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습
대강의 견적이 나왔다. 대칸의 주술사들은 전투가 능하고 특이한 능력이 있긴 한데 시온의 경험상 보조적인 용도는 제국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만약에 제국군을 앞두고 있었다면 한쪽에 300기의 고렘과 거기에 붙을 마법사와 기사를 숨긴다는 건 힘들었을 거다.
ㆍㆍㆍ
귀를 내려칠 정도의 소리가 몇 번이고 서막을 알렸다. 마석기 여덟 기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된 거였다. 마석기 탄환은 매개 역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투석기보다도 길었다. 그 위력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초탄이 번쩍하고 나타났고, 시온은 자세를 더 낮췄다. 눅눅한 바람이 쏟아졌다. 굉음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있으려나. 시온은 케식을 찾았다. 그런데 난전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면적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적은 방어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시온이 죽인 케식의 수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천둥폭격진으로 많이 갔지.’
하나하나가 만부장인데 대충 더해봐도 백 명이 넘었다. 대부분 주챠가 사망할 때 몰살했던 녀석들이다.
비었군. 제대로 쳤어. 시온의 눈이 좌우를 훑었다. 저번의 공격이 아물지도 않은 터라 방비는 허술했다.
막사가 흘러 내리고 창대를 든 자가 자빠졌다. 공포에 줄행랑을 치는 녀석도 많았다. 삽시간에 불덩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니벨룽 기사단 삼만이 이들을 붕괴시키고 있었다. 워낙에 수가 많아서 잠깐 시간을 쟀을 뿐인데 시온의 기사들이 벌써 저만큼이나 밀고 들어갔다.
골족의 전사를 죽이는 것보다 방비를 부수고 불 지르는 게 먼저였다.
개간 작업이 덜 끝났는지 몇 군데는 말의 발이 움푹 들어갔다. 마석기의 초탄 이후 여덟 번의 굉음이 순차적으로 들리고 시온은 말을 돌렸다.
“빠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근처의 기사가 그것을 물고 빠른 속도로 기사들에게 전달한다.
한 번 잠시 들어왔다 나갈 뿐인데 그 잠깐 사이에 오 육천 명이 죽은 것 같았다. 아비규환에서 시온의 심장도 흥분으로 뛰었다.
어쨌든, 놀 때가 아니다. 이건 속임수니까. 아쉽지만 기습 작전은 이번이 마지막일 거였다. 그나마 약하다고 판단되는 위치는 다섯 군데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이번을 마지막으로 바트의 후속 병력이 방비를 끝낼 거였다.
막상 등을 돌리고 기사단을 먼저 보내며 시온은 자연스럽게 말을 후미로 늦췄다. 몇몇 니벨룽 기사가 발목이 잡힌 것이 보였다.
곧바로 창대를 잡고 그쪽을 향해 후려 던졌다. 막 올가미에 끌려 낙마할 것 같은 젊은 기사의 눈이 희망에 차올랐다.
“각하!!”
“끄륵...”
시커먼 창대가 올가미를 돌리던 녀석을 뚫어버린 것만 아니라 바로 뒤에 있던 녀석까지 굴비 꿰듯 꿰뚫었다. 그나마 세 번째 녀석이 자기 위에 있는 시체를 밀어내면 발버둥을 치는 것이 그나마 운이 좋았다.
영수마(馬)에 달아놓은 창은 좌우 열다섯 자루였다. 일반 말이라면 시도도 못 하겠지만, 영수마는 가능했다. 확실히, 늘었군.
신기에 달한 투척술도 그랬지만 밤눈도 밝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술에 이런 측면이 있었나,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을 즘, 신체는 것과 다르게 다음 창대를 던졌다.
최소 세 명에서 다섯 명을 뚫릴만한 교활한 방향으로만 던졌다. 피 분수가 검은 바탕에 뿌려졌다. 공포 서린 단어가 그들 사이에서 돌았다.
“늑대다! 위대한 늑대!”
자루가 빠르게 비워졌다. 채울 방법은 없었기에 두 개가 남았을 때 잽싸게 영수마를 돌렸다. 안 그래도 빠른 놈이 자루를 비웠다고 평야를 내리쳤다.
거리가 벌어졌다 싶었는데 어느새 니벨룽 기사단의 후미로 다시 붙었다.
“각하!! 감사를!!”
이 속도에 말을 뱉기도 힘들 건데 최후미의 젊은 기사가 용케 한 마디를 건넸다. 분명히 방금 올가미에 끌려갈 법한 자신의 기사였다. 골족은 희귀한 방법으로 기사를 사냥했는데, 그게 저런 식의 올가미를 던져 끌어내리는 거였다.
자신들이 숫자가 많으니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시온이 짧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젊은 기사가 눈물을 주렁주렁 흘리고 있었다.
“?”
“각하가 아니었다면 전 지금쯤! 어머니께서 슬퍼하셨을 겁니다! 평생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뭐라고 해줄 말이 딱히 떠오르지는 않았기에 시온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잘했다, 나.
일단은 기습은 이것으로 끝이다. 시온은 뒤를 돌아봤다. 추격의 소리는 있었으나 멀었다. 분노와 경악에 벌벌 떠는 외침이 들렸으나 답해줄 의무는 없었다. 그 위로 별 자락이 끝없이 수놓아 있었다.
기사단의 선미가 열린 문으로 세차게 들어가는지 마력의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은신 마법이 걸린 막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랬다.
잠시 말을 세워 니벨룽 기사단의 후미가 빨려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데 얼마나 열이 뻗었는지 여까지 포악하게 말을 모는 게 보였다.
“시온 니벨룽!!! 이 빌어먹을 새끼!!! 비겁한 자!!!”
친절하게 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 녀석에게 시온은 남은 두 자루 중 하나를 있는 힘껏 던졌다. 눈을 가늘게 뜨자 창대가 꽂히는 게 보였는데 삿대질하던 자와 함께 뒤로 쓸려갔다.
“여섯 정도?”
시온은 남은 최후의 창대를 툭툭 위아래로 던졌다. 어차피 일반 창대인지라 그렇게 아까운 건 아니었다. 이게 아까우면 구두쇠다. 그렇게 마저 하나를 던졌는데도 신나게 쫓아왔다.
“각하! 들어오십시오!!”
“아직 아니지. 석궁 준비됐나?”
굳이 대답을 안 줘도 상관이 없었다. 준비되어 있을 거니까. 초이가 준 석궁은 보통 석궁이 아니었다. 크기부터가 발리스타보다 약간 작을 정도였고, 동력도 마나가 필요했다.
한 마디로 마탑에서 막 생산된 신상품이었다. 이번 전쟁을 염두에 두고 비싼 값에 팔려고 마탑의 마공방 몇 개가 치열하게 준비했던 거였다.
그것을 몰아서 사서 시온에게 넘겨준 거였다. 이런 과감한 행동이 가능했던 건 워낙에 시온이 확보한 금광 지대가 막대한 금을 채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화가 많아도 제때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 시온은 아끼지 말라고 미리 언질을 해뒀었다.
그나저나,
우뚝 서 있는 시온이 얼마나 맛있어 보였으면 선두 천여 명에 후미에 오천여 명 정도가 브이자 모양으로 송곳처럼 희열에 차서 달려오고 있었다.
“형제의 분노를 받아라!!”
그리고 석궁의 시위가 퉁겨지는 소리가 쏟아졌다. 얼마나 그게 강렬한지 고막이 먹먹할 정도였다.
방향이야 앞에 있는 자들이었는데 하나하나가 땅에 박제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수백이 넘었고 석궁 화살에 걸린 마법의 특징상 이동로까지 끌어당긴다.
말의 다리가 뒤틀리고 분질러졌다. 자기들끼리 자빠졌다가 석궁 비에 이곳저곳이 관통되어 핏물을 뽑아내고 춤을 췄다.
“워. 이게 마탑의 신무기인가.”
고렘 때문에 저평가하고는 있었는데 영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입맛이 싹 사라질 정도로 피 냄새가 들큰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십 수군 대를 꿰뚫려 마지막 단말마와 함께 꿈틀거렸다. 저것도 잠시일 거였다.
시온은 등을 돌리고 영수마의 옆을 쳤다. 은신의 베일이 한 차례 출렁이고 해자 앞에 혀를 내밀고 있는 다리가 보였다.
쏜살같이 그곳을 주파하자 다리가 올라가고 문이 닫혔다. 어지간하면 은신의 베일이 있는지도 모를 거였다. 후우, 석궁 장난 아닌데.
시온은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수천 쌍의 눈동자에 손을 들어 멀쩡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 가속 돌진은 다 좋은데 피가 많이 튀겨.’
솔직한 감상이었다. 가속 돌진 자체가 일반 돌진이 아니고 그것 자체가 거대한 마나의 막이 돌진하는 거였다.
따라서 거기에 걸린 인간은 간단하게 분쇄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의 규모가 삼만의 정예 기사단에 역사에 남을 수도 있을 만한 돌진이었으니, 일격에 수천 명이 사지가 날아가 버린 거였다. 기사들은 소낙비에서 싸운다고 농담까지 했다.
시온은 옆에서 가죽 주머니를 준비한 시종에게서 그것을 가로챘다. 뚜껑을 열고 바로 머리 위에 부었다.
“아르눌프는?”
“잠입에 성공했습니다.”
“그런가. 훌륭하군.”
300기의 전장 고렘을 이끄는 건 아르눌프가 하기로 했다. 아르눌프가 적임자였다. 시온이 따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이번 일은 극히 위험했다. 마리온과 에슬린은 안 되지. 그들을 여기서 잃어버리기에는 뼈가 시렸다.
하지만 7단계 수준의 은신 마법을 걸고 유지해야 하는데 시온이 휘하에 데리고 있는 마법사 중 둘을 제외하고 남은 자가 자신과 아르눌프밖에는 없었다.
“각하, 닦아드리겠습니다.”
“저 물통이나 가져와.”
사람 몸통 크기에 둘레는 세 배가 될법한 통나무로 만들어진 식수통, 시온은 그것을 가리켰다. 잠시 시종 세 명이 붙어 끙끙거리고 온 것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휙 던졌다. 보던 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머리 위로 오는 것을 마나로 갈라 버렸다. 나뭇결이 쫙 쪼개지더니 수십 리터의 물이 덩어리져서 터졌다. 타오르던 피가 이제야 좀 식었다.
‘남은 건, 비가 언제 오느냐 군.’
“각하, 이제 기습은 이것으로 마지막으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단 마석기는 여전히 저희만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골 제국은 그 정도의 사거리를 가진 공격수단이 없어요.”
“아이고, 늦었습니다. 각하, 근데 마석기 중 한 대가 균열이 갔습니다.”
에슬린이 마석기를 지휘하다가 후딱 내려왔는지 숨을 몰아쉬면서 시온에게 말했다. 질책을 할까, 심장 터질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데, 시온도 어느 정돈 알고 있었다.
‘최대 사거리로 당겨 쓰는데 얼마 못 버티는 건 당연하겠지.’
현대인인 시온에겐 간단한 이치가 있었다. 그만한 곳에다가 장력으로 보내려면 기반이 될 만한 자제여야 하는데 마석기의 기본 자재는 나무였다. 특이 나무를 써서 훨씬 견고하다고는 하나 그래 봐야 나무였다.
“모두들 쉬어라. 마리온 결투 서신을 내일 보낸다. 가능하겠지?”
“가능합니다. 제가 기르는 영수를 통해서 보낼게요.”
마리온은 영수를 직접 몇 마리 기르고 있었다. 에슬린에게도 시온에게도 없는 재능이었다.
ㆍㆍㆍ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시온은 습관처럼 하늘을 봤다. 먹구름이 언제든 비를 뿌릴 것처럼 자세를 잡고 있었다.
‘비가 오는 게 문제가 아니지, 우기가 시작되느냐가 문제지.’
약간의 비라고 하면 어제도 왔었다. 근데 그 정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웃기게도 이 정도의 구름이 있다 해도 카스피아 초원 지대에선 그냥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반반 징조였다. 비가 꽂히면 보름 내내 쏟아질 거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흠···.”
시온은 우기가 시작된다고 가정을 하고 아르눌프와 전장 고렘 삼백기를 숨겨 놓았다. 만약 비가 오지 않는다면 이들의 목숨과 고렘을 따로 구출해 오기 위한 작전을 짜야 했는데 이젠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었다.
매섭게 구름 낀 하늘을 노려보던 시온은 영원의 방벽 위로 올라갔다.
단단하다 못해 제국의 결정체와 같은 미려한 아름다움이 묻어져 있는 계단을 이어 타다가 아래가 훤히 보이는 위치에 우뚝 섰다.
‘염병.’
절로 욕이 나오는 초대규모의 군세가 밀집되어 있었다. 여러 차례 강습했던 덕택에 전방엔 철저하게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그 뒤에 있는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지평선 끝까지 있었는데 징그러울 정도였다.
미친 거 아니야. 온다고 진짜 오냐. 그때 주챠 놈만 낚아챘어도 노릇노릇하게 구워지지는 않았을 건데, 은근히 아쉬워지고 있을 무렵, 굉장히 자신감 넘쳐 보이는 190센티미터의 사내가 말을 단독으로 몰았다.
깃발 하나를 꽂고 있었는데 사신용이라는 뜻이었고 자연히 가까이 다가온 그가 시온을 알아보고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활을 쥔 거 같았는데 순식간에 발사된 그것을 시온이 탁하고 잡았다.
“???????”
주변에서 턱이 빠지려 하는데 시온이 화살을 부러뜨리고 거기에 묶여있는 서신을 집었다.
“위대한 늑대여!! 이것 가지고 화를 내진 않겠지?? 그대의 도전을 대칸께서 받아들이셨다!”
우렁찬 소리였는데 사방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사람 목소리는 아니었고 분명 주술과 관련이 있었다. 귀에 매달은 짐승 눈알 장식을 보아하니 후케식이 확실했다.
그럴 리가 없지. 역시나 결투를 받아들였군. 시온은 대칸 놈이 자신의 도발을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애초에 자신만 무너뜨리면 끝나는 판이 아닌가. 영원의 장벽을 넘으려고 피의 탑을 쌓아야 하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후대에 두고두고 손가락질받을 거였다.