튀어나오면 그걸 제지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였다. 실력적으로도 제국에서 가장 강할 것이 분명한 존재였다.
그러니 정신이 바싹 말라 버릴 정도의 충격 아닌 충격을 받는다.
‘.......이 녀석들 왜 이래?’
수많은 심문 경험이 나름 쌓인 시온이 봐도 이 마법사들은 바로 절망 상태에 빠졌다. 보통은 발악이란 발악은 다 하면서 협상을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